(2) 은밀계시 - 영감

조직신학 본서       교리성구 사전

                       (2) 은밀계시 - 영감

서기 1 48
(2023년본)

(2) 은밀계시 - 영감론

① 영감의 정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영감’이라고 한다(딤후3:16). 넓게 말할 때는, 하나님의 모든 활동을 영감이라고 하며, 가장 좁은 범위에서 말할 때 영감은 성경기록을 위해 성경기록자들에게 역사한 영감만을 영감이라고 표현할 때도 있다.



② 성경과 영감역사

일반 신학에서 ‘영감’이라는 표현은 성경을 기록할 때 역사했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역사를 가장 중심에 두고 있다. ‘영감’은 ‘성령의 성경기록역사’와 같은 단어로 사용되는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하나님의 활동을 너무 좁게 관찰한 결과다. 지난 시대가 어리고 어두워 가장 외부로 표시가 잘 나타난 것만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렇게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활동은 비록 성경기록 역사에서 가장 쉽게 확인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그것으로 전부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감화’와 ‘감동’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영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영감의 가장 중심적 활동을 성경 기록과 관련하여 찾아봐야 할 이유가 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통로이며 또한 교리의 근본 구성 체계가 구원론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우리가 현실에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말씀 순종에서도 영감역사가 바로 그 말씀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③ 영감의 성질

▪ 개별성

성경으로 기록하신 진리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넓은 면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영감은 각자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하고 개별적인 진리로 우리를 좁게 인도한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성경으로 기록해 주신 진리이니 이는 모든 시대 모든 믿는 사람 전부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러나 주일날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목회자와 주일학생을 가르치는 반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은 각자에게 전혀 다른 행동을 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믿는 사람은 그 타고난 체질과 입장 그리고 살아온 평생 그리고 현재 처한 현실 환경이 다 다르다.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만들어 달리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중생 되는 그 순간부터 성령이 각자에게 감화와 감동을 통해 그 사람만이 해야 하고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인도를 평생 하고 있다.(요일2:27)


▪ 성화성

영감역사는 항상 우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성결의 역사로 나타난다. 죄로 더럽혀지고 고장난 우리 인격과 행위와 생활을 하나님께서 원래 만든 하나님의 모형으로 복구시킨다. 물론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비용으로 투입되었다. 그 자본과 진리의 법칙에 따라 성령은 매 현실에 해당되는 우리 속에 있는 한 요소요소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명령을 한다. 순종하면 성화가 되어지고, 자기 신앙양심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요구를 거부하면 그 부분은 다시는 되살릴 수 없는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지옥에 버려야 한다.

성령의 이름은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므로 그 이름을 성령이라 한다(롬1:4). 깨끗하게 하는 방편은 구별이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삐뚤어졌으며, 어느 길은 가야하고 어느 길은 잘못인지를 늘 알려주시고 그 둘 중에 옳은 것을 택하고 옳은 행동을 하게 역사한다. 그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순종하면 그 순종하는 만큼 성령화 되어진다.

참고로, ‘깨끗’은 검은색이 흰색으로 바뀌거나 쥐가 고양이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원래 검은색으로 만든 것은 검은색이 깨끗한 것이고, 그 본질을 원래 흰색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흰색을 유지해야 깨끗한 것이다. 타락하기 전 인간, 하나님께서 원래 목적하시고 만들어가려 했던 바로 그 모습으로 돌아가고 그 모습을 되찾는 만큼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이 면을 책임 맡은 하나님의 이름이 바로 성령이다(고전6:11).


▪ 내면성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할 때는 우리 내면의 신앙양심을 통해서 나타난다. 즉, 신앙양심은 우리 인간에게 속한 요소이며 특히 이는 물질로 된 마음의 한 부분이지만, 이 신앙양심은 우리에게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와 같다. 물론 이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에게 성령을 대하는 부분은 영이다. 그러나 여기서 영을 대신하여 신앙양심을 말하는 이유는, 영은 중생된 이후에는 걱정할 것도 없이 항상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과 나뉘어 존재하는 수가 없다.

신앙생활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영에게 항상 내주하시는 성령이, 우리 영을 통과한 다음 우리 마음에까지 들어와야 하는데 마음에 들어오는 이 단계에 고장이 있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까지 들어와야만 이제 우리 죽을 몸과 마음의 요소들을 살려낼 수 있다. 영을 통과한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는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신앙양심’이다. 영은 중생되는 순간 기본구원으로 완전 해결이 되었고, 중생된 이후 우리가 평생 노력하는 것은 심신을 살려내는 것이고 이 심신을 살려내는 것은 바로 신앙양심에 그 모든 성패가 다 달려 있다.

우리가 중생 된 이후 평생 노력하는 것도, 노력하며 느끼고 투쟁하는 것도,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것도 바로 신앙양심 문제 때문이다. 이 양심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우리 심신 전체에게 그 명령대로 살기를 재촉하는 심신 내의 가장 밝은 존재다. 동시에 끝까지 성화되어 천국가기를 거부하는 옛사람의 요소가 영과 성령을 직접 상대하여 투쟁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양심을 상대로 분풀이도 하고 또 이 양심을 꺾음으로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말하자면 신앙양심은 성령이 우리 심신을 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산성의 문빗장과도 같고, 밤길을 안내하는 내부 안내자와도 같다. 이렇게 성령이 내면적으로 또 개별적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는 항상 은밀하다. 드러나지 않고 확인되지 않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때서야 우리 눈 어두운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비로소 또렷하게 확인하게 되는데 그때는 대개 이미 모든 상황이 끝이 나고 ‘지난 역사’가 된 정도다.(계2:11)


▪ 자유성

성령 하나님도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절대 주권자시며 영존하신 존재다. 그렇지만 우리를 성화시켜 나가는 이 과정에서 가장 아끼고 조심하는 면은 바로 우리 심신의 자유성이다. 자유성이 죽지 않고 자유성이 약화되지 않으며 이 자유성을 온전하게 살린 상태에서 성화를 시켜야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만일 이 자유성이 훼손된다면, 마치 부모 모습을 쏙 빼다 닮은 동상이나 인형을 만든 것과 같다. 그 외모가 아무리 닮아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한 요소밖에 없다면 이는 하나님의 신격의 상대가 되는 인격존재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령의 감화와 감동 역사는 늘 우리에게 우리의 자유성을 살려 우리가 깨닫고 원하고 좋아서 따라오게 한다. 혹 우리가 성령께 강제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라고 부탁을 한다 해도 성령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모든 역사는 항상 자유성으로 나타난다.(계3:20)


▪ 생명성

성령의 성화 역사는 단순히 옷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성결의 역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그 연결을 통해 하나님으로 움직이게 한다(롬8:2). 따라서 그 과정과 그 결과를 보면 깨끗한 모습으로 진행되고 결국 성화라는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런 성화를 이루어 내는 그 내면을 살펴보면 항상 생명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우리 성도를 비교하면 우선 겉으로는 교적부를 가지고 확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믿는 사람은 생명이 있어 그 신앙에 체온이 있고 동작이 있으며 성장이 있기를 마치 살아있는 생체를 상대하며 생체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관찰된다. 그러나 타 종교를 믿는 이들은 그 외모는 우리와 거의 흡사하지만, 손을 대보면 송장이어서 냉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또 잠깐 관찰해 봐도 그 속에 생명적 활동과 증거가 없다.

물론 믿는 사람에게 중생 후 평생토록 성령의 역사가 늘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성령을 거부하고 악령에게 붙들려 수십 년 세월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우리는 성령으로 되돌아와서 성령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본구원을 가진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우리가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역사에 접하게 되면 그 즉시 우리에게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이를 내증이라고 한다. 신앙의 근본은 외증이 아니라 항상 이 내증에서 확정된다. 뜨거운 회개의 역사, 뜨거운 충성의 역사, 자라가는 신앙, 다 바치지 못해 안타까운 그 모든 심정 등이 다 생명의 증거들이다.(갈5:22)



④ 성경과 관련된 영감의 종류

▪ 성경 기록영감

신구약 66권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이 성경기록자들을 붙들고 역사하셨으니 그 영감을 ‘성경기록영감’이라고 한다. 성경은 그 저자가 바로 성령이다. 이 ‘성경기록’ 영감의 특별한 점은 66권 성경기록자에게만 역사했지 그 외 다른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았고 또 성경기록이 완성된 이후에는 반복이 없다.

우리가 오늘 우리 심신의 성화나 다른 성령의 역사를 두고 ‘영감’이라는 표현을 쉽게 하는데, 이 표현을 사용할 때 항상 ‘성경기록영감’의 재현이라는 오해가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경 기록영감은 특별히 논란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 3가지 정도로 입장을 정리하여 관련 논점을 살펴보겠다.


첫째, 성경기록시대와 그 이후 시대는 구별해서 살펴야 한다.

성경 기록영감과 관련해서 성경 기록시대와 그 이후 시대의 영감역사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범위를 넓게 잡으면 구약은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이고 신약은 완성된 성경 66권을 우리가 받아서 생활하는 시기다. 물론 신약 초기 성경을 기록하던 잠깐의 시대가 있었다. 그 잠깐의 시기는 구약의 영감역사가 그대로 역사하던 시기이므로 비록 시기로는 신약이지만 성령 역사의 형태로 보면 구약에 속한다고 하겠다.

구약은 성경을 기록해 나가던 시기이므로 성령의 역사는 한편으로 구약 전체 교회에게 성경을 기록해 주셨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기록되지 않은 성경진리가 필요한 그런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직접 역사하여 장차 성경에 기록될 성경 진리를 대신했다. 따라서 구약은 외견상 성령의 역사가 성경과 상관없이 별도로 역사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역사가 허다했기 때문에 정도를 걸어가던 성도들의 걸음은 그 걸음 하나하나가 전부 초자연적인 기적과 신비의 역사로 가득했다.

그러나 신약은 성경이 완성되어 66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구원도리를 요약해 주셨다. 따라서 신약의 성령 역사는 성경에 기록하신 진리 범위 안에서 역사하지 성경을 제쳐두고 성경 외부에서 성경 기록 외적 역사를 하지 않는다.


둘째, 성경을 새로 기록하는 것은 이단으로 확정할 수 있다.

성경기록 역사는 초대교회에까지 이르며 66권으로 완성했다. 따라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움직이는 성령의 역사는 66권 성경으로 기록하신 진리 범위 안에서만 역사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경을 기록하는 역사로 나타나지 않는다. 비록 그 책 이름을 ‘성경’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해도 성경만이 가지는 ‘권위성’ ‘정확성’ ‘보편성’ ‘충족성’ 등 4가지 특성을 인정하는 책이 있다면 이는 성경을 추가하는 이단으로 단정할 수 있다. 몰몬교나 천주교와 같이 외경이나 몰몬경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정식으로 추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지도자의 저서를 성경과 같은 권위에 올려놓는다면 이 역시 성령의 ‘진리내부 역사성'에 의하여 단죄해야 한다.


셋째, 기타 여러 신비한 언행들을 판별할 수 있다.

성령이 자기에게 감동하여 말하게 했고 또 행동하게 했다는 주장이 있을 때 성급하게 이를 정죄하는 것도 크게 위험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방치하는 것도 꼭 같은 죄가 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그 역사 자체가 개별적이므로 그 사람 내면에서 어떻게 역사했는지 외부인이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령의 ‘진리 내부역사성’에 의하여 만일 성경에 없는 언행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로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판단하여 구별할 수 있다. 성경을 가지고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성경을 모르고 예언을 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기행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혀 놀랄 것 없이 구별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벧후1:21)


▪ 성경 내재영감

성경은 그 기록된 내용 속에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의 글자만 읽을 것이 아니고 성경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내재적 영감을 구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또 성경으로 신학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우리가 성경 내용만 상대하지 그 속에 성령의 역사가 내재하며 그 내용 속에 영감으로 인도하는 내면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 성경과 불경이 같은 서적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인간이 기록한 책은 그 책의 내용 속에 그 글의 임자가 가진 느낌과 활동이 녹아져 있다. 성경은 어느 인간의 것이 아니라 만유주 하나님, 전능하신 성령 하나님의 감화와 감동이 내재되어 있는 줄 알고 성경을 대해야 한다.(요16:13)


▪ 영의 중생영감

비록 성경이 그 기록과 그 내용에 성령이 역사하고 내재하여 계신다고 해도 중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세상 책이나 성경책이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입력 전선이 끊어진 사람에게는 발전소에서 자기 집으로 오는 도중의 도로변 전선이 끊어져 있든 연결이 되어 있든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성령은 성경을 기록하고 그 내용 속에서 그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영감으로 역사하시지만, 동시에 안 믿던 우리의 영을 중생시키는 역사를 한다. 우리 영이 중생된 것은 성령의 역사이니 이를 영의 중생영감이라고 한다.(요3:6)


▪ 마음 조명영감

성령은 우리 영을 중생시킨 다음, 영을 통해 우리 마음에 조명역사를 한다. 우리 마음이 믿기 전에 죄와 사망과 악령으로 어두워져 진리에 대하여는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한 흑암의 상태였다. 이런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셔서 빛을 비추어 마음을 밝혀준다.

성령이 비추어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없다면, 인간의 마음은 그 어떤 수양과 타고난 재질이 있다 해도 물질로 된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계로 인도하는 성경을 깨닫거나 알 수는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밝혀 깨닫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요14:26)


▪ 현실 실행영감

성령이 우리 마음에 어느 것이 옳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낱낱이 밝혀 가르쳐 주신다고 해도, 우리는 세상 임금인 악령이 죄로 지배하는 이 사망의 세상에서 성경 말씀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는 이 말씀 순종생활을, 성령이 우리를 붙들고 그 말씀대로 실제 살도록 한다. 이 성령은 능력의 하나님이시니 세상 어떤 현실에서도 우리가 말씀대로 행한 것이 있다면, 인간이 보기로는 그 사람이 죽을 각오로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실은 성령이 그를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신앙의 능력을 주신 것이다. 이것을 ‘현실 실행영감’이라고 한다(행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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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14:26 ‘보헤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정동진 2023.11.18 23:20  
*개별적인 영감역사에 대한 참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0장 효과적인 부르심

1. 하나님께서는 영생 주시기로 예정하신 사람들에게 한하여 그 기쁘신 뜻으로 그들을 부르시되 다음과 같이 하신다. (1) 그의 정하신 적당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부르시는데,1) (2) 그들을 그 본성화되어 있는 죄와 사망의 처지에서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부르시어2) 그리스도로 말미암은3) 은혜와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그런데 그 부르심으로 이루어 가는 일들은, (3) 구원받도록 영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밝혀 하나님의 사리들을 깨닫게 하시며,4) (4) 그들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5) (5)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여서 전능하신 능력에 의하여 그들을 선한 방향으로 정착시키시며,6) (6) 또한 효과적으로 그들을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게 하신다.7) 그들은 그의 은혜에 의하여 자원하여 가장 자유롭게 나아오게 된다.8)

1)롬 8:30, 11:7, 엡 1:10-11.   2)살후 2:13, 고후 3:3,6.   3)딤후 1:9, 롬 8:2, 엡 2:1-5.   4)고전 2:10,12 행 26:18, 엡 1:17-18.   5)겔 36:26.   6)빌 2:13, 신 30:6, 겔 11:19, 36:27.   7)요 6:44,45, 엡 1:19.   8)시 110:3, 아1:4, 요 6:37, 롬 6:16-18.


2. 효과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특수 은총으로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사람에게 있는 어떤 조건을 미리 내다보신 데서 생긴 것이 아니며,9) 인간 편에서도 성령에 의하여10) 소생되고 새롭게 되어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11) 그 전달된 은혜를 받는데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피동적일 뿐이다.

9)딤후 1:9, 롬 9:11, 엡 2:4-5,8-9, 딛 3:4-5.   10)고전 2:14, 롬 8:7, 엡 2:5.   11)겔 36:27, 요 5:25,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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