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성경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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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4 23:13
(2023년)
④ 성경의 종류
▪ 진본과 가본에 따른 구분
a. 정경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성경은 신구약 66권이다. 이 66권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진본이고 그 외에는 성경이 없다. 이 66권 성경에 더하여 주신 것이 있거나 이 66권에서 빠질 성경이 있다고 한다면, 정경을 부인하는 이단이라고 서슴없이 정죄를 하게 된다.
물론 정경의 진본은 그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사본만 남아 있고 또 오늘은 여러 지방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이는 정경 안에서 다시 살필 문제이고, 여기서는 어느 성경이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진본이냐는 것만 살펴본다.
이 정경문제는, 기독교냐 아니냐를 구별할 때 제일 먼저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잣대다. 조직신학을 내용별로 분류하면 그 항목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렇게 기독교에서 배제가 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교리 문제가 되는 것은 불과 몇 개 정도다. 정경문제의 가장 핵심은 성경은 신구약 66권만이 성경이라는 점이다. 이외에 더해도 이단이 되고 여기서 빼도 이단이 된다.
b. 외경
정경 66권과 함께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책을 외경 또는 가경이라고 한다. 외경은 구약으로 분류해야 할 것 15권과 신약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 약 70여권이 있다. 천주교는 천주교가 정한 외경을 성경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기독교는 이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외경의 종류로 구약은 ‘제1에스드라서’ ‘제2에스드라서’ ‘토비트’ ‘유딧’ ‘에스델’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편지’ ‘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上)’ ‘마카베오하(下)’ 등이 있고, 신약은 ‘바울행전’ ‘베드로복음’ ‘바울계시록’ ‘베드로수난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외경은 그 출처로 나눌 때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경을 어지럽게 하려고 만들 때부터 조작을 한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일반 신앙서적으로 기록되었는데 그 내용이 성경으로 혼동할 정도가 되어 성경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경우다. 앞에 것은 만든 것도 또 성경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 마귀 운동이고, 뒤의 경우는 성경에 포함해야 한다는 그 운동이 마귀 운동이다.
여기서는 이 둘을 외경과 가경으로 각각 이름을 붙여 성경에서 제외된 것을 외경으로, 그리고 가짜 성경을 가경이라고 하겠다. 외경은 그 내용은 신앙에 유익된 것이나 다만 성경에는 제‘외’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외경’이라는 말이 좋겠고, 가경은 그 내용 자체가 조작된 ‘가’짜라는 의미로 ‘가경’이다. 물론 외경과 가경을 통틀어 말할 때는 일반 교리 용어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냥 외경이라 하겠다.
c. 정경과 외경의 구분
정경과 외경을 나누는 구분은 여러 가지 기준이 제시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기억할 것은 ‘성경 자체의 증거’다. 성경이 성경을 성경이라고 하기 때문에 성경이고, 다른 책은 그 책이 그 책을 성경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아니다. 어떻게 그 책이 말하는 것이 사실인지 알 수가 있을까?
성경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가 성령이므로 성경이 성경을 성경이라고 말하는 증거를 성령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 성경이라면 그 속에 성령이 내재 영감 역사로 알리실 것이므로 읽는 사람이 그렇게 알 수가 있다. 성경을 기록한 성령과 믿는 사람 마음속에 역사하고 지도하는 성령이 동일한 성령이기 때문에 성경을 확정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는 천하에 우스운 일이 될 것이고, 믿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당연해서 달리 생각할 여지도 없는 정확한 결론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점심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모든 학생과 부모들이 복잡하게 엉키게 된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같아 보이고 부모들이 모두 같아 보인다 해도 자기 부모와 자기 아이는 모두가 찾아 낸다. 수백 마리 소를 섞어놓으면 일반 사람은 어느 소인지 구별을 하지 못하나 새끼와 어미가 서로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부모와 학생이 신분증이나 지문을 조사하여 알아 보는 것이 아니다. 또 유전자 검색을 통해 아는 것도 아니다. 성경을 성령이 기록해 주신 성경으로 확인하는 일은, 정상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 구별하는 일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
▪ 정확성에 따른 구분
a. 원본성경
원본성경이란
정경인 66권 성경은 처음 기록될 때 선지와 사도들이 성령으로 기록했다. 그 최초 기록한 성경을 ‘원본성경‘이라고 한다. 이 원본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단 한 권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남아 있어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해도 어느 것이 원본성경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원본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다 없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성경이 정확무오하다고 할 때, 또 성령이 직접 기록했다고 할 때는 바로 이 원본 성경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 원본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원본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원본성경을 없앤 이유는
원본성경을 후시대에 전하지 않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다. 다른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눈으로 봐야 하고 손으로 만져야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직접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는 일에 지장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앙에 관련된 모든 것을 신약시대에는 전부 없앴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일체의 흔적과 성경 원본과 성전과 그 내부 성물 등 신앙에 관련된 것 중에 신약에도 성물로 이용되거나 취급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버렸다. 그 중에 하나가 성경원본이다. 이는 기독교는 보이는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기 때문이다.
b. 사본성경
사본성경
사본성경은 원본성경을 보고 베껴 적어 내려온 성경이다. 따라서 원본성경과 마찬가지로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사본성경은 그 옮겨 적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제로 주신 성경은 오류가 있는 성경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본성경만 남겨두신 이유
옮겨 적은 사본성경만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이유는, 성령이 아니고는 성경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쫓아내신 것과 같은 이유다. 타락 전 에덴동산은 언제나 아무 노력 없이 그 안에 살 수 있었으나 타락 후부터는 화염검이라고 하신 성령의 인도가 아니고는 전혀 접할 수 없게 한 것과 같다.
따라서 성경을 성경책으로만 상대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성경을 모르게 하고, 성경을 대할 때 성령으로 읽는 사람은 성경에 오류가 있어도 그 성경을 기록한 성령으로 그 오류를 넘어서고 원본성경을 기록하신 뜻과 목적이 그에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따라서 이런 세계를 알아야 비로소 신앙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으므로 신학자들은 대개 성경을 접하지는 못하고 성경책을 상대로 세상 공부를 하는 위험에 빠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본학
바로 이런 위험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사본학’이다. 성경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학문이 원어와 고고학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를 더하여 사본학 역시 성경신학의 기초다. 어느 사본이 원본에 가까운지를 두고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이 연구는 원어에 대한 일반 상식만 가진 사람이면 그 학문을 위해 필요한 학문적 준비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상식 수준에서 파악한 다음에는 전체 성경과 그 성구의 앞뒤를 살펴 어느 성경이 더 옳고 바른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른 역사적 고문 판단에 동원되는 방법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사본학은 아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성경이 신학으로 치달을수록 사본에 대한 근본적 이의 제기나 새로운 방법론 또는 신기술이 제시된다. 이는 논리적으로 우리 기독교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여기에 미혹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은 성경은 그 저자가 성령이고 원본은 일부러 감추시고, 사본만으로도 충분히 신앙생활에 필요한 진리를 깨닫도록 했다는 점을 우선 전제하고 굳게 잡으면, 특별한 학문이나 어려운 방법으로 제기되는 제안에 대하여는 애당초 상관도 할 필요가 없도록 구별할 수 있다.
c. 번역성경
번역의 필요성
번역성경은 성경의 보편성에 그 근거를 둔다. 하나님께서 구약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구원을 한정하고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일상 언어가 성경언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신약에서는 이스라엘 밖에 있는 이방에게 그 구원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각 나라와 백성과 각기 언어를 달리하는 이들로 제자를 삼아 가르치라고 했다. 따라서 신약교회에게는 성경의 번역은 필연적인 하나님의 명령이다.
번역성경의 정확성
번역은 그 내용이 어떤 경우에라도 정확할 수 없다. 근사치로 평가할 문제이지 정확성으로 평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번역성경에도 성경의 특성인 권위성 정확성 명료성 충족성이 있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사본성경에 그 4가지 특성이 해당되는지를 살펴보므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일부 내용에 착오가 있어도 사본성경 전체를 통해 성경의 모든 특성이 살아 있듯이 번역성경도 마찬가지로 성경의 모든 특성이 그대로 이어진다.
단 성경의 그런 특성은 성경책 자체에 주어진 것이 아니고 성경 진리에 주어진 것이므로 번역성경은 그 정확성만큼 성경이 원래 가지는 그 특성이 있을 것이다. 번역이 더 정확하면 그 특성은 더 강해질 것이고 번역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그 특성 역시 또한 감해질 것입니다. 번역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도 역시 성령의 역사는 함께 한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원어성경이 아니라 우리처럼 번역성경만을 성경으로 가지는 교인들은 모든 면에서 불리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이 문제를 두고 생각할 것은, 비록 원본성경을 대한다 해도 그 성경을 대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화 없이 인간 자체로만 성경을 상대하면 성경에 내재된 4가지 특성은 그와는 상관이 없다. 비록 착오가 있고 부족한 것이 많아도 번역한 성경을 대하면서 그 모든 불리한 것만큼 성령의 인도를 더욱 구하게 되면 성령에 얼마나 붙들렸느냐에 따라 성경을 기록한 성령이 성경의 번역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훼손된 부분을 복구한다.
표준 번역성경
원어성경은 그 필사과정의 착오문제만 제기될 뿐이다. 그러나 번역성경은 언어 변환과정을 거치면서 항상 번역성경의 표현이 변동될 수 있는 요인을 가지게 된다. 성경 원어 표현 자체는 고정되어 있으나 번역할 언어는 생활의 변동과 함께 꾸준히 변화되고 있으므로 어느 시점에 변역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번역이 가능하다. 또한 언어 변환과정에서 동일 원어를 번역할 수 있는 단어나 표현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같은 언어환경으로 동시에 번역을 한다 해도 번역자에 따라 꼭 같은 가치를 가진 여러 번역본이 가능하다.
번역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번역성경을 두고 한 가지 미리 확정 지워 둘 것은 표준번역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표준번역'이라는 표현은 실제 사용 되는 어느 성경의 이름에 붙은 그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표준번역본을 정하는 원칙은, 정통 교회의 가장 권위 있는 첫 번역본으로 번역성경의 기본을 삼고, 한 번 확정된 성경번역본은 언어환경의 변화를 따라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되, 실제로는 언어 환경이 수백 년 이상 변화를 한다 해도 그 표준번역본은 변화될 필요가 없도록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번역성경은 천주교에서 개혁한 16세기 이후부터 본격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님 재림이 임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미 번역된 성경은 끝까지 변경 없이 지켜야 할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표준번역본과 관련하여 확인해 둘 원칙 중 하나는 성경의 필사원칙이다. 성경의 필사원칙은 기록 당시의 언어환경이 이후 변화된다 해도 성경필사에는 변화된 언어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록 당시의 성경 표현은 언어환경이 변화되는 후시대인들에게는 기록 당시와 다른 뜻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변하게 된다. 즉, 원본성경을 기록할 때 당시 사람들이 그 성경표현을 대하며 이해하던 것과 이후 변화된 언어환경에 살아온 사람들이 기록 당시 성경표현을 대하며 이해하는 내용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사본원칙은 기록 당시 원본성경의 표현이 담고 있는 뜻을 후시대에 전하기 위해 후시대가 사용하는 후시대식 표현으로 바꾸어 필사하지 않고 이해에 착오가 있는 이전 시대 표현 그대로 필사하여 내려왔다. 그리고 시대 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착오는 후시대 사람의 이해력을 원본성경에 맞추도록 요구하지 원본성경의 표현 자체를 바꾸어 후시대 사람의 이해력을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성경도, 첫 번역 당시의 표현을 이후 변화된 언어환경에서 이해한다면 그 뜻이 변하기 때문에 새로 번역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히 모순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일반 서적과 성경을 같은 수준에 놓고 성경 자체의 권위를 인간지식 중 하나로 만들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과 힘이 닿는 데까지 충성을 해서라도 번역성경을 필사본 원칙을 따라 그 첫 번역본을 지키는 것이 특별히 필요한 시대임을 고려해야 한다.
④ 성경의 종류
▪ 진본과 가본에 따른 구분
a. 정경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성경은 신구약 66권이다. 이 66권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진본이고 그 외에는 성경이 없다. 이 66권 성경에 더하여 주신 것이 있거나 이 66권에서 빠질 성경이 있다고 한다면, 정경을 부인하는 이단이라고 서슴없이 정죄를 하게 된다.
물론 정경의 진본은 그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사본만 남아 있고 또 오늘은 여러 지방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이는 정경 안에서 다시 살필 문제이고, 여기서는 어느 성경이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진본이냐는 것만 살펴본다.
이 정경문제는, 기독교냐 아니냐를 구별할 때 제일 먼저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잣대다. 조직신학을 내용별로 분류하면 그 항목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렇게 기독교에서 배제가 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교리 문제가 되는 것은 불과 몇 개 정도다. 정경문제의 가장 핵심은 성경은 신구약 66권만이 성경이라는 점이다. 이외에 더해도 이단이 되고 여기서 빼도 이단이 된다.
b. 외경
정경 66권과 함께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책을 외경 또는 가경이라고 한다. 외경은 구약으로 분류해야 할 것 15권과 신약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 약 70여권이 있다. 천주교는 천주교가 정한 외경을 성경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기독교는 이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외경의 종류로 구약은 ‘제1에스드라서’ ‘제2에스드라서’ ‘토비트’ ‘유딧’ ‘에스델’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편지’ ‘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上)’ ‘마카베오하(下)’ 등이 있고, 신약은 ‘바울행전’ ‘베드로복음’ ‘바울계시록’ ‘베드로수난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외경은 그 출처로 나눌 때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경을 어지럽게 하려고 만들 때부터 조작을 한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일반 신앙서적으로 기록되었는데 그 내용이 성경으로 혼동할 정도가 되어 성경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경우다. 앞에 것은 만든 것도 또 성경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 마귀 운동이고, 뒤의 경우는 성경에 포함해야 한다는 그 운동이 마귀 운동이다.
여기서는 이 둘을 외경과 가경으로 각각 이름을 붙여 성경에서 제외된 것을 외경으로, 그리고 가짜 성경을 가경이라고 하겠다. 외경은 그 내용은 신앙에 유익된 것이나 다만 성경에는 제‘외’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외경’이라는 말이 좋겠고, 가경은 그 내용 자체가 조작된 ‘가’짜라는 의미로 ‘가경’이다. 물론 외경과 가경을 통틀어 말할 때는 일반 교리 용어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냥 외경이라 하겠다.
c. 정경과 외경의 구분
정경과 외경을 나누는 구분은 여러 가지 기준이 제시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기억할 것은 ‘성경 자체의 증거’다. 성경이 성경을 성경이라고 하기 때문에 성경이고, 다른 책은 그 책이 그 책을 성경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아니다. 어떻게 그 책이 말하는 것이 사실인지 알 수가 있을까?
성경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가 성령이므로 성경이 성경을 성경이라고 말하는 증거를 성령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 성경이라면 그 속에 성령이 내재 영감 역사로 알리실 것이므로 읽는 사람이 그렇게 알 수가 있다. 성경을 기록한 성령과 믿는 사람 마음속에 역사하고 지도하는 성령이 동일한 성령이기 때문에 성경을 확정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는 천하에 우스운 일이 될 것이고, 믿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당연해서 달리 생각할 여지도 없는 정확한 결론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점심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모든 학생과 부모들이 복잡하게 엉키게 된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같아 보이고 부모들이 모두 같아 보인다 해도 자기 부모와 자기 아이는 모두가 찾아 낸다. 수백 마리 소를 섞어놓으면 일반 사람은 어느 소인지 구별을 하지 못하나 새끼와 어미가 서로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부모와 학생이 신분증이나 지문을 조사하여 알아 보는 것이 아니다. 또 유전자 검색을 통해 아는 것도 아니다. 성경을 성령이 기록해 주신 성경으로 확인하는 일은, 정상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 구별하는 일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
▪ 정확성에 따른 구분
a. 원본성경
원본성경이란
정경인 66권 성경은 처음 기록될 때 선지와 사도들이 성령으로 기록했다. 그 최초 기록한 성경을 ‘원본성경‘이라고 한다. 이 원본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단 한 권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남아 있어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해도 어느 것이 원본성경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원본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다 없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성경이 정확무오하다고 할 때, 또 성령이 직접 기록했다고 할 때는 바로 이 원본 성경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 원본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원본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원본성경을 없앤 이유는
원본성경을 후시대에 전하지 않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다. 다른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눈으로 봐야 하고 손으로 만져야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직접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는 일에 지장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앙에 관련된 모든 것을 신약시대에는 전부 없앴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일체의 흔적과 성경 원본과 성전과 그 내부 성물 등 신앙에 관련된 것 중에 신약에도 성물로 이용되거나 취급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버렸다. 그 중에 하나가 성경원본이다. 이는 기독교는 보이는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기 때문이다.
b. 사본성경
사본성경
사본성경은 원본성경을 보고 베껴 적어 내려온 성경이다. 따라서 원본성경과 마찬가지로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사본성경은 그 옮겨 적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제로 주신 성경은 오류가 있는 성경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본성경만 남겨두신 이유
옮겨 적은 사본성경만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이유는, 성령이 아니고는 성경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쫓아내신 것과 같은 이유다. 타락 전 에덴동산은 언제나 아무 노력 없이 그 안에 살 수 있었으나 타락 후부터는 화염검이라고 하신 성령의 인도가 아니고는 전혀 접할 수 없게 한 것과 같다.
따라서 성경을 성경책으로만 상대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성경을 모르게 하고, 성경을 대할 때 성령으로 읽는 사람은 성경에 오류가 있어도 그 성경을 기록한 성령으로 그 오류를 넘어서고 원본성경을 기록하신 뜻과 목적이 그에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따라서 이런 세계를 알아야 비로소 신앙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으므로 신학자들은 대개 성경을 접하지는 못하고 성경책을 상대로 세상 공부를 하는 위험에 빠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본학
바로 이런 위험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사본학’이다. 성경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학문이 원어와 고고학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를 더하여 사본학 역시 성경신학의 기초다. 어느 사본이 원본에 가까운지를 두고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이 연구는 원어에 대한 일반 상식만 가진 사람이면 그 학문을 위해 필요한 학문적 준비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상식 수준에서 파악한 다음에는 전체 성경과 그 성구의 앞뒤를 살펴 어느 성경이 더 옳고 바른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른 역사적 고문 판단에 동원되는 방법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사본학은 아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성경이 신학으로 치달을수록 사본에 대한 근본적 이의 제기나 새로운 방법론 또는 신기술이 제시된다. 이는 논리적으로 우리 기독교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여기에 미혹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은 성경은 그 저자가 성령이고 원본은 일부러 감추시고, 사본만으로도 충분히 신앙생활에 필요한 진리를 깨닫도록 했다는 점을 우선 전제하고 굳게 잡으면, 특별한 학문이나 어려운 방법으로 제기되는 제안에 대하여는 애당초 상관도 할 필요가 없도록 구별할 수 있다.
c. 번역성경
번역의 필요성
번역성경은 성경의 보편성에 그 근거를 둔다. 하나님께서 구약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구원을 한정하고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일상 언어가 성경언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신약에서는 이스라엘 밖에 있는 이방에게 그 구원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각 나라와 백성과 각기 언어를 달리하는 이들로 제자를 삼아 가르치라고 했다. 따라서 신약교회에게는 성경의 번역은 필연적인 하나님의 명령이다.
번역성경의 정확성
번역은 그 내용이 어떤 경우에라도 정확할 수 없다. 근사치로 평가할 문제이지 정확성으로 평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번역성경에도 성경의 특성인 권위성 정확성 명료성 충족성이 있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사본성경에 그 4가지 특성이 해당되는지를 살펴보므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일부 내용에 착오가 있어도 사본성경 전체를 통해 성경의 모든 특성이 살아 있듯이 번역성경도 마찬가지로 성경의 모든 특성이 그대로 이어진다.
단 성경의 그런 특성은 성경책 자체에 주어진 것이 아니고 성경 진리에 주어진 것이므로 번역성경은 그 정확성만큼 성경이 원래 가지는 그 특성이 있을 것이다. 번역이 더 정확하면 그 특성은 더 강해질 것이고 번역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그 특성 역시 또한 감해질 것입니다. 번역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도 역시 성령의 역사는 함께 한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원어성경이 아니라 우리처럼 번역성경만을 성경으로 가지는 교인들은 모든 면에서 불리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이 문제를 두고 생각할 것은, 비록 원본성경을 대한다 해도 그 성경을 대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화 없이 인간 자체로만 성경을 상대하면 성경에 내재된 4가지 특성은 그와는 상관이 없다. 비록 착오가 있고 부족한 것이 많아도 번역한 성경을 대하면서 그 모든 불리한 것만큼 성령의 인도를 더욱 구하게 되면 성령에 얼마나 붙들렸느냐에 따라 성경을 기록한 성령이 성경의 번역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훼손된 부분을 복구한다.
표준 번역성경
원어성경은 그 필사과정의 착오문제만 제기될 뿐이다. 그러나 번역성경은 언어 변환과정을 거치면서 항상 번역성경의 표현이 변동될 수 있는 요인을 가지게 된다. 성경 원어 표현 자체는 고정되어 있으나 번역할 언어는 생활의 변동과 함께 꾸준히 변화되고 있으므로 어느 시점에 변역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번역이 가능하다. 또한 언어 변환과정에서 동일 원어를 번역할 수 있는 단어나 표현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같은 언어환경으로 동시에 번역을 한다 해도 번역자에 따라 꼭 같은 가치를 가진 여러 번역본이 가능하다.
번역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번역성경을 두고 한 가지 미리 확정 지워 둘 것은 표준번역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표준번역'이라는 표현은 실제 사용 되는 어느 성경의 이름에 붙은 그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표준번역본을 정하는 원칙은, 정통 교회의 가장 권위 있는 첫 번역본으로 번역성경의 기본을 삼고, 한 번 확정된 성경번역본은 언어환경의 변화를 따라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되, 실제로는 언어 환경이 수백 년 이상 변화를 한다 해도 그 표준번역본은 변화될 필요가 없도록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번역성경은 천주교에서 개혁한 16세기 이후부터 본격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님 재림이 임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미 번역된 성경은 끝까지 변경 없이 지켜야 할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표준번역본과 관련하여 확인해 둘 원칙 중 하나는 성경의 필사원칙이다. 성경의 필사원칙은 기록 당시의 언어환경이 이후 변화된다 해도 성경필사에는 변화된 언어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록 당시의 성경 표현은 언어환경이 변화되는 후시대인들에게는 기록 당시와 다른 뜻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변하게 된다. 즉, 원본성경을 기록할 때 당시 사람들이 그 성경표현을 대하며 이해하던 것과 이후 변화된 언어환경에 살아온 사람들이 기록 당시 성경표현을 대하며 이해하는 내용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사본원칙은 기록 당시 원본성경의 표현이 담고 있는 뜻을 후시대에 전하기 위해 후시대가 사용하는 후시대식 표현으로 바꾸어 필사하지 않고 이해에 착오가 있는 이전 시대 표현 그대로 필사하여 내려왔다. 그리고 시대 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착오는 후시대 사람의 이해력을 원본성경에 맞추도록 요구하지 원본성경의 표현 자체를 바꾸어 후시대 사람의 이해력을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성경도, 첫 번역 당시의 표현을 이후 변화된 언어환경에서 이해한다면 그 뜻이 변하기 때문에 새로 번역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히 모순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일반 서적과 성경을 같은 수준에 놓고 성경 자체의 권위를 인간지식 중 하나로 만들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과 힘이 닿는 데까지 충성을 해서라도 번역성경을 필사본 원칙을 따라 그 첫 번역본을 지키는 것이 특별히 필요한 시대임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