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속의 적용과 부활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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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속의 적용과 부활의 예수님

담당 0 12
5. 대속의 적용과 부활의 예수님

  ① 땅 위의 동행
 
  부활 후 예수님은 천국으로 갔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성경이 그렇게 기록했기 때문에 성경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이 땅의 사역은 끝이 났으니까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서 쉬시고 이곳 세상을 굽어보시고 기도하시고 응원만 하시고, 우리는 예수님 뒤를 따라 현장에서 분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어린 신앙에게 가장 외부적인 면만을 가르친 정도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인성은 과거 부활 이전에 시공에 제한 받고 세상에게 침해를 받던 때와 달리 이제 시공을 초월하신 신인양성일위의 제2위 성자 하나님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인성은 시공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그분은 천국에 있으면 세상에 있을 수 없고, 세상에 있으면 천국에 있을 수 없는 상태가 아니다. 또한 부활하신 인성은 세상에 있을 때처럼 피곤하면 자야하고 맞으면 아프고 쉬면 편안을 누리는 인성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쉬지 않고 오늘도 천국과 세상에 무소부재하신 분이다. 오늘 이 세상에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옛날 제자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친히 육체로 손을 잡고 동행하던 바로 그때처럼 지금도 그분은 그 육을 입고 몸을 가진 예수님으로 우리와 친히 동행한다.

  다만 부활하여 신령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이 다른 사람을 느끼듯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부활 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이다가 순간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주님으로 늘 함께 하고 있다. 부활 후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예수님이 없어서가 아니고 제자들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았던 순간처럼 우리와 함께 한다. 부활 후 예수님은 승천하기까지 한 번도 제자들을 그냥 버려 둔 적이 없다. 제자들 자기 시력에 볼 수 없었지 부활하신 예수님은 늘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것을 알리시기 위해 일부러 그들이 보이도록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볼 수 없었던 순간도 항상 주님은 그들에게 볼 수 없는 예수님으로 함께 계셨음을 알린 것이다(눅24:13-17.)

눅24:13-17 ‘...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
 

  그리고 승천한 것은, 부활 후 승천 이전 약 40일 기간동안처럼 눈으로까지 볼 수 있는 예수님으로는 앞으로 역사하지 않겠다는 점을 보이신 것이었고 또한 주님과 세상 끝날까지 동행하는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가시면서 보여주신 천국을 향한 그 모습이 바로 주님을 뒤따라 갈 우리들이 갈 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따로 승천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되지만 일부러 보여줌으로 오늘 우리에게 이런 여러 면을 알리고 계신다(행1:9).

  마지막 승천하는 순간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는 상징적 의미가 아니고 또한 심정적으로 함께 하는 정도로만 말씀한 것도 아니라, 실제 존재적으로 함께 하실 것을 말씀했다. 다만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느낄 수 없는 면만 예수님 생존 당시 제자들과 다를 뿐이다(마28:20).

행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⑤ 성령의 계대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도성인신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해야 할 모든 일, 즉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을 완성하는 일의 최종 완성을 뜻한다. 인성을 입고 영원히 희생하는 문제는 단순히 영원히 계속되는 희생이고 승천하기 이전 부활하는 그 순간으로 예수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 전면에서 해결할 일은 전부 완료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연결 지어 본다면, 신인양성일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승천하기까지 우리를 하나님 목적하신 대로 완성품을 만드는 일에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승천하신 이후에는 비록 예수님께서 인성으로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지만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어 우리 구원에 전면을 맡고 나섰다(행1:8, 2:1-4).

  구약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예수님의 33년 생애 기간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다. 도성인신의 예수님으로 오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계셨고, 또 승천 이후에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더구나 성부 하나님은 창세 전에도 예수님의 도성인신 전에도 지상 생애 기간에도 또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도 늘 우리 구원을 위해 역사한다. 그러나 우리 보기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어느 위가 앞서 전면에 나서고 다른 분들은 뒤에서 간접적으로 돕는 모습으로 나타내셨다. 항상 분리될 수 없는 한 분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또 세분이 각각 전혀 다른 존재처럼 활동하는 하나님아다. ‘일체’로서의 하나님이 아니고 ‘삼위’로서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각각 전면에 나설 때가 있고 후면으로 물러설 때가 있다.

  예수님의 생애 기간 33년은 제2위 예수님이 전면에 나서서 역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배경에서 도우시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부활 후 승천하셨다는 시점부터는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대속의 공로를 가지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전면에 나선다. 이 일을 두고 예수님께서 내가 가면 성령을 보내겠다고 말씀했다.

  성령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를 깨끗하게 거룩하게 고쳐가는 역할을 맡은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을 제공했다면, 성령은 그 예수님의 희생을 손에 들고 이제 우리를 씻기고 고치는데, 다만 설득하고 감화와 감동으로 역사하게 된다. 이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의 대속을 인계받아 우리 구원을 위해 전면으로 나설 때도, 우리는 이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항상 분리할 수 없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상대해야 한다.

  성령이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왔고 그 대속을 가지고 우리를 상대하며 또 우리를 그 대속의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성령에 붙들리게 되면 마지막 결과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된다. 대속을 위해 와서 대속으로 살다가 갔던 바로 그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 가진 것을 희생으로 바치고 그가 대속의 사람이 되는 일에 내가 주님처럼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그만큼이 그 사람에게 임한 성령의 양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의 역사로 이어진다. 성령의 역사가 전면에 나설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항상 성령으로 우리에게 그 제자들을 상대하고 인도했듯이 그렇게 하고 계심을 실감적으로 느끼고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생활이 바로 예수님 부활이 우리에게 과거 그런 일이 있었다는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 생활 속의 부활 은혜로 충만케 되는 것이다(요14:16, 26, 15:26, 행1:8).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헤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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