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속의 성격

조직신학 본서       교리성구 사전

                  (2)대속의 성격

담당 0 13
3. 대속의 성격

  ① 대표적 행위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대표로 행한 행동이다. 마치 첫째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전 인류를 대신하여 대표로 행동했고 그 첫 행동이 실패하여 죄를 짓자 그 죄가 다 우리의 범죄가 된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 대속주로 행한 모든 행위와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는 전부 우리의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대속주가 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위해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사활의 대속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하나 다른 것은, 첫째 아담의 죄는 죄이므로 모든 이에게 사망으로 그대로 이어졌으나 둘째 아담의 구원 역사는 둘째 아담이 대신하겠다고 약속한 우리 택자들만을 위해 베풀었다. 그리고 그 대속을 받은 사람이 그 혜택을 누려 나가는 것은 ‘순종’으로 가능하게 했으니, 그 대속을 처음 받아 중생되는 것도 또 중생 후 그 대속을 누리는 것도 전부 순종이다. 다른 말로 ‘믿음’이다(롬5:14-19).

‘롬5:14-19’은 P.246 참조
 


  ② 목적의 중심

  예수님의 대속은 좁게 보면 죄 때문에 죽어 지옥에 갈 우리를 천국으로 구해낸 희생이다. 그러나 이 대속은 하나님의 전체 사역에서 본다면,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기 이전 하나님께서 당신을 닮은 자녀를 만들기로 목적을 정하시던 자존의 첫 사역에서부터 확정된 일이다. 즉 우리를 하나님께서 목적 대상으로 정할 때부터 ‘대속’이라는 과정을 통과하도록 했으니, 예수님의 대속은 사실 하나님의 목적의 중심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닮은 존재를 만들어 그에게 완전자의 모든 것을 영원토록 주기로 작정을 할 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주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천국만 만들어 처음부터 우리를 천국에서 살도록 하는 방법도 있고, 세상을 만들어 세상을 통과한 다음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세상을 주신 다음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지옥생활을 겪게 한 다음 다시 구원하여 천국으로 올려 영원히 사는 방법도 있다.

  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을 하나님은 전지자이므로 다 아시고 또 그 방법 중에서 하나님으로서는 가장 큰 고생과 희생을 해야 하지만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것을 주실 수 있고 또 가장 온전하게 만드는 방법은 세 번째 과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지가 그것을 알고 그렇게 목적을 정했다. 따라서 하나님과 같은 온전자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의 총론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을 타락시킨 다음 대속으로 다시 회복시켜 온전하게 만들어간다는 과정은 하나님의 목적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타락을 겪은 다음 다시 구원받게 될 인간과, 타락을 겪지 않고 천국에서 처음부터 영원토록 그대로 살게 될 인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양이 틀리고 그 은혜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결과도 다르다. 타락을 겪고 나서 구원받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하나님이 사람 되어 대신 죄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인간을 다시 살게 하려면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여 하나님께서 영원히 인간을 입고 살아야 하는 영원한 희생을 해야 한다.

  그 대신 타락을 겪지 않고 바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면 하나님이 만든 소유물이나 인도 등 다른 은혜는 받는다 해도 하나님 스스로 사람 되어 희생하고 또 영원토록 사람을 입는 수고는 필요 없다. 타락의 방법을 거치면 하나님으로서는 하나님의 전부를 다 투자해야 하는 사랑이 필요하고, 타락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면 하나님 자체는 희생할 것 없고 다른 수고만 하면 되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되는 희생이 다르면 우리에게 전해진 은혜의 종류와 크기가 다르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양만큼 우리 인간의 영광과 실력과 부요와 지식은 많아진다. 우리를 사랑하여 거저 은혜를 주시되, 논밭만을 떼서 주는 자식으로 상대하는 그런 부모에 그치지 않고, 또 논밭은 물론 인생사는 지혜와 사업에 성공하는 비결까지 가르쳐 주는 그런 아들로 상대하지 않는 부모에 그치지도 않았다. 또 그보다 더 나은 아들로 상대하여 논밭과 인생 성공법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현장에 항상 함께 동행 하며 일일이 현장 지도까지 다 담당하는 그런 아들로 상대하는 데에 그치지도 않았다. 그보다 더 나은 아들로 상대하여 이 모든 것을 다 주시고 거기에 더하여 아예 내가 더 좋은 경험과 실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대신 죽어주고, 말하자면 군에도 대신 갔다 와 주고 감옥에도 대신 살아주고 그리고 이후 사장이 된 나 속에 들어와서 나와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되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신다면, 그 사랑의 크기는 앞에서 예를 든 그런 경우도 비교할 수 없게 훨씬 클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은 좁게 보면 죽을 구덩이로 들어간 아들을 살려낸 구원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이미 세상을 만들기 전에 우리를 만드시기로 먼저 작정하셨고, 우리를 만드시기로 작정할 그 순간에 우리를 만들되 어떤 존재로 만드느냐는 그 목적의 성격과 내용까지를 미리 확정하셨는데, 바로 그 목적 속에는 하나님께서 날 대신 죽고 날 대신 사람의 몸을 입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가장 큰 희생과 투자를 담고 있었다. 이것이 완전자 전지 전능자 사랑의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신 사랑의 실상이요, 대속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존 다음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사역의 첫 순서가 되는 목적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갈1:4, 벧전1:2, 계1:1-6).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계1:1-6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③ 단번 해결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를 위한 단번의 해결이다. 횟수로는 단번이며 그 시간적 효력은 영원토록이며 그 범위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 전부를 완전히 해결한 것이다. 이를 ‘단번 구원’, ‘영원 구원’, ‘완전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아담의 범죄는 순식간이었다. 단 한번의 죄였는데 그 죄로 인하여 다시는 인간 스스로는 회개할 수도 없는 멸망에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속도 단번 대속이다. 단 한번의 대속으로 그 죄를 해결했다. 그런데 이번에 해결한 대속은 하나님의 무한이 동참하여 해결했기 때문에 미래에 지을 죄까지, 또 영원무궁토록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자본을 전부 다 해결할 수 있는 은혜였다. 죄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도 단번 해결이었지만, 우리의 영원에 필요한 자본을 마련한 것도 단번 해결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대속은 2천년 십자가에서 단 한 번만 있었지만 그 효력은 과거 4천년 구약 역사 전체에도 미치고 2천년 이후 신약 역사 전체에도 미치며,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 영원무궁토록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문제가 전부 완성된 하나님의 수고였다.

  죄의 종류도, 그 죄 하나하나가 미치는 영원무궁한 지옥 형벌까지도, 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완전에 도달하는 데에 부족한 문제까지도 전부 해결하되, 창세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우리 택자 전부를 다 포함하여 그들의 모든 것을 다 해결했다.

  이는 어느 한 인간의 육체가 도를 닦아서 이룰 수 있는 그런 인적 요소에 속한 작업이 아니다. 시간적으로도 영원무궁 후까지를 해결했고 그 상대도 하나님의 완전을 상대하여 영원토록 그를 닮는 것이므로 인간 단독으로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 이 대속의 완성은 십자가 위에서 단번이었지만 이 대속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배급은 모든 택자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다가 교회로 부르심을 받게 되는 그 순서를 따라 나누어주고 있다. 그 대속을 실제로 입혀 주시는 시간과 장소와 형편은 각자 예정을 따라 배급된다. 또 그 사람이 중생 된 이후 남은 평생을 살아갈 때, 그에게 해당되는 신앙의 분량과 방향을 따라 각자에게 대속의 실효가 적용되어 성화되는 양은 각각 다르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해결의 법적 실질적 완성은 2천년 십자가의 사활로 단번이었다(롬6:10, 히7:22-28, 9:12, 25-28, 10:10).

롬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히7:22-28 ‘...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
히9:12 ‘...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9:25-28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
히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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