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로쓰기 성경의 필요성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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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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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4. 질문 : 세로쓰기 성경의 필요성 284
① 세로쓰기 성경의 현황
세로쓰기 성경을 구할 수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물론 4X6판이라고 알려진 크기, 일반적으로 제일 많이 이용되는 성경은 아직도 세로쓰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죽성경만 출간될 뿐 비닐표지 성경은 나오지를 않습니다. 전국을 통해 수십권 정도의 재고만 파악되는 정도입니다. 휴대용, 유소년용 등 여러 형태의 성경에서는 세로쓰기가 완전히 절간되고 있습니다.
서점 등 판매 일선에서는 찾는 이들이 거의, 전혀 없다고 합니다. 성서공회에서는 구입요청에 따라 재고량을 조절하며 출간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분들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답변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곳의 신앙노선에 있는 분들, 곧 우리가 불편한 것이 문제입니다.
다행히 성서공회는 이전 세로쓰기 출간에 필요한 준비물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만일 단일 품목을 1천부 정도 주문하게 되면 제작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4X6판 가죽 한가지만 구입이 가능한 것을 여러 다른 형태로도 구입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고, 따라서 여러 교회나 교인들이 휴대용크기나 비닐 등 몇 가지 성경을 공동 구입할 의사가 있다면 그 권수를 취합하여 이전 형태의 성경을 확보해 둘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이곳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곧 '동참'을 원하는 안내문을 게재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 일을 주도해 주실 교회나 공회 또는 그런 곳이 있다면 이곳에 연락해 주시고 그렇다면 이곳은 즉시 이 일에는 협조하는 곳으로 입장을 바꾸고자 합니다. 또 단독으로 꼭 하시고 싶다면 연락이라도 주시고, 그렇다면 그렇게 확보하는 곳을 통해서 신세를 지고 싶습니다.
② 쉽게 나가면 결국 성경을 보지 않게 됩니다.
독자들의 편리, 독자들의 요구를 고려할 때 세로쓰기는 출간할 수 없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러나 형태의 편리를 찾는 교인에게 내용의 경건함이 늘 함께 따라 다니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좀더 가까이 하려는 노력을 가상히 볼 일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단순히 편리를 추구'하는 것 때문이라면, 형태의 편리함은 '형태의' 편리함이 아니라 '편리함을 위한' 조처에 불과하고, 편리함이 주인이 되고 보면 믿는 결국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살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원인인 성경과 하나님을 제거하는 본색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멀리 보고 깊이 보기 때문에 다시 한번 '보수를 위한' 보수주의라는 비난을 자초하며 '형태를 보수'함이 아니라, '내용의 변질을 막는' 첫 울타리로 형태의 보수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이유뿐이라면 마음 속 깊이 담아둘 사안이었습니다.
③ 세로쓰기 성경을 소원함은 이런 이유입니다.
우선 성경은 쉽게 읽어지도록 일부러 형태를 바꿀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속독만을 위한 훈련서라면 상관치 않겠습니다. 그러나 일반 교인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성경이라면, 또한 성경은 세로쓰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대 젊은이와 소년들에게 대단히 불필요한 고통을 준다면, 오히려 세로쓰기로 성경을 읽는 것이 한 글자 한 글자 새겨가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게 되는 데에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더 어렵게 읽도록 만들 것까지는 없을지라도 기존 있던 성경이 세월이 감에 따라 읽기가 좀더 불편한 구품이 되었는데 다행이 그 구품이 성경 읽기를 좀더 신중하게 만든다면 그리고 그 읽는 속도를 약간 느리게 만든다면 오히려 더 환영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예배시간에 성경을 단숨에 내리 읽고 그 본문에 대한 해설을 아나운서만큼 유창하게 쭉 내려뻗은 다음, 점; 쳐 버리고 있습니다. 한번 듣고 버릴 새 소식이면 몰라도 열번이 아니라 백번 천번 죽는 날까지 반복해서 파고 들어갈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자세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람들이 자주 찾을 곳이 이곳이라고 생각합니다.
④ 권임함목사님 예를 자주 들었던 기억을 하십니까?
설교록에서, 권임함목사님의 성경봉독 자세를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실은 신구약성경 본문 전부를 다 외운 백목사님, 그분이 읽어내려 가는 성경본문 속도는 속독이 불가능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다독과 속독이 필요한 때가 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광속 시대를 살고 있으나, 그에 반비례하여 우리 심령은 굼뱅이보다 더 느리니 성경을 읽을 때만큼은 광속에 표준을 맞추지 말고, 우리 심령의 어두움에 맞추어 소경이 더듬어 길을 갈 수 있도록 세로쓰기를 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성을 하게 됩니다. 1984년 한글을 전혀 모르던 미주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던 반사가 막 한글 기초를 배우게 되던 자기 학생들을 위해 당시 나오기 시작하던 가로쓰기 성경을 구입하려다가, 혹시 싶어 백목사님께 문의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반사도 가로쓰기에 대한 필요성, 당연함을 많이 느끼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혹시 아무 것도 아니지만 '바뀌는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문의를 드린 것입니다.
'이곳 학생들은 한글을 모릅니다. 이제 가나다를 배우면서 한글 성경을 처음 접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만 사용하던 학생들이니 최소한 읽는 방향에는 고통이 없었으면 합니다.'
'성경은 성경식대로 읽도록 습관을 들이면 된다. 성경 표현은 자꾸 해석을 하고 해설을 하여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성경 그대로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성경이 밑으로 세로로 쓰여 있으면 성경을 대할 때만큼은 자기들이 불편해도 성경에 자기를 맞추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라. 사람이 만사를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 편리에 맞추려는 그 노력 그 체질이, 그 사람의 자기중심 곧 악이며 이 악성이 자꾸 길러지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을 때는 다른 데서 하던 버릇, 무엇이든 자기 편리를 위해 자기에게 맞추려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고 자기를 바꾸어 성경에 맞추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해 보면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을 읽는 식이 생기고 그러면 은혜가 될 것이다.'
평소 이런 질문에 대하여 백목사님이 답변하는 경우 그분의 지도 방향이 이러합니다. 답변자가 약간 해설을 붙혔고 인용이 길어졌습니다.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했으나 그 답변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고 신앙노선이 있었습니다. 성경 형태를 단순히 논한 것이 아니고 수많은 현실에 닥쳐지는 변화무쌍한 상황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행주의가 아닙니다. 형식주의도 아닙니다.
세로쓰기를 붙들고 싶은 심정에 또 하나가 더해진다면 성경의 옆모습은 붉은색이라야 합니다. '더 고급스러운 성경을!' 장사군들의 생각과 금송아지를 만들어 눈앞에 두어야 하는 '배금주의' 교인들이 딱 맞아 떨어져 성경의 옆모습이 '금박'으로 바뀌었습니다. 성경이 '성서'로 바뀌고 설교가 '메세지'로 바뀌며 그 옆모습까지 고급화되어 가던 7-80년대 한국교계는 성경의 모습은 지극히 높혀 갔고 그 내용은 지극히 낮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옆모습이 바뀐 내부 원인 중에 하나는 그 당시 성경의 옆모습 때문에 너무도 예수 믿는 표시가 밖으로 노출이 되었고 이를 적당하게 버무리는 심리까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교인들을 이상스런 사교로 보던 초기복음시절, 우리는 인민군들 속에서도 성경을 옆 가슴까지 치켜 올리며 점령 치하를 호령했던 신앙선진들을 가진 신앙노선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불신자들의 세계 좌중에서도 착석하면서 눈을 감고 기도를 했으며 냉수 한 컵에도 기도를 했습니다. 참으로 주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그분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 당시 믿는 것이 부끄러워 이런 모습을 회피하던 대다수의 교인들이 지금은 사방천지 믿는 표시를 내고 다닙니다.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서, 한 손에 이성의 손을 붙들고 댄스를 하면서, 유치원 학생들의 뛰고 놀기를 하면서 대로가에서 예수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나던 세상 사람들이 전부 속으로 '놀고 있네' 소리가 나오도록 한국교회가 세상같이 흥청망청거리며 예수 믿는 표시를 내고 있습니다. 이제 교인들이 무시 못할 다수가 되고 보니까 장사하는 데까지도 예수 믿는 표시를 일부러 내면 덕을 보는 때가 되어 그러합니다.
이런 세태를 당하고 보니 이제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한국교회의 교인들과 교회들이 부끄러워 교인표시를 내기도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이전과 같이 성경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걸었던 때와 반대로 참 믿는 이들은 숨어서 다닐 때가 되었습니다. 내주하신 주님이 자신을 통해 생활과 행동 속에서 저절로 들어나시도록 해야 하는 시기라는 말입니다.
성경 옆모습의 금박이 부끄러워 이전 같은 붉은색을 찾으려해도 불가능합니다. 성서공회에서는 세로성경 출판에 필요한 준비물들은 보관하고 있지만 붉은 옆모습을 칠할 수 있는 체제는 완전히 없어졌다고 합니다. 글 초두에 제시한 것처럼 함께 공동구입을 하면 세로쓰기를 확보할 수 있는데, 이렇게 주문하면서 금박처리를 생략토록하고 금박처리 과정 대신 붉은색을 칠할 수 있는 기술적 문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 모습의 신앙을 찾는 것이 그 내용뿐 아니라 그 모습까지도 함께 없어진 오늘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지켜갈 신앙길이 있고 그 큰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다시 사소한 이런 문제를 보니 쉽게 생각하고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답변자는 그 신앙성장 과정에서 대단히 진보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체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옳으면 못 고칠 것이 없고 더 좋은 것이 아니라면 유행과 입맛에 따라 바꿀 일은 아니라는 신앙의 근본 방향을 배웠습니다. 이유가 있으며 신앙의 길이 있음을 배우게 되었고 그 시작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행주의, 형식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바꾸고 버리는 것보다 붙들고 있음으로 유리한 점이 있다면 두 말 할 것 없이 보수를 하게 됩니다. 성경 형태, 그 속에 여러가지 유리함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