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경번역상의 장애인 용어 순화의 필요성 문의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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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2. 질문 : 성경번역상의 장애인 용어 순화의 필요성 문의 252
성경 번역과 관련된 귀 홈페이지의 내용을 세밀하게 읽어보았습니다. 일반 교계의 인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단히 충격적인 논리였고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원칙적으로 대부분 수긍이 가면서도 두어가지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개역 개정판에서 소개된 장애인 관련 용어 순화 내용인데요. 세상은 갈수록 인권을 존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장애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물론 용어까지도 점차적으로 순화가 되어 가고 있으며 그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들도 꼭 같은 인격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일반 사회도 그러한데 하물며 예수 믿는 사람들, 교회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된다고 봅니다.
성경에도 장애인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용어 정도는 좀 거부감을 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소경을 맹인 혹은 시각 장애인으로 바꾼다든지, 또 문둥병자를 나병환자로 바꾸는 정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근본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 용어로 인해서 장애를 가진 분들이 시험에 든다든지, 전도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 성경을
우선 성경번역을 비롯하여 몇 가지 내용은 답변하면서 수양되지 못한 청년의 과격함이 있었고 적지 않은 분들이 표현의 순화를 당부했습니다. '표현을 순화시키지 않는 부분'은 연구자의 자세에서 가질 수 있는 '강조의 마지막 표현'이라고 이해를 구합니다.
1. 장애인 관련 용어 순화를 한다면서 소개한 '성경번역에 대한 원칙'을 먼저 살펴본다면
"10 장애인 관련 용어 순화 원칙- 마태복음11장을 중심으로"
1) 문둥병> 나병; 문둥병자>나병환자
2) 소경>맹인
3) 난쟁이>키 못 자란 사람; 곱사등이>등 굽은 자 레21:[20]
4) 벙어리>말 못하는 사람 출4:11[11] 마12:22
5) 귀머거리(시58:4와 같은 곳은 개역대로 둠) 출4:[11]
6) 절뚝발이>다리 저는 자 막9:[45]
7) 불구자>장애인 마15:[30-31]
8) 앉은뱅이>못 걷는 사람 마11:[5]
9. 병신>몸 불편한 사람/몸 불편한 자 눅14:[13]
2.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가. '장애인' 관련 용어를 '순화'했다는 '순화'란 '성경정확무오'를 난도질한 것입니다.
'순화'라는 번역원칙은 성경을 '화장, 도색, 미화, 연마, 절단'시켜 장애인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배려'이며 대단히 '인권을 고려한 조처'입니다만, 성경을 장애인에게 맞추어 잘라내고 덧붙이는 것은 진리를 인간 감정에 따라 재단하고, 하나님을 인간에게 맞추어 요리를 하는 것인 바,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란 하나님을 인간에게 맞추는 신앙이니 이는 불신자가 하는 일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던 시절 '출애굽기'를 그렇게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들을 위해 성경 표현을 '맞춤 제작'해서는 안 됩니다. 손양원목사님 말씀과 같이 '기독교를 일본에 맞추는 것은 사기 접시 위에 시온의 반석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일 독립운동을 위해 성경은 사용이 되어져야 합니까? 이 나라 애국자들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출애굽기의 내용을 좀더 자극적으로, 선전 선동적으로 '거칠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독립을 위해 '성경이 동원'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불경과 유교의 사서삼경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교양서적이기 때문입니다. 식민화를 위해 '편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본과 한국, 천지만물 전부를 창조한 창조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높아지면 여성 바람에 성경번역을 날려 보내고, 과학을 배려하는 시대에는 과학 바람에 진리를 재단하고, 유교 바람이 거세어서 김용옥쐴G 강의가 유행을 타면 김용옥식 성경으로 성경을 다시 쓰면 되겠으나, 그런 세상 바람을 따라 오가는 신앙을 우리는 '세속화, 변질, 적기독'이라고 표현하는 부류의 신앙이 좁은 길로 가는 십자가의 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 큰 이의가 없는 부분도 더러 있습니다만,
1)번의 나병, 2)번의 맹인으로 번역한 것은 큰 이의가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언어 환경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없는 경우는 번역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성경번역의 대원칙이란 입장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다. 2)번에서 9)번까지의 번역 원칙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번역입니다.
우선 '병신'을 '몸 불편한 사람'으로 번역을 한 것은 대단한 오류입니다. 병신은 몸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병신일 수도 있고 병신이 아닌데도 불편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편하지 않은 사람'이 '편찮은 사람'이며 '편찮은 사람'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병원 치료가 필요한 모든 사람이 다 '병신'일 수 있습니다. 병신된 분들의 불편함을 희석시켜 그들의 부끄러움은 건져줄 수 있을런지 몰라도, 성경 본문을 그렇게 흐려놓으면, 천국 가는 길을 그렇게 안개 속에 집어넣어 버리면, 그런 행위를 가볍게 했으나 그 결과와 그 뒷날은 아이들 장난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영생과 영멸이라는 두려움이 바로 뒤쫓고 있습니다.
성경의 '병신'이란 '인간이 자연치료나 과학 기술치료로 복구 불가능한 장애'를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복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이 병신이라는 단어를 '몸 불편한 사람'으로 대체를 하게 된다면, 몸 불편한 사람의 범위는 '현재 몸이 불편한 사람'으로 그 의미가 넓어지며 이런 경우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으나 방치된 상태' '치료를 받지 않아도 인체의 자동복구 기능으로 곧 정상화가 가능할 상태'도 포함하게 됩니다.
'병신'이신 장애인들께는 대단히 죄송하나 '병신'과 '몸이 불편한 분'은 분명히 바꿔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장애인들의 기분은 좋아지실런지 모르나 성경내용이 변질되고 타락되며 진리를 난도질한 결과는 분명합니다. '병신'을 구원할 '진리'를 '병신'된 분들과 '더 큰 병신은 우리들'이 함께 바로 잡아야 우리의 진짜 병신과 '장애인'들의 '병신'된 요소들이 함께 영생으로 재생될 것입니다.
'병신'이라는 말과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는 두 표현을 자꾸 번갈아 되새겨 보신다면, 그렇게 쉽게 바꾸면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없어질 것입니다. 중생된 교인이라면,
라. 앉은뱅이와 '못 걷는 사람'도 분명히 같은 원리입니다.
자꾸 두 표현을 교차하면서 연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두 표현이 다른 범위를 가지고 다른 내용을 가질 수가 있다면, 그 의미를 추가한 분, 그 범위를 축소한 분에게는 대단히 죄송하나 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이 경고한 대로 천국에 참예함이 없어질 것이고, 이 성경에 기록한 재앙들이 더하여질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못 걷는 사람입니다. 못 걷는 사람은 앉은뱅이 뿐 아니라 그 종류와 상태, 그 범위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바꿔 쓴다고 쓰여질 그런 단어들이 아닙니다. 세상 국어 사전의 의미가 바뀐다고 그렇게 무작정 따라 다닐 것이 아닙니다.
난쟁이를 키 못자란 사람이라고 했는데, 난쟁이와 키 못자란 사람과는 그 대상을 연상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모습이 연상되게 됩니다. 난쟁이는 우리가 사적으로 그냥 표현할 때 '병신'인 '난쟁이'입니다. '키 못자란 사람'은 그 정도가 '난쟁이'가 아닌 경우가 포함됩니다. 곱사등 역시 그 정도를 우리가 그 말에서 그대로 연상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현재 여러 형태로 등이 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꾸준한 물리치료로 고쳐질 수 있는 굽은 정도는 여기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 못하는 사람은 말은 하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포함됩니다. 어느 정치가는 참 말을 못합니다. 벙어리가 아닌데도 '그 사람 말은 못해'라는 범위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손가락 중에서 한 마디씩 2-3개가 잘려도 '장애인'으로 수첩을 교부받고 사회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정도입니다.
결론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충분히 이해가 되나, 다른 희생과 섬김으로 장애인들의 모든 불편을 최대한 우리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방법을 찾는 정도에서 교회의 사랑을 가져야지, 그 범위를 하나님을 교체하고 성경을 변질 시켜 천국 가는 구원 도리까지도 휘젓는 발상은 안 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성경 번역과 관련된 귀 홈페이지의 내용을 세밀하게 읽어보았습니다. 일반 교계의 인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단히 충격적인 논리였고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원칙적으로 대부분 수긍이 가면서도 두어가지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개역 개정판에서 소개된 장애인 관련 용어 순화 내용인데요. 세상은 갈수록 인권을 존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장애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물론 용어까지도 점차적으로 순화가 되어 가고 있으며 그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들도 꼭 같은 인격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일반 사회도 그러한데 하물며 예수 믿는 사람들, 교회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된다고 봅니다.
성경에도 장애인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용어 정도는 좀 거부감을 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소경을 맹인 혹은 시각 장애인으로 바꾼다든지, 또 문둥병자를 나병환자로 바꾸는 정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근본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 용어로 인해서 장애를 가진 분들이 시험에 든다든지, 전도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 성경을
우선 성경번역을 비롯하여 몇 가지 내용은 답변하면서 수양되지 못한 청년의 과격함이 있었고 적지 않은 분들이 표현의 순화를 당부했습니다. '표현을 순화시키지 않는 부분'은 연구자의 자세에서 가질 수 있는 '강조의 마지막 표현'이라고 이해를 구합니다.
1. 장애인 관련 용어 순화를 한다면서 소개한 '성경번역에 대한 원칙'을 먼저 살펴본다면
"10 장애인 관련 용어 순화 원칙- 마태복음11장을 중심으로"
1) 문둥병> 나병; 문둥병자>나병환자
2) 소경>맹인
3) 난쟁이>키 못 자란 사람; 곱사등이>등 굽은 자 레21:[20]
4) 벙어리>말 못하는 사람 출4:11[11] 마12:22
5) 귀머거리(시58:4와 같은 곳은 개역대로 둠) 출4:[11]
6) 절뚝발이>다리 저는 자 막9:[45]
7) 불구자>장애인 마15:[30-31]
8) 앉은뱅이>못 걷는 사람 마11:[5]
9. 병신>몸 불편한 사람/몸 불편한 자 눅14:[13]
2.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가. '장애인' 관련 용어를 '순화'했다는 '순화'란 '성경정확무오'를 난도질한 것입니다.
'순화'라는 번역원칙은 성경을 '화장, 도색, 미화, 연마, 절단'시켜 장애인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배려'이며 대단히 '인권을 고려한 조처'입니다만, 성경을 장애인에게 맞추어 잘라내고 덧붙이는 것은 진리를 인간 감정에 따라 재단하고, 하나님을 인간에게 맞추어 요리를 하는 것인 바,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란 하나님을 인간에게 맞추는 신앙이니 이는 불신자가 하는 일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던 시절 '출애굽기'를 그렇게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들을 위해 성경 표현을 '맞춤 제작'해서는 안 됩니다. 손양원목사님 말씀과 같이 '기독교를 일본에 맞추는 것은 사기 접시 위에 시온의 반석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일 독립운동을 위해 성경은 사용이 되어져야 합니까? 이 나라 애국자들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출애굽기의 내용을 좀더 자극적으로, 선전 선동적으로 '거칠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독립을 위해 '성경이 동원'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불경과 유교의 사서삼경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교양서적이기 때문입니다. 식민화를 위해 '편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본과 한국, 천지만물 전부를 창조한 창조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높아지면 여성 바람에 성경번역을 날려 보내고, 과학을 배려하는 시대에는 과학 바람에 진리를 재단하고, 유교 바람이 거세어서 김용옥쐴G 강의가 유행을 타면 김용옥식 성경으로 성경을 다시 쓰면 되겠으나, 그런 세상 바람을 따라 오가는 신앙을 우리는 '세속화, 변질, 적기독'이라고 표현하는 부류의 신앙이 좁은 길로 가는 십자가의 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 큰 이의가 없는 부분도 더러 있습니다만,
1)번의 나병, 2)번의 맹인으로 번역한 것은 큰 이의가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언어 환경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없는 경우는 번역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성경번역의 대원칙이란 입장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다. 2)번에서 9)번까지의 번역 원칙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번역입니다.
우선 '병신'을 '몸 불편한 사람'으로 번역을 한 것은 대단한 오류입니다. 병신은 몸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병신일 수도 있고 병신이 아닌데도 불편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편하지 않은 사람'이 '편찮은 사람'이며 '편찮은 사람'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병원 치료가 필요한 모든 사람이 다 '병신'일 수 있습니다. 병신된 분들의 불편함을 희석시켜 그들의 부끄러움은 건져줄 수 있을런지 몰라도, 성경 본문을 그렇게 흐려놓으면, 천국 가는 길을 그렇게 안개 속에 집어넣어 버리면, 그런 행위를 가볍게 했으나 그 결과와 그 뒷날은 아이들 장난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영생과 영멸이라는 두려움이 바로 뒤쫓고 있습니다.
성경의 '병신'이란 '인간이 자연치료나 과학 기술치료로 복구 불가능한 장애'를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복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이 병신이라는 단어를 '몸 불편한 사람'으로 대체를 하게 된다면, 몸 불편한 사람의 범위는 '현재 몸이 불편한 사람'으로 그 의미가 넓어지며 이런 경우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으나 방치된 상태' '치료를 받지 않아도 인체의 자동복구 기능으로 곧 정상화가 가능할 상태'도 포함하게 됩니다.
'병신'이신 장애인들께는 대단히 죄송하나 '병신'과 '몸이 불편한 분'은 분명히 바꿔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장애인들의 기분은 좋아지실런지 모르나 성경내용이 변질되고 타락되며 진리를 난도질한 결과는 분명합니다. '병신'을 구원할 '진리'를 '병신'된 분들과 '더 큰 병신은 우리들'이 함께 바로 잡아야 우리의 진짜 병신과 '장애인'들의 '병신'된 요소들이 함께 영생으로 재생될 것입니다.
'병신'이라는 말과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는 두 표현을 자꾸 번갈아 되새겨 보신다면, 그렇게 쉽게 바꾸면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없어질 것입니다. 중생된 교인이라면,
라. 앉은뱅이와 '못 걷는 사람'도 분명히 같은 원리입니다.
자꾸 두 표현을 교차하면서 연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두 표현이 다른 범위를 가지고 다른 내용을 가질 수가 있다면, 그 의미를 추가한 분, 그 범위를 축소한 분에게는 대단히 죄송하나 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이 경고한 대로 천국에 참예함이 없어질 것이고, 이 성경에 기록한 재앙들이 더하여질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못 걷는 사람입니다. 못 걷는 사람은 앉은뱅이 뿐 아니라 그 종류와 상태, 그 범위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바꿔 쓴다고 쓰여질 그런 단어들이 아닙니다. 세상 국어 사전의 의미가 바뀐다고 그렇게 무작정 따라 다닐 것이 아닙니다.
난쟁이를 키 못자란 사람이라고 했는데, 난쟁이와 키 못자란 사람과는 그 대상을 연상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모습이 연상되게 됩니다. 난쟁이는 우리가 사적으로 그냥 표현할 때 '병신'인 '난쟁이'입니다. '키 못자란 사람'은 그 정도가 '난쟁이'가 아닌 경우가 포함됩니다. 곱사등 역시 그 정도를 우리가 그 말에서 그대로 연상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현재 여러 형태로 등이 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꾸준한 물리치료로 고쳐질 수 있는 굽은 정도는 여기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 못하는 사람은 말은 하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포함됩니다. 어느 정치가는 참 말을 못합니다. 벙어리가 아닌데도 '그 사람 말은 못해'라는 범위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손가락 중에서 한 마디씩 2-3개가 잘려도 '장애인'으로 수첩을 교부받고 사회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정도입니다.
결론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충분히 이해가 되나, 다른 희생과 섬김으로 장애인들의 모든 불편을 최대한 우리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방법을 찾는 정도에서 교회의 사랑을 가져야지, 그 범위를 하나님을 교체하고 성경을 변질 시켜 천국 가는 구원 도리까지도 휘젓는 발상은 안 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