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헬라어 문법과 성경 해석(신령과 진정을 중심으로)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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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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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4. 질문 : 헬라어 문법과 성경 해석(신령과 진정을 중심으로) 454(쉬)
예배와 설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많은 분들이 이 말씀도 잘못 이해하고 있고 사실 번역도 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대로 번역을 제대로 한다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에게‘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에게‘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이렇게 번역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신령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프뉴마타이’이고 진정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알레데이아--’인데 두 단어가 다 명사 단수 여격(--에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신령(神靈)과 하는 말은 영(靈)에게와 진정으로 하는 말은 진리(眞理)에게 로 번역해야 제대로 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자면 하나님께 참으로(알레디노이) 예배하는 사람들은 이 산(山)이나 저(山)이나 예루살렘이나 베델에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즉, 예배(禮拜)하는 장소(場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나니 예배(禮拜) 대상(對象)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그 여인은 자꾸만 예배 장소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 앞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
오늘날 많은 교회 많은 설교자들, 그리고 예배 인도자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예배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설교자들이 이 말씀을 인용할 때도 거의 의미를 모르고 원문의 뜻도 살펴보지 않고 말씀하신 분의 진의를 파악도 못하고
아무때나 써먹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영(靈)이신 하나님께 진리(眞理) 되시는 말씀을 들으며 예배(禮拜)하는 것이 가장 바른 예배(禮拜)라고 믿습니다. 사람의 설교는 진리에 대하여 혹은 관하여(about) 말하지만 성경 말씀은 진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7-19)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가장 신령한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성령께서 하신 사역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사역이요 다음으로 신령한 사역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그 성경을 읽어주고 들려주고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사역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보다 더 신령하고 더 거룩한 그 아무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지상명령 즉 유언과 같은 말씀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하셨다고 믿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예배는 그 대상이 영이신 하나님께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가장 거룩한 예배라고 믿습니다.
답변 : 이곳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 헬라어 문법을 알지 못하면 성경을 완전히 엉뚱하게 해석하게 된다는 예를 드셨습니다. 요4:23-24의 '신령과 진정으로'를 가장 중요한 예로 드셨습니다. '영과 진리에게'라고 번역해야 옳다는 주장을 하시고 이 주장에 근거하여 모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2. 그러나 그렇게 확실하게 설명하신 헬라어 문법적 설명은, 결과적으로 헬라어 문법에 근거한 성경해석이 얼마나 성경을 잘못 해석하도록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과 진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헬라어문법이라면 그 문법체계는 성경해석에 동원되지 말아야 할 고장난 문법이거나 빠진 것이 많은 문법이라고 하겠습니다.
3. 참고로, 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을 집중적으로 살피며 연구하는 곳입니다. 현재까지 이곳은 이 신앙노선에서 대단히 많은 장점을 발견하고 있는 바, 이 신앙노선의 장점을 성경신학과 관련하여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백영희신앙노선은 '원어와 원어문법에 입각한 성경해석은 진리에 위치한 성경을 그리스 문학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위험성'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체계와 문자적 표현법에 관하여는 이곳도 특별한 관심과 시각이 있습니다. 이곳은 윗 글을 적으신 분 그리고 윗 글과 같은 방향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오늘 교계의 지성적 신학인들에게 특별히 백영희신앙노선의 원어관, 성경 해석관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4. 고전 헬라어 문법적 접근으로 요4:23-24에 대한 개역성경의 번역을 호되게 비판하셨다면 끝까지 헬라어 문법적 기준에서 이 본문에 대한 해석을 끝내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헬라어 해석에 의하여 우리 기독교는 예배드려 섬길 대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다가 '진리'라는 존재 하나를 추가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주 단정을 하도록 하셨고 달리는 빠져 나갈 수 없도록 헬라어 문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착고를 채우셨습니다.
그러나 그 문법이 만일 우리에게 진리를 예배드릴 존재라고 안내한다면 우리는 그 문법을 폐지하겠습니다. 내가 낳은 내 아들을 유전자 감식한 병원에서 감식 결과 친 아들이 아니라고 확인서를 발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제 뱃속으로 낳아 한번도 이산가족이 되거나 병원에서라도 격리되어 지내온 적이 없습니다. 무식한 그 어머니는 딱 잘라 병원의 검사가 틀렸다고 휘 젖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무식한 어머니가 이겼습니다.
섬기고 예배드릴 대상에 진리를 포함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설명하는 헬라어 문법 체계는 일단 그 문법을 만들어 출고한 생산 공장으로 되돌려져 그 문법체계 자체가 제작 과정에서 잘못 조립되었는지를 우선 점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단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