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원어해석의 오류 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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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원어해석의 오류 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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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질문 : 원어해석의 오류 3161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과 원어의 사본성경과의 해석에서 오류가 있는 양은 얼마나 됩니까? 특별히 중요교리와 관련된 오류부분은 없습니까?

그리고 목사님의 글 중에 그러나 이렇게 원어의 뜻을 모르면 안 되는 곳은 성경 전체에서 불과 몇 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들은 믿는 사람으로서는 지게꾼이라도 듣지 않을 수 없도록 수도 없이 제시되고 반복되는 내용이어서 하나의 자연계시 수준에서라도 알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 내용 하나 때문에 원어에 필요성이 일반 우리에게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원어의 내용이 참으로 언어적으로 알아져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누구를 통해서 어떤 과정으로든지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 중 원어의 뜻을 모르면 안 되는 곳은 성경 전체에서 불과 몇 곳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 몇 곳을 알려주시고 설명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나아가 목사님 글 중에 원어를 사용하면 이분론 삼분론을 아예구분할수 없고 하나님이 잡신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를 쉽게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원어를 사용하면 해석이 아예 거꾸로 가는것들이 더 있다면 예를 들면서 설명해주세요.


답변 : 충분하게 답변할 시간이 없어 죄송합니다. 원어 관련 간단한 답변입니다.

1. 김소월의 ‘진달래'와 같은 시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몇 % 의 정확성을 가질 것 같습니까?

그냥 대충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50-60% 정도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요? 이는 각국의 언어체계에 따라 특히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뜻글자인 한자를 소리글자인 영어나 한글로 번역할 때 더욱 큰 차이가 납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한글이나 한자와는 언어체계의 근본 구성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무리 번역을 정확하게 하려 해도 80-90% 이상으로 근접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를 숫자와 ‘%'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냥 질문자의 뜻을 헤아려 굳이 숫자로 표현해 본 것이니 숫자 자체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성경 기록 중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라는 이런 문장의 번역은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편 등의 경우는 시적으로 표현되었고, 계시록이나 잠언 전도서와 같이 비유 상징 등을 내용으로 할 때는 세상 번역 상식으로도 그 번역의 정확성이라는 것은 대충 의미를 전하는 정도로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의 더 큰 문제는 정확하게 번역이 되었다고 해도, 그 번역된 단어와 문장이 그 당시의 환경과 분위기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성경번역이란, 그 단어 자체가 인간이 인간으로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극복할 수 없는 큰 구렁이 있다는 뜻입니다. 뛰어넘는 재주는 오직 성령의 감화와 감동뿐입니다. 그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그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는 대로, 아는 만큼 실행을 우선 해 보면' 나머지는 그분의 인도가 있게 됩니다.

2. 특별히 중요 교리와 관련된 부분의 오류는 거의 없습니다.

몇몇 곳에 불편함과 애매함이 있어도 다른 성구가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중요한 교리일수록 성경과 교리 전체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상 좀 불편한 곳이 있어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3. 성경해석에서 원어를 알지 못하면 불편한 곳들

예를 들면 악4:8의 ‘레바논'은 흰산, ’아마나'는 견집, ‘스닐'은 갑옷, ’헤르몬'은 단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현재 /초기화면/활용자료/소선집/'01호' ‘성도에 대한 주님의 요구'라는 설교에서 보면 이 부분은 원어로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원어를 알지 못하면 불편한 곳이 몇 곳이라고 말씀드린 '몇 곳'은 얼른 들으실 때 4-5곳 등으로 연상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꼭 숫자를 헤아리고 말씀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 예를 더 들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가페'인데 사랑의 뜻이 하나님의 사랑일 때는 아가페이지만, 이성의 사랑일 때는 '에로스'라 하고, 형제의 우애의 사랑은 ‘필레오'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혈육의 사랑은 ’스톨게'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원어의 차이로 성경의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은 이미 수많은 신학자들이 하도 많이 써먹어서 원어를 모르는 평신도에게도 상식 수준이 되어 있어 사실 불편을 느낄 수 없을 정도입니다.

4. 원어를 사용하면 성경해석이 혼동되고 심지어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예에 대하여?

현재 며칠 간 바쁜 업무 때문에 2-3일간 답변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답변은 원어와 번역 성경이라는 제목으로 그 실제 사용용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읽는 분들에게 이해가 쉬운데 원리만 말해 놓고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답변자의 원어 실력은 전문가가 설명을 하면 듣고 이해를 조금 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원어 관련 강의나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럴 때에 여기에서 답변하는 정도의 확실한 증거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발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려고 한다면, 원어를 확실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옆에 앉혀 놓고 답변자가 신세를 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한 혼동, 하나님과 다른 신들에 대한 원어의 혼동, 그리고 원어사용 때문에 오히려 성경이 잘못 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는 언제 시간이 나면 가장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도표로 만들어 제시하려 합니다. 답변자도 애매하게 말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도표로 제시하게 되면 평생 써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요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는데 이때 육신의 원어는 ’삭스'입니다. 삭스라는 원어는 부패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어론자들의 말에 의하면 신성인 그리스도가 부패성인 죄가 되어 왔다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신성 하나님께서 인성 인간을 입어 신인양성일위가 되었다는 성구입니다. 이 논쟁은 1950년대 고신대학교에서 박윤선목사님과 백목사님 사이에 원어논쟁으로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실력의 백목사님이 원어에 달통했다는 학자를 상대로 원어논쟁에서 번번히 이기고 있었습니다. 원어를 원어사전에서 보고 해석하려는 것이 성경신학자들의 성향이었고 백목사님은 성경 전체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성구로 이를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이 예화는 /초기화면/활용자료/녹음본/에서 ‘삭스'나 ’싹스'란 검색어로 당시 기록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재질문 : 원어나 성경고고학은 어느 선 까지 알아아 하는지

그러면 목사님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성경의 우리가 어릴 때 부터 들어온 성경지식이나 유대인의 환경을 하나도 몰라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만으로도 모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저희는 어릴 때 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이스라엘 문화나, 유대인, 원어 같은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들어왔습니다. 그런걸 하나도 모르고 오늘 처음으로 새신자가 우리의 개역성경만을 가지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책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모든 뜻, 중요교리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까?

얼핏 생각해보면 모태신앙도, 어릴 때 부터 교회를 다니며 알게 모르게 전반적인 원어가 쓰이는 곳, 고고학적 환경문화를 배워왔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어도 무식한 한 아저씨가 성경책만으로 하나님의 모든 뜻, 중요교리를 다 알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저는 어릴때 교회에서 배운 약간의 이스라엘 역사, 문화 ,고고학적환경문화가 성경을 읽고 해석 할 때 한결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하나도 필요 없다면 그 이유를 쉽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백목사님도 목사님도 어느 정도 성경배경을 바탕으로 말씀들을 해석하고 하나님을 만나 것이 아닌지요? 가장 기초적인 지식은 있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민족이며, 헬라인들은 그리스인이며 이런 쉬운 지식 말입니다. 그 기초지식이 우리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용어나 지명이 있는데 그 정도만 알면 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렇게 또 조금씩 원어나 고고학적환경을 알아야 된다하면 그 선을 어디까지 그어야할지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선을 그어가면 누구는 여기까지는 알아야한다, 어떤이는 원어는 이 정도는 알아야하고 고고학적지식은 이 정도는 기본이다 하면서 의견이 천차만별이 될 것 같습니다. 종국엔 또다시 원어지상주의 고고학절대주의로 갈 수밖에 없겠죠? 그 선을 어디까지 긋느냐 어디까지 알아야 하느냐 이런 문제를 따지고 가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아니 세계의 신학이 그렇게 말이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생각으론 어쩌면 원어나 고고학적 지식이 하나도 몰라도 성령께서 감동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모든 뜻과 모든 교리는 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듭니다.

만약 한 스님이 원어, 고고학을 하나도 모르는 한 스님이나, 오늘 처음 나온 중학생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평생 이들이 원어나 고고학을 모른다 하여도 조금도 모른다 하여도 지금 우리의 성경만으로 하나님의 모든 뜻과 모든 교리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 교회 나온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말들(화폐 단위,지명, 나라이름) 같은 것들을 몰라도 되겠습니까? 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하고 그 선을 긋는다는 말에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어릴 때 부터 알게 모르게 배워온 이스라엘문화나 지식으로 성경해석에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지만요. 그 지식이 없어도 되는 것인가요? 성령님만으로? 만약 가장 기본적인 원어나 고고학적인 이스라엘의 문화를 알아야 된다고 한다면 어디까지 알아야 그 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되는지 애매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선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원어나 이스라엘에 대해서, 성경의 모든 이스라엘지식들(성경의 이스라엘의 지명이나 성이나 도시이름들까지)을 완전히 몰라도 성령님만으로 가장 올바른 하나님의 뜻과 모든 교리를 알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의 글을 보면 언어학적기술이나 방법들은 거의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사실 우리의 개역성경을 읽을려면 상당수준의 국어단어를 알고 어학적인 실력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 읽어야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어디까지 선을 긋는다는 자체가 기준을 정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결정 같습니다.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 주어진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어지는 것이 그 선입니다

1. 연구하는 문제를 접근하는 자세에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신 듯 합니다.

이곳 문답방에서 ‘성경' ’원어' ‘해석' ’번역' 등으로 검색하여 ‘성경과 원어' ’원어와 번역'이라는 주제로 앞서 오간 내용을 먼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번 문답으로 오가는 주제는 질문자께서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로 바로 질문하시게 되면 답변을 찾는 일은 아마 거의 어려울 듯 합니다.

연구하실 주제 하나를 가지고 여러 면을 여러 차원에서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 보셨으면 합니다. 이곳은 이해가 어려운 문제를 안내하는 게시판입니다만, 문제에 대한 해답보다, 문제를 찾는 방법과 해결하는 열쇠를 소개하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략의 방향은 남에게 참고로 들을 수 있으나, 자기만의 자기 문제는 결국 자기 외에 다른 사람에게서는 그 답변을 듣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환경을 따로 주셨습니다.

요 며칠 간 바쁜 일정 때문에 답변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임시답변)으로 적으며 성의표시만 하고 있습니다. 혹 답변 시간이 충분하여 질문자께서 원하시는 답변을 충분하게 해 드린다고 해도, 현재 질문자께서 질문 내용을 대하는 자세라면 결국 이해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합니다. 답변을 보시고도 그것이 답변인 줄 모를 수 있는 정도로, 급하신 듯 합니다.

2. 재질문을 하신 내용에 대하여, 다음 사항을 참고하시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것만 알려주십니다.

지식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를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만드시려 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서 바로 알고 바로 행동하여 바르게 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지식을 주셨습니다. 모든 지식이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각자 따로 있습니다. 우리를 만들 때 각자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다른 환경을 주시고 또 맡길 일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긴 모양과 출생 여건과 성장 과정의 상황에 따라 각자가 알아야 할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가 알아야 할 것을 우선 찾아야 하고, 그다음 알게 된 것은 그대로 실행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맡긴 목표가 달성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이 각자 다르다는 말은, 알아야 할 것이 각자 다르다는 뜻입니다. 성장 환경이 다르다는 말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지식의 종류와 그 정도가 각기 다르다는 뜻입니다.

소경으로 태어나는 사람에게는 그래픽자료는 몰라도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귀머거리로 태어나는 사람에게는 음성자료는 몰라도 된다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셔서 귀를 막아놓고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글자를 습득하지 못하는 두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문자자료 때문에 구원 얻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그 사람이 이루어갈 구원의 방향과 그 사람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따로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자료를 얻어야 다른 사람만큼 알 것이고, 그래야 다른 사람과 동등한 구원을 이룰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은 발이 손과 같아지려는 시각입니다. 귀가 입과 경쟁을 하려는 것입니다. 전혀 오해를 한 것입니다. 주신 현실에서 알려주시는 것만 알아가고, 알게 된 것은 행하고, 또 살아가다가 새로 알려주는 것이 있으면 또 알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주의처럼 이 땅 위에 모든 지식은 모조리 다 알아야 하는 것처럼, 신앙에 관련된 지식은 전부를 다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원어로 성경이 기록되던 그 당시에 살던 사람이 아니면 그 기록의 원뜻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당시 살던 사람이라도 사람마다 인지력에 따라 그 기록한 뜻을 바로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기록된 신문 기사 한 줄과 어느 사건 하나를 두고 여당과 야당의 시각과 인지가 전혀 반대로 나오고 있으며, 이라크 상황 하나를 두고 세계 각국과 각 사람의 상황 인식과 객관적 사실 파악이 천차만별입니다. 하물며 수천년 시대와 언어의 체계와 환경을 넘어서 있는 상황을 원어 문법과 성경 고고학으로 재구성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대단히 착각한 불쌍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성경 원어와 성경 기록 환경에 대하여는 귀머거리이거나 소경이거나 아니면 색맹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주셨습니다. 소경이 신문을 읽는다는 옛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 귀머거리가 취미란에 음악 감상이라고 적어냈다며 웃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출생하고 일반 고교를 다니다가 신학교를 들어간 뒤에 그 학생이 원어와 성경고고학을 연구해서 성경기록의 원래 상태를 복구하고 체득하여 성경을 해석하겠다면, 소경이 신문을 읽는 것보다 더 거리 먼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소경으로 태어나도록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한 것은, 소경이라 해도 구원을 이루는데 그 소경된 불편이 불편으로 작용하는 일은 없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경은 신문을 눈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다가 목적도 실패하고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 아니고, 라디오를 듣거나 아니면 점자책을 찾거나 아니면 버스대합실에 가서 남들이 하는 말을 줏어들어면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 시대를 이해하지 못해서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를 알지 못하고 또 성경고고학적 환경을 알지 못한다면, 모르는 상태를 우리에게 주신 장애환경으로 받아들이고, 장애자라 해도 자기가 할 수 있고 가능한 방법들이 있으니 그 방법을 성실히 이용하면, 그다음 단계는 하나님께서 알려서 필요한 것은 알려주실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 우리나라 신학계의 수준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평생 원어공부를 한 사람이나 원어의 알파벳도 모르는 사람이나, 성경을 깨닫고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자기 구원을 이루는 일에 원어를 안다고 더 유리할 것도 없고 원어를 모른다고 더 불리할 것도 없다는 원칙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원어를 잘 알수록 성경에 대하여는 무식하고 원어를 모를수록 성경에 대하여 정확히 깨닫는 확률이 월등히 높다는 것은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원어를 몰라서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해석하지 않으면 됩니다. 성경고고학을 몰라서 깨달을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그 부분에 대하여는 소경으로 눈을 가렸으니 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알려주시고 보여주시는 것을 알고 따라가다가 보면, 하나님께서 그 이상으로 알아야 할 것이 필요하면 영감으로 바로 알려주시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노력하게 해서 우연한 기회에 알도록 하시든, 어떻게라도 알려 주십니다.

답변을 단 몇 줄만 적으려 했으나 적다 보니까 또 답변이 길어졌습니다. 여러 답변을 더 적으려 했으나, 질문자를 위해 답변을 그만 적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이하 답변은 생략하겠습니다. 이번 답변도 아마 이미 이곳 문답방에서 여러번 반복하여 설명했던 내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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