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합리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운동에 관하여 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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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합리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운동에 관하여 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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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문 : 합리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운동에 관하여 2926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중에 합리주의 신학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시던데 합리주의 신학이 무엇입니까? 또 복음주의 운동은 무엇을 말 하는 것인지 상세히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 신학에 관련된 지식은 최소한으로 아셨으면 합니다.

1. 합리주의 신앙

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인정하는 것을 '합리주의'라고 합니다.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따져서 알아보는 마음을 이성이라고 합니다. 이치를 따지는 성질이라고 해서 이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인간은 알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하는 것도 있고 또 본능적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점점 철이 들어갈수록 또 중요한 것일수록 이유를 따져보고 또 그 과정이 어떻게 그런지를 알아봐서 이해가 되어져야 수긍이 되고, 만일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마음에 내켜서 하는 일은 없게 되어집니다.

이치를 따져보고 이유를 알아보면서 그것이 맞다 싶으면 해야 한다는 사람을 '합리주의'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이해가 되어야 되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것을 합리주의라고 합니다.



② 합리주의 신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믿는 신앙 입니다.

'합리주의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판단으로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이 물 위에 걸었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경험적으로 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의 생각에 맞지 않으니까 그런 말은 그냥 전설처럼 듣지 실제 예수님이 물 위에 걸어갔다는 것은 인간 생각에 말이 안 되는 소리니까 안 믿는 것을 합리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사회에 봉사하고 청소하고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일은 인간 생각에 좋다 싶고 이해가 되니까 그런 것은 좋은 신앙이고 그런 일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합리주의 신앙입니다.

2. 복음주의 운동

① 신약 우리에게 주신 복음, 성경이 말씀하는 그대로 살자는 것이 원래 '복음주의 신앙'입니다.

'복음주의'라는 표현은 원래 좋은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대로 살고 이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게 된 동기에 따라서 좋게도 사용되고 아주 나쁘게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선, 천주교가 천주교 자기들 운영규칙으로 교회를 묶어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했을 때 이를 개혁한 것이 현재 우리 기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천주교를 비판하고 새롭게 출발할 때 앞서 내세운 구호가 바로 복음주의입니다. 천주교 교황이 무엇이라 하든지 말든지 또 천주교 전통과 규칙이 어찌되었든지 상관말고 성경에 기록해주신 복음 받은 사람은 복음대로 살고 복음 전하는 것으로 지상목표를 삼자는 것이 복음주의였습니다.

천주교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소개한 복음에 구원이 있으니 복음이 절대지 천주교가 절대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원래 복음주의 신앙입니다. 성경 중심, 하나님 중심, 구원 중심으로 살자는 운동입니다. 천주교에서 정한 격식에 얽매이지 말고 복음의 사람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② 현재 사용되는 '복음주의 운동'은 좋은 뜻과 나쁜 뜻을 함께 가지고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복음주의 운동으로 천주교에서 오늘 기독교가 5백여년 전에 새로 출발해서 잘 진행되다가 조금 세월이 지나니까 교회가 과거 천주교를 닮아서 조금씩 형식화되고 제도화되기 시작하고 원래 출발 정신인 성경의 복음 운동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이것을 비판하면서 과거와 다른 것, 지금까지 해 내려오던 것과 무엇인가 다른 면으로 실제 힘써 살아보자 해서 신학보다는 실제 신앙생활에 주력을 하고 또 교회의 전통을 보수하고 유지하는 것보다는 성경 말씀에 적힌 것을 자기 생활에서 실행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운동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얼른 볼 때 좋은 것 같고 또 실제로도 맞는 말인데 이런 주장을 누가 어떤 이유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아주 달라지게 됩니다. 즉, 교회가 과거 천주교처럼 형식화가 되어 잘못된 부분, 말씀대로 실제 사는 생활에 주력하지 않은 '잘못된 부분을 고치자'는 운동은 진정한 복음주의 운동입니다. 그러나 주장은 비슷한 것 같은데 교회가 고쳐서 안 되는 것, 교회가 아무리 세월이 변하고 바뀌어도 변치 말고 가져야 할 교리와 진리까지도 귀찮다고 다 없애버리고 무조건 생활 속에서 열심히 뛰기만 하면 복음운동이 아니냐는 운동이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앞에 말씀드린 복음주의 운동은 교회를 항상 살아 움직이는 교회로 살리는 운동이고, 뒤에 소개한 복음주의 운동은 복음주의라는 표현을 앞에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생명이 되고 중심이 되는 정통교리와 노선에서 탈피하려는 위험한 운동입니다.

③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애국자도 사용하지만 역적들도 즐겨 사용합니다.

말하자면 오늘 남한 사회에서 과거 군사독재정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꼭 같이 인식을 하는데, 한쪽에서는 군사독재로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이 건전하게 잘 발달되었으니 그것은 그대로 살리고 다만 반대하는 사람을 무조건 탄압한 거친 행동만 잘못되었으니 앞으로는 법질서로 모든 것을 운영하자는 운동이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군사독재가 잘못되었으니 남한 사회와 정부는 모조리 역적이고 따라서 남한 사회를 전복하고 평양에다가 남한 사회를 다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사람들과 뒤에 예를 든 사람들이 꼭 같이 민주사회를 주장하지만 앞에 사람들이 말하는 민주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뒤에 말씀드린 사람들이 말하는 민주사회는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앞에 예를 든 사람들이 그 단어를 사용하면 남한정부를 기준으로 볼 때 애국이고 뒤에 예를 든 사람들이 입에서 민주주의를 거론하면 그것은 매국이며 반역이 되는 일입니다.

④ '복음주의 운동'을 앞세워 성경으로 돌아가는 신앙도 있고, 성경에서 도망가는 운동도 있습니다.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진정 성경으로 돌아가도록 큰 역사가 일어난 것도 교회역사에서는 많았고, 반대로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탈선의 길로 나간 운동도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의 '복음주의 운동'은 주로 교회가 복음을 전하여 숫자만 많아지고 또 교인들이 힘을 얻고 활발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면 그것이 진정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이라고 하는 주장이 대세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남녀를 뒤섞어 전도를 많이 하고 또 복을 받아 돈을 잘 벌게 하고 병든 몸이 나아서 세상사는 데 좋으면 되지 교회가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지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목회자들이 교단마다 아주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들이 즐겨 앞세우는 것이 '복음운동' '복음주의 운동'인데, 이것은 교회가 교회로서 절대 표기하거나 양보를 해서 안 되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붙들면서 생활속에 실행을 추가로 강조한 것은 좋은 복음주의 운동이고, 교회 성장만 이룰 수 있으면 수단과 방법은 상관없다는 교세주의는 나쁜 복음주의 운동입니다.

⑤ 성경 이외의 표현은, 큰 면으로 대충 파악하시는 것이 유익할 듯 합니다.

질문자께서 들으신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표현은 어느 계통에서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표현을 두고 이렇게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계시면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 상관없이 질문하신 분은 자기 입장에서 외부 표현을 파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설명 드린 것은 수박 겉핥기식입니다. 학자들이 읽으면 신학 강의시간에 졸면서 들었을 것이라고 탄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알아 두면 오늘 교회와 교회사에서 어떤 주장과 운동을 접해도 크게 신앙에 손해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이 단어 하나를 가지고 너무 세세하게 아시려고 연구해 들어가면 학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앙의 사람과는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신학과 관계된 모든 표현, 모든 학설, 모든 상식에도 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이번 질문은 그 답변할 내용보다 질문하신 분께 신학 자체를 대하는 시각과 자세를 두고 드릴 말씀이 있어 다음 '3번'에서 몇 말씀을 추가해서 올리겠습니다.

3. 신학에 관련된 이곳의 설명에 대하여는 항상 양해를 구합니다.

① 이곳은 성경은 최대치로 연구하고, 신학은 최소치만 기억 하려고 노력합니다.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하여는 가장 깊이 가장 확실하게 가장 명료하게 알고 싶은 것이 이곳의 노력입니다. 반대로 신학 상식이나 전문 지식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곳에서 신학에 대한 상식이나 전문 지식을 소개할 수 있는 범위는 일반 신학생들만큼도 되지 않습니다.

아마 이곳 외에 다른 신앙 싸이트에서는 신학을 힘이 닿는 대로 많이 알려고 노력하고 또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깊은 신학을 소개하는데 주력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깨닫는데 직접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일반 신학의 상식이나 전문 지식에 관한 것은 이곳에서 거의 배우거나 들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② 이곳에서 신학 상식이나 전문 지식을 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성경과 신학은 사실 분리할 필요가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성경을 바로 깨닫도록 안내하는 것이 신학이었고 신학은 비록 성경에 나오지 않는 단어나 표현을 사용한다 해도 그런 표현을 해야만 성경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용한 정도였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그러한 것이고 또 하나님의 속성도 그러한 정도로 사용된 표현들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성경에 직접 나오는 단어는 아니지만 성경을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 이해를 돕는 최소한의 안내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안내하기 위해 출발했던 '신학'이 세월 속에 어느덧 성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학을 세상 대학교의 여러 전공과목 중에 하나의 과목으로 발전시켜 하나의 세상 학문과 같은 엉뚱한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켜 놓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공부를 즐겨하고 잘하는 이들은 신학의 발전이라고 표현하고, 이곳처럼 공부보다 신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신학의 변질이고 탈선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현재 거의 모든 교계는 이곳과 입장을 정반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현대 신학은 이곳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곳과 반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주도하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신학체계에서는 성경 중심으로 성경을 안내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들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데까지는 밑도 끝도 없이 자꾸 말을 만들고 단어를 만들고 여러가지 주장을 내세워서, 이제는 신학이 성경을 중심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성경과 관련한 인간의 생각들과 추측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초기에는 성경을 깨닫는데 필요한 표현과 단어가 많았는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가히 상상을 못하도록 성경과 관련은 있어도 실은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표현과 생각과 주장을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현대 신학의 상식과 표현을 최소한이라도 알아들어려고 하면 신앙을 정화조에 담갔다가 내야 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③ 그래서 이곳은 성경을 살피는데 직접 필요한 최소한만 겨우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직접 살피면서 도저히 이 단어를 알지 못한다면 서로 의사소통 자체가 되기 어렵겠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은 이곳이 비록 시간이 없고 미련해도 기어코 파악하고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필수적으로 상관이 없는 단어는 듣지 않으려고 또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합리주의라, 또 복음주의라는 표현은 다행히 이곳에서 지나가면서 조금 들은 기억이 있어 답변을 드릴 수가 있지만, 사실 그런 단어들 자체도 신학서적을 들추어서 그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알려고 하면 끝이 없는 정도입니다. 그 단어 하나만을 바로 아는 데에도 사람마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범위가 다르고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정도입니다.

④ 간단하게 답변할 일을 가지고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곳은 신학 질문을 피한다는 변명입니다.

이곳 이름이 '문의답변방'이기 때문에 궁금한 분들은 쉽게 글을 올리게 되는데 이곳은 그런 답변은 하지 않는다고 글을 적게 되면 질문하신 분의 소중한 시간을 손해 보게 하여 죄송할 일입니다. 그렇다고 여기 저기 크다랗게 자꾸 안내문을 적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다른 분들이 신학에 관련된 질문이 있으면 그때 이번 변명을 인용할까 해서 이번 질문을 보면서 한꺼번에 여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번 질문하신 단어는 아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 단어들도 그 설명 자체가 복잡할 만큼 역사를 통해 여러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말을 자꾸 어렵게 만들고 새로 만들어 신앙세계를 어지럽히는 불손한 세력들을 신학계에서 제거했으면 좋겠는데, 이곳의 힘은 이곳이 필요한 성경을 살피는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뒤에 돌아앉아서 신학자들을 향해 실컷 욕을 해대고 있습니다.

⑤ 참고로, 신학에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듣기 어려운 표현이 있다면 속으로 무시를 했으면 합니다.

자꾸만 신종 단어를 만들고 또 기존 단어에 다른 해석을 붙여 자기 때문에 새로 사용된 단어가 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것이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의 못된 장난입니다. 자기들은 머리가 좋아 별별 소리를 다 내놓아도 명석하게 구별하고 사용하지만 우리처럼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옳은 것을 바로 잡지 못하게 만사를 흐려놓는 일이니 곧 우물에 구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와 같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누가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거든, 그에게 쉽게 말해서 무엇이냐? 그렇게 질문을 해서 가장 간단한 표현, 아무나 알 수 있는 표현으로 설명을 해 달라고 하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이왕이면 쉽게 이해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렇게 물어봤을 때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은 자기도 모르고 그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답변자 경험으로는 유명한 신학자들 또는 실력 있는 학박사들 중에서 자기가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자기도 모르면서 자꾸 사용하다 보니까 자기가 아는 줄 알고 사용하는 분들을 너무도 많이 만나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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