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주일학생의 공룡이나 외계인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61(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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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주일학생의 공룡이나 외계인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61(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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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문 : 주일학생의 공룡이나 외계인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61(쉬)

저도 어렸을 적에는 관심이 많았던 문제이고 가끔은 주일학생들의 화제가 되는 문제들입니다. 공룡은 노아의 홍수로 멸점L 되었는지(제 추측으로) 어떤 사람은 욥기에 나오는 악어에 대한 구절이 공룡을 일컫는다고도 합니다. 더불어 '창조과학회' 등에 대한 관점도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외계인에 대해서 지금은 화제가 안 되고 있는 듯한 데 주기적으로 외계의 생명도 있을 수 있다는 주장들과 사진들 경험담등을 접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 때는 에스겔 1장에 나오는 네 생물의 비행체 같은 표현이 UFO의 모양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고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변1 : 가장 확실한 것은 열매로 그 나무를 아는 방법입니다.

질문은 한 분이 하셨으나 생각해 보지 않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요약하겠습니다. (답변요약)에 결론을 간단하게 적었으며 (전체답변)은 관심 있는 분만 천천히 읽을 부분입니다.

(답변요약)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것은 너무도 쉽고 간단한 사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인간이 언젠가 발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공룡이라고 이름 붙인 거대한 생물체가 이 땅위에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면 하나님이 창조했던 만물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은 인간의 과학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큰 물체를 6천년이 지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니 무지하기 이를 데 없다고 알아야 정확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룡'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현재 과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있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하나의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는 수많은 번복 착오 착각이 있었던 것이 과학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사실로 확인이 확실하게 된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아주 최근에는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정도로 발견을 하고 있습니다. 발견되었다면 하나님이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룡이라는 존재가 없었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수많은 깨달음 중에서 자연이치에 한 가지를 잘못 알았을 것입니다. 그 한 가지를 잘못 안 것이 큰 흠이나 되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몸 안에 있는 것도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를 알고 나면 새로 알게 된 것은 몰랐다가 알게 되었으니 아는 지식이 하나 추가가 되었는데 그 새로 알게 된 하나 때문에 모르는 줄도 몰랐던 수많은 모르던 사실들을 새로 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쨌던 사람의 호기심이란 앞으로 어떤 것을 발견하고 어떤 세상이 되겠는가 하는 면으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면에 대해서는 젖 먹는 어린 아이가 글공부를 하는데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젖 먹는 일에만 충실한 것이 그 시절 그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비유하겠습니다. 젖 먹는 아이가 이사 갈 걱정까지 한다면, 천재라고 해야 할까요 기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현재로서도 알아야 하는 가까운 미래사가 있습니다. 현재와 직결되는 미래는 현재에 포함시켜 알기를 힘써야 하지만 오늘 현재로서는 도저히 상관없는 미래사를 지나치게 생각한다면 그 집중만큼 현재 할 일은 반드시 소홀해지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각자에게 주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현실에 관련된 것까지만 알았으면 합니다. 이 범위를 넘어서서 인간의 생각이 갈 수 있는 데까지를 다 가보려고 하는 것은 젖 먹는 아이가 부모 장례까지 걱정한다고 비유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질문하신 분과 같이, 요즘 다른 사람들이 너무 궁금해 하는 것이 많다면 잠깐 지나가는 정도로 한번 쳐다보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외계인의 존재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인간에게 주지 않은 범위를 넘어서서 소동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계인이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접근시키신다면 그때는 우리 현실로 상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 짐작을 하는 것은, 신령하게 살다간 분들이 외계인의 존재에 대하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고 깨닫기 때문에 없다고 단정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백목사님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이 가진 성경 전체의 깨달음과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어디까지인지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너무 광대하여 인간이 다 알 수 없다는 깨달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접촉시킨 면을 보아 없는 존재로 상대하는 것이 옳다는 신앙관입니다. 우리가 알 필요 없는 범위라고 이해한다면 정확한 해석입니다.


(전체답변)

1. 우주계도 무한하다 할 만합니다.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창조라고 단정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못 본 것을 섣불리 있다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은 확신과 확정이 아니면 떠도는 이야기와 허공을 맴도는 허상에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는 천국 길에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만을 자기들의 분깃으로 받아 사는 사람들이 천국 준비는 모르고 세상 것만 전부로 알고 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세상에 있는 존재 중에 몰랐던 것을 새로 발견하는 일에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고 무식하면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삽니다만 배부르고 머리가 좋으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 결과가 예술, 공상과학 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 나선 미지의 것은 역사에 일만개가 된다면, 그들이 결국 찾아낸 것은 몇 개 정도입니다. 못 찾은 대부분은 신화와 전설 수준에서 연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치 않는 것이며 그 중에 찾은 것은 '과학의 쾌거' '인류역사의 획을 긋는 대 발견'이라며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됩니다. 자연, 오늘 우리 머리 속에는 인간의 미지세계에 대한 탐구는 거의 다 이루어져 온 것으로 착각을 하지만 그 비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합니다. 어쨌던 몇 만 분의 일이든 상관없이 찾은 것은 찾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마지막 결과를 보면서 '아,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데 이렇게 6천년을 모르고 살았었구나, 참 인생은 둔하기 이를 데 없구나, 아, 이런 것도 하나님께서 6천년 전에 만드셨구나'라고 중얼거리면 됩니다. 그리고 그 나타난 것을 우리 구원 위해 잘 사용하면 백점입니다.

2. 불신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많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머리 속에 오가다가 떠오른 생각은 전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발견과 발명을 위해 평생과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은 예를 들면 몇 만분의 일이며, 그 사실이 발견되어진다 해도 더 좋아할 것도 없는데, 결국 발견할 때는 굉장한 것을 손에 넣은 듯 뛸 듯이 좋아하나 조금 지나면 역시 해 아래 새 것은 없다는 성경 말씀 하나를 기억하고 끝나는 것인데. 철이 없으니 그것이 영생의 구원보다 더 기쁘게 더 감격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며 이런 쾌감과 성취감을 또 느껴 보려고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취미생활에 다 허송하고 있는 것이 과학자들이며 세상 사람들 입니다. 이 땅 위에 사는 순간은 한 순간도 천국준비 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시간이 없는데. 다행히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그 순간 그 현재까지 확정적으로 나타난 것은 자기의 현실인 줄 알고 현실로 이용하면 됩니다. 그렇게 확정적인 것으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불신자들은 몇 만분의 일의 몰랐던 것을 발견하려고 뜻 없이 그냥 노력만하고 인생 전부를 투자하는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 위해 기막히게 불쌍하게 또 감사하게 이용되는 그들은 바로 우리의 이용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한 수고의 끝에 몇 만분의 일의 확률로 발견 발명된 것을 두고 확실한 것으로 나타난 것만을 가지고 우리 구원에 필요한 현실로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대신 그들이 그렇게 의미 없게 세상 것에 총력을 기울일 때 우리는 이미 현실로 주신 확실한 것만을 가지고 그 현실에서 이룰 말씀대로만 사는 생만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3. 공룡의 존재가 최근에는 아주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십 m에 이르는 뼈가 발견되었답니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존재했던 때가 있었던 생물입니다. 그리고 그 갯수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은 그 하나의 발견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신기루를 보았고 또 때로는 추측을 사실인 것처럼 발견한 경우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과학자의 발견은 성경처럼 그렇게 절대로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알고 싶은 도리가 너무 많아 모르는 것은 성경에 모르는 것을 연구하고 싶지 하필이면 세상에 몇 가지의 존재가 존재 했더냐는 그 종류를 다 헤아려보는 그 일에 평생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산 속에서 뀡꼬리 털 하나를 주워 온 동네 사람들이 독수리 털이냐 어느 새의 털이냐를 놓고 논쟁한 일이 있으며 남대문 문턱이 박달나무냐 대추나무냐는 문제를 두고도 인간들은 수천년 과학의 이름으로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일에는 그들이 전과자이기 때문에 오늘도 어떤 과학의 발견 보고가 있어도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에 확정하지 섣불리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철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공룡이라고 오늘 시대가 이름을 붙인 거대한 동물들이 있었다면 노아 때 전멸했을 것이라는 것은 성경을 보고 우리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는, 공룡의 존재도 섣불리 앞서갈 필요가 없고 또 그 존재가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 전멸의 시점을 노아 때로 섣불리 앞서 단정하고 나갈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중심으로 적어주신 진리이지 공룡과 여러 과학적 신비를 푸는 과학서를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상으로 생각했던 공룡이 사실로 들어났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지극히 큼을 축소한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면 될 것이고, 공룡이 사실로 증명되었다면 하나님의 창조했던 종류 중에 빠졌던 목록에서 추가하면 될 일입니다.

물론 성경으로 상고한다면, 노아 때까지는 우리 인류가 900여년을 살았습니다. 인류가 900여년을 살았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고래와 같은 정도로 큰 육지 동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허황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룡으로 이름붙인 생물들이 초기에 있었다고 한다면 당시 지구환경은 오늘과는 너무나도 달랐을 것인데 벌써 오늘 우리가 상상 못 할 지구환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인류가 900여년의 수명을 가졌다는 것에서 가능했으며 공룡과 같은 발견에 앞서 신앙의 사람들은 여러 면을 미리 보고 있었습니다. 노아때에야 육식을 허락했으며, 아담은 뱀이 배로 기어 다니지 않던 모습을 보았던 사람으로 그 후 약 900여년을 이 땅에 살면서 초기 고대인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것 아닙니까? 이런 성구를 가지고 연구를 한다면 현대과학이 상상도 못할 발견을 수없이 해 낼 수 있지만 우리는 과학전문가가 아니라 신앙전문가이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을 들을 때마다 그냥 그렇게 듣고 넘기는 정도입니다.


답변2 : 공룡과 외계인 등에 대하여 이렇게 추가하겠습니다.

1. 공룡의 존재가 최근에는 아주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십 m에 이르는 뼈가 발견되었답니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존재했던 때가 있었던 생물입니다. 그리고 그 갯수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은 그 하나의 발견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신기루를 보았고 또 때로는 추측을 사실인 것처럼 발견한 경우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과학자의 발견은 성경처럼 그렇게 절대로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알고 싶은 도리가 너무 많아 모르는 것은 성경에 모르는 것을 연구하고 싶지 하필이면 세상에 몇가지의 존재가 존재 했더냐는 그 종류를 다 헤아려보는 그 일에 평생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산 속에서 뀡꼬리 털 하나를 주워 온 동네 사람들이 독수리 털이냐 어느 새의 털이냐를 놓고 논쟁한 일이 있으며 남대문 문턱이 박달나무냐 대추나무냐는 문제를 두고도 인간들은 수천년 과학의 이름으로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일에는 그들이 전과자이기 때문에 오늘도 어떤 과학의 발견 보고가 있어도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에 확정하지 섣불리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철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공룡이라고 오늘 시대가 이름을 붙인 거대한 동물들이 있었다면 노아 때 전멸했을 것이라는 것은 성경을 보고 우리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는, 공룡의 존재도 섣불리 앞서갈 필요가 없고 또 그 존재가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 전멸의 시점을 노아 때로 섣불리 앞서 단정하고 나갈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중심으로 적어주신 진리이지 공룡과 여러 과학적 신비를 푸는 과학서를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상으로 생각했던 공룡이 사실로 들어났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지극히 큼을 축소한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면 될 것이고, 공룡이 사실로 증명되었다면 하나님의 창조했던 종류 중에 빠졌던 목록에서 추가하면 될 일입니다.

물론 성경으로 상고한다면, 노아 때까지는 우리 인류가 900여년을 살았습니다. 인류가 900여년을 살았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고래와 같은 정도로 큰 육지 동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허황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룡으로 이름붙인 생물들이 초기에 있었다고 한다면 당시 지구환경은 오늘과는 너무나도 달랐을 것인데 벌써 오늘 우리가 상상 못할 지구환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인류가 900여년의 수명을 가졌다는 것에서 가능했으며 공룡과 같은 발견에 앞서 신앙의 사람들은 여러 면을 미리 보고 있었습니다. 노아때에야 육식을 허락했으며, 아담은 뱀이 배로 기어다니지 않던 모습을 보았던 사람으로 그 후 약 900여년을 이 땅에 살면서 초기 고대인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것 아닙니까? 이런 성구를 가지고 연구를 한다면 현대과학이 상상도 못할 발견을 수없이 해 낼 수 있지만 우리는 과학전문가가 아니라 신앙전문가이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을 들을 때마다 그냥 그렇게 듣고 넘기는 정도입니다.

2. 외계인 문제로 이어지는 UFO와 같은 현상도 우리에게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공룡의 문제는 전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로 말할 때는 우리가 그리 귀담아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수십 m가 되는 뼈를 발견했다고 하니까 한번 쳐다보게 되는 정도입니다. 이와 같이 외계인 문제도 현재로서는 우리가 죽도록 힘쓸 우리 신앙 현실에서는 전혀 생각도 할 필요 없는 공상이거나 아니면 미래사입니다. 초등학생이 학교를 빼먹고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으면서 서울대학교 앞에 하숙비 걱정을 한다는 말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피조물이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만 만들어 놓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직접 접촉될 필요가 없는 범위에 있을 존재라면 오늘 우리로서는 '외계인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당장에라도 눈앞에 보이게 되면 하나님께 여쭤보면 될 일입니다. '왜 저것이 보입니까?' '이것을 왜 이제 이 눈에 보이게 하십니까?'

현재로서는 가능성도 또한 필요성도 또한 현실성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그 확인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되묻겠습니다. 꼬리가 셋 달린 토인이 있을까? 라는 어느 아이의 잠꼬대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 밀림을 몽땅 뒤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들이 다행히 불신 세계에는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평생을 수고하고 대대로 수고하여 수 만가지 가설 중에 하나를 찾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내는데 수고했던 이들은 지옥에서 인생을 돌아보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이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성경을 그때서야 되새길 것이고 이 성구를 오늘 이 땅 위에서 미리 알고 있는 우리는 많은 수고로 모든 가설을 찾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찾아낸 것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나에게 보여 주시네, 하고 현실 속에 한 요소로 상대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3. 헛된 것을 찾아다니는 인간의 본능에는 영원무궁한 하나님을 향한 영의 활동이 중지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만은 이 땅 위에 어떤 것으로 가득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마음속에 큰 구멍이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하나님의 충만을 채워 놓을 자리였고 이 자리를 책임진 존재가 바로 우리 속에 우리 영이었습니다. 이 영이 죽어있는 불신자, 이 영이 살았다 하더라도 그 활동이 중단되어 있는 잠자는 성도들에게는 자기들의 외부 환경은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무언가 마음속에 무한 한 것으로 채울 부분이 비어있어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허무함과 공복감을 채우려는 본능이 무엇인가 미지를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미개하던 때는 신화와 전설을 현대과학시대에서는 공상 과학적 추구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실존을 찾는 수도 있지만 이것은 확률적으로 본다면 소 뒷다리 개구리 차기입니다.

질문하신 내용들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할 수 있는 것이 백영희목회연구회의 성경해석력이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에 대하여 동시에 답변 드리고 싶은 것은 근본적인 문제, 즉 신앙이란 현실에 죽도록 충성이며 그리 될 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만 접촉하게 되고 그런 접촉 가운데에는 곧 닥칠 미래도 포함되는 것이니 이것을 소망으로 가지는 것이 신앙인의 정자세라는 점도 함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공상적 과학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확인하다 보면 결국 가장 소중한 한번 밖에 없는 현실의 시간과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도 이해하시라는 것이며 굳이 확인이 필요한 사실들, 예를 들면 공룡과 같이 현실의 문제가 되어 있고 또 맡고 있는 주일학생들의 질문과 중고등학생들의 생각 속에서 신앙의 의구심으로까지 진행될 수 있는 사안들은 함께 연구해서 정리했으면 하는 뜻으로 답변을 요약합니다.

(*이 답변은 백영희목회연구회를 찾는 일반 모든 분들을 고려한 답변이어서 질문자와 다른 입장을 가진 분들을 가정하고 답변할 때도 있음을 이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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