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성경은 인간복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1258

주제별 정리      

                                   14. 성경은 인간복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1258

서기 0 28

14. 질문 : 성경은 인간복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1258

요즘 화제 거리가 되는 단어인 인간복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일반 역사로 돌아본 다음, 삼분론과 주권예정교리로 보겠습니다.

1. 일반 교회의 잘못된 교리 때문에 발생하는 혼동을 먼저 지적합니다.

①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기독교의 위치

현재 복제 인간 문제를 두고 과학자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개발을 서두르는 입장이고 종교계는 인간의 근본 가치가 흔들린다며 이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종교계 중에서는 기독교계가 발언권도 강하고 또한 창조에 대한 특별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입장의 대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발언권이 강한 이유는 거의 모든 선진 문화국들이 공통적으로 기독교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초강대국들이 대개 기독교 국가들이며 그 나라를 움직이는 정부 입법 사법부 요직에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으며 또한 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도 그 주도 주력층이 대부분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인간복제를 추진하려는 과학계 내에도 적지 않은 신앙의 사람들이 있어 과학계 내부 상황이 외부에 공개되고 통제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타 종교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선진 문화적 힘을 가진 교회가 특히 인간복제에 대하여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종교 중에서도 '창조'교리를 근본 신앙으로 확고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종교를 본질적으로 분석한다면 불교는 성공한 미신이고, 유교는 종교색으로 덧칠한 도덕이고, 이슬람교는 성경을 표절한 광신집단입니다. 비록 타락을 했다고 하지만 기독교만이 종교요 그 출발 교리가 하나님의 창조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외부 간판을 완전히 내리기 전까지는 인간복제를 두고 끊임없이 사력을 다해 저항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② 기독교 입장을 보는 과학계 핵심세력은, 이미 대세가 판명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학제일주의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기독교가 인간복제를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두고 철없는 아이들의 철부지 앙탈 정도로 여기는 정도입니다. 우선 시끄럽게 우니까 달래기 위해서 지는 척도 하고 밀리는 시늉도 하며 때로는 종교인을 인류 사회의 최종 양심으로 인정한다는 발표를 통해 종교계를 달래고 있으나 속으로는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비록 발달된 고등종교라고 분류는 하지만 그 본질은 역시 불교 같은 미신과 유교 같은 윤리 집단이라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과학자들로서 역사적으로 너무 명백하게 밝혀진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이 기독교를 미신 종교로 단정한 첫번째 사건은, 지구를 발판으로 삼고 하늘이 돌아간다고 했던 천주교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인공위성을 타고 지구 위를 뱅뱅 돌아다니며 우주 공간 속에 떠다니는 지구의 모습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번째 사건은 진화설입니다. 물론 교회는 아직도 과학적으로 찬반론이 오고가는 중이라고 하지만 과학자들은 생물들의 진화 과정에 몇몇 숙제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할 뿐이고 진화설 자체를 두고는 지동설과 같은 차원에서 절대적 진리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회가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며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으나 그 신앙의 충정은 인정할 수 있고 또 이들로 인하여 한번씩 과학을 비웃을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신앙을 과학으로 증명하고 나서려는 것은 진화론과 거의 같은 수준에서 신앙을 허물고 있는 행위입니다. 진화설은 교회 밖에서 교회를 해체하려고 노력하고 이에 맞선 창조과학회는 교회 내부에서 교회를 허물고 있다고 이곳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 진화설 주장자들은 이미 생물의 진화 과정에 대하여는 중요한 것이 다 밝혀졌다고 단정하고 있으며 이제 더 나아가 생물이 출현하기 이전 단계인 우주의 생성 초기를 과학적으로 밝히는데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하늘'이라는 단어 하나 속에 묻혀 있던 우주를 이제는 인체 내부 이상으로 읽어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기독교 보수교계의 일부 창조과학회의 활동은 뻔한 것을 가지고 괜히 트집 잡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과학계에서 별 볼일 없는 2류 3류 학자들이 교인을 상대로 자기들의 과학지식을 자랑하여 자기들의 활동 공간을 마련해 보려고 추론과 추측으로 사기극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습니다.

지동설이나 진화설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세계 참피언이었습니다. 교회를 꺽고 교회와 맞설 상대는 없다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것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주먹을 배운 과학이라는 무명의 도전자가 날린 지동설이라는 펀치에 한방 먹은 교회는 수천년 쌓은 명성과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혔으며 이어 나온 진화설이라는 주먹에 교회는 다시 일어서서 싸울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탈취한 과학은 19세기를 통해 곳곳에 남아서 활동하고 저항하는 신앙 요소를 거의 진압하게 되고 20세기를 통해서는 완전 섬멸을 했다고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교회의 처지는 과학의 세력이 확장일로를 달리는 것과 반비례하여 비참하기 그지없는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생각 깊은 지식인들에게 신앙이라는 것은 미신과 윤리가 되었습니다. 불교와 같고 유교와 같은 정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과거 토벌대를 보내어 반대측을 섬멸하던 교회는 이제 과학이 무슨 소리를 해도 겁을 먹은 토끼가 사자 앞에서 생존을 위해 숨을 곳을 찾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③ 인간복제는, 20세기 과학이 걸어간 과정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이 인간복제입니다. 이 인간복제 문제는 과학이 교회를 마음껏 유린하고 짓밟아 왔던 수많은 과거에서 연결되어 나온 또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특히 20세기는 생물학과 의학의 발전이 대단히 광범위하였고 인간 인체에 대하여 끝없는 연구가 계속되었습니다. 단순한 치료를 넘어서 원인 규명이 있었고 인체의 종합적 자료가 축척되자 장기 이식이 이루어졌고 곧 이어 장기 일부를 대신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물 조작을 통해 동물을 조작하고 마침내 인간복제를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학 발달 과정에 대하여 교회가 나타낸 반응은 너무도 한결 같았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과학자가 발표하면 기독교계는 불가능하다고 했고 현실적으로 결과가 나타나면 기독교계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기 이식 때도, 시험관 아기 출산 때도, 동물 복제 때도, 이제 인간 복제가 우리에게 현실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인간 복제는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인간이 하면 안 된다는 면에만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입장 번복은 정치가나 사업가들의 말 바꾸기와 꼭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가나 사업가들은 짧은 시간 안에 얻어야 할 것이 있고 피해야 할 책임이 있어 그 말 바꾸는 주기가 하루 또는 며칠 내에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들이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입장 표명은 오랜 세월을 통해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묘하게 발언을 바꾸기 때문에 무식한 대중들로서는 감지되는 것이 어렵지만, 약간의 기억력과 평균 이상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교회가 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철회하고 번복한 것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④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면, 사실 성경을 믿을 수 없고 또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와 과학이 대치를 하며 그때마다 과학이 결과적으로 옳았다는 것이 매번 밝혀졌던 역사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교회는 이미 과학에 의하여 무참히 해체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고 또 앞뒤를 살펴보는 신중한 사람들은 교회가 그동안 스스로 발표하고 보여온 태도를 봐서라도 교회 교리는 전혀 믿을 바가 못 된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선진 문화국의 수준 높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도록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 가풍, 사회 분위기 때문에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을 정확무오한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절 부활절과 같은 명절, 개인이나 국가적 재앙을 만났을 때 마음의 위안을 찾기 위해 교회를 나갈 정도이거나 아니면 회원으로서 성실한 의무감 때문에 활동하는 정도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서구교회 교인들의 절대 다수가 가지고 있는 내면입니다.

아직도 알라 신을 위해 순교한다고 폭발물을 몸에 걸치고 자살하는 중동사람들처럼, 그 민족이 미개하고 배운 것이 적고 사고력이 뒤떨어지는 사회에 위치한 교회에는 아직도 성경이 절대 진리인 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수준의 교인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 제일, 성경 유일주의라는 표현은 그 교회의 수준이 중동사람들처럼 미개하든지 아니면 그렇게 말함으로 직업이 유지되는 성직자들일 것입니다.

⑤ 일반 교계가 가진 이분설 교리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것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철저하게 믿는다는 교회가 칼빈주의입니다. 세계 교회로 말하면 이미 극소수가 되었으나 다행히 한국교회로 말하면 아직도 칼빈주의는 공식적으로는 주도권을 잡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 칼빈주의에서 인간복제 문제를 두고 교리적으로 발표를 한다면 혹 건전한 발표를 기대할 수 있으나 그 외의 다른 신앙노선에서는 기대할 토양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산 꼭대기에서 고래를 잡으려는 기대와 같을 것입니다.

이제 앞에서 일반 교계의 입장에서 과학을 상대해 온 지난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일반 교계가 현재까지 가지고 있는 교리와 신앙노선은 여지없이 과학에게 점령당했고 현재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암흑 토굴 속으로 전전하고 있다는 정도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칼빈의 이분설에 기대어 5백년을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빈의 예정과 주권 그리고 이분설과 구원론은 필연적으로 더 밝혀져야 했고 그리 했더라면 인간복제는 커녕 20세기 이전 과학에게 그렇게 교회가 일방적으로 파괴되는 일부터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처럼, 칼빈의 교리를 배워 그 기초를 익히되 그 교리가 정상적으로 발전했다면 어떤 부분이 더 밝혀져야 하고 어떤 부분이 세분화되어져야 하는가를 수백년 전에 이미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타락과 발전이 교회를 위협할 때마다 이미 교회는 한 차원 더 높이 깨달아 그 수준이 올라가 있어 세상이 교회를 삼키는 데에는 늘 역부족이라야 정상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일반 교리체계 전반은 오늘 과학에게 삼키워질 일을 자진해서 했다고 가차 없이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칼빈이 오늘 교회 앞에 주권과 예정이라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주 도로를 지도에 그려 주었으니 후세 교회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가서 이미 밝혀진 주 도로를 따라 그 도로에 연결되고 퍼져있는 미세한 골목길과 도시의 배치상황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백영희신앙노선을 집중으로 참고하는 이유는 이 신앙노선에서는 절대 주권과 예정의 섭리 성취를 밝히되 칼빈이 열어놓은 대략의 지도를 가지고 그 나머지 미세한 부분들을 전부 분석하고 체계화했다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몸과 마음으로만 되어 있고 구원은 기본구원으로만 되어 있다는 칼빈의 교리는 그 후배들이 한번만 더 읽어보았더라면 천주교로부터 교회를 살려내는 일에 주 임무를 맡은 칼빈시대에 주력할 교리체계였음을 그냥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주교와는 전혀 상관없이 교회는 교회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그 후시대에서는 이분설이 더 나아가지 못했던 영을 마음으로부터 분리하여 찾아내고 또한 구원도 천주교가 혼동시킨 기본구원 위에 건설구원으로 나갈 바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5백여년이 지나는 시점 백영희에 의하여 비로소 밝혀지게 된 것은 아쉬운 바가 적지 않습니다.

2. 인간복제에 대하여 가장 대표적인 교회 입장 하나를 우선 소개합니다.

국내 최대 교단이며 동시에 칼빈주의 신앙노선에 입각한 보수 신앙을 대변한다는 곳이 '총신대학교'가 소속하고 있는 합동측입니다. 2002.11.20.자로 총회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하고 발표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총회는 이를 위해 소속 교수들을 중심으로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하게 하였고 해외 여러 보수 신학계의 입장을 참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인간복제에 대한 총회의 입장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서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최첨단 과학기술 가운데 하나인 유전공학기술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유전공학기술은 인간의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으나 인간의 생명의 출생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근간으로터 교란시키며, 조작과정에서 인간의 생명을 살해하는 심각한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죄악을 범하고 있다. 이와같은 죄악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할 국가는 부처간의 주도권 다툼과 국가 경쟁력의 제고라는 명분 하에 아무런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이와 같은 사태를 중시하고 전국교회와 사회를 향하여 경각심을 일깨우며 바른 지침을 제시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고 총회 신학부에 위임하여 1년간 연구하게 하였다.

이에 87회 총회는 이 연구보고를 그대로 받고 전국교회와 사회를 향하여 총회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밝히게 하였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간복제를 반대한다.

① 인간 복제기술은 하나님의 고유한 창조질서를 인간이 파괴하는 행위다.
②인간을 상품화하고 있는 유전공학 연구와 관련 산업의 시도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범죄행위다.
③인간의 생과 사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임으로 인간이 자의적으로 생명을 조작해서는 안 된다.
④유전공학 연구는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감독과 통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⑤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주권을 침범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⑥배아 복제는 치료목적이라 할지라도 전면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배아는 독립된 인격적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므로 배아를 분할하거나 실험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제6계명을 범하는 행위이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

3. 이제, 백영희신앙노선에서 '인간복제'문제와 관련해서 가지는 시각을 소개합니다.

① 일단, 인간복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문제인가? 이분설과 삼분설의 입장이 다릅니다.

이분설은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만 되어 있다고 보며 그 마음이란 천사와 같은 영물이라고 합니다. 삼분설은 몸과 마음이 동물의 몸과 마음과 같은 물질로 된 것이고 마음 안에 있는 영이 천사와 같은 영물입니다. 현재까지 이렇게 삼분설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분류하고 있는 것은 백영희신앙노선 뿐입니다.

따라서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그 영에게 피동이 될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지만, 그 영을 떼어놓고 불신자처럼 몸과 마음으로만 사는 경우와 또 현재 질문처럼 의학적으로 인간을 상대하는 경우 몸과 마음까지만 상대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인간이란 동물과 꼭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으로 또 자연으로 또 모든 관찰로도 옳은데 그동안 이 교리는 주로 구원론과 관련되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밝히는 데 주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영희목사님의 설교자료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면, 인간의 구성이 심신으로된 물질과 영물로 된 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심신에 대하여는 과학이 물질의 이치를 가지고 별별 일을 다 벌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수십 년 전부터 미리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20세기를 끝내고 21세기로 들어선 오늘에 다시 이 교리를 살펴본다면 예견이 아니고 바로 예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과학은 이분설로 된 교회의 교리 체계를 완전히 파헤쳐 도살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분설을 가진 교회가 그런 사실을 부인한다면 상관이 없으나 위에 소개 드린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 복제를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분설에 의하면 복제된 인간이 인체만 가진 존재라고 한다면, 영물인 마음은 그 속에 없기 때문에 이분설이 맞다고 할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제된 인간이 만일 생각을 하고 두뇌를 회전시켜 인간의 마음 작용을 가지고 있다고 증명을 하게 된다면, 과학자들은 인체를 복사한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분설에 의하면 과학자들이 물질의 이치인 물리로 '영물'을 만드는 것이니 이는 천국 내에서 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인간 복제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런 결론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앙이라는 것은 과학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천국도 과학의 설계와 기획에 의하여 변경이 될 것이며 결국 예수 믿음으로 영이 중생되어 구원을 얻는 교회의 구원교리는 과학에 의하여 영이 조절되고 변형되며 영이 속한 영계에 이르는 운송 수단이 개척되는 논리로 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이분설 밖에 모르던 신학으로서는 자신들이 연구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신학교 교과서에서 따라 적고 외우든 이분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간복제란 기독교의 근본을 다 해체시킬 사안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런 교리체계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인간복제라는 것은 그 가능성부터를 그렇게 부인했던 것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삼분론 중에서 백목사님과 같이 심신을 이미 물질로 분류하고 마음속에 영만을 영물로 깨닫고 있는 신앙노선은 오늘 과학의 인간복제를 두고도 아무 혼동될 것이 없고 오히려 인간이 물질 이치로 가능한 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그 물질 이치가 점L 되어 따라야 할 신앙 이치를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꾸중을 참으로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② 이분설은 인체에 대한 이해도 본질적으로 실패했지만, 인체를 너무 추상화시켰던 점도 있습니다.

교회는 과학이 기술을 발달시킬 때마다 일관되게 그 기술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성급하게 부인하고 나선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생물과 의학에 관련된 중요한 기술은 그 기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너무 많이 제기했기 때문에 예를 일일이 들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교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능하다고 증명해왔습니다. 인간복제도 동물복제도 또 그 이전 여러 인체 관련 기술들을 불가능하다고 했다가 후에는 전부 번복하게 되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발표문도 그 내용을 뒤집어 읽어보면 '인간복제는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가 양심집단이라야 한다면 이 발표에 앞서 과거 이런 과학적 결과를 불가능한 것으로 부인했던 바를 잘못 깨달아 그러했다고 인정하는 회개가 먼저 있어야 순서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무엇을 오해하고 어느 면에서 시각을 잘못 잡았는지를 한번 살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교리체계가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만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을 보는 기본 시각이 너무 높게 잡혀져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인간의 몸을 인체로 분류하게 되는데, 그 인체 속에 있는 마음을 영 또는 영혼이라고 하여 영물로 분류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영물인 마음과 물체인 몸이 합하여 인간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일반 모든 만물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존재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영물인 마음에 의하여 불가분 관계로 하나 되어 움직이는 사람의 인체에 대하여도 성경이 말하는 이상의 신령한 존재로 상대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 자체는 동물의 몸과 다를 바가 없고, 그 몸속에 있는 마음 역시 그 마음 자체만으로 말한다면 동물의 마음과 같은 것인데, 인간의 마음은 영물이라고 보고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 영과 하나 되어 움직이는 인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일반 물체와는 존재형식과 해당되는 이치가 다르다고 보게 됩니다.

물론 인간의 중요성을 낮추어 봐야 한다거나 만물 중에 인간만이 특수한 존재라는 것을 몰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과 영이 있고 마음 안에 있는 영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물이고 몸과 마음은 일반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물체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교리를 일찍 깨달을 수 있었고 그리 했더라면 영이 죽고 몸과 마음으로만 사는 불신자의 존재 가치에 대하여 시민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광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③ 인간복제를 두고는 불신자의 심신 상태로 투시하면 전혀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만 된 존재로 보는 것이 일반 교계의 교리체계인데 이 교리는 마음을 영물로 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을 물론하고 인간은 누구든지 인체와 영혼이 결합된 특수한 존재로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불신자는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물질로만 된 심신이 존재일 뿐이고 믿는 우리는 영으로부터 뻗쳐지는 활동이 우리 심신을 통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신자와 불신자는 다른 존재형식을 가졌고 그 구성과 활동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복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믿는 우리와 바로 비교를 하는 것보다, 동물처럼 물질로 된 몸과 마음만으로 전부가 되어 살고 있는 불신자로 이해를 하는 편이 빠릅니다. 근본적으로 불신자와 동물은 그 존재 형식과 적용 이치가 같기 때문입니다. 동물 복제가 가능했다면 동물의 몸과 동물의 마음이 인간 과학 기술에 의하여 생겨졌다는 말이 됩니다. 성경은 영계와 우주의 창조로 그 세계를 양분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와 그 안의 만물은 물질로 되었고 영계와 그 안의 것은 영물로 되어졌습니다. 우주와 그 안의 만물은 물질에 해당되는 물리 이치가 적용됩니다. 딱 하나 예외가 있으니 인간의 영만은 심신이라는 물질 속에 있지만 물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물질 이치만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과학이니 과학이 갈 수 있고 과학이 가능하며 과학이 손을 댈 수 있는 범위는 인간의 영을 제외한 물질계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그 속에는 인간의 심신까지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는 통째로 과학 이치만이 적용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없는 인간이 짐승과 같은 신세가 되었고 사실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 바로 그대로인 것입니다.

영계의 이치인 신앙이치가 해당되는 것은, 영이 중생되어 있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안 믿는 사람에게는 아예 해당도 되지 않습니다. 즉 성경은 믿는 우리에게만 주신 구원도리일 뿐 안 믿는 사람은 봐도 모르고 그대로 살아도 그 말씀에 해당이 없습니다.

④ 따라서 애당초, 영과 물질인 심신을 구별했다면, 과학의 범위를 쉽게 한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심신도 물질이라는 것을 먼저 단정할 수 있었다면 백영희신앙노선처럼 애당초 인간복제든 어떤 과학의 발견이든 그것이 신앙에 문제가 되는 것으로 부각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보며 배우고 느낄 것이 있고 그것을 통해서 더 유익볼 신앙의 전진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게는 세상 이치인 물리를 주셨습니다. 심지어 믿는 우리에게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떡도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심신이라는 물질은 물질의 이치에 맞추어야 배가 부르고 존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심신으로 전부가 아니라 마음 속에 영이 있고 이 영은 물질 이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늘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고 움직여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여기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비단 음식을 먹어야 유지가 된다는 좁은 의미뿐만이 아닙니다. 물질계에 살며 물질로 된 존재는 물질이치로 주신 자연계시의 자연이치를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폭넓은 의미입니다. 이번 질문과 관련짓는다면 물질계 안의 물질들은 물리의 법칙이 있고 그 법칙으로 적용하면 물리가 가능한 것까지는 다 해당이 된다는 말입니다.

쇠덩이가 물에 뜨지 않았다면 물에 뜨지 않게 되는 물질의 이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쇠덩이를 물에 띄워 10만톤 짜리 배를 만들었다면 그 10만톤 쇠덩어리가 물에 뜨는 이치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이치를 발견하고 그 이치에 따라 그 이치를 맞추었다는 말이 됩니다. 달과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도, 식물과 식물을 교차 교배시켜 색깔과 모양을 달리 내는 것도, 철을 바꾸어 꽃을 피우게 하는 것도, 말과 나귀를 교배시켜 노쇠를 만들어내는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침범했다고 펄펄 뛰는 신학자가 있다면, 그 우국충정은 이해하겠고 그 열정은 칭찬하겠지만 그 신앙의 수준은 너무 유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⑤ 오늘 과학의 이치로 끝없이 나가는 세상을 보며 빛의 아들들이 생각할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 때는 영계와 함께 우주를 물질계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질계는 물질로 된 존재들이 존재하고 움직이는 물질의 이치도 함께 다 넣어두었습니다. 만유인력이 뉴튼에 의하여 이제 발견이 되었지만 그 물리는 창세로부터 이 물질계 내에 늘 존재했고 자기 역할을 다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총알보다 빠른 지구 위에서도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지 않고 붙어살았던 것입니다. 이 만유인력이라는 물리가 창세로부터 존재했으나 그것을 모르고 살던 때와 그것을 알고 살게 되는 때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알고 난 뒤에는 만유인력의 이치를 더 세밀하게 계산하고 그 계산에 의하여 우주선을 띄운다든지 하는 기술이 나타나게 되고 인류 사회의 모습을 오늘처럼 별별 종류로 편리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물질로 된 심신으로만 살면서 그래도 자기들에게 해당되는 물질 이치라도 철저하게 연구하고 끝까지 밝혀내어 저희들 원하는 별별 모습의 생활을 다 누리고 있는데, 물질의 이치보다 무한히 차원 높고 영원한 이 신앙이치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우리들은 오늘도 세상에 잠들고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빛의 아들들이 밝혀내고 준비해야 하는 천국건설은 팽개치고 있습니다.

죄인들은 자신들의 세계인 오늘 땅위에서라도 별별 짓을 다 하고 있는데, 빛의 아들들이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한없이 멍청하게 살고 있습니다. 인간복제로까지 나타나는 물리의 이치를 보면서 우리가 가질 자세 중에 하나는, 저 죄인들이 물리를 가지고 저렇게까지 재주를 부리는데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를 가진 우리는 칼빈의 교리 하나로 5백년 잠만 자고 있다가 인간복제라는 뉴스에 놀라서 펄쩍 뛰어 일어나며 첫마디 뱉는 것이 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느냐는 소리입니다. 사실 잠꼬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못할 영역으로 정했다면 만들지 못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권세라면 행사하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 죄를 짓는 경우는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지었느냐, 그 죄 값을 받아라 이렇게 나가는 법입니다. 그러나 인간복제에 관련된 것은 그들이 심신으로 된 물질을 만든 것입니다. 물리의 법칙은 그들에게 허락된 법칙입니다. 다만 그 사용 목적과 동기만을 하나님은 심판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신 과학이 하나님 앞에 옳고 바른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하나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 과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 없이 물질의 이치만으로 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물질밖에 없고 하나님의 세계는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는 그들에게 믿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믿음의 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논리적 비약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믿고 구원얻읍시다 라고 전도를 먼저 해야 할 일이고, 전도를 한 다음 전도를 받아들이면 그다음 당신이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것입니다.


4. 질문은 간단하지만, 현 교계 최대의 교리 현안입니다. 덧붙여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이 주제를 두고 일반 교계만을 염두에 두고 주로 발언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의 지적과 같이 일반교계에 대한 비판이 이곳에서는 너무 자주 나오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두고 또 한번 교계를 분석하고 그다음 이곳의 입장을 전하게 되는 것은, 세상이란 교회가 언급할 필요가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무엇을 요구하고 질책하겠습니까? 참고를 듣고 보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신앙 내부만을 살피는 것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될 것이고 주로 믿음 세계 내부를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세계 내부를 살피게 되면 이런 인간복제 문제 하나를 두고서도 믿음 세계의 흐름을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분설에 의한 오해를 지적하게 되고 그 지적은 비판목적이라기 보다는 비판을 통해 따져보고 비교하여 객관적으로 옳고 바른 길을 찾으라는 촉구입니다.

② 교계가 인간복제를 두고 발언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사회 참여 수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복제를 두고 교계가 난리들이지만, 신앙은 몸과 같이 어느 한 부분이 따로 분리되어 진행되지 않는 유기적인 면이 있습니다. 인간복제를 두고 말하려면 신앙전반의 교리 행정 신앙모습까지 다 일관된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동물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렇게 시민운동에 서명을 하고 다닐 때부터 이미 싹이 노란 것입니다.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고 교회가 설치고 피켓을 들고 나섰다면 인간복제에 대하여 성경으로 해결할 마음은 이미 포기했던 것입니다. 동물학대를 두고 그렇게 힘을 소진하고 나면 진짜로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신앙 본연의 길을 두고는 할 말도 없고 기운도 없고 또 말발이 서지 않아서도 안 됩니다. 그 이전에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들의 신앙본질이 이미 다 들어난 것입니다.

동물학대를 말하고 개를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환경오염을 말하고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천국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하여 교회가 교계적으로 서명을 하고 움직였다면, 이미 교회는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이 무엇인지, 물질계와 영계의 선이 어디인지, 물리와 신앙의 한계가 어디쯤인지, 천국과 지옥이 섞여 있는 오늘 이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향감각과 가는 걸음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교회가 한국에 들어서는 정부를 두고 민주화를 지지하고 독재화를 지지하여 정권에 하수인이 되고 지지자가 되어 본질을 망각한 상태에서 이 인간복제에 대하여 바른 소리 쓸 모있는 소리가 나올 토양은 전혀 없다고 감히 단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신은 물질로 되었고 영은 영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도 물질의 이치에 따라 식량을 공급해야 하고 하나님이 물질로 된 양식이 필요하여 식물과 짐승을 그 먹이로 허락했다면 먹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의 자연운동에 휩쓸려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성경의 대속의 사랑인 줄 알고 그 사랑을 혼동시켜 북한에 밥 먹여주고 집에 기르는 개 먹여주고 길 잃은 고양이를 위해 교회가 앞장서는 것으로 교회의 본질인 사랑운동으로 착각을 했으니 그들에게 인간복제를 두고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불신 세계의 자연주의가 바탕에 깔려 나온 세상운동이라고 혐의를 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동물을 애호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살인범을 사형시키지 말자는 것으로 교회가 교회 할 일인 줄 알았으니, 하기야 인간을 복제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얼마나 격분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발언의 중심이 동물 애호 운동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전적 하나님 주권 중심의 신앙에서 나온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평소 행동으로 보면 앞의 경우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③ 그동안 교계가 벌인 수없는 사회활동은 불신자들이 할 일 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세상 불신자들이 벌이는 운동 중에서 '자연' '사랑' '돕기' '평화' '촛불'이라는 말만 나오면 교회가 발광을 하고 있습니다. 앞장서고 있습니다. 과거 산업계의 노동운동에서부터 탈북지원에 이르기까지 별별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에 다 나서는 그 연장선에서 이번 인간복제에 대한 반대성명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이곳이 질타한다면, 반론하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유일주의로 성경 제일주의로 세상을 향해서는 눈빛 한번 주지 않고 나가는 진정한 신앙주의 경건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에게 맡긴 것을 세상 그들이 거기까지 하는구나 하고 듣고 지나가고 있는데, 세상과 하나가 되어 교회인지 세상인지 구별도 되지 않은 교계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범위에 손을 댔다고 펄펄 뛰는 것은 아무리 곱게 봐주고 잘 봐 주려고 해도 그 동기와 그 향방이 또 하나의 세상 평화주의요 자연운동이요 그 깊은 속에는 반신앙 불신앙의 인본주의 흐름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인간복제를 두고 나오는 반론이 어느 종교단체 어느 사회단체 어느 윤리단체를 막론하고 거의 대동소이입니다. 큰 줄기는 같고 작은 지엽은 다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모든 사회참여 과정에서 나타난 교계의 행태였습니다. 그 과거 행태는 전부 불신 인본 세상운동이었습니다. 이번에 들고 나서는 것은 전 인류가 걱정을 하고 있는 인간복제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계가 보고 있고 또 국내에서는 정부와 온 사회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이런 분위기에서는 종교계가 한 마디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그 발언은 사회적으로 유명한 발표가 되어 9시 밤 뉴스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자기를 알리고 자기 가치가 드러날 기회가 닥치면 죽을 자리인지 살 자리인지도 모르고 머리부터 내미는 것이 오늘 교계의 지나온 모든 행태였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발표에만 예외가 되었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내심으로는 인정치 못하겠습니다. 인간복제를 두고나오는 각계각층의 모든 소리 중에서 왜 교회의 발표도 그 중에 하나밖에 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교회만은 진리를 가졌고, 천하 인간이 다 모이고 또 인간복제 성공을 했다면 성공한 그 과학자까지 모인 자리에서도 그들이 아는 범위는 물질이고 교회는 그 물질 세계 위에 있는 영계를 가졌는데, 왜 영계에서 나오는 구원의 소리 진리의 외침은 없고, 모든 기관 단체들의 발표문을 꼭 같이 배껴 놓은 듯 그런 소리밖에 나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새해 인사, 남북 교류를 두고 발표되는 각계 각층의 발표문에서 왜 불교계 덕담과 기독교 대표의 성명서와 각 정당 기관의 발표문이 꼭 같으냐는 것입니다. 평소 이런 사회적인 문제 하나를 두고 그 신앙 근본에 흐르는 방향이 있어 그런 내면의 실체가 이런 사건을 만나게 될 때 밖으로 발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그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 그런 발표밖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먼저 교리적인 면으로만 여러 면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실은 못내 아쉬운 것이, 교회가 이미 세상 속에 썩어 그 속에 한 요소가 되어 있기 때문에 앞뒤 모르는 소리밖에 할 수 없겠다는 것을 답변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5. 교리적으로 덧붙여 기억할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 교리적으로 모순 되어 보이는 현실이 나타날 때는 이런 면을 주의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교리적으로 확정하고 있는 것은 신앙세계에서 알아야 할 일부이고 모르는 세계는 더 많기 때문에 자꾸 깨달아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반 교리로서는 참으로 해결이 될 수 없는 인간복제문제가 닥쳐지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것인가?

이분설밖에 모르는 교계가 인간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섣불리 말한 것도 문제였고 이제는 하나님 창조영역을 침범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더욱 섣부른 일입니다. 현 교리 체계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나타날 때는 항상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의 절대적인 면을 가지고 일단 그 현실을 통과하셨으면 합니다. 앞날을 두고 알기는 대단히 어렵고 현재 닥친 일을 두고 알기는 조금 더 쉽습니다. 그러나 일이 지나가고 나서 과거가 되면 그때는 누구든지 다 알 수가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지식과 지혜'의 이치입니다.

② 잘 파악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되면, 주권 예정론 교리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인간복제라는 것이 아직도 가능한지 이곳은 단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단정해 두고 있는 것은 물질인 몸과 마음의 세계는 물질의 이치에 해당되는 물체입니다. 물질세계에 관하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를 따라 인간이 하나님 없이 저희 실력을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과 무엇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지 또 어느 부분은 허락지 않았는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재림 때까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물리가 있고 그런 물질 세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은 물질세계의 것이지만 허락하지 않았다고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드러나고 나타난 물리 기술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의 절대성이라는 교리에서 나오는 단정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의 절대성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인간이 단독으로 노력하고 기술을 사용한다고 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교리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타나고 드러난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고 그렇게 되도록 만드셨으며 이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고 또 그분의 주권으로 이루어졌다는 교리입니다.

따라서 인간복제가 과거 과학자들이 수없이 거짓말을 하고 또 뒤에 탄로가 났던 그런 것 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인간복제에 대하여는 물리의 이치가 닿는 곳이니 불신 세상에게 주신 범위 내에 있는 것이나 인간복제 자체가 되도록 할지 아니할지는 좀더 지켜보면 된다고 요약할 일입니다. 만일 인간복제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그리고 그것이 확인이 되었다면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물리 범위에서 가능한 것인데 하나님이 드디어 저것까지 허락하시고 이 세상에 내어놓으셨구나 라고 할 일입니다.

믿는 우리의 범위는 영계 영원무궁입니다. 우주는 발 디딜 발등상 정도의 하찮은 범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오늘 이 땅 위의 존재와 그 동작 원리로 파악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태평양 바다에 물고기 하나 움직이는 것을 보듯 이번 사건을 그렇게 보고 지나갈 것입니다.

③ 지나간 세월 속에 듣고 봤던 모든 것을 자연계시로 묶어 놓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무를 베고 켜서 책상을 만드는 것이 물질의 이치에 의하여 가능한 일이면 그 계획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 계획이 성공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파괴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그 계획이 성공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 영역이 침범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우스운 일입니다.

마10:29에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어느 미물의 어떤 미동도 존재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요 예정에 의하여 정확하게 순서대로 우리 눈에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받침대가 없이 기차를 철로 위에 띄워 놓는 자기부상 열차가 발명되었다면,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창조 바깥의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할 때 눈에 보이는 것만 만들어 놓지 않으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의 여러 법칙도 함께 이 우주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인간이 아직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못 보던 것을 본 것이 발명이나 발견으로 표현되는데 그 발명과 발견은 어떤 것이 새로 나타났다 해도 물질계 안의 것입니다.

이 홈이 시작되던 1999년 '총공회 노선 소개'를 적으면서, 현재 진행 중인 과학 발달이 기존 교회 교리 체계를 전부 뿌리를 뽑을 것이지만 공회의 삼분론 교리는 그런 과학과 교계를 아득히 초월한 세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요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잠깐 답변 드린 이 글은 인간복제를 두고 생각할 몇 가지를 설명하는 데에 줌점을 두었기 때문에 글이 어지럽습니다만 이미 백영희 신앙노선은 1960년대 초반에 이 모든 교리가 체계화 되었다는 점에서 이곳은 여기서 소개하는 신앙노선의 의미가 적지 않다는 점을 많은 면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④ 이제 앞으로 제일 큰 과제는, 복제인간에게 구원의 여지가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이미 복제인간이 만들어졌다고 세상이 단정하고 있습니다. 동물실험에서 성공을 했고 또 인간실험에서도 초기 태아가 거치는 사전 단계를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곳은 복제인간이 출현될 때까지는 기다리게 됩니다. 신앙의 사람은 세상 소식이 무엇이라고 출렁거려도 그 듣고 판단하는 데에는 덤벙대지 않아야 하는 보수성과 신중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복제인간의 구원문제를 두고 질문하는 분이 있다면 교리적 가능성을 두고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물질로 된 심신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허락한다면 인간 기술로 만들 수 있는 범위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아니라 영물로 된 영은 인간이 손을 댈 수 없는 영계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 기술과 범위로 갈 수 있는 한계는 몸과 마음이지 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사람의 심신은 부모를 통해 세상에 주고 있습니다. 심신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지 않고 부모를 통해 만듭니다. 이것도 성경은 '창조'라고 했습니다. 창2:4과 출20:11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대략을 말씀했고 또 엿세동안 모든 것을 만들고 쉬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든 것은 물질 재료였고 그 후 첫날부터 여섯째날까지 만든 것은 유에서 유를 변형시키고 내셨습니다.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든 것까지 다 포함시켜 하나님은 창조라고 했습니다.

먼저 내신 것을 통해 그 다음 것이 존재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입니다. 먼저 있는 인간을 통해 그 다음 인간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앞서 존재한 인간을 통해 뒤에 존재하게 되는 인간은 어떤 방법 어떤 식으로 존재케 하느냐는 것은 여러 동식물을 참고하고 또 인간에게서 나타난 오늘까지의 모든 형태와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인간의 심신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심신을 만드는 일에 인간을 사용하시는 이상 하나님은 그 인간들을 기계와 같이 단순한 도구로 사용치 않고 자유성으로 자신들의 역할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외형을 취하게 됩니다.

외부로 보면 사람의 의지와 생각과 결정에 의하여 다음 인간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취하고 내부로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는 것이 인간의 존재형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심신의 인간에게 하나님은 동시에 영을 넣어 주셔서 완전한 인간이 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제인간으로 만들어질 인간도 그 심신은 앞서 존재한 다른 인간을 통해서 다음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이 심신을 가진 인간으로 출발하는 바로 그 시점에 하나님께서 그 인간에게 영을 넣어 주시고 후에 믿게 하신다면, 우리는 그것까지를 확인한 다음, 하나님께서 택자를 만드는 방법 중에 이런 방법도 내셨구나 라고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⑤ 무엇이든 도매금으로 마구 넘기는 바람에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차분하게 살펴본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심신 발생은 남녀의 결합으로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정모혈이라는 것은 남자의 요소와 여자의 요소가 합해져야 한 인간이 태어난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와를 만드실 때 하나님이 아담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하와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 인간복제라는 표현은 자극적이고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 기술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미 성경에 그 예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타락한 인간에게 출산의 고통을 주셨고 그 고통을 통해서 죄값을 느끼게 했고 그로 인해서 구원에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출산의 고통도 지금은 과학으로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시험관이 그렇고 또 대리모까지 동원하게 되면 분명히 출산의 고통을 피하면서도 부부의 요소를 섞어 자기 자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체의 방법을 요약한다면, 하나님이 내신 방법 중에 피해가지 못할 길을 인간이 개발하여 낸 것이냐 라는 문제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산고통으로 아이를 갖도록 했는데 해산고통을 피하고도 아이를 가지는 기술은 이미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가지는 방법은 고통 없이 갖는 방법이 하나 있고 고통을 가지고 갖는 방법이 하나가 있으며 그 중에서 고통을 가지고 아이를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도하셨으나 인간이 고통을 피하는 방법으로 나갔다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냐고 반문한다면, 현재 그렇게 하여 아이가 출산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 교리에 의하여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내신 방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 붙여 줄 말은, 하나님께서 해산고통을 통해 아이를 낳도록 했는데 그 길을 피해 갔다면 그 방법으로 얻을 은혜는 전부 포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인간들은 많지만 이미 인간축에 들지 못할 인간들이 적지 않습니다. 호적상 엄마는 수도 없이 존재하지만 현재 실제 엄마 같은 엄마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출산고통을 통해 아이를 낳고, 주시는 대로 낳고, 그 자식에게 자기를 주어 자신은 파김치가 되도록 녹아져야 그것이 하나님이 내신 엄마의 정도인데, 아이 하나 낳고 끝내는 엄마, 그 아이 하나도 제 손으로 젖먹이고 기르면 제 인생에 지장을 준다고 돈으로 대신 기른 엄마, 이런 엄마들은 호적상에는 엄마로 올라가지만 하나님 앞에는 엄마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말씀과 같이 현재 말씀대로 엄마노릇 하는 사람이 없고 말씀에 따라 남자구실 하는 남자가 없고 말씀에 의하면 자식 같은 자식이 없습니다. 요즘 자식이 자식입니까? 조상급 자식들이니 이는 자식이 아니라 애비의 선조급 인물입니다.

지금 인간의 출생 형태를 두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이 출산고통으로 아이를 낳으라고만 했지만 출산고통 없이 아이를 갖는 방법은 이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으로 출산된 아이는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생겨진 인간에게는 영이 없느냐는 반문을 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는 출산고통으로 아이를 갖는 방법만 기록하셨으나 말세에 그 방법을 피하고 인간이 태어날 방법도 하나님은 미리 천지창조 때부터 물질계 속에 그 이치를 만들어 두셨기 때문에 지금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두 방법의 차이는 인간이 되는 데에는 이상이 없으나 하나님의 은혜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해산고통이라는 순서를 빼버리고 인간을 만들듯이, 이제는 두 부부의 요소를 뒤섞어 인간을 만들어야 하는 인간을 만일 한 인간의 요소로만 만들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내신 인간출생의 방법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심신이고, 그 심신에 영을 넣어주느냐 마느냐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미리 예측한다는 것은 신령한 영안이 필요하지만 훗날 그런 사람에게 중생의 은혜가 확실히 확인이 된다면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보고 아는 일에는 아주 단정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험관 아기 등 여러 경우를 보아서 아닐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지켜 볼 뿐입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