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네피림의 뜻은(창6: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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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네피림의 뜻은(창6: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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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질문 : 네피림의 뜻은(창6:4) 1332

새해에도 목사님의 사역에 우리 주님께서 더한층 신선한 힘을 불어넣어 주실 것과 건강하시길 또한 소원합니다. 목사님 오늘 또 이렇게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제 저희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네피림’ 에 대한 질문이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저마다 들어 알고 있는 부분 들을 말하고 나누었지만 모두들 정확히는 모르며 알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 오히려 추가적인 의문만 더 하였습니다. 이제껏 여러분(교회목사님과 교역자)과의 대화에서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고로 더는 마땅히 질문을 드릴만한분이 없다는 것이 좌중의 목소리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목사님께 시원한 답변의 말씀을 구함으로 전하여 나눌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답변 : 세상에도 잘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네피림’이라 했습니다.

1. 네피림은 창6:4에 있습니다.

노아 당시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6:4의 '네피림'이라는 글자 바로 앞에 아주 작은 숫자로 '3'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제일 아래 쪽 줄 그어진 밑에 보면 '1. 2. 3.'숫자들이 있고 그 중에 '3'이라는 숫자에는 '장부'라는 말이 나옵니다. '네피림'의 단어 뜻은 대장부입니다.

그냥 '장부'라 또는 '위인'이라는 우리말로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이 단어는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원래 원어 단어로 그대로 놔두는 것은 크게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번역하기에 적당한 단어가 없을 때 그렇고, 또 하나는 원어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그 단어가 교인들에게 평범하게 사용되는 정도일 때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원래 단어를 적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문장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텔레비젼'은 그냥 '텔레비젼'으로 번역해놓지 그것을 '영상수상기'라고 하면 좀 어색하다는 식입니다. '아이디어'도 원래는 영어지만 우리 말로 '착상' '제안' '생각'으로 번역할 수는 있으나 그냥 '아이디어'라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2. 노아 당시에 '네피림' 즉, 위대한 장부들이 있었다고 특별히 말씀한 것은 노아는 의인으로 살았고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당대에도 걸출한 위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에서 다 죽게 됩니다.

인간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지 인간이 위대하고 못남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당시에 못난 인간들만 있어 홍수를 대비하지 못하고 그 홍수에 살아남을 기술을 갖추지 못해서 앉아서 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미개인들 밖에 없고 과학 문명 발달이 없어 그렇지 오늘 다시 한번 홍수가 온다면 하나님께 통고받지 않아도, 오늘에야 얼마든지 기상관측으로 미리 예측하고 현재 보유한 기술 과학만으로도 잘난 사람들, 문명국들은 천재지변을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당시에는 잘난 인간이 없고 홍수를 대비할 과학 문명이 없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멸하고자 손을 들면 인간은 죽어야 하고 멸망당해야 하지 달리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시는 말씀입니다.

3. '네피림'이라는 단어 속에서 오늘 나의 모습이 노아 쪽인지 네피림 쪽인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노아만큼 의인은 아니더라도 노아의 행적이 부러워 그쪽으로 따라 가고 싶은 소망이 있고 욕심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노아 7식구는 노아만큼 되지 않았지만 노아로 인하여 구원길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노아만큼 이 시대 의인이 되지 않아도 그 길을 소원하면 그 길로 인도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못나서 구원받지 못한 인물은 역사에 없습니다.

네피림이라고 불릴 만큼 우리가 잘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네피림이 부러워 비록 하나님은 없어도 인간이 인간 실력 인물 기술을 갖추어 인간 위에 우뚝 서는 인물이 되고 싶어 모두들 속으로 안달입니다. 그러나 네피림도 물 속에 다 들어갔습니다. 하물며 네피림만도 못하고 어떻게 세상에 어느 면으로 잘나볼까 하여 그 뒤를 쫄쫄 따르는 우리들이야 하물며 다 이 세상에서 불탈 것만 마련하지 이 세상을 벗어나겠습니까?

4. 노아를 9절에서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9절에서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의'인이라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말이고 '완전'이라 말은 흠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동행하고 살았으니, 오른뺨을 맞고 왼뺨까지 돌려 맞는 병신이고 등신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의인이고 완전으로 보고 그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이렇게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의 인물평가로 돌려보면 바보요 등신이라는 말입니다. 제 밥그릇도 못 찾아 먹는 멍청한 인간이라 말입니다.

노아 이후에 예수님이 또한 그런 분이었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예수님을 묘사하기를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니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고 질고와 간고를 겪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께서 택한 백성을 또한 그렇게 만드시려고 지금 작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세상눈으로 보면 천국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우리는 바보 등신이 되는 것이고 우리 눈으로 보면 세상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저들이 바보 등신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눈으로 세상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네피림'이어서 자랑스런 위인들이고 우리 눈으로 의인들을 보면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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