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노아의 저주이야기와 관련한 가계저주론 379(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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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노아의 저주이야기와 관련한 가계저주론 379(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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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질문 : 노아의 저주이야기와 관련한 가계저주론 379(쉬)

창세기 9장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었는데 함이 노아의 하체를 봤는데 왜 함의 아들 가나안이 종들의 점L 되기를 원한다고 그랬을까요? 저는 가계저주론 같은 건 안 믿습니다만 이게 궁금하네요.


답변 : 가계 저주론은 교리적으로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야 할 이유는 있습니다.

(답변요약)

함의 행동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주실 때 '노아'라는 계통을 통하여 주고 있었는데 그 계통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둥치를 거부한 가지는 뿌리로부터 오는 영양분을 받아가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함의 행동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게 되고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는 죄였습니다. 그런 죄를 보고 노아가 그 죄악성 때문에 닥친 함의 앞날을 말한 것뿐입니다. 노아가 섭섭하다고 해서 감정으로 저주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함에게 있는 죄악성을 바로 보았고 그 죄악성으로 당할 미래를 미리 말해 준 것이니 곧 예언이 되었습니다.

가계 저주론이란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죄와 의는 개인적으로 개별적으로 해당됩니다. 그러나 가계 저주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는 것은, 한 사람의 죄로 여러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여러 죄인을 만들어 나가다 보니까 그 한 가정에 속한 전 가족들이 결국 죄인들이 되어 함께 다 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가정을 일반 사람들이 볼 때, 죄 없는 몇몇 의인들도 다른 죄인들과 섞여서 함께 멸망 받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따라서 가계 저주론에 걸려 죄 없는 사람까지 비참하게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의인처럼 보이는 그분들도 그 가정에 범람하는 죄인들에게 결국 영향을 받고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가계 저주론은 교리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으나 목회적으로는 실제 가계 저주론이라고 보일 수 있는 면이 있으니 죄의 분위기나 내력을 삼가 주의하라는 주의 말씀으로 경청하셨으면 합니다.


(전체 답변)

1. '가계저주론'은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말한다면, 성경적이 아닙니다.

① 구원은 개별 개인적입니다. 휩쓸려 함께 취급되는 수는 없습니다.

겔14:12-20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겔18:4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남이 지은 죄 때문에 자기가 당하는 경우가 없고, 내가 잘 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상급을 앗아가는 경우도 없습니다. 죄와 의는 증여가 되지 않고 유전도 되지 않으며 매매가 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행한 그대로 하나님이 갚으시는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개인별로 일일이 따로 계산하시는 개별적 개인적 구원입니다.

② 그러나 분명히 아실 것은, '가계저주론' '단체저주론'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롯이 택한 소돔의 생활 여건은 여호와의 동산같이 좋았으나 창13:13 말씀대로, 소돔사람은 악하여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소돔은 말하자면, 저주의 땅입니다. 그것은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저주를 받아 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이 그곳에서 패가망신한 것은, 소돔이 저주의 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곳에서 그 악한 죄인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 죄에 물들어 그도 그 죄인들 중에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롯과 그 가정으로 하여금 죄인을 만들도록 영향을 미친 것은 소돔지역이지만, 결국 죄를 배우고 죄를 지은 것은 롯과 그 가족들이기 때문에 소돔에서 패가망신한 것은 롯과 가족들의 자기 책임이지, 땅을 원망하고 주변 환경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자세하게 분석한다면 죄지은 죄인만 멸망 받는 것이 성경이지만, 일반 사람의 시야로 얼른 본다면, 어느 지역이나 어느 단체나 어느 가정이 소돔처럼 롯의 집안처럼 집단적으로 저주의 대상이 되어 망한다고 보여 지는 현상은 뚜렷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을 자세하게 분석한다면 개인이 개별적으로 범죄 하여 마땅히 멸망 받을 일을 했고 그 결과로 닥쳐진 불행인데, 그것이 그 지역과 그 가정 전부에게 임하니까 마치 '가계저주론'과 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③ 예를 들면, 룻은 '가계저주론'에 해당되는 모압 여인

신23:3, '암몬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모압 여인이었으나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출생 계보에 오르게 됩니다. 모압과 암몬족속은 롯이 죄지어 만든 족속이고 또 출애굽을 막은 죄로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가계저주론'에 포함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모압과 암몬족속의 발생과 그 행위는 영원한 멸망에 해당되지만 그 속에서 개별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그 구원계통을 사모하여 회개한 사람은 그 모든 해를 벗고 오히려 이스라엘 족속 중에서도 가장 복된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가계 저주론이나 단체 저주론은, 교리적 입장이 아니라 목회적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리적 입장에서 원칙적으로만 말한다면, 모압 족속과 결혼을 하던 소돔고모라로 가서 살던 자기만 신앙에 바로 서면, 그들 민족과 지방 전체를 휩쓸고 있는 죄악의 풍조와 그 결과에 자기는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결국 피동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본다면 분명히 가장 조심할 것 중에 하나는, 그 가족이나 그 교회나 그 사회 전체의 분위기입니다. 솔로몬이 결국 이방여인을 데려왔다가 그들의 이방신을 섬기고야 말았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10지파가 지상에서 없어지고 남은 2개 지파도 그런 고난 속에 살고 말았음을 기억하신다면, 교리가 아니라 목회적 입장에서 어린 사람을 길러가야 하는 직책이라면, 가계 저주론을 아주 쉽게 예로 들며 조심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가계 저주론을 들고 나올 때는, 구원의 결국은 개인 개별적인 것임을 말해야 오해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닮지 않는 딸이 없고 아버지를 닮지 않는 아들이 없으며 섬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벗어나는 섬나라 사람이 없고 노예근성을 벗는 노예출신이 없습니다. 물론 이런 말은 일반적이고 통계적으로 말할 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 젖을 먹고 자라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닮게 되는 것까지를 부인하고 절대로 어머니를 닮는 딸은 없다고까지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상식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그 사람에게 특별히 주의시키고 또 특별히 격려할 일이 있으며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을 바르게 기르는 면이 크게 도움 될 것입니다.

3. 함에게 종들의 점L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은, 함의 인간성을 그대로 본 것입니다.

노아가 저주한다고 저주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에 저주가 임할 요소가 함에게 있어야 그리 됩니다. 함의 후손은 과연 그 이후 오늘까지 구원역사에서 아주 참 비참한 민족이 되어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한다면 '가계저주론'으로 명칭을 붙인다면 꼭 적당할 정도입니다.

함의 죄는 하나님이 자기 위에 계통으로 세운 것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은혜의 계통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 무시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이 그 은혜의 계통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보급품이 그 은혜의 계통을 무시하는 자기의 행동 때문에 자기에게 전달이 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스스로 거부하는 행위가 된 것입니다. 함에게는 이런 면이 있었으니 그 이후 그 함으로부터 교육받고 양육 받는 자손들은 함의 이 죄악성에 영향을 받아 그들도 함과 같이 될 것이고 자연히 함과 함의 자손은 마치 가계 자체가 저주를 받아 영육간에 비참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결과가 있을 것임을 미리 예언한 것입니다.

앞에서 드린 설명대로 말한다면, 함에게 내린 저주는 하나님의 은혜 기관을 무시하는 죄악성으로 함이 당할 앞날을 말씀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함의 자손 중에서도 이 면을 조심하고 룻과 같이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함과 함의 자손이 마치 가계적으로 무조건 당하는 듯 보이는 오늘까지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8장의 에디오피아 여왕 겐다게의 큰 권세 가진 내시는 그 먼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 계통을 사모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의 구원'을 예언한 이사야서를 풀지 못하다가 빌립에게 배우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를 이루었으니 그는 함의 자손이나 함으로 통해 내려가는 저주를 피하고 오히려 그 행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재질문 : 그런데 왜 함의 아들 중에서 유독 가나안만 저주를 받습니까?

답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설명하시는 내용은 함의 가계에 대한 저주를 교리적으로 또 목회적으로 설명하신 것으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아무런 언급이 없고 가나안에게만 저주가 해당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황을 보면 함이 범죄 한 것을 그 아들 중에서 가나안이 뒤 집어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가계 저주가 맞건 틀리건 상관없이 왜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여러 아들 중에서 한 아들에게만 저주가 임하는 것은 교리적으로나 목회적으로나 애매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 노아의 실수를 대하는 세 아들들의 세 가지 모습

'쉬운문답방'에서는 최대한 간단하게 답변 드리겠다는 취지가 있습니다만, 답변을 간단하게 할 수 없는 질문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창세기 9장 노아의 세 아들들에 관한 설명이 그런 예가 됩니다. 보충하겠습니다.

1. 우선 창9:20-27 본문 전체를 다시 보셨으면 합니다.

본문을 얼른 보면, 실수는 아버지가 했고 아들은 셋인데, 둘째에게만 그 모든 저주가 다 내려졌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성구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아버지의 실수가 있고 함의 잘못이 있으며 셈과 야벳의 의로운 행동이 있습니다. 우선 본문에 함을 두고 '가나안'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함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이후 함의 아들 중 하나인 가나안만을 두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질문과 관련하여 보다 넓은 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성경은 일어났던 일 전부를 기록하는 역사서가 아니라, 필요한 내용의 최소를 기록했습니다.

요21:24에서 성경기록은 참이라고 한 다음 25절에서는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필요한 내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여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요약으로 주셨습니다. 있는 내용을 다 기록하려면 쌓을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생략된 내용은 다른 성경과 전체 성경을 보면 알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동시에 성경을 기록한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서 가르쳐 주시게 됩니다.

3. 노아의 실수는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그 값을 분명히 받았습니다.

노아가 술을 먹고 벌거벗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신앙어린 사람들에게 보여 실족하게 했고 그 결과가 참으로 컸습니다. 그렇다면 눅17:1-2에 기록한 값은 노아에게 따로 기록되지 않아도 갔습니다. 어떤 벌이 어떻게 갔는지를 일일이 다 기록하려면 성경을 다 쌓아두지도 못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갔다가 공짜로 바로에게 불의한 재물을 받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의 자손은 4백년간 애굽에서 그 값을 민족적으로 갚게 됩니다. 일일이 기록치는 않지만 하나님의 보상과 보응의 값은 절대로 그냥 덮어두고 가는 수가 없습니다. 가까우면 더 엄하고 신앙이 높아지면 그 매가 더욱 강해집니다.

창세기 9장만 본다면 실수는 노아 자신이 해놓고 함을 저주할 때는 남에게 덮어씌우고 자기는 빠지듯이 읽을 수도 있습니다만 과연 세상 일반 사람은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의인으로서 노아는 비록 실수는 했으나 깨어난 후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의 잘못으로 그 아들이 우선 큰 저주를 받게 된 데에 대하여 무책임할 수준이 아닙니다. 함에게 가게 된 그 저주를 노아는 함 이상으로 가슴 아픈 고통으로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전도해도 믿지 않고 거부한 사람에게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으로 믿게끔 하지 못한 자신의 부족을 탄식하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평생 빚진 자로 살았으나 그는 남에게 돈을 빌린 빚쟁이는 아니었습니다. 노아에게도 이런 여러 면을 다 기록해 두지는 않았으나 성경 전체는 하나의 진리이므로 성경 전체를 통해 노아에 대하여 기록되지 않았던 모든 면을 다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알아서 적어 두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서 필요한 만큼은 조금도 실수 없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4. 함의 잘못은 위에 답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셈과 야벳의 행동은?

함은 아버지의 단점 곧 잘못된 점을 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광고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 깊은 속은 비방이며 조롱이며 물 건너 불구경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셈과 야벳은 노아의 단점은 노아 자신의 단점으로 노아만이 입을 손실로 보지 않았습니다. 상한 뿌리를 그냥 두면 둥치와 가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니 노아의 단점과 허물은 곧 자신들이 곧 입게 될 집 안의 화재였습니다. 두 사람이 옷 하나를 어께에 메고 간 것을 보니 노아에게 필요하고 관련된 것은 공손하고 정성스럽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외투 한 벌 필요하다고 할 때, 그 옷을 두 손으로 받혀 가는 사람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가는 사람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뒷걸음 쳐서 들어갔습니다. 노아의 잘못을 잘했다고 선전하는 것도 아니며 노아의 단점은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노아의 후손이며 신앙의 후배 된 사람이 그 단점을 선전하고 물 건너 불구경하듯 하거나 아니면 조롱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이는 은혜의 계통을 무시하는 것이 되어 저수지에서 자기 집으로 오는 수도관을 스스로 막는 일이 됩니다. 노아의 단점을 덮었습니다. 이는 죄를 은폐하고 없던 것으로 했다는 뜻이 아니라 노아의 단점이 현재 벌거벗은 것이니 옷으로 가리면 되는 것이고 노아의 단점이 만일 다른 것이었다면 그 단점의 원인 해결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셈과 야벳은 그 신앙의 계통인 아버지를 보고 상대하는 인격과 행동이 하나님께 복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실상이었습니다. 따라서 노아는 두 아들들의 행한 행동을 보며 현재 너희들이 가진 너희들의 장점 그 신앙 그 복된 행위는 하나님께서 복되게 갚아주시고 그 뒷날이 이러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노아의 예언은 정확했습니다. 물론 셈과 야벳에게 간 복은 각각 달랐습니다. 그것만 기록이 되어있지만 그 복의 종류를 볼 때 셈이 그렇게 행동한 내면과 야벳이 그렇게 행동한 내면은 또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벳에게는 세상에서 창대하게 되는 복을 주었기 때문에 오늘까지 육체의 성공과 세상의 자랑은 백인들에게 많습니다만 결국 셈의 장막에 거한다고 하신 말씀처럼 셈의 보호와 혜택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 것입니다. 구주 탄생과 신앙의 계통은 셈을 통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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