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경의 기적, 자기 취향에 맞추어 남의 신앙을 평가가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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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경의 기적, 자기 취향에 맞추어 남의 신앙을 평가가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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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문 : 성경의 기적, 자기 취향에 맞추어 남의 신앙을 평가하는 문제, 장발의 예술가들에 대한 인식, 홈페이지 관련된 건의 458

감히 목사님께 이러한 말씀을 여쭙는 것을 이해하시고 인터넷 상으로나마 이와 같은 것을 묻지 않으면 평생 이야기 끄내지도 않을 것 같아 체면도 그 외의 모든 것 또한 다 불구하고 진실 되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서 2시간가량 글을 성경과 제 개인적 신앙관에 대하여 썻다 지웠다 하는 일을 수없이 한 가운데 그냥 평소 생각해 보던 것을 통하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모세가 지팡이를 바닷물에 대었거나 혹은 그곳을 향하여 가리켰으나 하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런 다음에 바다물이 갈라진 것에 대한 제 견해 입니다. 그러한 일이 행하여 질때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바닷물을 가르셨나 하는 것 입니다. 물론 바닷물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닷물을 가르는 기적 또는 마법을 내보이신 것이 아닌 지혜를 주셨다고요 바닷물은 자연적인 현상 또는 이변으로도 갈라질 수는 있다고 생각 합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깨달음을 모세로 하여금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큰일 날 일인가요?) 즉, 사건에 대한 이해의 접근 방향이 좀 다르다는 거죠 광야에서의 만나의 경우도 갑자기 마술과 같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와 같이 떨어지는 것을 먹을 수 있고 그 맛 또한 좋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을 주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즉 인간의 능력으로는 깨달지 못하는 것을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어 모세가 깨달고 그것을 행하였다는 것이지요.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는 바닷물이 갈라지거나 맛나가 떨어지는 그러한 신비주의 적이고 마법과 같은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입니다.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의 경우도 저는 그것이 실제로 수천명이 먹고 몇 광주리가 남았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러한 기적은 오히려 연금술사들이 부리는 것이니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먹지 않아도 그리고 먹더라도 손끝을 댈 정도만을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의 은사를 전하신 것이고 그것이 적어도 또 다른 몇 천 명을 먹이고도 남음에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는데요. 아니면 실제 물질적으로 그렇게 물고기와 보리개떡을 부풀리시거나 몇 천 몇 만개로 그것을 만들어 내신건가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신앙심이 엄청 좋은 제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럼 죽음에서 되살아난 나사로의 경우는 어찌된 것이냐 하고, 왜 믿지를 못하냐 하고 말이예요. 그에 대하여 저는 나사로가 죽고 살고 하는 것은 생명 이라는 어떠한 무형적인 것이지 나사로를 두개로 만들거나 나사로의 키를 갑자기 적게 하거나 하는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소경도 있는 눈을 뜨고 앉은뱅이도 있던 다리로 걸은 거니까요 선천적으로 팔이 없는 사람에게 새로운 팔을 주시는 건 아니 잖아요? 그 것을 뛰어 넘는 새로운 삶의 참된 진리를 보시게 하는 거지요...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만 못한 경우가 허다 하니 까요......

즉, 제 생각과 이해로는 예수님과 하나님 성령님은 마법사와 같이 물체에 대한 쇼를 하시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드신 만물에 대한 이해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는)를 통한 있는 것만을 주관 하시고 있는 것을 통하여 저희를 이해시키시려는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칠때도 다윗의 돌팔매가 골리앗의 발끝에 맞았는데도 승리를 하도록 하시는 것이 아닌 꼭 맞혀야 할 때를 그리고 그것이 돌팔매로도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곳인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러한 것은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나 어떠한 사건이나 행위 기록 기적 등에 대하여 어떠한 시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개념이 바뀌게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특히 이러한 차원에서 성경에서의 단지 아, 또는 어라는 글자 몇 개 또는 일부 내용에 대한 해석과 이해 차이로 종교가 생겨나고 교파와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는 것이 생겨나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성경의 아, 어 하나 하나에 까지 관심을 갖는 것 입니다. 그리고 모르기 때문에 더욱더 알려고 하는 것 이구요. 저는 두 눈과 두 귀를 꽉 막고 앞을 달려가며 하느님 저 아무일 없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저는 두 눈은 인터넷과 위성으로 무장을 하고 두 귀는 첨단 레이더를 장착한 가운데 보다 높은 곳에 계신 그분께 그 이상의 것에 대하여 깨달음을 달라고 하는 스타일 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은 세상 권세 잡은 자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권세를 피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 누군가가 영어 노랫말에 강렬한 사운드를 내보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러더군요. 저런 세상 음악은 다 마귀의 짓이라고 그러면 그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는 마귀 좋으라고 그렇게 했겠습니까? 문제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무식한 사람이 단지 자기의 개념속의 한 틀에 세상 모든 것을 집어넣고는 판단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외국 사람들이 그런거 듣는 데에는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죠. 그리고 외국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국내에 와서는 오히려 더욱더 그런 음악을 찾게 되죠 무언가 수준이 더 나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또는 거들에 자연스러이 적응이 되서...... 만일 앞서의 그 사람이 뒷날 영어를 배우고 그 음악을 다시 들은 뒤 그 아티스트의 신앙적 고백의 참 메세지를 듣게 되면 그 음악을 어떻게 생각 하겠어요. 그때도 이런 마귀 같은 음악 이라고 할까요, 아마 자신의 우둔함과 자신이 얼마나 틀에 박혀 진리를 보지 못하고 살아 왔는가를 깨달게 될 거예요.

중국인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한국인을 초대하면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그들 음식에 불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게 되죠 물론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색다른 향료에 색다른 맛에 적응이 안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다수의 서양인의 경우는 똥냄새 나는 된장도 먹기도 하며 젓가락질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죠. 이러한 극히 일부의 모습 또한 엄청난 의미를 저희들에게 전하는 것 입니다. 낯선 음식에 냄새 또는 풍습에도 그렇게 혀를 차는 사람들이 한국적 이라고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성경의 내용을 어떻게 자신의 생과 같이 참되게 느낄 수 있다고 하는지 매우 궁금하더군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어떻게 성경이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한국적인 사고의 개인적 풀이로서 성경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릴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외국에서 많은 기독교 아티스트들과 교재를 하였고 한 선교 센터에서 저의 재능으로 봉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크게 느낀 것은 저의 신앙이 한국에서와 외국에서 각기 따로 놀 수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외국에서의 신앙관과 신앙생활을 이러 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어떠한 측면은 이해를 하지도 못하고 항상 틀 속에 갇혀 생활하기를 권하더군요 이것은 꼭 한국의 학교와 외국의 학교에서의 교육 방침과 학생들의 생활의 차이가 나는 것 과 같더군요.

그러기에 아마도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의 순수하게 키워왔던 믿음을 백영희목회연구회에서는 단지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 대하여 저 또한 고통을 느끼고 병들어 가는 사회속에 기독교 정신 과 문화 발전과 전파를 위하여 노력을 하고 있으나 제가 느끼는 것은 어떠한 매체와 권력 그리고 사상 속에 노예와 같이 살아온 사람들의 개념을 보다 넓게 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 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유명한 뽕작 작곡가 분이 오랜 활동 끝에 늙고 연약해져 예수님을 맞이하고는 복음 성가를 몇개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음악을 듣고는 웃음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비판 합니다. 왜냐하면 그 선율의 흐름이 뽕짝 풍이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도 복음 성가를 지을 때는 본질은 악이나 부드러움으로 둘러 싸여진 클래식 아니 구세기의 음악 스타일로 해야하는 건가요? 우리가 부르는 대부분의 찬송가는 클래식 초기 시대의 형태를 지니는 겁니다. 그거 지금은 음대에서도 졸업 작품때 그런 풍 하지도 않죠. 왜냐면 지금은 현대 시대이니까요. 과연 그러한 틀에 박혀있는 세상에 대한 개념을 지니고 진실을 얼마나 볼수 있을까요 현재 국내에 기독교 문화가 얼마나 성장해 있나요 세상 것에 비해 무언가 좀 뒤쳐지는 것이 종교적인 문화라고 여기지 않나요.

보다 많은 질문이 있으나 나중에 또 이어서 하겠습니다. 목사님은 머리를 길게 기른 해비메탈 아티스트들을 어떻게 보시나요. 그냥 무조건 싫은가요? 얘기하기도 상대하기도? 저는 그들을 나실인으로 생각 하는데...... 겸허한척 하는 자들 자신을 속이는 자들을 유다라고 생각 합니다. 수고 하십시요. 앞으로 많은 발전이 있으시기를 빌고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 이런 공간이 굳이 백영희 목사님에 대한 공간이 아닌 그냥 기독교인을 위한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군요. 솔직히 이 사이트에 대한 신앙적 의문이 많이 생기는 군요. 하지만 무엇이 이단이고 그 어떤 것이 이단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좋은 글들이 많아서 좋아요 그러나 더욱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답변자가 목사님만이 아닌 모든 성도들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답변 : 4가지 질문으로 알고 답변을 요약하겠습니다.

( 질문요약 )

1. 성경의 기적을 보는 시각

모세의 기적을 포함 성경의 많은 기적은 자연현상을 교란시키며 하나님이 역사했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보수 신앙인데 질문자께서는 성경의 기적을 자연현상이 정상적으로 진행할 때에도 많은 변화가 있으니 그런 변화되는 자연현상에 잘 맞추어 행동한 것이 일반 사람에게는 기적으로 보일 수 있었겠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물을 운영해 가시니 그 운영의 자세한 내막만 우리가 알게 되면 무턱대고 살아만 가는 사람이 볼 때는 역사에 없는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2. 자기 취향에만 맞추어 섣불리 남의 신앙을 평가해 버리는 문제

영어 문화권을 모르면 평가를 미루어 두었으면 좋겠는데 자기 수준에서 영어나 다른 문화권 또는 다른 차원을 가진 사람들을 재단해 버리는 성급함과 주관성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다른 문화와 취향을 가지게 되면 그때는 더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세상을 평하는 우스움을 지적한 것 같습니다.

3. 솔직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장발의 예술가들에 대한 인식

4. 백영희목회연구회의 연구 중심을 백목사님 위주에서 일반 신앙 위주로 확대 하기를 원하심


( 답변요약 )

1. 성경의 기적을 보는 시각

1) 하나님의 역사는 기적이며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 중에 있을 수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점을 예리하게 살피신 것 같습니다. 기적이라 함을 두고 무당굿으로 해결하듯 기적을 주시라는 기도도 불건전한 신비주의일 것이고 그렇다고 하나님이라는 존재까지를 무시하며 인간이 인간 힘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적 신앙도 기독교가 아닐 것 같습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 어떤 과정 어떤 성질을 가지고 역사하는지를 말씀하셨으니 신앙의 정도를 바로 보셨다고 답변자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적과 축복은 알고 보면 너무도 과학적이며 너무도 자연적이어서 어느 것 하나와도 충돌이 없습니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 심리 도덕과도 궁극적으로는 다 일치하고 있습니다. 공연히 인간이 스스로 무지하며 스스로 다 안다고 착각을 해서 자연에 없는 일이 일어나고 또 인간 자체를 무시해야 신앙인 줄 아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늘에 태양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그 태양이 그렇게 광활한 우주를 그렇게 정확한 경로를 따라 진행하고 있는 것이 벌써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숨을 쉬고 살아 존재한다는 것도 수도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의 총합이라고 볼 것입니다. 너무도 광대하고 세밀하며 측량 못할 요소들이 우주에는 충만하니 그 중에 인간이 모르던 어떤 한 가지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다면 그것이 역사에 없는 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크심을 좀더 구체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알고 접하는 진정한 신앙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2) 사실 질문자께서 주장하시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예도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아쉬워 하는 바, 백영희목회연구회는 백영희목사님의 신앙연구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분을 가까이 모시면서 감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질문자가 주장하시는 그 대목입니다. 즉, 백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현상에 대하여 보는 시각이 특별하여 그 특별함이 하나님이 직접 열어 주지 않고는 인간으로 알 수 없는 많은 면을 너무도 정통하고 있었습니다.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백목사님에게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 가운데 하나는 모세와 같이 만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지혜를 주신 것이었고 이렇게 밝아진 영안으로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우리와 달리 보게 됨으로 그가 결정하고 그가 대처하며 그가 파악하고 그가 헤쳐나간 현실들은 가히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연속은 거의 백목사님이 가진 혜안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어떤 이는 사람이 타고 나기를 원래 똑똑해서 그렇다고 하며, 본 답변자는 그 집안과 내력을 다 살펴보고 연구해 보았으나 보통 사람보다는 뛰어난 정도였지 그가 평생에 가지고 있던 혜안은 인간의 총명함이나 수양에서 나올 수는 없는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백목사님에게 주신 기적 중 하나는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3) 한 가지 꼭 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 실수 있습니까?

무한하다 할 만큼 복잡한 자연계의 모든 운행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감추어 둔 사실 하나만 알려 주어도 큰 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께서 꼭 그 방법이 아니고 다른 방법은 사용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자연 현상 속에서만 역사하지 그 자연 현상의 진행을 교란하고 재조정하는 수는 없겠느냐? 또 그렇게 하지를 않으시겠느냐? 만일 그렇다면 그 성경적 또는 다른 논리적 이유는 생각해 보셨느냐고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즉, 하나님은 전능자시니 창조한 만물을 자연의 이치대로 움직이도록 한 다음 그 속에 인간이 모르는 대목을 찾아 이용도 하시지만 때로는 창조한 만물 자체의 위치와 역할, 본성과 그 활동을 전혀 달리 하도록 하는 일은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자연을 이용하고 그 성질을 파악하여 때를 맞추어 기적처럼 나타나는 지혜와 또한 자연 자체를 완전히 뒤흔드는 능력을 함께 포함한 넓은 의미를 자연 현상이라고 한다면 질문하신 분의 의견은 성경 전체를 두고 크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바입니다.

4) 자연 현상 또는 만물의 자연 이치에 대한 정의

하나님은 혼자 계셨던 자존자였습니다. 이분이 만든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영계와 물질계이니 천국은 영계이며 이 세상 만물은 물질계에 속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자연이며 그 움직임을 만물의 자연 이치라고 한다면 첫 창조의 자연도 이후 관리하고 움직이는 자연도 또한 성경에 기록한 여러가지 만물과 환경의 통제도 전부 자연에 포함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자연이 자연으로 움직이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간에 따로 필요하여 움직인 것도 전부 넓은 의미의 자연에 포함하자는 것입니다. 두번째에 해당되는 것을 기적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표현까지를 거부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연주의자이며 진정한 순응이치론자로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할 수 있겠다는 것을 제의하는 것입니다.

2. 자기 취향에만 맞추어 섣불리 남의 신앙을 평가해 버리는 문제

전적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다른 반론이나 제의가 없습니다. 영어 문화권에 익어 있는 분들이 그 차원과 그 수준에서 느끼는 감동과 은혜의 세계가 있을 것인데 우물 안 개구리가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 은혜가 아니라고 해 버린다면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판단과 기준의 중심에 서는 잘못이 있겠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살고 있는 환경과 범위는 틀려도 어느 정도 비교는 가능할 것인데, 먼 훗날을 보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내어 놓는 면은 영어문화권이나 여러 예술 분야에 심취한 분들이 장점일 것 같고 반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의 높은 수준이 인간으로만 가까워지는 것은 혹 단점일 수도 있겠다고 느낍니다.

3. 솔직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장발의 예술가들에 대한 인식

취향과 체질이 비록 다르다고 해도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마음속에 솔직함을 외부로 다 내어 놓고 또 거침없는 표현이 늘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만, 여름에 벗고 싶다고 다 벗을 수는 없도록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수치의 본능과 또 의복의 보호 기능이라는 점을 성경에 명문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선을 정하지는 못하겠으나 전체적으로 단정과 어지러움은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며 일반적으로 어지러울 정도는 피하는 것이 성경의 '덕'에 맞다고 봅니다.

4. 백영희목회연구회의 연구 중심을 백목사님 위주에서 일반 신앙 위주로 확대하기를 원하심

좁은 범위보다는 넓은 범위가 마땅히 좋은 것이며 당연히 그리해야 할 것이나 이 시대에 특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세상과 교계의 혼탁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신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백목사님 신앙연구를 주로 하게 된 것은 본인은 특별히 그 분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반드시 연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을 붙들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붙들렸던 '백목사님'을 연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백목사님에게도 단점 있었고 만일 그 부분을 비판한다면 답변자 도 둘째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염려하심의 원래 뜻은 잘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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