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윗의 군대장관이였던 요압에 대한 질문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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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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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7. 질문 : 다윗의 군대장관이였던 요압에 대한 질문 917
다윗의 군대장관이였던 요압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가 하나님 앞에 틀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윗 앞에 도망한 압살롬을 지혜롭게(?) 다시 부르기도 하고, 말끝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들먹거리는 것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또 비열하게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고, 우리야를 죽이라는 명령에는 잘 따랐습니다. 요압의 행적 하나하나를 보고 평가한다면 그것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요압의 행동 몇가지의 의미를 개략으로 설명해 주시고, 요압이라는 사람을 통해 배워야할 이치와 교훈을 설명해 주세요.
앞서 질문한 내용에서 요합은 진리노선에 있었으나, 항상 반란군이였다라는 말씀을 듣고 요압에 대해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답변 : ‘출몰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압의 경우입니다.
1. 백목사님 설교에 '출몰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냥하는 주인이 기다리는 곳으로 산짐승을 몰아넣기 위해 악을 쓰며 온 산을 뒤흔들고 다니는 사람을 시골에서는 출몰군이라고 합니다. 멀리서 보면 사냥하는 주인공이 그 사람인 듯 보이지만 정작 주인은 길목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가 일격에 목적을 달성하고 출몰군에게는 밥 한 그릇 먹여주면 그만입니다.
교회 내에도 그 교회의 주인공처럼 동분서주하며 활동하는 사람이 실은 하나님 앞에 출몰군 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주로 교계 지도자들이 거의 여기에 다 해당됩니다. 그다음 그룹은 목회자, 그다음이 장로님들 그런 순서입니다. 반사 선생님들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쉽습니다. 예수님 오시던 초림에 시므온과 안나는 고요히 묻혀 있었으나 예수님을 품에 앉았던 다섯 손가락에 들어갔습니다. 당대 헤롯왕 옆에서 이스라엘의 율법과 종교를 좌지우지했던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은 출몰군 노릇이나 하고 말았습니다.
2. 출몰군보다 더 불쌍하고, 출몰군과는 비교도 못할 사람으로 가룟유다가 있습니다.
정해놓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예수님을 못 박음으로 그 죄를 다 뒤집어쓰는 사람이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 중에서 그는 12명으로만 선발된 사도의 이름에 들어갔던 신약교회 최고위 성직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육체로까지 따랐으며 회계라는 중책을 맡았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했던 가장 특별한 일은, 그냥 둬도 십자가로 가실 예수님을 향해 유다는 자기 생각으로 자기 노력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믿는 사람으로 가장 불행하고 가장 불쌍한 경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을 인민군에게 넘긴 사람은 다름 아닌 내부 교인이었습니다. 그 손목사님이 감옥에 있던 일제 때에도 그 가족들을 애양원 밖으로 쫓아내며 대일본제국을 반대하는 못된 사람으로 매도한 이들도 바로 그 안에 있던 교인들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이 걸어가는 그 신앙걸음은 누가 강제로 가자 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또 아무나 선뜻 따라나서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고 배고픈 길이었습니다. 몰라서 못 따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소수는 따르고 싶었으나 힘이 없어 그러지를 못했고, 극소수 몇 명이 이 복음의 가치를 알고 뒤따라 귀한 길을 걸었던 예가 있습니다. 그 길을 걷기 위해 그들이 당한 어려움은 오늘 현대 기독교사, 특히 한국교회사에는 유례가 없는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길의 결과로 하늘의 상급과 하나님의 칭찬과 자기 성화와 영원한 영광이 한없도록 준비가 되었고 그렇게 받도록 되었던 사람들이 총공회 내에는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가장 백목사님 가까이에서 수고하고 공로가 있고 또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로 저런 일로 요압과 같은 역할을 하고 그 마지막 생을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하게 끝마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몇 명 실명으로 예를 들었으면 이해에는 좋겠으나 이 정도만으로도 알만큼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러지 않겠습니다.
3. 요압의 예는, 가룟유다로 비할 수 있습니다.
출몰군이라고 해도 억울하고 안타까울 노릇인데 유다로 비교를 해야 하는 것이 요압이었습니다.
요압은 강대국 침략국들 가운데 신음하던 하나님의 나라를 당대에 마음껏 세상 만국 위에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결정적인 제1공로자였습니다. 부근 국가들이 볼 때는 이스라엘이 움직이는 곳에서는 항상 요압이 가장 고함을 지르고 뛰어다녔으며 모든 수고를 다 했다고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했던 평생의 수고는 '출몰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교계와 각 교회들을 조금 면밀하게 살펴보면 당장에 환하게 나타날 일입니다.
그러나 요압의 평소 행동에는 이미 유다의 모습이 충분히 깔려 있었고 결국 그리 하였기 때문에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압의 말로를 솔로몬에게 지시하도록 하고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하여 오늘 우리에게 거울로 삼아주셨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림으로 충성해야 할지 모릅니다.
요압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여러 대목들은 이미 질문자께서 질문 내용에서 몇가지 간추린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고, 오히려 오늘에 적용될 내용이 중요한 것 같아서 이렇게 답변을 요약하겠습니다.
성경은 오늘 현재를 예언하고 있으므로, 오늘을 바로 분석할 수 있다면 성경 해석은 너무도 쉽고 간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압의 모습은 특별히 오늘 교계와 각 교회 내에서 그 경우를 찾아보고 적용한다면 현미경으로 보듯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