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음에 서원한 것(시편15:4) 587

주제별 정리      

                                   4. 마음에 서원한 것(시편15:4) 587

서기 0 24

4. 질문 : 마음에 서원한 것(시편15:4) 587

1. 관련 성구

시편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2. 질문

서원한 것이라 할지라도 잘못 서원했으면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돌이켜야 하는 것이 맞는 지요?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 지라도 변치 말라'는 말씀은 죄짓는 서원이 아니라 자기 물질(재물, 마음 등등)에 손해가 가는 것을 말씀한 것 같습니다. 서원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고 서원을 통한 건설구원 이루어 나가는 것을 소개해 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답변 : 손해를 보고도 지킬 경우, 지키지 않은 대신 그 이상의 손해를 봐야 할 경우가 있음

말씀하신 대로 진실한 마음으로 믿는 분들 중에서 이 성구를 오해하여 더 큰 손해를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양심주의적인 분들에게서 많고 또 처음 믿고 은혜 받는 분들 중에서 많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식 양심을 가지고 너무 잘 지켜서 탈이 나는 경우이고, 반대로 믿은지 오래 되는 분들이나 신앙노선에 핵심적인 위치에서 많은 일을 하는 분들은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데에서 더도 덜도 말고 정확하게 바른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없습니다. 정도 차이일 뿐이지 반드시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는 경우는 발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꼭 지켜야 하는 경우와 지키지 말아야 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고, 그런 때에 가질 자세입니다.


1.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① 자기 자신이 손해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는 손해를 보면서 지켜야 합니다.

사람만을 상대한다면 상대방과 주위를 봐가며 적당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 앞에 명문으로 기록된 말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자기의 서원은 지켜야 합니다. 물질의 손해, 명예의 손해, 그 어떤 손해를 봐도 지켜야 한다고 아주 간단하게 단정을 우선 해 두셔야 합니다.

② 문제는, 손해를 보고 끝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번 서원했고 지키기 위해 여러가지 손해를 보는 경우, 손해 본 것만을 산술적으로 계산하고 그냥 끝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외형은 지키고 말씀의 진리는 버리는 경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쉽게 끝나는 문제라면 큰 부자는 능히 지키기에 어렵지 않은 성구일 것이고 대단히 가난한 사람은 쉽게 지키지 못할 성구가 될 것입니다.

③ 이 말씀이 가르치는 것은, 오늘 현재의 지극히 작은 하나는 장래 영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행심사는 전부가 장래를 위해 심은 것이 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본인이 다시 되찾아야 하는 것은 세상에서도 그러하지만 영원한 보응과 보상으로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냥 일반 사회에서도 흔히 대하는 격언으로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매 현실 모든 접촉과 행동이 전부가 주 뜻대로 살았는가 살지 않았는가를 두고 심신의 기능적으로 요소적으로 영생과 영멸이 판가름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해버리고 들리는 대로 생각해버리는 즉흥적이고 무책임한 세월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④ 교계와 교회, 그리고 개인적으로 많은 예를 찾아 보셔야 할 것입니다.

신사참배 참여 문제처럼 교리 한 표현 때문에 한 시대의 교회와 성도가 전부 죽고 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단과 교회들이 회의록 하나를 두고 나뉘고 결합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은 너무나도 많아서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한 개인이 평생을 두고 지껄이는 말은 본인도 기억을 못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고 우리가 속한 공회까지도 이렇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생각 어떤 말 한 마디 어떤 행동 하나도 우리처럼 그렇게 잊고 대충 넘어가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부를 영생과 영멸로 심판하시고 그 나라를 준비하고 있으면서 오늘 우리를 상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간단한 표현 하나를 하면서 그 안에는 표현 못할 많은 경고를 하십니다. '마음에 울컥 일어나는 결심 한번이야 사람들이 쉽게 하고 쉽게 잊어버리지만 해로울지라도 지키라'는 것입니다. 서원 하나가 그러하다면 남과 계약서를 찍고 또 많은 사람 앞에 훗날을 책임지겠다고 큰 소리를 친 행동들은 하물며 어떠해야겠습니까?

⑤ 하나님 앞에 늘 자신을 세워두고 떨며 살아야 하는 우리를 만들고 계십니다.

서원 하나라도 그것은 어떤 손해를 보고라도 지켜야 한다는 데에서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서 매사를 크나큰 마음의 짐을 지게 되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게 되어집니다. 이 말씀을 두고, 자기 하는 말을 자기도 모르고 이 말 저 말 뱉는 식이면 그런 사람의 건설구원은 뒷조사를 해 볼 것도 없이 전부 헛일이고 전부 혼잡일 것입니다.

여기 많은 자료 중에서 과거 공회 소속 교회들의 발언이나 결정들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왜 발언했는지, 그 회의록 작성 때 그런 결정을 하면 어찌 되는지 생각도 없고 느낌도 없으며 훗날에 대한 계산은 더욱이 없었던 경우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자기 단 둘의 결정이나 결심은 오죽 하겠습니까? 이런 점이 있어 여러 불편한 분위기가 있어도 백영희목회연구회에서는 오래 전 지나간 결정이나 발언 하나도 다시 한번 꺼내들고 있습니다. 좁게 보면 속 좁은 화풀이로 보일 것이고 넓게 본다면 영원과 영생을 두고 과연 오늘 내가 할 말은? 오늘 내가 결정할 이 결정은? 이런 점이 있습니다.

⑥ 인류 첫 범죄에서부터 내려오는 우리 속의 단점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첫 범죄인 선악과에서 하나님과 뱀과 아담과 해와의 발언들이 각각 나옵니다. 모두들 쉽게 한 마디씩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 한 말씀이 생사와 영원으로 단정되었습니다. 뱀과 인간들의 말은 별별 말을 다해도 엉망진창입니다. 책임도 없고 뒷날에 대한 계산도 없으며 실감도 느끼지 못하고 보는 것으로 듣는 것으로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다 해치워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보응은 현재까지 우리가 받고 있으며 그 값은 말로 설명하고 거저 책에다 기록하는 차원에서는 상상도 못할 저주 지옥 불안 공포로 오늘 우리가 그 값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원죄성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고, 구원이란 기본구원으로 일단 우리를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나면 그다음은 주님을 닮은 인격으로 실제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성구에서 가르치는 것은, 말 한 마디를 두고 뒷날과 먼 훗날과 영원 뒤까지를 생각하고 듣기는 속히 하되 말하기는 더디하면서 지혜가 부족하여 다음에 어찌 될지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는 뱉어버리기보다는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여 알라는 약1: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남이 손해 보는 일, 또는 서원을 지키는 것이 죄가 되는 경우에는 지킬 수 없습니다.

(1) 서원을 지키게 되면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이 손해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① 원칙만 말한다면

내가 경제나 다른 면으로 손해를 봐도 보상할 수 없고 꼭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내 손해를 피하고 줄여서가 아니라 남을 침해하는 것은 더 큰 다른 죄가 되기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됩니다.

② 이런 경우는 다른 면으로 서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아픔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경우는 서원은 지키지 않았고 자기가 감수할 손해도 없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속으로 '다행이라' 한다면, 그는 희망 없는 사람입니다. 남 핑계로 자기 죄를 그냥 덮고 갈 줄 압니다만 서원을 지키지 못한 죄가 있는데 그 책임을 하나님께서 그냥 함께 묻어버리고 가겠습니까? 이런 경우는 스스로 서원을 지키지 못함으로 자기가 지출할 것을 지출하지 않은 값을 세밀하게 계산하여 다른 방법으로 또 다른 곳에라도 지출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서 계산한다는 하나님의 눈을 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의 행동 하나를 구원을 두고 바로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아픔으로 느끼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꼭 계산해서 다른 면으로 지출할 때가 없으면 연보라도 해야 할 것이고 아니면 스스로 근신하고 단식으로 육체를 굶겨서라도 심은 값은 체감으로 느껴야 할 것입니다.

(2) 서원한 것이 알고 보니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경우는 지킬 수 없습니다.

① 원칙만 말한다면

그 것이 그 당시는 죄가 되는 줄 몰랐거나, 또 훗날 상황이 바뀌어 죄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적게 알았고 성경을 오해 했으며 또는 앞날에 대한 지혜가 부족하여 자기로서는 몰랐던 경우가 우리에게는 허다합니다. 이런 경우는 이미 자기는 서원을 지킬 자격도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서원한 것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뒤에 못 지키면 손해를 보면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손해를 봐도 지킬 수 없고 또 아예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② 이런 경우, 특별히 바로 아는 지혜까지를 갖추어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됩니다.

말씀을 바로 아는 노력과 지혜가 가장 필요합니다. 바로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막으셔서 지킬 수도 없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3. 본문 말씀을 두고 우리 신앙을 여러 수준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서원한 것도 잊어버리는 사람

대부분이 여기 해당됩니다. 참 탄식입니다. 노력해서 이 단계만큼은 벗어나야겠습니다. 하나님께 이유 없이 매를 맞는다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서원을 자기가 기억도 못하니 서원을 어긴 징계를 받아도 이유도 모르고 또 회개도 못할 경우입니다.

② 서원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 그러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늘 피하는 사람

이는 고 범죄가 됩니다. 앞의 경우와 같이 기억도 못하는 경우는 발전적으로 가장 불행한 사람인 반면 이런 경우는 해당된 사건만을 두고 말한다면 가장 큰 징계를 받을 사람입니다. 습관이 되어 평생에 고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③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도덕수준에서 그치는 사람

성실성과 책임성을 두고 말한다면, 앞으로 잘 믿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신앙에 나아가지 못하고 늘 인간 생각 차원인 도덕에서 사는 안타까운 사람일 것입니다.

④ 서원한 것은 지킬 수 있는 지식과 믿음, 두려움과 소망이 있는 사람

이런 경우가 되어야 하겠는데, 만일 그리 된다면 이 한 성구를 지켰고 이 한 성구에서 충성한 것이 결국 성경 전체를 다 잘 지키고 그 사람의 신앙생활 전반이 자기도 모르게 완성된 경우일 것입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