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고 시편을 기록했다는데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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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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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6. 질문 :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고 시편을 기록했 다는데 대해(시16:8-10) 2009
성경을 읽다가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시편16편을 가지고 설교하는 내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미리보고 시편 16편10절을 썼다는데 제가 보기엔 그 구절이 부활을 예언하는 구절이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다윗이 미리 보았다는 건 이해가 안 되거던요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답변 : 다윗의 성경 기록은, 자신을 통해 예수님을 기록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눕니다.
구약에서, 장차 오실 예수님을 3가지 면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면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살아난 우리를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길러가는 것입니다. 죄에서 살리는 것만을 보통 '구원'이라고 일반 교리가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성경 해석 전체가 크게 혼동되어 있습니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이고, 살아난 우리를 길러가는 것은 믿는 사람에 따라 그 형태와 정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를 건설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둘을 다 합해서 구원이라고 합니다.
② 건설구원으로 우리를 길러 가실 때 예수님이 노력하는 방향은 다시 3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살린 다음, 살아난 우리를 길러가는 건설 구원면을 두고 다시 세분을 해 본다면, 예수님은 크게 3가지 면으로 우리를 길러갑니다. 첫째는 우리를 구약의 제사장과 같은 면으로 실력 있게 길러 가시고, 둘째는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우리를 길러 가시고, 세번째는 구약의 왕처럼 우리를 길러가십니다.
③ 이렇게 기본구원 면과 건설구원 면으로 예수님의 역할을 나누게 되면, 그 이름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는 이 기본구원면의 역사를 맡을 때 예수님의 이름은 주로 우리가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살아난 우리를 길러가는 이 면의 역사를 맡은 예수님의 이름은 주로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보통 표현할 때는 우리가 두 이름을 혼용하고 혼동해서 그냥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예수님이라 해도 되고 또 그리스도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 이름의 의미를 특별히 염두에 두고 사용할 때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면으로 나누셨으면 합니다.
안 믿는 우리를 구원하여 믿는 사람으로 만드는 면은 예수님, 그리고 믿는 우리를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또 왕으로 온전하게 길러가는 면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기록은 크게 나누면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는 3가지 지도자들의 활동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3가지 방면의 지도자들의 활동은 그들 개인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오늘 신약 우리에게는 우리가 그들과 같은 역할을 맡고 그들처럼 되어지기를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또 그들에게 나타난 실수가 있을 때는 우리도 그들이 맡은 일과 같은 일을 잘 하도록 노력을 하지만 그런 실수를 거울로 삼아 조심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2. 질문하신 내용은 '다윗'의 예언입니다.
① 다윗은 구약의 대표적인 왕이었습니다. 우리를 길러가는 3가지 면 중에 하나를 말씀한 것입니다.
구약에 많은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경이 특별하게 기록하고 취급하는 이름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 사울왕을 이어 왕직에 나아간 목동 출신입니다. 우리도 출신이 못나고 부족해도 순종 하나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윗처럼 사용하신다는 면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이스라엘은 강대국이 되어 주변 이방국을 장악하게 되고 다윗 시절의 이스라엘은 모든 면에서 번성하게 됩니다.
오늘 믿는 우리가 바로 믿게 되면 신앙적으로 세상에게 지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이기는 교회가 되고 우리 자신이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가정에 믿는 사람 하나가 주일학생으로 출발해서 온 가족을 다 믿게 하고 온 집안도 그를 보고 교회 다니는 것을 훼방하지 못하게 되며 또 그가 받는 복을 보고 믿을 마음을 가지게 되고, 또 그 사람은 자기로 인하여 믿게 된 모든 식구나 교인들을 신앙으로 잘 지도하여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잘 했다면 그가 바로 다윗을 닮아 다윗과 같은 왕 노릇을 잘 한 사람일 것입니다.
② 이 '다윗'이 한편으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다윗을 통해 그리스도의 왕직을 표시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다윗의 기록은 다윗 한 사람의 신앙의 기록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거울이 되어 우리는 그를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 다윗은 바로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다윗이 예수님이었다는 말은 다윗이 실제 예수님이라는 말이 아니고 다윗을 통해 구약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3번째 역사를 보여주고 그 면으로 길러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로 말하면 모세나 엘리야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모세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모세의 역사를 통해 구약 이스라엘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셔서 어떻게 구원 역사를 이룰 것인지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 중에서는 멜기세덱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왕으로 말하면 다윗이었습니다.
부모나 집안이 다 무시하고 천하게 보았지만 다윗은 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할 것입니다. 또 훗날에 보니까 실제 그러했습니다. 육체의 힘과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고 순종 하나로 나아간 다윗은 이스라엘 구원 역사를 방해한 원수를 다 쳐부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할 것을 미리 다윗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 훗날 실제 보니까 예수님이 죄와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택한 백성을 구원했습니다. 다윗의 평생은 전부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보여주고 나타내고 가르치고 있었고, 다윗을 보아서 그 시대 사람들은 오실 예수님을 배우고 다윗을 따라가며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순종하여 구원을 이루게 되는 신약 성도들처럼 다윗에게 순종하면서 그들의 구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③ 다윗은 성경 기록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특히 시편에는 다윗의 시가 많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볼 때는 다윗이 글재주가 있고 노래에 익숙해서 여러 노래 가사를 지은 것으로 알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속에는 성령이 다윗을 붙들고 오늘 우리를 위해 성경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기르시는 3가지 면 중에서 왕으로서 해야 하는 면을 가르치려고 다윗을 왕으로 만들어 오늘 우리에게 맡은 식구를 책임지고 기르고 죄와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하는 이 면을 두고 다윗을 통해 참고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왕이 해야 할 면을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데에는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 가장 쉽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활동을 성경에 기록했고, 특히 다윗을 통해서는 시편을 많이 기록하게 한 것은 외부로는 다윗이었지만 그 다윗은 바로 장차 오실 예수님을 표시하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다윗이 실수하거나 범죄 한 그런 면은 제외가 됩니다. 전체적인 면을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시편이라는 성경을 많이 기록했지만, 그 시편은 겉으로는 노래 가사라는 모습이지만 그 노래 내용은 다윗을 통하여 다윗 시대와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노래 가사는 다윗이 죄를 짓고 회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그 죄는 예수님이 그런 죄를 지을 것으로 연결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다윗이 다윗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실수할 수 있는 면을 말한 것이고 그런 면을 통해서는 오늘 우리가 어디까지 신앙이 올라가도 그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면을 가르친 것입니다.
③ 질문과 관련한 성경 기록이 문제입니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들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령이 다윗을 붙들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면서 다윗이 예수님의 입장과 상관없이 그 시대 다윗 왕의 입장으로서 성경을 기록하게 한 것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성령이 다윗을 통해 시편을 기록하면서 다윗 자신을 예수님으로 기록하도록 한 것이 있었습니다. 장차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예수님이 구약 다윗 시대에는 구약을 다스리는 하나님으로만 계셨습니다. 아직 사람의 몸을 입지 않고 하나님으로만 계시면서 다윗을 시켜 장차 사람으로 올 때 예수님이 하실 일을 미리 성경에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누가 읽어도 마치 다윗 자기가 직접 겪은 일처럼, 또는 다윗 자기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처럼.
질문하신 행2:25-28과 시16:8-10 내용은 다윗이 자기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주께서 다윗 자기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고 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다윗 자기에게 보이셨으니 다윗 자기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시16:8-10에서 자기 육체가 안전히 거하게 되고 자기가 썩지 않게 할 것이라고 기록한 내용이 만일 다윗 자기 육체를 두고 말했다면 다윗은 왕상2:10과 행2:29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조상과 함께 묘에 들어갔고 그 육체가 이 땅에 썩어져 있기 때문에 모순입니다. 즉, 다윗의 이 기록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다윗의 입을 빌려서 대신 기록한 것입니다.
즉, 시16:8-10의 기록은 다윗이 성령에 붙들려 장차 오실 예수님이 죽지 않고 썩지 않고 그 몸까지도 영생할 것을 예언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이렇게 한 부분, 또 이사야를 통해 또 다른 부분, 모세를 통해 또 다른 부분을 나누어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는 얼른 보면 역사기록이고 예언서고 시편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연결시켜 보면 구약성경 전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미리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대기를 미리 전기처럼 기록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이런 시대에는 이런 면을 저런 시대에는 저 사람을 통해 저런 면을 조금씩 여기 저기 흩어놓았는데, 이 모든 것을 모아놓으면 예수님은 예언대로 왔다가 예언대로 살다가 예언대로 갔습니다.
시대마다 인물마다 예수님을 한 부분씩 이렇게 이 면 저 면을 조금씩 기록하고 나타나게 한 것은, 그 사람 그 시대에 필요한 면이 있어 그렇습니다. 다윗을 통해 기록한 면은 우리를 길러가는 그리스도의 3가지 역사 중에서 특히 왕으로서 왕 노릇을 잘 해야 하는 면을 가르치고 있다고 아시면 될 것입니다.
3. 다윗의 성경 기록 중에, 다윗 자기가 마치 예수님인 것으로 나타내고 기록한 경우를 예로 든다면
행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막12:36,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다윗의 시편 기록을 인용할 때 항상 이런 말씀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한 곳에 이렇게 표시를 하면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다른 곳은 자동적으로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다윗을 통해 다윗이 앞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 다 알 수는 없어도 성령이 오실 예수님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다윗을 감동시키고 그 입을 통해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예언이 들어있는 성구는 다윗이 '나'라고 밝히면서 자기 이야기로 적고 있지만 그렇게만 보면 성경의 뜻이 크게 달라지거나 뒤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5:5,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계3:7,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이 성구들은 구약의 다윗은 단순히 왕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신약에서 다시 한번 명백하게 알리신 말씀입니다.
재질문 : 예수님의 부활을 다윗이 미리 봤다는 뜻은?
그러면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미리보고 성령님께서 시켜서 했다는 이야기 입니까? 성령님이 다윗을 통해 다윗 자신을 예수님으로 묘사했다는 말이 다윗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모르고 성령님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예언했다는 이야기 입니까? 좀 어렵습니다. 사도행전엔 베드로는 다윗이 미리 봤다고 그러는데 그 말은 다윗이 미리 보고 했다는 애기로 보이거던요 아니면 성령님이 미리보시고 다윗의 입을 빌어 말씀하신건가요? 답변 꼭 부탁드립니다.
답변 : 시16:8-11에는 '도성인신, 대속 사활, 영생'이 기록되어 있으니, 미리 보았다는 뜻
1. 모든 성경 기록에 적용되는 원리를 먼저 설명 드립니다.
행2:30에서 다윗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왕직으로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동시에 앞날에 대한 예언을 미리 하고 이를 성경으로 기록했다는 면에서는 왕이면서도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를 포함하여, 모든 성경 기록자들의 성경 기록에 대하여는 이런 면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선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는, 그 말씀에 담겨 있는 모든 미래사 전부를 다 알고 기록하게 하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2. 선지자의 자의식을 감동하여 기록하지만,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정도는 다 다릅니다.
선지자가 예언을 하거나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이 그 선지자의 주관 의식에다 대고 기록해야 할 내용을 가르치고 또 그 내용을 그 사람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기록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를 가르쳐 성경 기록은 영감으로 되었고, 그 영감은 성령이 기자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인격이 인격을 상대하는 유기적 관계로 기록하게 했다고 설명하게 됩니다. 이 유기적인 관계라는 뜻은 설명이 있고 이해가 있으며 질문이 있고 답변이 있는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알려주셨는지, 어느 정도까지 그자세한 사항을 다 알고 있는지는 다릅니다.
성령이 얼마나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는지는 성경 기록자마다 다르지만, 모든 성경 기록에 있어 동일한 것은, 성령이 기록자를 펜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 기록자의 주관 생각을 성령에게 스스로 붙들리고 자원하여 순종하게 만든 다음 기록했으니 '유기적 영감'으로 기록했다는 것이 동일하고, 두번째는 성령이 성경 기록자가 기록할 표현에 단 한 자도 착오가 없도록 일치가 되어질 때 한 자 씩 기록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경 표현은 일점일획도 가감없는 정확성이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3. 다윗이 미리 보고 미리 알았다고 했지만 그 미리 안 정도가 얼마나 자세하게 알았는지는 모릅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몇 가지 내용을 성령이 감동으로 알려 주시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자세하게 알려주셨는지는 성경에 기록된 정도로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사활에 대하여 다윗이 성경에 기록한 것보다 좀 더 자세하게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미리 보고 알았지만 막상 성경 기록을 할 때는 성령이 다윗에게 일부만 기록하게 했는지, 아니면 기록한 정도로만 알려주시고 그대로 다 적게 했는지는 아직 단정할 만큼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하나 분명한 것은, 구약의 지식은 예수님 당시만 못하고 예수님 당시 교회에게 허락하신 지식은 오늘에 비하면 어리고 흐리기를 이루 말을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실상에 자세한 것을 다 알지는 못했을 시대라고 생각한다면 다윗이 알았을 범위는 오늘 우리에게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또한 예수님 당시에 비해서도 크게 모자랐을 것입니다.
4. 성경 기록 자체를 가지고 다윗이 분명하게 알았을 범위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 다윗이 시16:8-11에서 기록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육체 문제: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죽음 문제: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부활 문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영생 문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이 이 내용을 기록할 때는 성령이 감동하여 '나'라는 기록으로 기록하였지만 이 본문의 '나'는 다윗 자신이 아님을 다윗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창3:15에서 이미 메시야가 여인의 후손으로 와서 악령의 머리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유다지파를 통해 구원계통이 이어질 것도 알고 있었으니 다윗의 왕권 계통은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과 자기 혈통을 통해 내려가고 있지만 장차 이 혈통 속에 구주가 오신다는 정도는 당시 신앙 있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던 일입니다. 이제 시16:8-11의 기록에서 그 내용은 바로 자기가 아니라 오실 메시야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기록을 통해 메시야에 대한 몇 가지는 알았겠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② 시16:8-11의 4가지 문제를 좀더 깊이 분석해 보면
첫째, 육체를 가진 분이라는 것을 본문에 기록했습니다.
시16:9에서, '육체'를 언급했습니다. 이는 오실 메시야는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것이라는 것은 알았다는 것이 다윗의 기록을 통해 다윗이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오늘 우리처럼 신인양성일위의 지식으로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인양성일위의 지식은 주후 400년이 넘어서 비로소 확립된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의 근본 출발이 되고 또한 가장 중요한 뼈대가 되는 지식, 즉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온다는 정도까지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오실 분이 죽음이라는 단계를 거칠 것도 기록했습니다.
시16:10에서,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라고 한 내용은 구약에서 사람의 죽음을 두고 늘 나오는 표현입니다. 육체를 입고 오실 메시야가 죽음이라는 문제를 부딪치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이라는 것은 죄 값인데, 죄 값이라면 메시야 자신의 죄 값이 아니고 바로 우리 죄 값 때문에 대신 죽는다는 대속의 원리까지도 알았다는 말입니다.
셋째, 오실 분이 죽음의 단계는 거치겠지만 바로 부활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죽으면 그 육체가 썩어져야 하는데, 그 육체가 썩도록 내버려지지 않을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메시야가 육체를 입고 오실 것과, 그 육체를 우리 죄 값 대신 죽게 할 것을 알았고, 또 그 대신 죽게 되지만 자기 죄 값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면 다시 부활할 것까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표현을 기록한 것은 겉으로 나타난 기록이지만 그 기록을 위해 성령은 다윗에게 이런 대속의 이치를 감동으로 알리시고 설명하시게 되고, 또 다윗은 배우고 깨닫고 모르면 질문하면서 성경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깊이와 자세한 대화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는 다 알 수 없으나 일단 표현된 내용을 보아 이런 방향이었다는 것입니다.
넷째, 부활 후 영생하는 문제까지를 보았습니다.
육체로 오고, 사망을 거치고, 부활을 하게 되고, 그다음 표현 된 것이 시16:11의 '생명'입니다. 사망과 부활 다음에 표현된 '생명'은 바로 영생입니다. 다윗은 우리 위해 메시야가 사활의 대속을 베푸시고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고 있음을 그 기록을 통해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③ 히11장에서 아브라함이 한 가지 사실을 통해 그 속에 담겨 있는 다른 진리를 배운 예가 있습니다.
히11:8-16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신다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죽을 때까지도 가나안을 주지 않자 하나님의 약속은 보이는 가나안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가나안을 이 보이는 가나안에서 마련하도록 해서 주겠다는 뜻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16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 하나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고 순종하고 또 죽는 날까지 소망으로 나아가는 바로 이런 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을 기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히11:17-19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자손을 준다고 해놓고 그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부활에 대한 지식을 깨닫게 됩니다. 죽었는데도 살아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면을 볼 때,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을 바로 이어 나가는 분이 다윗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말씀할 때 마1:1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 아브라함이 벌써 선대에서 선지자로서 이런 사건 하나를 통해 이렇게 하늘나라 준비와 부활의 지식을 깨닫고 가졌으니 그 후시대인 다윗 때가 되면 지식은 점점 발달하게 되어 시16:8-11의 기록처럼 예수님의 사활에 대한 면이 훨씬 더 자세하게 밝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렇게 점점 밝혀나가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점점 세월 속에 자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라가는 교회가 예수님이 오실 그 당시가 되어 세례 요한 때가 되면 구약 교회 중에서는 최고로 많이 알고 자세하게 알게 됩니다. 눅7:28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 한 것은 예수님을 아는 이 문제를 두고 구약교회 중에서 요한이 제일 크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석하게 되는 이유는 그 다음 말씀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했는데, 이는 신약교회를 두고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하여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고 나실 바 예수님을 여러모로 예언을 했으나 막상 예수님이 오신 이후 오늘 신약을 두고 비교한다면 신약 교회의 아무리 신앙어린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아는 일에는 구약 선지자들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밝히 알게 된 우리가 과거 어두울 때 예수님 오실 것을 미리 보고 미리 그 부활까지를 성령으로 알게 된 다윗의 기록을 두고 오늘 우리 수준에서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죄송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지식으로야 우리가 다윗보다 천지차이가 날만큼 많이 알지만 자신의 성화를 두고는 다윗을 죽는 날까지 본받아도 그 발바닥에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질문이 계셨으니 성경공부 차원에서 답변을 드린다면, 성령이 미리 알려주셔서 다윗이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오실 것과 사망할 것과 부활할 것과 영생할 것에 대하여 시16:8-11에 기록한 만큼은 알았을 것입니다. 미리 이 정도를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 기록 내용 정도는 미리 보면서 기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 벧전1:10-11을 참고하셨으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재질문 : 시편16편에 대하여
다윗은 사도행전2장25절에서 다윗이 저를 가르켜 하면서 시편16편8절부터 11절 전체를 예수님의 고백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절만 아니면 10~11절까지만 예수님의 예언 입니까? 아니면 8절부터 11절까지 모두 예수님의 고백(예언)입니까? 제가 고백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예수님의 고백이 아닐까 하는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시편16편1절부터 7절 나머지 절은 그냥 다윗의 고백일 뿐입니까? 아니면 그 말씀들도 예수님의 예언(고백)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만약 아니라면 그 말씀들하고 예수님의 예언(고백)과 결합 되었는지요? 그리고 8절을 보면 내가 내 앞에 계신 주를 항상 뵈웠음 이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보고 주라고 하는 것입니까? 11절에도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로 보이신다고 했는데 이것도 예수님이 하나님을 보고 한 이야기입니까? 그리고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도 시편16편을 하나님 약속의 성취로 인용을 하는데 바울도 베드로의 관점으로 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건 좀 웃긴 질문이지만 목사님은 이 시편16편 말씀을 베드로가 인용 했는 것을 100%로 이해하시는지요.
*나를 음부에 두지 마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소서 이건 예수님의 고백이 될 수도 있어서 고백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답변 : 성경의 주제는 '예수님'입니다. 구약 전부는 오실 예수님에 대한 소개입니다.
1. 질문 전체를 한 마디로 답변한다면, 성경의 주제는 '예수님'입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은 오신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예수님'입니다. 다른 곳에서 신구약 성경을 '사랑'으로 요약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사랑입니다. 따라서 같은 뜻인데, 표현상 어디를 강조했느냐에 따라 오가는 물류 이동면을 강조할 때는 '사랑'이라고 하고, 물류 이동에 막힌 것을 해결한 면을 강조할 때는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2. 성경의 주제가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주어로 삼아서 해석되지 않는 부분은 없습니다.
얼마나 직접 말씀했는지, 그 정도가 차이 있을 뿐입니다. 다윗의 입만 빌렸지 다윗의 경험일 수도 없고 다윗의 심정일 수도 없는 내용으로 예수님이 발언하신 것도 있고, 다윗의 경험을 통해 다윗이 자기 생각으로 발언한 형식을 갖추었으나 실은 그 다윗의 경험까지를 이용해서 예수님이 발언하시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발언은 다윗이 죄를 짓고 회개를 하는데, 그 회개가 다윗이 자범죄로 지은 자기 죄요 자기 회개인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려고 그 죄 지은 다윗의 회개를 통하여 발언하시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는 없으신데 우리 때문에 죄인으로 오셨고 죄인으로 죽었던 분입니다. 그의 평생 약한 모습, 낙심한 모습, 슬퍼한 모습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죄를 많이 지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간추려 그것만 연구하는 이단들도 있는 정도입니다. 우리를 대신하는 위치였고 신분이었다는 것을 그들이 잊은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육으로 오셔서도 하늘의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셨고 예수님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점8로 사셨습니다. 따라서 다윗을 통해 기록한 모든 말씀에서 예수님은 다윗이 발언한 '나'라는 표현에 해당되는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자와 성부의 관계를 좀더 새겨보시면, 빌2:5이하 말씀대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점G 형체를 가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다윗에게서 예수님이 육체로 온 상황을 그대로 다 볼 수 있습니다.
3. 바울이나 베드로나 같은 관점입니다.
성경은 누가 읽어도, 예수님의 구원을 주제로 읽어야 바로 읽은 것입니다. 이유는 성경을 우리에게 주실 때부터 구원목적으로 기록해 주셨다고 딤후3:15에서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답변자는 이 시편 16장의 말씀을 베드로가 인용했다는 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100%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믿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설교시간에 듣거나 혹 따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 말씀 하나 하나에 대하여 거의 빠지지 않고 반론 이견 질문 숙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르는 것은 있어도, 반론이나 이견이나 의문은 없습니다. 꾸준하게 노력하시되, 하나님께 믿어지는 은혜를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시라고 기도하신다면, 그리고 백목사님 설교록을 자세히 참고하신다면, 천하가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고 성경은 정확무오한 말씀이라는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 중에 세상으로 유력한 사람이 있거나 또 그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많으면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본격적으로 붙들고 나서부터는,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더 신이 나고, 더욱 확신이 생기고 있습니다. 또 유력한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할수록 더욱 담대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 좀 적극적인 분들은 정도 차이이지 이런 내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재질문 : 시편 16편에서 예수님을 예언한 절은?
베드로는 시편16:8~11절까지 모두 인용을 하는 것 같은데 8절부터 11절까지 모두가 다 예수님의 예언(고백)인가요? 아니면 9~10절 만인가요? 아님 9절에서11절까지 제가 보기엔 8~11까지인 것 같아요.
답변 :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 하리로다' 하신 말씀은 다윗의 자기 고백이면서 동시에 주님이 다윗의 입을 벌려 말씀하셨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충질문: 바울이 부활을 직접 본 것인가?
그렇다면 목사님 말씀은 바울을 제외하고 그 전에 베드로나 야고보나 11사도나 500명이 부활을 본 것은 사람들에게 들어서 아는 것이고 마지막에 부활을 자기가 직접 봤다는 바울의 논증이라는 겁니까?
답변 : 바울이 다메섹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님은 바로 '부활' 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누구도 부활하는 그 순간 그 찰나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
죽은 것은 사실인데, 죽었던 사람이 살아서 말을 하고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부활 후 예수님이 자신을 보이신 것은 마리아와 제자들과 500여 교인들이었고 또 바울에게까지도 비록 그 시간은 좀더 지나갔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셨습니다. 바울은 봤다고 했습니다. 그때 본 것은 죽은 몸이 막 일어나는 그 순간을 말하는 부활이 아니고, 부활해서 다시 살아있는 예수님이 되어 있는 그 예수님을 바울이 만난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