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로 왕(겔 28:11-17), 소제(마12:4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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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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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4
1. 질문 : 두로 왕(겔 28:11-17), 소제(마12:43-45)2770
1. 에스겔28:11-17에는 두로 왕에 대한 말씀인데 어떤분은 이 부분을 사탄의 타락으로 해석을 하던데 해석에 무리가 없는지요? 14절에 ‘기름부움을 받은 덮는 그룹'을 타락한 천사장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천사장이 아닌 두로 왕의 찬란했던 영광이 교만으로 인해 멸망할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합니다.
2. 마태복음 12:43-45에 물의 의미와 집이 소제되고 수리 되었다는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물을 말씀으로 이해하고 말씀이 없어 더 악한 귀신이 들어가서 그 나중형편이 심해졌다고 해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물을 말씀으로 해석을 하는데는 동의 하지만 바로 뒷부분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어 더 악한 귀신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부분과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씀이 없다는 것은 마음과 몸이 더 지저분해지고 수리 보다는 파괴되었다는 의미가 강하지 않을까요. 또 백목사님의 설교록의 어느 부분에선가 이 부분을 잠깐 접한 기억이 있는데 물이 없고 소제되고 수리되었다는 부분을 말씀 없이 세상이 말하는 선인들 즉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나 공자의 가르침을 가지고 마음에 수양을 힘씀으로 수양을 힘쓰지 않았을 때 보다 고도의 악한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 같은데 훨씬 논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인정이 됩니다.
또한 이렇게도 생각이 되어집니다.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귀신의 입장에서는 말씀이 없고 악한 세대이다 보니 자기중심, 자기위주가 강하여 오히려 더 많은 귀신이 활동하고 거처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그 나중형편이 더 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으로도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귀신편에서 볼 때는 그러하고 하나님편에서 볼 때는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가 바로 이해했는지 구체적인 설명 부탁합니다.
답변 : 겔28:11-17, 두로는 세상 요소 중 하나, 마12:43-45 말씀은 신앙생활에서 해석
1. 겔28:11-17
① 에스겔서에 나타나는 이방나라들은 세상의 종류와 우리 속의 옛사람의 요소를 말합니다.
에스겔서에는 이방 나라에 대한 책망이 나옵니다. 25장에서는 암몬, 모압, 세일, 에돔 등 이방나라에 대한 말씀이 있고 26장부터는 두로에 대한 책망이 있습니다. 질문하신 겔28:11-17은 두루에 대한 말씀 중 그 왕에 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이방 나라나 이방인을 상대할 때는 2가지 면을 기본적으로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첫째, 이방 나라나 이방 인물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반대하고 훼방하는 세상과 세상의 중요한 인물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애굽과 같은 위치에서 애굽의 장점으로 이스라엘을 핍박하거나 아니면 타락하게 만드는 세상 요소 그런 인물이 지금도 믿는 사람 주변에는 늘 있기 마련이고, 바벨론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이방 나라와 이방 인물은 꼭 불신자 불택자들로 우리 신앙을 가로막는 경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옛사람의 요소를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로보다 더 큰 영화와 부를 가졌던 경우가 바벨론이고, 두로왕보다 더 사치스럽고 자기를 영화롭게 했던 왕이 바벨론 왕입니다. 그 바벨론은 오늘 안 믿는 세상을 가르치지만 동시에 우리 속에서 세상 요소가 많아지고 세상 살이가 든든해지면 하나님과 맞서는 교만이 생기는데 그것도 역시 바벨론적 요소입니다.
② '두로'를 해석하실 때
두로가 구약에서 어떤 나라인지를 살피려 해도 성경에서는 부분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세상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서나 사회지리과목에서처럼 일목요연하게 감이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성경이 두로에 대하여 말씀하는 부분 중 자기가 알 수 있는 부분들만 먼저 살피시면서 그 부분들을 가지고 오늘 세상 속에서 어떤 면이 그런 두로와 같은 요소인지 비교해 보시고 또 자기 속에 있는 세상 요소 중 두로와 같은 요소를 살펴보시면, 해석에 기초 방향은 쉽게 잡을 것입니다.
그렇게 몇 가지를 먼저 확인한 다음, 조금 애매한 부분으로 차근차근 넓혀 적용해 가시면 이전에 감을 잡지 못했던 고대 '두로'라는 나라가 오늘 우리 신앙현실 속에 어떤 면으로 다시 등장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나는 지명이나 인명에 대한 해석법입니다.
두로는 이방나라이며 두로왕은 그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두로와 같은 세상, 두로왕과 같은 세상의 중심세력은 오늘 우리 각자 현실에도 반드시 있습니다. 두로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그 왕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26장으로부터 자세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세상 모습이 두로라는 이름이고, 그런 세상 모습에 가장 중심인물이 바로 두로왕입니다.
③ 바벨론에 대한 해석 자료가 많습니다. 먼저 참고하신 다음 두로를 공부해 보셨으면 합니다.
두로에 대하여 좀더 자세하게 참고하시려면, 이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설교/녹음본/에 들어가셔서 '요한계시록 18장'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계시록 18장은 바벨론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벨론은 애굽과 함께 세상 전체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특히 세상이 가장 힘있고 강력한 세력이 되었을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두로와 같이 그외 다른 이름들은 세상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계18장의 바벨론에 대한 해석을 먼저 참고하신 다음 에스겔서를 보시면 성경 해석의 기본 방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신 겔28:11-17 해석 소개는 '에덴동산'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 '완전하더니 불의가 드러남' '하나님의 산에서 쫓겨남'이라는 표현들을 근거로 한 것 같습니다. 그룹은 천사라는 뜻이므로 하나님께 특별한 직책에 임명받았던 천사가 에덴동산이라는 장소에서 타락에 관계 되었다는 면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을 사탄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그 사탄이 오늘 우리에게 역사할 때 그 사탄의 원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안 믿는 사람을 통해서나 또는 우리 속에 옛사람의 요소를 통해서 그렇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④ 백영희목회설교록에서 구약 선지서에 대한 해석은 거의 유보되어 있습니다.
이곳 홈의 연구 방향은 우선 우리 시야에 있었던 백영희신앙노선의 정확성 여부가 첫 순서입니다. 백목사님 관련 설교나 목회 자료의 확보, 분석, 사실 확인 등을 거쳐 앞으로도 참고해야 할 그의 신앙노선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1차 노력입니다. 현재도 조금 더 진행해야 할 작업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백목사님이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될 수 있으면 2차 작업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경 해석에 있어 백목사님은 박윤선목사님 또는 일반 성경신학자나 설교가들과 달리 성경을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겉만 훑고 넘어가는 것을 대단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세상지식은 깊은 것 같아도 그 수심이 너무 얕기 때문에 한번 쭉 훑어버리면 두번 볼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성구 속에 전 성경이 들어 있고, 그 한 성구 속에 우주와 영원무궁까지 다 들어 있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한 성구 한 토씨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힘껏 깊이 묵상하여 한 성구 속에서 전체 성경을 읽어낼 수 있는 데까지 이르기를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백목사님 설교는 그 설교 기록 자료는 역사 최대라 할 만큼 방대하지만 설교한 내용을 본문으로 분류하면 극히 일부 성구에 집중적으로 편중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백목사님 설교는 그 깊이에 있어 오늘 최고의 설교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설교한 범위가 성경의 일부에 그치고 있어 너무 아쉽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질문한 에스겔서도 그 분량이 적지 않은 성경인데도 백목사님 평생에 몇 번 설교 하지 않은 성경입니다.
이곳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경의 일부 성구만 편중해서 깊이 살펴놓은 백영희목회설교록의 내용은 사실 백목사님이 한번도 설교하지 않았던 거의 대부분의 성경 성구들에 대하여 그 해석을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열쇠라는 점입니다. 질문하신 겔28:11-17 성구에 대한 해석은 백목사님으로부터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록에서 대단히 많이 설명했던 바벨론에 대한 설교는 구약 성경의 모든 지명에 대하여 끝없이 해석할 수 있는 만능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성구 해석에 있어서 이곳 홈에서 제공하는 '녹음본설교' '노트본설교' '주해사전' 등을 우선 찾아보셔서 직접 설명한 부분이 있다면 그곳에서 바로 해결하시기를 권합니다. 만일 그곳에 찾아도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면, 찾고자 하는 그 성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석해 놓은 다른 성구를 먼저 찾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⑤ 성경 해석에 있어 가장 조심할 것과 가장 바람직한 면을 동시에 말씀드린다면
성경을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뒤지다가 이 성구의 뜻이 무엇일까 하고 그 성구를 찾아보는 것은 여러가지 위험이 많습니다. 특히 교리나 기타다른 성경교재로 성경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분야가 있어 관련 있는 성구를 찾아보고 또 인용들을 하는데 이런 식의 성경접근은 성경이 자기를 인도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성경을 세상 도서관 서적을 이용하듯 상대하는 태도가 되어 극히 위험한 일이 됩니다.
물론 신앙이 어릴 때야 성경을 욕할 수도 있고 한 부분만 떼내어 자기 입맛대로 써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조금씩 자라면서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면 지난날은 철이 없어 그러했다고 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식을 요구하는 시점이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대하고 접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그 기록하고 모아주신 순서를 따라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는 일이 먼저 많아야 합니다. 그렇게 충분히 정독을 하면서, 동시에 예배 때 설교로 들은 내용은 또 그 해당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기 눈이 밝아지면서 성경 전체가 자연스럽게 자세하게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알고 깨닫게 된 성구는 그 성구가 주신 은혜와 명령을 따라 자기가 실행을 한 만큼 그 다음 더 밝아지는 순서로 나아가고 또 그 밝아져서 깨닫게 된 면으로 실행을 하면 다시 더 밝아지는 영안을 갖게 됩니다.
이런 순서로 나가지 않고 어느 한 특정한 부분만 현미경을 대고 조명하게 되면 일시는 그 부분을 깨닫게 되는 것 같은데 이는 세상 사람이 세상 지식을 대하듯 하나의 지식주의로 성경을 대하는 것에서 그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으로 진행을 하다보면 전형적으로 성경지식이 많아지는 만큼 그 지식으로 자기 건설구원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타를 정죄하는 교만과 비판의 지식에 그치게 됩니다.
따라서 성구 해석은 잘 아는 부분, 먼저 확실하게 깨닫고 알게 되는 부분을 먼저 붙들고 그 다음에는 실행을 통해 그 다음 더 밝은 세계로 나가는 방향에 주력을 하셨으면 합니다.
2. 마12:43-45
① 믿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다 귀신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귀신에 붙들려 살고 또 귀신을 섬기고 살고 있습니다. 돌부처를 믿든지 칠성 귀신을 믿든지 속으로 하나씩 섬기는 것이 있습니다. 혹 자기는 진정 무신론자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이 자기를 움켜쥐고 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특히 나이 많은 분들은 수도 없는 귀신을 섬기고 또 그 귀신들에게 붙들려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 사회는 참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지만 귀신들이 무서워 죄를 잘 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부모가 죽어 귀신이 되어 자손을 해를 끼칠까 죽은 부모에게도 벌벌 떨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잡귀신들이 미개하던 시절의 미신이라고 취급하여 다 사라진 것 같아도 인간 본능 속에는 귀신을 무서워 하는 것이 있어 지금은 외계인이니 또는 어느 호수의 괴물이니 하여 또 다른 형태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② 믿게 되면, 그 인격 속에 귀신들은 전부 소탕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런 귀신류들이 전부 말끔하게 정리가 됩니다. 그것을 가르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믿고 미신도 이종교도 또 세상 허황된 모든 두려움도 다 정리하고 나면 그 사람의 마음 세계가 하나님이 원래 만들었던 깨끗한 상태가 됩니다. 그것이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된 상태'입니다.
원래 인간 인격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이 들어와서 별별 공포와 죄와 더러움을 생산했는데 그것이 나갔으니 비게 되었고, 소제되고 수리된 것은 그 귀신이 들어와서 몹쓸 인격을 만들었고 또 인격 속에 설치하면 안 되는 별별 것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모두 뜯고 부수고 없애고 이제 원래 하나님께서 만들었던 상태로 다시 회복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 가장 핵심 원인은 바로 타락 후 인간 속에 들어왔던 귀신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 의사에 상관없이 귀신이 제집을 삼고 들어와 앉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게 되면, 법적으로 그 인격에 귀신이 왕권, 주권, 소유권을 포기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은 후 큰 은혜를 받고 나면 일시적으로 그 사람 전체가 외부에서 볼 때에도 예수 믿기 전과 아주 달라진 모습을 보이도록 역사적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래서 과거 섬기던 귀신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그때 얽매였던 세상 모든 관습과 잘못된 인식의 틀을 싹 벗어던지고 나면, 이제 믿는 사람으로 정식 출발을 한 것입니다. 귀신 대신에 이제 성령에 붙들리고 세상법 대신에 성경으로 사는 진리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③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귀신을 정리한 사람이, 신앙생활에서 타락하게 되면
이렇게 중생되고 또 큰 은혜 받아 새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만일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참으로 고약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안 믿을 때는 나름대로 속에 가지고 있던 귀신이 무서워 어느 정도 행동에 제한을 받던 사람이 이제 그것은 미신이라 해서 싹 치워버렸으니까 귀신 무서워 거리낄 것은 없는데, 귀신 대신 새로 모신 하나님까지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이는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정말 큰 문제아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잘 믿다가 타락한 교단들, 신앙생활 잘 하다가 교권싸움에 휘말리는 교회들, 진실 되게 믿다가 세상 투쟁이나 욕심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어느 교회 청소하는 사찰 집사님이 검찰청에 가서 어찌나 검사 앞에서 큰소리를 치고 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해놓고 왔는지 그 검사가 검사생활 평생에 저렇게 무식한데 저렇게 위대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는 말이 멀리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서부교회 내분 때 일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설교에 은혜를 받아 세상 사람들이 다 겁을 내는 검찰청도 깔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위인이 되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납짝 엎드러져 죽은 사람처럼 낮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권싸움에 설치고 나서니까 이제 세상도 하나님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실 귀신 중에 상귀신, 귀신 중에 아주 제일 억센 귀신 일곱을 합해 놓은 효과가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④ 교회 역사 속에서 이런 예를 찾아보시면 보다 쉽게 해석이 될 듯 합니다.
이것이 교파적으로는 천주교로 예를 들면 이해가 될 듯 하고, 이것이 범위를 좁혀 교회적으로 비교를 한다면 서부교회가 될 수도 있고, 이것이 한 인물로 말한다면 ‘옥토밭'이라는 삐라를 전국교회에 흩날렸던 목사님과 그 지지 교인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상상도 못할 일을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벌이는 것입니다.
아주 생활 속에 간단한 것으로 비교를 하자면, 예수님 믿으면서 죽은 부모에게 절하는 제사는 성경이 가르친다 해서 깨끗이 없애버리고, 그렇다면 산 부모에게 하나님 대하듯 해야 할 터인데 산 부모를 대하는 것은 귀찮아서 치워버리는 젊은 부부들의 교회 출석 후 행동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죽은 귀신에게라도 잘했는데, 그 귀신이 무서워 행동에 조심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죽은 귀신은 세상에 나와서 활동을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 배워놓았기 때문에 죽은 귀신 겁날 것은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소제하고 수리된 집입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원상복구가 되었으면 그 집에 성령을 모셔서 자기가 성전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집에 주인으로 계실 성령을 무시하고 쫓아내버리면, 그다음에 들어오는 귀신은 아주 대마귀가 들어와서 불신자들도 혀를 내두를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⑤ 질문 성구의 다른 면들을 조금 자세히 살펴본다면
첫번째 나갔던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했다는 말씀은 그 사람 밖으로 나갔던 귀신이 말씀이 깨끗게 해놓는 다른 믿는 사람들에게는 들어가지를 못하고 그렇게 말씀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신 자기가 편하게 생활할 틈을 찾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찾다가 못 찾으면 귀신이 포기를 하는가? 포기할 리가 없는 귀신입니다. 자기가 한번 쫓겨 나왔던 그 사람에게는 그 귀신이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가? 성결교회처럼 완전교리에 의하여 한번 그 사람에게서 쫓겨난 귀신은 그 사람에게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귀신이 하루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들락날락 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하여 알아야 할 것은 다시 한번 더 들어올 때는 이전과 같은 정도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다음에 들어올 때는 이전에 쫓겨났을 때 쫓겨날 약한 귀신이 아니고 이제 과거처럼 회개해서는 어림도 없는 아주 억센 귀신이 들어온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