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잃어버린 양 비유에 대한 문의(눅15장)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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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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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7. 질문 : 잃어버린 양 비유에 대한 문의(눅15장) 1780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양, 드라크마, 아들에 관한 비유가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록(90호)을 읽으니 양과 드라크마는 회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회개(기본회개를 포함하여 평생회개)는 우리 스스로는 회개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회개케 해 주셔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양과 드라크마 비유의 말씀은 이해가 되는데,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비유는 좀 다른 각도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비유는 앞의 두 비유와 다른 맥락의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세 비유를 같은 맥락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답변 : 모든 성구는 교리라는 곳에서 하나로 일치한다는 점을 참고하셨으면
다른 곳의 다른 성구들이 하나로 연결될 때 이것을 교리라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성구는 교리라는 곳에서 하나로 일치하고, 교리로 말하는 곳에서는 모든 성구를 다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구원의 능동이요,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라는 교리가 성립됩니다. 이 교리는 기독교의 가장 근본 되는 교리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 15장의 3가지 비유도 전부 이 교리에서 일치점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1. 크게 보실 때는 눅16장의 3가지 비유는 함께 보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① 잃은 양 비유
총 100마리 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 1마리가 빠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 중에 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헤매고 있으니 목자라면 그 사람을 찾아 교회를 다니게 하도록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양 한 마리를 위해서 목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우주보다 귀한 한 생명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앞서 믿는 우리들의 부끄러움이 참으로 클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설명하는 부분은 기본구원을 두고 본문을 살펴본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비유는, 한편으로 이미 믿은 우리에게 말씀대로 고쳐서 바로 된 장점이 99가지가 있다 해도 아직까지 고쳐야 할 단점이 하나가 있다면 그 단점을 고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단 하나라도 부족이 있고 모자람이 있다면 그 면까지도 다 고칠 수 있도록 주님이 대속하셨으니 이 대속을 힘입어 몸과 마음에 잘못된 모든 면을 고쳐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설명하는 부분은 건설구원을 두고 본문을 살펴본 것입니다.
② 드라크마 비유
열이라는 숫자는 백이라는 숫자와 같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숫자입니다. 전부를 뜻하는 숫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성결함을 받은 것을 은전인 드라크마로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기로 되어 있는데 아직 믿지 않은 사람을 찾아 교회로 데려다 놓을 때까지 쓸며 찾아야 한다는 기본구원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중생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속의 마음과 몸까지도 이 대속으로 완전하게 깨끗이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이 대속으로 깨끗하게 만들지 않은 몸과 마음의 요소가 있다면 부지런히 쓸어서 찾는 이 여인처럼 우리도 자기 단점을 고쳐 자기의 심신이 완전히 성화가 되도록 건설구원에도 힘쓰야 할 말씀입니다.
③ 탕자 비유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전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자본을 제 손에 쥐고 아버지를 떠나 허비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의 집 교회로 찾아 들어오면 과거 허물을 묻지 않고 천국 백성으로 맞아들이고 기뻐한다는 기본구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할 때 전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신사참배를 했던 한국교회가 이제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아와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고 돌아오지 않으면 타국 돼지마구에서 그대로 최후를 맞는다는 건설구원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기 속에 알면서도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한 면이 있다면 바로 그 면을 가르치는 성구이기도 합니다.
2. 회개란 하나님께서 회개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면을 두고 이 성구들을 살펴본다면
'잃어버린 양'은 자기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주님이 찾아 가서 그 양을 데리고 왔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하지 인간이 제 힘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크마' 비유에서는 그 여인이 찾을 때까지 온 집을 쓸었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가 제 발로 걸어서 주인에게 온 것이 아니고 주인이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크마 비유에서 '여인'은 하나님이 아니고 사실은 교회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성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잃은 양 비유에서는 목자를 예수님으로 말하면 회개도 주님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드라크마에서는 우리가 힘써 다른 사람을 전도해야 한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리를 붙들고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회개는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고 또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는 것도 인간이 볼 때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하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싶은 마음과 여건을 주셔야 회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 원리가 됩니다.
탕자비유도 집 나간 둘째가 자기 발로 걸어 들어왔지만 돼지마구에서 아버지 집으로 돌이키려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역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3. 설교록에서 눅15장의 3가지 비유가 다른 방향에서 설교된 것 같아도 실은 같은 내용입니다.
백영희설교록은 '목회'설교록입니다. 사람을 길러 가기 위해 말씀을 증거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한 성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진리 중에서 그날 설교에서 교인들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성구는 어느 한 성구라도, 세상에 살다간 모든 성도의 모든 현실에서 모든 면으로 필요한 면을 다 가르치고 있는 무한한 진리입니다.
어느 주석이나 설교록에서 어느 성구를 해석하면서 만일 그 성구에 그 해석한 내용이 전부라고 한다면 성경신학의 근본을 몰랐습니다. 성경 한 성구는 모든 성경 전부와 연결되어 있고 그 성구는 인류 역사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이 어느 한 성구를 해석할 때는 그 당시 교인들을 위해 어느 한 일면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구에 대한 해석의 범위를 현 상태로서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범위는 교리적 이해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진리로 확인된 내용은 모든 성구에 다 해당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한 성구의 해석은 최소한 모든 교리를 다 포함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질문하신 눅15장에 대한 설교는 이런 교리를 참고하셔야 합니다.
4. 회개를 가지고 예를 든다면
회개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것이라는 것은 교리입니다. 따라서 어떤 성구에도 이 내용은 다 해당이 됩니다. 어떤 성구가 만일 자기 힘으로만 회개한 듯 보여도 이미 모든 성경에 의하여 그 회개는 하나님께서 이미 역사하셔서 회개하도록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이 또한 성경의 교리입니다. 어떤 성구는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표현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삼위일체 교리라는 것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눅15장의 3가지 비유도 하나님께서 회개를 시켜 주어야 회개하는 것이라는 교리는 다 해당이 됩니다. 다만 목회자로서 설교할 때 이 3가지 성구를 가지고 수많은 기준으로 수많은 면을 가르치다 보면 어떨 때는 앞에 2성구가 하나가 되고 뒷성구가 따로 하나가 되는 듯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