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포도나무에서 난 것(눅22:18)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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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포도나무에서 난 것(눅22:18)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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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질문 : 포도나무에서 난 것(눅22:18) 578

1. 관련 성구

마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막14: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22: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2. 질문

1)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2) 그것이 무엇을 비유했기에 예수님께서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나요?
3)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 분명 비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니 19절에 포도주를 조금 입에 대신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합니까? 십자가에서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셨을 뿐 포도주는 마시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까? 아니면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비유니 상관없는 말씀으로 봐야 합니까? 성경은 한치도 오류가 없다는 믿음으로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 설명해 주세요.


답변 : 성경 ‘포도’의 의미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1.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뒤에 포도주를 마셨다는 성구가 있어 모순 같습니다.

① 성경은 모순 같아 보일 수는 있으나 모순은 아니니, 모순이 되지 않도록 해석하면 되어집니다.

유월절 만찬에서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는데 십자가상에서는 포도주를 마셨으니 일단 모순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정확무오하니 뒤에 마신 포도주는 앞에 것과 다른 것입니다. 성경의 정확무오를 항상 먼저 생각하시고, 모순된 내용은 내 눈에 모순일 뿐임을 기억하여 여러 각도에서 다시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우선 성경의 포도주는 성도를 세상으로 향하도록 취하게 하는 세상지식을 계17:2에서는 음행의 포도주라 하였고, 또한 질문하신 본문에서는 대속의 희생을 포도주로 표현했으며, 요15:2에서는 포도열매를 예수님 닮은 참사람의 인격을 가르쳤습니다. 질문과는 약간 다른 문제이지만, 성경의 단어가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음을 먼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② 유월절은 예수님 십자가 대속 때까지 해마다 반복되야 하는 구약 제도였습니다.

우선 유월절 만찬은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이 떡은 예수님이 우리 위해 내놓으시는 몸이요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 곧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죄인인 우리의 죄 값을 당신의 살과 피를 내놓아 죽음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은 모세 때부터 내려온 제도이며 세상에서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실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하여 해마다 지키던 제도입니다.

이제 이 밤에 예수님이 잡히시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게 되면, 해마다 격식을 갖추어 꼬박꼬박 지켜야 했던 유월절 제도 자체가 필요 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까지는 우리의 죄가 사함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유월절 절기에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해마다 기념했던 것이며 그 기념을 통해 그 당시에 필요한 구원의 역사를 단번으로 또 임시로 또 불완전하게 받아왔던 것입니다.

③ 예수님의 피, 그 포도주는 이 땅 위에서는 두번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희생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직접 죽음으로 모세 때부터 내려오던 모든 구약의 약속을 단번에 완전하게 또 영원히 해결해 버리기 때문에 유월절 절기를 통해 장차 해결될 메시야의 구원을 더 이상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즉 유월절을 제도적으로 더 이상은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으로 끝이 나게 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다시는 대속을 위해 흘릴 피는 반복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그날 만찬에 포도주를 가지고 말씀한 것은 예수님의 생명, 곧 예수님의 피를 흘려 그 구원을 완성한다는 것이니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구원을 위해 더 이상 구약 짐승의 피가 필요 없게 되었고 예수님 피 흘리심으로 이 땅 위에서는 구원을 위한 희생의 피는 끝이 났습니다.

④ 구원은 단일이나 그 전개는 여러 순서가 있습니다. 대속, 적용, 영원한 자유가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그 만찬을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죽었고 또 부활하셨으니 우리 구원이 완성되었고 그 후 신약 마지막 때까지는 이미 완성시킨 구원으로 모든 택자를 구원하고 또 그들을 건설구원으로 기르십니다. 그 구원을 실제 우리에게 덧입히는 기간은 신약 끝으로 잡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님 십자가 구원의 완성 이후 계속된 모든 땅 위의 어지럽고 복잡했던 구원 적용 과정을 다 정리하고 이후 아버지 나라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가지게 된 구원을 새 세계에서 새롭게 영원히 누리게 됩니다. 그 영원한 나라에서는 땅 위에서 희생한 십자가의 피와 다른 영원한 새 희생으로 살아갈 나라입니다.

⑤ 예수님이 음식으로 먹은 떡과 포도주가 있으며, 대속의 상징으로 먹은 떡과 포도주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입에 댄 신 포도주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 우리를 대신하는 고난의 지극한 최점; 통과하며 그 육체에 공급되어진 다른 의미의 포도주이며, 유월절 만찬에서 마신 포도주는 예수님이 피 흘려 우리를 구원하는 그 '희생'을 표시한 것이니 한번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예수님이 우리 위해 살과 피를 희생하셨습니다. 그런데 포도주만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떡은 그 후에도 마실 수 있다는 말이 되고 그래서 부활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떡을 먹게 된 것이라면 이 떡과 포도주는 질문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마신 포도주처럼 단순히 포도로 만든 음료수입니다. 그리고 그 포도 음료수를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하고 또 마셨으니 모순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살과 피는 상징이고 그 피를 상징한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는 말은 이 땅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단 한번의 죽음으로 구약 모든 예표와 제도는 끝이 난다는 말이기 때문에 대속에 쏟은 피와 살이 꼭 같이 두번 반복할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포도주가 대속의 희생을 의미한다면 포도주 뿐 아니라 떡도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잡수신 떡은 신령한 양식을 상징하기는 했지만 육체의 양식을 먹는 부활의 몸을 보이시기 위해 먹었던 일반 음식이었고,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에서 말씀하셨던 '떡'은 예수님의 살을 의미했으니 이 역시 다른 떡입니다.

그 예수님의 살은 단 한번의 희생으로 바쳐진 다음에는 다시는 이 세상 끝까지 두번 바쳐질 몸이 아니기 때문에 포도주 뿐 아니라 떡도 예수님은 다시 먹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되며 또 실제 그런 의미의 떡은 먹지 않았고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2. 성경의 성구에 모순 같아 보이는 부분이 있을 때 이를 대하는 자세

질문하신 '포도주'에 대한 문제는 원래 포도주에 대한 해석보다 '성경의 정확무오'를 중심으로 지적된 것입니다. 포도주를 중심으로 설명을 우선 하였으나, 모든 성경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모순 같아 보이는 내용들을 상대할 때 참고할 자세를 덧붙이겠습니다.

① 성경이 정확무오하다고 할 때는 우리의 계산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기록했다고 하기 때문에 기록한 줄 알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성경을 고고학적으로 또 문학사적으로 연구하여 인간의 작품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모든 신학의 방향입니다. 이곳은 이런 전체 방향 전부를 부정하고 반대합니다. 성경은 성경 스스로 하나님이 기록하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믿고 성경을 읽고 배우다 보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기록한 것이라는 점을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하다는 것은 우리가 계산해보고 또 전부를 맞추어 볼 때 흠이 없고 틈이 없기 때문에 정확무오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성경을 정확무오하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식하게도 또 어리석게도 그런 줄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성경을 읽고 배우다 보니까 참으로 성경은 틀린 것이 없고 잘못이 없다는 것은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대하고 이렇게 성경을 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신본주의라 하고 그 반대로 믿는 것은 인본주의 과학주의라고 하는데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② 성경의 모순을 발견할 때 가지는 자세 3가지가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 도중,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십자가상에서 포도주를 입에 대셨으니 이는 명백히 모순입니다. 이런 모순으로 보이는 성구를 두고 구체적으로 3가지 정도의 자세가 나오게 됩니다.

우선, 질문자가 그런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 일반인을 기준으로 말씀드린다면, 이런 모순 된다고 보이는 성구를 우연히 비교하면서 마음속으로 성경도 틀린 곳이 더러 있더라고 느끼고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믿고 속으로는 다 믿을 것이야 있겠는가 라는 자세가 나오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다음, 그보다 좀더 적극적인 사람은 성경에서 그런 부분만 찾아 스스로 의혹을 만들고 그 의혹에 스스로 빠져 성경을 부인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고 이후로는 최대한 성경을 부인하는 방향에서 해석하고 설명하게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신대학교 또는 자유주의 신학자 등등의 이름들이 바로 그런 부류입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자와 같이 정확무오한 것이 성경이어야 옳겠고 또 성경은 정확무오하게 기록되어 있기를 원하는 심정을 가지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본다면 연구자세적이지를 못하고 오히려 자기 소원에 따라 결과를 억지로 꿰어 맞추는 것이니 쉽게 말하면 제작을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도는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복 받을 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는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빛을 능력으로 비추어 진정으로 깨닫게 해 주심을 기억하여 모든 성경에 그런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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