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삼일동안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눅23:43)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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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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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14. 질문 : 삼일동안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눅23:43) 3287
교리문답 9번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형 대행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대신 지옥 형벌 받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자기 위한 것임을 믿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공로가 나의 의가 되나니 이것이 하나님의 의다’
1, 예수님께선 삼일동안 지옥형벌감당을 위해 지옥을 갔다 오셨는지요?
2, 아니면 어떻게 지옥형벌을 받으셨는지요?
3, 십자가에 죽으시고 몸은 이 땅에 계셨고 마음과 영은 어디에 계셨는지요?
연구실/ 남단에서2/에 있는 참고자료 : 벧전3:19의 신학적 해석과 성경적 해석의 예
1.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은 육체를 지상에 두시고 3일동안 어디에 가셨는가?
1987년으로 기억되는 어느 양성원 강의시간, 사도신경에서 '장사한 지 사흘만에'라는 말 바로 앞에 '음부로 내려갔다'는 내용이 원래 있었다는 신학적 설명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동안 음부에서 영들에게 전파하신 것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도신경과 베드로전서 3장 19절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학설을 소개하였고 그 중에 천주교의 주장도 학설 중 하나로 소개를 하고 있었는데 설명이 계속되면서 어느덧 강의하는 교수는 신학적으로 사도신경이나 베드로전서 3장을 근거로 할 때 예수님은 음부에 내려갔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하고 나갔습니다. 물론 천주교의 연옥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 사망 3일간 음부로 내려갔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현이 확실하게 나오자, 학생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하고 이런 저런 반론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예수님이 음부에 내려갔다는 것까지는 일단 성경 기록이며 사도신경에서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니 그기까지는 인정을 한 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연구할 문제라고 설명해 나갔습니다. 학생들은 예수님이 음부로 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부감이 많았으나 원어가 그렇고 성경의 앞뒤 문맥이 분명하지 않느냐는 설명에는 그냥 쳐다만 볼 뿐이었습니다.
2. 그때 잠실동교회에서 공부를 하러 온 주일학교 반사선생님의 반론이 나왔습니다.
20대의 주일학교 평범한 반사선생님이었던 그 분은 당시만 해도 성경을 많이 읽었던 분이고 또 백목사님 설교록에 푹 빠져 있었으며 일반 신학계에서 상식적으로 통하는 서적은 전혀 읽지도 보지도 못했던 순수한 공회 내부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이 손을 들고 눅23:43을 인용하며 반론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한참동안 강의실 안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담당 교수님은 '한번 연구해 봅시다.' 라는 말로 그 토론은 끝이 나고 다음 강의 내용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은 우연히 그 강의를 참석하였고 그 순간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 신학의 최 중심부에서 10여년 가장 정통의 신학과정을 밟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공 교수님의 강의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떤 신학교육이나 추가 공부를 하지 않았던 한 청년이 성경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하고 나서는 순간이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 대한 이곳의 집착을 쉽게 풀이한다면, 이런 모습으로 세계 신학과 교회를 초월하고, 진정 성경 한권으로 성령에 붙들려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자기 현실에서 충성하는 것으로 복음 운동에 부족함이 없는 노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해작업을 정리하면서 해당 본문을 접하게 되었고 잠깐 이전 일을 떠올렸습니다.
답변 : 낙원에 계셨다고 눅23:43에서 말씀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지옥형벌을 받았다'는 표현
십자가에서 죽을 때 예수님이 당한 고통은 일반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과 달랐습니다. 택자 전부의 영원한 고통 전부를 다 받아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통의 총량은 바로 옆에 못 박혔던 두 강도의 고통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죄의 값은 그 값을 다 받아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택자 전부가 지은 죄 전부로 인하여 당할 우리의 영원한 고통 전부를 십자가 위에서 한 순간 다 받으면서도 끝까지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붙들려 그 사망의 순간을 통과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그 죽는 순간 바로 낙원으로 가셨음은 답변자보다 앞서 ‘도움이' 성함으로 답변하신 분께서 설명하셨고 또 이곳 /연구실/남단에서2/45번/자료에서도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통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설명하는 주석과 설교들을 많이 접하지만 ’십자가 형벌'의 고통만을 강조하지 우리 택자 전부의 영원한 고통을 그 순간에 다 담은 고통이라는 설명을 들어본 기억은 없습니다.
세상 불신자들도 자기 사상이나 민족, 가족 또는 조직을 위해 갖은 고문을 다 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시대 사육신의 고문 장면도 있고 가깝게는 순수 공산주의자들이 자기 사상을 위해 수없이 죽어가고 극심한 고문을 당해도 변절하지 않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불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으며 일본 사무라이들은 아예 그런 죽음을 무슨 휴대품처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아무리 컸을지라도 로마정권 아래 수도 없는 사형수들이 그 십자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적질을 하고 강도질을 하고 또는 반역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그런 일반 인간들의 고통과 다른 것은 ‘로마제국의 십자가 사형제도의 특수함'에 있지 않습니다. 택한 우리 전부를 대신해야 하는데 우리 전부가 영원히 당할 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것이 최종 최고로, 또 전부로 덮쳐진 순간이 바로 십자가 위의 고통이었습니다. 따라서 옆에 있던 두 강도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십자가는 일반인들에게는 꼭같이 느껴지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우주적 무게로 고통이 누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주적 고난'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이 물질계에서는 그 이상의 범위로 비할 수가 없기 한번씩 표현하는 정도입니다.
2. 예수님의 3일간 상황은
예수님의 몸은 무덤 속에 있었고 그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은 영과 함께 낙원에 가서 계셨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어린신앙에게는 가장 쉽게 또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질문자 정도라면 몸을 벗고 난 이후의 영과 마음은 시공에 제한을 받지 않는 상태임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이미 공간적 제한은 해당이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즉, 몸을 입고 이 땅 위에 죄의 몸으로 살 때는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벽에 제한을 받아서 점L 한 장 뒤를 보지 못하고 또 1초 순간 뒤를 알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몸을 벗고 낙원에 간 우리의 마음과 영은 시공을 초월한 영계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부활하게 되면 부활한 몸까지도 그렇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몸은 이 땅 위에서도 죄는 없으시나 죄인인 우리를 대신했기 때문에 악령에게 당하고 살았으며 물질의 한계를 겪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몸을 벗어놓은 후 예수님의 마음과 영은 완전한 상태의 존재이며 영계로 옮겨진 신령한 존재이고 또 그 실력은 완전한 존재이므로 어떤 공간적 제한도 없습니다. 그 마음과 영이 3일 후 그 몸을 다시 입게 되는데 그 후로는 그 몸까지도 시간과 공간에 제한 받지 않은 상태임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대하여 천주교가 중심이 되어 고래로부터 별별 주장이 많은 이유는 인간의 고정 관념, 자기 선입관념에 시선을 가지고 자기 수준에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의 사후와 부활 그리고 그 이후를 기록할 때 공간에 제한을 받는 것처럼 종종 표현한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표현함으로 강조하고 가르칠 면이 있어 그런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에게 눈이 있다고 성경이 표현하지만 하나님은 물체도 영체도 없는 무형의 존재이므로 하나님에게는 성경이 표현한 ‘눈'도 ’귀'도 ‘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표현한 것은 그렇게 표현해서 가르쳐야 할 신앙어린 우리 때문이고 또 신앙이 장성했다 해도 그렇게 표현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려는 뜻이 있어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