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한복음의 저작문제 2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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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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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1. 질문 : 요한복음의 저작문제 2867
요한복음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습니다. 요한복음은 요한이 쓰지 않았다. 문체가 다른 복음서들하고는 판이하게 다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들은 다른 복음서를 보고서 편집해서 읽기 쉽게 했다. 요한복음은 요한서신(요한일~삼서), 요한계시록과 문체가 너무나 다르다. 이런 많은 이유로 요한복음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한복음도 당연히 하나님 말씀이라 생각되는데 이런 점은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이겨내야 합니까?
답변 : 신학으로 접근하지 마시고, 신앙으로 해결하셨으면 합니다.
1. 하나님이 계신 줄 어떻게 아느냐?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줄 어떻게 아느냐, 요한복음이 요한의 기록인 줄 어떻게 아느냐? 이런 질문들은 질문하는 사람이 한 마디만 해놓으면 답변하는 사람들은 수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증명을 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질문하신 이런 문제를 평생 과제로 연구한 분들도 있습니다.
2. 성경에 관한 주장은 그 어떤 주장이라도 그렇다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또 계신다고 해도 그 하나님이 기록한 것인지, 또 그 하나님이 기록한 것이라 해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정말로 기록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쥐고 있는 성경 내용이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해 주었던 바로 그 내용과 일치되는지 아니면 가감이 되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제 정신을 바로 가지고 또 조금이라도 배운 지성이라고 한다면 교회는 그냥 수양 삼아 한번씩 다니는 것이지 성경을 정말 액면 그대로 다 믿어야 한다며 다니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건전한 사고방식과 사고체계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입니다. 흔히들 광신도라고 하지요?
미개한 시절의 고대인도 아니고, 현대 과학으로 인체의 구성을 완전 해부한 다음 재조립과 기능 수정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데, 고대사회의 문서 하나에 매달려 그것이 정확무오하다고 한다면 너무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또 그 고대문서에 대하여 수백년 또는 천 몇백년 전의 어느 고대 신학자 한 사람이 몇 마디 한 것을 오늘까지 그대로 믿고 따른다면, 단군신화를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질문하신 내용은 '요한복음' 하나를 말씀하셨으나, 창세기도 출애굽기도 그렇고 계시록도 전부 그 기록한 저자가 누군지 또 과연 하나님의 기록이 맞는지 등 모든 문제가 다 의문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신학교 교수들 중에서도 해외 박사학위가 학술적으로 정상급 과정을 거친 사람들일수록 성경은 훌륭한 고대 문학서로 존중하는 정도이지, 그것을 오늘 우리 시대에 현존하는 생활 기준으로 삼는 것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3. 인간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에 이것이 내가 기록한 성경이라고 가르쳐 주셔서 배운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은 요한의 기록이라고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속에서 가르쳐 주셔서 배운 사람은 그렇게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의 주장은 그 주장이 틀렸다고 우리가 비판하기 전에 이해하고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직접 그 분에게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주장은 그분으로서는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이 틀린 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를 보고 너희들도 하나님을 본 적은 없다고 말하는 그 말투가 틀렸습니다.
4. 신학교 교수와 박사들의 간판은 '신앙'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상대해 본 면을 말합니다. '학문'이란 인간을 상대해 본 면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상대한 신앙은 얇고 어리기 그지없는 것이 교수들입니다. 교수가 되는 과정과 교수가 된 후의 과정이 그 신앙을 어리고 철없고 얇아지지 않을 수 없도록 현 신학교 체제가 그러합니다. 그 대신 인간만을 상대해서 인간의 갖가지 주장만 자꾸 머리 속에 넣게 됩니다. 즉, 학문은 깊어지고 신앙은 천길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자리가 신학교 교수자리인데, 묘하게도 목사가 될 신학생들 눈에는 신학자가 신앙까지 좋은 줄 알고 있습니다. 탄식입니다.
요한복음이 요한의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주장하고 있는 분은 아마 불신자든지 아니면 믿기는 믿어도 생후 수개월 정도 된 그런 어린 신앙일 것입니다. 자기가 눈을 뜨지 못했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신학교수는 신앙의 크기로 임용되는 것이 아니고 임용권자에게 선발되도록 자기소개서를 잘 적고 면접을 잘 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판사가 되는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판사 선발고사의 시험 방향과 임용 기준을 사전에 잘 파악하여 자신을 그런 방향에다 맞춘 사람이 선발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판사에게 양심과 정의를 요구한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신학대학의 교수도 교수는 교수입니다. 그 교수에게 세상 학문과 같은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깊이를 기대하는 것은 가능해도 그 교수에게 신앙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몰상식한 일입니다.
신학박사가 ‘신학'박사로서가 아니고 신학’박사'로서 학문적으로 연구하니까 말투가 그렇고 앞뒤 전개되는 내용이 그렇고 사용된 언어의 성분 분석이 그래서 요한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니 또는 요한 외의 다른 사람의 작품이니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박사님은 그 간판은 ‘신학'박사겠지만 학문만 알아서 세상 학문이 어느 작품의 진위를 가릴 때 사용하는 기준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고 있습니다.
5. 하나님께서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알려 준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문제입니다.
요한복음이 요한의 기록이냐고 반론하는 분들이, 자기가 기도하고 요한복음을 읽는 중 하나님께서 그렇게 알려 주더라고 말한다면, 이곳에서는 대단히 신중히 참고를 해 보겠습니다. 혹시 이곳 답변자가 과거에 요한복음은 요한의 기록이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이 기억착오가 아닌가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요한의 기록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그 근거를 대면서 언어적 구성이 그렇고 신학자들 중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또 초대교회사의 어떤 면을 보니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주장만 늘어놓으면 그런 주장은 들어볼 것도 없이 불신자급으로 발언하는 것이니까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불신자들이야 하나님도 없다고 하는데 요한복음의 저자 문제에 대하여는 오죽 더 하겠습니까? 그 발언이 이렇게 불신자들처럼 세상 학문적 기준으로 가지고 신앙문제를 비판하거나 주장한다면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든 목사든 교수도 신학박사든 상관없이 요한복음의 진위나 구성 과정 등을 밝히는 그 자세는 안 믿는 사람의 불신 사고방식 안 믿는 사람의 인간적 이성 비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지 않아서 실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답변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요한복음은 요한의 기록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래서 한번도 의심 없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답변자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았다면 다른 신학자들처럼 공부를 많이 하다 보면 인간의 시각 인간의 기준으로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사람이 스스로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이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스스로 노력해서 아는 것을 '학'이라고 합니다. '학문'이라는 말인데, 신학에도 '학'자를 붙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대로만 알면 안 되고, 사람이 자기 지성과 이성으로 노력을 해서 아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학교의 신학강의에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알려 주셨는가 라는 말은 미신같이 취급해 버리고, 오로지 인간인 내 머리 내 두뇌 내 판단 내 생각으로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이 요한의 작품이냐 라는 문제에 이르기 전, 이미 질문자께서는 과연 하나님이 계신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특히 그 '하나님'이 꼭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우리가 단군을 말하듯 그렇게 말한 그 신을 꼭 우주 보편적인 그 신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이런 여러 변론을 들었을 것입니다.
6. 질문자께서는 신학교 2학년생이시니, 아직도 신학교에서 신앙을 다 버리지는 않았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성경이 참으로 믿어지고, 주님 대속에 감격하여 나도 주님처럼 살아봐야겠다는 그 순수한 일념이 강할 때, 신학교를 지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혹 한번씩 의심이 들고 또 신앙이 흐려지는 때도 있지만, 도저히 이 길이 아니고는 안되겠다고 자기 깊은 속에서 강하게 일어나는 신앙양심과 그 신앙양심을 통해 자기에게 강권하는 주님에게 붙들려 신학교를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신학교를 입학하는 분들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정도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과 성경과 신앙에 관련된 기본문제들은 말로 표현은 하지 못해도 분명히 체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즉, 신앙은 있는 사람들이 신학교 입학생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 있는 입학생들을 신학교가 받았으면 점Z를 키워 싹이 나고 점점 자라서 나무가 되도록 그 신앙을 길러야 하는데, 신학교 강의 한 과정 한 과정이 거듭될수록 순수하게 믿어지던 그 믿음은 뿌리를 흔들어 뽑아 버리고 그 대신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이렇지 않느냐 저렇지 않느냐고 하여 인간의 이론들, 즉 신학 학설들을 이것저것 소개해서 쑥밭을 만들어버립니다.
아직 2학년 2학기시니, 한창 진행 중일 것입니다. 지금은 혼동스러울지 몰라도 좀 더 지나고 나면, 직업이 목사기 때문에 남들에게 '하나님을 믿어라' 해놓고 자기 속으로는 '글쎄?' 이렇게 되어질 수 있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이곳에 질문 올리는 내용을 봐서 완전히 죽지는 않고 그 대신 혼동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질문자께서 삼가 조심하실 일은 인간의 말은 ‘인간의 말'로만 들어두시고, 그 대신 옳고 그른 신앙문제와 관련해서는 반드시 과거 신학교를 들어오게 될 때 질문자가 신학과정을 밟고 싶도록 잘 믿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던 그때의 감동을 다시 찾으셨으면 합니다.
지금 남들이 신학교를 다니는 신학생으로 보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 아니라, 과거 남몰래 마음속에 이 말씀이 좋고 주님의 대속에 감격했던 때가 있었다면 바로 그때 나를 감동시켰고 말씀은혜에 붙들리게 했고 또 이 복음에 전적 충성하겠다고 마음먹게 하던 그 마음의 감동은 신학이라는 학문과 교수들의 강의로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학은 전혀 몰랐지만, 오직 내 속에 성령이 내 마음을 감동시켜 나에게 믿어지는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나라는 인간 주관의 감정도 버리고, 교수님들의 학설도 버리고, 인간들의 생각과 의견은 내 것도 네 것도, 박사 것도, 무식쟁이 것도 다 버리고, 오직 내 마음 속에 나에게만 알도록 조용하게 알려주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에 귀를 기울여 보셨으면 합니다. 성경을 조용하게 읽으면서 내 마음에 감동으로 깨닫게 하시는 바로 그 음성, 그 가르침, 이것만이 옳습니다. 이미 이제 성경을 읽으시려면 신학교에서 배운 별별 소리가 마음속에 자꾸 맴돌기 때문에 과거 순수했을 때처럼 그런 감격은 다시 찾아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년간 배웠던 것의 위험성과 해독성을 깨달아 이전 신학을 알기 전에 모셨던 그 하나님을 그리워 다시 찾으려고 노력하시면 하나님께서 그리 멀리 가 계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7. 홈 문답방 등에 관련 여러 말씀을 이미 많이 드렸습니다.
우선 /초기화면/연구실/정리방/ '■■주제2■■ 백영희조직신학 - (요약본 초안)'에서 교리 서론과 계시론 등에서 신학의 근본 자세와 인식을 말씀드린 내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