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부활한 후 나타난 주님은 왜 일부사람에게만 보이 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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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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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19. 질문 : 부활한 후 나타난 주님은 왜 일부사람에게만 보이신 것을까요? 2522
공관복음에서 보면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보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호된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을 이룬 시점도 아니고 부활 후에 나타나심도 아니고 그들 나름대로는 잘 믿어보겠노라고 했던 자들인데, 그리고 주님 부활 후 어찌해서 제자들과 일부 사람들에게만 보이신 것일까요?
답변 : 부활 후의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성도
1. 부활 후 예수님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① 참고 성구
행10:40-41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고전15:4-8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② 예수님의 대속이 일단 완성된 후에는, 구원에 해당된 자들에게만 보이십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누구나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누구에게나 보이시도록 다니셨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전면적으로 나타나시고 누구에게나 눈에 보이도록 움직이신 환경은 구약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육체의 이스라엘에게만 구원이 주어지던 시기라는 뜻입니다. 모든 구원운동이 육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이므로, 육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육체 이스라엘에게 육체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육체적 활동을 전면적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에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완성이 되었고 이제는 신약의 신령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신약은 육체가 아니라 신령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며 신령한 이스라엘에게 신령한 은혜로 구원 역사가 주어지는 때입니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신령한 눈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때입니다.
부활 후 나타나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은 그들의 시력이 좋아서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고 또 우연히 예수님이 계시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본 것도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사람은 볼 수 있고, 허락해 주지 않은 사람은 바로 옆에서 그 얼굴을 보면서도 그분이 예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전체 기간동안 해당되는 일인데, 그 시작이 바로 예수님 부활 직후였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한 자리에 앉아 같이 예배를 드려도 한 사람은 예수님을 뵙고 대화하고 그분 주시는 것으로 배부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 사람은 하품만 하다가 속으로 욕만 하며 집에 돌아갑니다.
‘다시는 교회를 가나 봐라. 보이지도 않는 예수 앞에 전부 벌벌 떨기나 하고! 미친놈년들!!'
예수님께서 당신을 보여 준 사람은 보고, 보여주지 않은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이 신약입니다. 지금 뿐 아니라, 부활 직후 바로 그때도 그랬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봤다고 해서 그 자체가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약2:19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면, 부활 후부터는 불러 구원받을 자들에게만 예수님이 보이셨습니다.
2. 대속 완성 이전,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 이라고 비판한 것은
① 참고로, 예수님의 비판은 주로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정통 보수 교단'입니다. 반대로 사두개인들은 날라리 신신학 말쟁이들입니다. 사두개인들보다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많이 핍박했고 예수님의 비판도 주로 바리새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② 물론 요한이 마3:7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욕한 것은, 예수님의 발언이나 같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예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요한의 걸음과 발언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준비였습니다. 따라서 요한이 마3:7에서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말한 것은 예수님의 발언으로 보셔도 됩니다. 그러나 이번 답변에서는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③ 바리새인을 책망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대속을 완성시키기 전까지는 구약시대이고, 구약시대는 율법시대이므로 당연히 율법에 충실한 바리새인은 칭찬을 받아야 하지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질문으로 읽었습니다. 예수님 대속이 완성된 이후는 은혜시대인데 만일 바리새인들이 그때까지도 율법적 구원을 말했다면 책망을 받아야 하겠으나 아직은 율법시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시대였던 구약에서도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하나님으로 늘 구약 교인들과 함께 동행 하며 그들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와 이스라엘이 예수님 오시기 전 1천 수백년 전에 광야를 통과했는데 그때도 그리스도 하나님은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을 지도하고 보호하고 계셨으니 그들이 물 없는 광야에서 마셨던 그 물을 내던 그 반석이 바로 예수님으로 오시기전 하나님으로 계시던 그리스도였습니다.
구약을 율법시대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을 출발하기 때문에 율법시대라고 하지 율법에서 시작하여 율법에서 그치면 그것으로 구원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율법의 기본 취지와 성격을 전혀 몰라서 생긴 오해입니다. 구약성도는 어리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외부 외형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율법들을 많이 내 주셨고 또 그것을 지키므로 신앙을 출발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작은 율법이라는 초보단계지만 그 율법을 지키면서 그 율법 속에 가르치는 예수님의 구원을 사모하고 그 구원을 믿으므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던 시기였던 구약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가장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은 극단적으로 외식 자들이 되어 율법이 전부였지 율법 속에서 알려주시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인도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사제도를 통해 나의 죄 값으로 대신 죽을 대속주가 오실 것인데 그 구주를 사모하면서 제사를 드려야 바른 제사가 되는데, 그들은 소 잡고 양을 잡아 불로 태우면 자기들 할 일은 끝났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알맹이를 위해 마련된 껍데기에 알맹이는 담기지 않고 텅텅 비었으니 이런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대속 전이라도, 구약성도에게 주신 율법적 구원의 방편을 바로 행했으면 칭찬을 했을 것입니다. 구약 율법을 바로 행하다가 주님을 만난 분으로서는 요셉과 마리아, 사가랴 부부, 밖에서 양치는 목자들, 성전에서 예수님을 뵙던 안나 그리고 시므온 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