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의 뜻는(요20:22)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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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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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21. 질문 :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의 뜻는(요20:22) 554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 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에는 어떤 말씀과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요? 설명해 주시고 이런 작은 예를 통해서 성경 읽고 묵상하는 법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 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답변 : 저희를 향 하사 숨을 내쉬는 ‘모습’과 그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친 것
1.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심에 대하여,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은 '숨'이며 그 숨을 제자들에게 내쉬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나온 숨을 들여 마시게 되면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숨'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낸 '성령'이었다고 성구가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진리를 어린 교회,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가르칠 때는 보이는 자연과 알기 쉬운 비유로 가르친 경우가 너무도 많았으며 특히 4복음은 그러합니다. 오늘 우리까지도 예수님의 육체인 입에서 숨을 내 쉬었음으로 성령을 연구한다면 육으로 볼 수 있는 호흡을 통해서 그 속에 볼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신령하고 무한한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숨으로 성령을 받으라 하심은,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 숨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건너 온 것이 성령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있고 성령이 뒤에 존재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성령님은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역사하는 순서와 그 과정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대속이 먼저이며 성령의 성화역사는 그 다음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과 끊어져 있었고 죄를 가진 우리가 하나님과 바로 연결되면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소멸됩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 우리 죄를 없앴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우리 안에까지 오셔서 성령으로 거하시게 되었고 또 그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 닮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화역사라 하며 믿는 사람이 평생을 신앙생활로 애쓰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는 예수님의 대속이 먼저고, 이 대속 때문에 또 이 대속으로 인하여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 밖으로 나간 하나님의 역사, 그 역사가 믿는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으니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이며 이 성령은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건너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성화 역사는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예수님의 대속이 근거였고 그 재원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대속은 기본구원이며 성령의 감화 감동 역사는 건설구원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기본구원은 '예수님'이며 그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어지게 된 역사가 건설구원이니 곧 '성령'입니다. 공간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님이 먼저요 성령이 나중이 되어 우리에게 구원 역사를 이중으로 하신다는 말이며, 동시에 구원 받은 우리는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을 닮아 가는 평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말씀합니다.
육체가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호흡이 없으면 송장입니다. 거름에나 사용될까 인간으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인간은 비록 성경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또 만물의 영장으로 하나님 앞에 최고의 위치를 가졌을지라도 이미 울리는 꽹과리일 뿐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감화와 감동의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하는 성화를 책임진 하나님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 즉 우리가 하나님을 실제로 닮아가게 되는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의 사활의 구원은 바로 이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갈 수 있도록 그 터를 마련한 것이며 그 성령의 역사가 계속될 수 있도록 계속하여 그 재원을 제공한 공로입니다. 이제 본문은 예수님의 대속이 완료되었으며 이제는 그 대속으로 인해 우리가 죽는 날까지 힘쓸 성화 역사를 출발시키는 모습입니다.
4. 다시 한번 본문을 살펴본다면
예수님이 부활까지 하심으로 이 땅 위에서 이룰 예수님의 구원 역사는 전부 완료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으로부터', 즉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를 살려놓은 기본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 단계인 '성화구원에 나아갈 시작'을 말씀했습니다. 그 표시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는 모습을 보여 알기 쉽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쉽게 가르치시려고 보이는 모습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 꼭 이 본문의 바로 그 순간이, 성령이 비로소 이 땅 위에서 역사하게 된 바로 그 시간이며 그 공간이 그 장소였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관계, 제2위와 제3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역사하시는 여러 가지를 가르친 말씀입니다.
5. 이 본문을 두고 특별히 성경을 대할 때 생각할 점은,
성경의 모든 기록은 전부가 진리이며 말씀이며 교훈입니다. '저희'라 하여 복수로 기록된 것, '향 하사'라고 방향을 굳이 표현하신 것, '숨'이라는 호흡과 '내쉬는' 호흡의 행위 하나 하나가 전부 우리 구원을 위해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딤후3:15-16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하신 '모든 성경'은 66권 성경과 그 성경 안에 기록된 말씀 전부를 가르쳤으며 일점일획도 가감 없는 말씀이라는 것이 마5:18입니다.
그러므로 표현 하나 하나, 토씨 하나까지도 살펴야 하며 동시에 그 표현의 앞 뒤 연결과 그 내용을 크게 묶어 앞 장과 뒷장의 전체 연결까지로 확대해야 하며, 더 나아가 신약과 구약을 폭넓게 살펴 다 맞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표현의 하나 표현의 연결, 앞 뒤 내용의 배치까지가 전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이 전부를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백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그 한 말씀의 깊이와 앞 뒤 내용이 연결되는 점을 깊이 참고해 보시면 몇 개의 설교를 통해 알게 되는 깊이가 성경 전체를 통해 성경 전체를 다 알아가는 길로 인도가 될 것입니다.
6. 이 본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와 같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법을 말한다면,
어느 한 말씀에 대하여 좀 깊이 살펴보시되 그 살핌이 더 이상이 없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하셨으면 합니다. 깊이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이 본문 말씀 하나를 가지고 창세기로 계시록까지를 다 적용하고 다 인용하여도 다 연결되며, 또 어느 성경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불가분의 보충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만 연관지어 본다 해도 그 깊이는 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연구하다 보면 처음에는 성경의 구체적인 성구 자체를 알지 못하며 많이 찾아봐야 할 것이니 연경의 기초가 될 것이고, 해당되는 성구들을 찾아 그 관계를 지어보면, 이는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자꾸 점L에 적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마음속에 많은 명상을 통해 살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 앞에 '어찌 알겠나이까? 가르쳐 주시고 마음을 밝혀 주시라'는 간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의 결과가 비록 나에게 불리해도 나에게 소중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결론에 이를지라도 진리를 배우고 아는 것이 더 귀하니 가르쳐 주시고, 가르쳐 주시면 알게 된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에 옮기겠습니다라는 약속, 그런 진심이 있다면 그 깨달음은 명상 중에 가속도로 전진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 하나라도 빠진 것이 있으면 인간의 상상에서 머물고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합니다.
만일 이렇게 하여 생각 못 한 진리의 세계를 깨달아가고 또 배워가는 내적 전진이 있게 되면, 그때부터 성경연구는 그 앞에 배웠던 말씀을 얼마나 실행하고 그 말씀대로 자신을 고쳤느냐에 따라 자기라는 사람이 된 만큼 나아가게 됩니다. 칼빈을 같은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으나 일반 역사신학자들과 다른 차원에서 그를 평가하는 것은 그의 깨달음에는 이런 과정을 수없이 통과하며 깨달아낸 교리들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고고학으로 고증하지 않아도 간단히 그의 세계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 질문의 내용이 짧아지면 질문의 구체적 방향을 확실하게 잡지 못하여 답변자의 내용이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요하면 추가 질문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