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신서를 어떻게 이해 해야하는지요? 3355
서기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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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1. 질문 : 서신서를 어떻게 이해 해야하는지요? 3355
신약의 서신서를 읽을 때는 저자들이 어떤 이유에서 그 서신서를 수신자들에게 보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수님께 배웠습니다. 로마서는 율법을 강조하는 로마교회에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보냈고, 야고보서는 행하는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보냈다고 배웠습니다.
서신서들은 왜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보냈는지를 먼저 파악한뒤 그 서신서들을 연구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점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요?
그리고 전반적인 성경을 보는 방법을 이야기 해주세요.
방문자 언급 :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예수님 당시 문맹률이 높았습니다. 문맹자를 흔히 까막눈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식자들은(그러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문맹자를 굉장히 무시했답니다(율법을 알지 못하는 저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니라).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무식자들, 문맹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식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39-41)고 말씀하셨다.
당시 무식자들은 회당에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어주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때문에 성경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유익을 누렸습니다(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주는 당사자들은 오히려 글자(의문)에 얽매이면서 그만 믿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의문은 죽이는 것이다). 요즘 말로 옮긴다면 성경신학자들이 평신도들보다 성경을 항상 더 정확히 읽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커리큘럼 상 초등 비평이니 고등 비평이니 하는 것을 배운다면 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책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초등 비평이니 고등 비평이니 하는 것을 배운다고 거기 너무 얽매이면 안 됩니다. 더군다나 몇 가지를 빼놓고 거의 다 한물 간 방법들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영안을 밝히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겁니다. 만일 영안이 어두워졌다면 성경을 읽는 방법을 다시금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자기 죄를 발견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겁니다. 세상적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 아닙니다.
답변 : 앞에서 믿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의 소개를 잘 읽었습니다.
1. 먼저 말씀하신 분께서 성경은 글이 아니고 믿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읽기가 강조되면서,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에게는 원어나 신학 지식 등을 성경읽기의 전제 조건이라고 가르치고, 일반 교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형태의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을 방법론으로 정복하려는 시도가 물에 넘치듯 넘친 세상입니다.
교인들에게는 마치 대학수능고사를 대비하는 학생들을 학원의 유명 강사들이 특별한 참고서나 학습방법 등을 통해 정복해 나가듯 성경을 상대로 그렇게 고지 점령을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참 개탄할 일입니다.
2. 서신서를 읽을 때는 저자들의 기록 이유나 배경을 파악하라고 하는데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 기록 이유나 배경을 마치 학원 강사가 출제경향을 훑어주며 어떤 부분은 어느 참고서로 어떻게 학습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어떤 요령으로 상대할 것인가 하는 식으로 성경을 대하기 때문에 현재 성경은 마치 세상 고시생들이 넘어야 할 기본법서처럼, 인문학의 기본 교양도서처럼 되어 있습니다.
서신서의 기록 배경을 살피되, 이왕이면 ‘저자들의 기록 이유 또는 수신자들의 배경'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서신서들도 성경이므로, 성경은 성경 전체를 통해 한 구절을 해석하고, 또 성경은 어느 한 구절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해석하며, 또한 성경은 앞뒤 연결을 면밀하게 살펴 좁게도 보고 넓게도 보며 이 성경 저 성경을 전반적으로 연결시켜 읽어야 한다는 원론적 표현으로 설명했으면 합니다.
성경의 해석 원칙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고 그 내용이 가르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실행으로만 배운다'는 것입니다.
3. 질문하신 ‘로마서'와 ’야고보서'로 예를 든다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으려는 로마 교회에게 바울이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고 또 야고보서는 행하는 믿음이 되라고 가르치려 했다고 설명한다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분명히 그런 면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직신학의 구원론과 관련하여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설명할 때만 일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한 자, 그 한 표현 속에 무한한 천국이 다 들어 있는데, 교리의 한 부분만을 위해서 로마서나 야고보서를 기록했다고 설명해버린다면 성경을 너무도 축소하여 그 범위를 제한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60만 대군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군을 두고 만일 태풍 피해 때 군부대 인근 피해논밭을 복구하기 위해 그곳에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면?
전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태풍 때 그들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또 국군의 유지 이유에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한다는 항목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전쟁을 많이 치르고 맹수들이 사방천지에서 노려보는 정글같은 형편에서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문제가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성경은 왜 그 성경이 그곳으로 편지 형태를 갖추어 보내졌느냐는 것도 무시해서는 절대 안되고 꼭 그 면도 살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탄식은, 신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면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런 사유만 너무도 강조되고 그런 사유를 알아내기 위해 온갖 문헌을 뒤지고 또 당시 시대상황을 파악하려면 고고학을 해야 한다 하여 곁길로 다 빠져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은 현미경으로 근접 관찰도 하고, 망원경으로 66권 전체를 훑어보며 연관성도 찾아야 하고, 심지어 인류역사 6천년 전체가 성경 한 성구와 어떤 연관이 되었는지도 살펴보면 전부 맞아 떨어집니다. 한도 없이 많은 면으로 살펴야 하지만, 그 출발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작은 첫걸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아는 대로 읽고, 읽으며 깨달은 부분이 있으면 그 범위 안에서 실행하고, 그리고 다시 읽어보면 그 말씀이 좀더 많고 깊은 면을 가르칠 것이고, 또 아는 만큼 행하며 평생 반복하다보면, 한없는 진리라는 것을 저절로 깨달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학자들의 이 소리 저 소리에 책을 뒤적이며 숙제하고 시험준비하다 보면 그런 세계와는 아주 멀고 먼 나라에서 사는 형편이 될 것입니다.
4. 성경을 전반적으로 대하는 방법은
바로 밑에서 먼저 질문하신 내용과 또 이곳에 이미 소개된 앞선 자료를 차분하게 참고해 보셨으면 합니다. 개별 질문으로 다시 질문하셨기 때문에 잠깐 요약해드렸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시간 여유가 없어 다른 자료나 다음 기회로 이 부분은 미루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