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건을 써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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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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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2. 질문 : 수건을 써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고전11:1-16) 1209
카톨릭에서는 수건을 쓰고 미사를 드립니다. 고린도전서 말씀중 수건을 써야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고린도후서에서는 벗어야 그리스도의영광이 나타난다고 하십니다. 목사님 수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요? 개신교에서는 쓰지 않고 예배드리는데 궁금합니다.
답변 : 예배 때 쓰는 여자분의 수건은 내 머리 위에 남자를 늘 모시고 있다는 뜻이며,
1. 고전11:1-16에서, 여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 등을 하게 했습니다.
여자는 여자 자기 몸에서 제일 윗부분인 머리에다가 다시 무엇을 하나 덮어 쓰게 하여, 항상 나는 내 머리 위에 남자가 이렇게 올라 앉아 있고 나는 그 밑에서 순종하는 존재라는 것을 표시하게 했습니다. 3절에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했고, 5절에서는 여자는 이런 표시를 자기 머리 위에 얹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4절에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면 그 머리를 욕되게 한다는 말씀은, 남자란 여자를 다스리고 인도할 존재인데 그 머리에 무엇을 쓴다는 것은 자기 위에 여자를 모시고 그 밑에서 순종할 존재라는 뜻이 되어 그 머리를 욕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5절에서 여자가 기도를 하거나 예언을 할 때 이렇게 머리에 무엇을 씀으로 자기는 남자에게 다스림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표시하도록 한 것을 근거로 하여 천주교에서는 예배를 보러 올 때 반드시 여자분들은 그 머리에 무엇을 쓰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항상 여자인 나는 하나님이 머리로 삼게 해 주신 남자에게 잘 순종하고 살겠습니다 하는 표시입니다.
2. 고후3:18에서, 수건을 벗어라는 것은 주의 영광을 보는데 가리는 것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미개하고 어린 시대였기 때문에 무엇이든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의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함으로 그 얼굴에 빛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때 모세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의 빛나는 영광을 가루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빛'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주목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어서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신령한 면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주님의 영광도 육체인 얼굴에 빛으로 나타나는 영광 대신에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사활의 대속을 완성한 그 공로가 바로 영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 성도들처럼 마음이 강퍅하여 율법에 붙들려 있으면 그 율법이 안내하고 있는 주님을 모르고 읽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 도리를 깨닫게 되면 율법에 얽매여 주님과 그 영광을 보지 못하던 눈이 새로 뜨여져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볼 것입니다. 고후3장에서 수건을 벗어야 한다는 말씀은 바로 주님의 대속을 보지 못하고 그 대속의 영광을 보지 못하도록 율법에 얽매인 자기 마음에 가리운 것을 벗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벗고 주님의 대속을 알 때 비로소 그 주님의 희생과 그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영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희생과 그 영광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면 비로소 우리도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본받아 점점 주님과 같이 구원을 위해 희생의 사람이 되어질 것이고, 그렇게 됨에 따라 점점 우리도 영광의 주님과 같이 영광의 성도로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3.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에서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천주교는 서양 불교라고 할 만큼 모든 것을 형식과 격식 그리고 외형 표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도 전부 판에 박은 기도문을 읽는 것뿐이고 예배당을 지어도 불교 사찰만큼이나 그 식과 법이 복잡합니다. 그 속에 성령의 샘솟는 새 힘이 없고 그런 것이 수천년 전에 없어진 자리를 눈에 볼 때 압도하는 그림과 건축물 등으로 종교의 허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무엇을 쓰라는 이 고전11장의 말씀을 눈으로 보이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이 천주교이고, 이런 천주교의 모든 형식을 기독교에서는 구약 바리새인들처럼 그 속에 중심과 신앙은 없애버리고 겉모양만 맞추고 나가는 것은 신약의 신령한 구원역사를 오해한 것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교황이나 추기경 신부들의 옷차림까지도 전부 형식이고 겉모습만 치중하다가 천주교가 우상종교가 되었다는 기독교인데, 지금 현재 기독교는 예배당의 겉모습, 강단의 화려함, 목회자들의 설교복장, 성찬집기 등의 형식 모양내기 등이 이전 천주교를 거의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3. 질문 : 여자분은 목사를 하면 왜 안 됩니까? 359(쉬)
이리저리 성경책을 훓어 보면서 어쩌다가 읽게 된게 여자가 목사가 되면 안 된다와 같은 뜻의 구절을 보았습니다. 정확히 목사라는 단어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분명 여자가 가르치는 그것은 허용이 안 된다는 그것과 같은 성경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여자분이 목사가 되면 안 되는 까닭이 뭐지요? 저는 대충 아담과 하와에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 역시 어린 여학생이면서도 여자분이 목사가 된다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우연히 여자분이 목사 하시는걸 보았기 때문에 질문합니다.
답변 : 여자분들에게는 안수와 관련된 직책을 맡기지 않고 있습니다.
1. 이 성구들을 먼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고전11:3,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딤전2: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딤전3:2,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2. 여자는 남자를 머리로 삼아 그 지도를 받는 위치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위에 있는 성구들의 앞뒤를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남자가 목회자로 교회의 최종책임자가 되어 설교와 지도를 맡도록 하신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교의 전통은 집사 장로 목사 직책을 여자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이 3가지 직책은 안수를 하고 맡기는 것이 정상이나 교회마다 일할 수 있는 남자들이 없는 경우가 있어 여자분들로 집사를 임시로 대신하도록 하기 위해 '서리'라는 이름을 붙여 '서리집사'로 일하게 합니다. '서리집사'라고 부르는 것이 길고 불편하여 그냥 '집사'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서리집사'는 '집사'가 아닙니다.
3. 장로교는 성경에 엄격하자는 신앙노선입니다. 그러나 넓어지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비록 장로교지만 여자들에게도 안수를 하여 집사뿐 아니라 장로와 목사까지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국내에도 여자분을 안수하는 곳은 두 말 할 것 없이 넓게 믿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자분을 안수하여 집사 장로 목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교단들의 주장은 성경을 근거로 주장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자분들에게 안수를 하는 교단들은 한결같이 '여권신장' '남녀차별 철폐'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대로 믿고 살려 한다면 여자분의 안수는 할 수 없을 것이고 반대로 성경에 앞서 인간의 사정과 형편 시대의 분위기를 살핀다면 여자분들을 안수치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 내용은 좀 어려운 면이 있어 일반분들이 열람키는 곤란할 것이나 여성안수와 관련된 주제에서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첨가합니다.
4. 그러나, 한 가지 아실 것은 성경은 명문으로 그렇게 단정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우리가 내려온 신앙방향을 위에서 요약했습니다. 그러나 교리가 아니라 신약 교회의 제도와 행정에 관하여는 단정해서 성경명문으로 못 박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신약 교회의 제도와 행정은 복음운동을 위해 어떤 면이 더 유리한지를 성경으로 살핀 것입니다. 물론 복음운동을 앞세워 교세확장만을 생각하는 분들이 욕심으로 주장하는 경우와는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출옥성도였던 최덕지집사님이 후일에 목사가 되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면에서 반대를 합니다만 그분이 목사가 된 일에 대하여 섣불리 반대 입장을 발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는 교세확장을 위한 욕심은 분명 초월한 분인데도 목사안수를 받았다면 그분은 자기의 복음운동에 여자분의 안수가 필요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경우에 대하여 이곳은 성경의 명문으로 반대하거나 교리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각기 따로 깨달을 수 있는 차원에서 내심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이치와 성경의 여러면을 함께 살필 때 여자분은 멀리 보고 넓게 보는 면이 부족하여 최종 지도자로서는 분명 원칙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우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멀리 보고 또 넓게 보는 면까지를 진정 갖춘 분이 있다면 생물학적으로는 여자라도 기능적으로는 여자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입니다. 그런 분이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하여는 굳이 그렇다 아니라 할 수 없고 주어진 현실에 구체적인 분을 두고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최종 결정을 맡아 복음운동을 이끈 인물은 성경에 가끔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신약교회와 같이 형식적이고 외부적인 면을 거의 없애고 실질적인 면을 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런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런 분들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에 제도로까지 굳이 '안수'가 필요하냐는 문제에 대하여는 실제 실력과 실체가 있더라도 제도를 변경치 않고 다만 그 지도력으로 그 위치를 감당하는 것이 훗날을 보나 또 오해하여 엉뚱한 곳으로 가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타락성을 감안, 안수를 피하는 것이 옳겠다고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