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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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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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51
3. 질문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엡1:11) 2732
목사님 에베소서 1장11절에 대해서 묵상한 결론을 올립니다. 개인적으로 백목사님 에베소서1장 말씀에(예정에 관한 말씀) 대한 설교록을 보고, 설교를 들어봤지만 이 모든 일에 관한 말씀은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백목사님 설교에선 절대예정을 가지고 설교를 하셨지만 저처럼 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없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도 절대예정을 의미하는 많은 설명과 말씀이 있었지만 엡1장11절의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로 절대예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점에서 에베소서를 설교한 유명한 사람들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절대예정에 관한 그리고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 이 말씀을 가지고 예정을 설명한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백목사님도 다른 분들도 어쩌면 11절의 그 말씀이 아니고도 절대예정이나 예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거나 아니면 그 말씀이 절대예정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하지만 스튜워트 올리어트 라는 분이 쓴 에베소서 강해에 1장11절에 대해서 제가 이야기한 그 구절(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을 가지고 절대예정을 이야기 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기뻤습니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구나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저의 엡1장11절에 대한 해석입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하는 대로 역사하는 자’(이 부분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고 생각 합니다. 어떤 속성이냐 하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생각대로 세상의 모든 일 사람의 생각, 행동 참새가 떨어 지는것 까지하나님이 허락 하시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아니하히라, 세상의 모든 움직임까지) 을 예정하시고 이루어 가신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고 믿습니다.
‘뜻을 따라’ (뜻을 따라는 그분의 목적에 따라 계획에 따라 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우리가 특별히 예수님 안에서 예정이 되어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
다시 1장11절을 쉽게 말하면 절대예정하시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계획에 따라 우리가 선택과 예정을 받아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 이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목사님 제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왜 백목사님이 이 구절에 대해서 특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 이 구절로 절대예정을 설명하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구절들을 가지고 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이 말씀만큼 절대예정을 잘 나타내는 구절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뛰어난 목사님들도 칼빈도 이 구절을 가지고 절대예정을 왜 주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만으로 예정의 모든 논쟁은 쉽게 끝날수 있을것 같기도 한데 왜(물론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요)
목사님 앞에 제 의구심이 잘못된것인가요? 이것이 궁금합니다.그리고 목사님의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의 이말씀 자체만의 해석이 궁금합니다. 다른 구절을 없다 생각하고 ‘모든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의 이 말씀이 하나님의 속성과 절대예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이 구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자’ 이 구절이 너무나 가슴에 많이 와 닿습니다.
답변 : 엡1:11 설명이 누락된 것은, 시간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1. 엡1:11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절대예정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것을 일원론이라 합니다. 일원론이면 절대 예정, 절대 주권, 절대 섭리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절대 예정을 증명하려고 더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성경 전부가 절대 예정을 말하고, 그 만드신 만물 자연 전부가 절대 예정을 말하고 있는데 왜 굳이 엡1:11을 가지고 또 절대 예정을 논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 질문자 생각에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엡1:11이 절대예정을 깨닫는데 가장 좋은 성구로 보이겠지만 앞으로 신앙이 자라가고 또 다른 성경을 깨닫게 되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성구가 바뀔 수 있습니다.
엡1:11 성구를 해석하면서 칼빈이나 백목사님이 질문자처럼 그런 단계에서 그런 시각에서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만 상대할 것 같으면 그 성구는 그냥 두고 넘어갔을 리가 없습니다. 그분들은 그 당시 당시 자기가 증거 해야 할 바를 성령의 감동을 따라 충실하게 증거 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엡1:11에서 가장 확실하게 절대예정을 확정지은 질문자만을 상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2. 전체 깨달음이 점점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해석도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 해석은 너무 서둘러 단정하지 마시고, 그렇다고 그냥 읽고만 내려가지도 마시고, 읽으면서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하는 숙제를 가지고 읽으시되, 마음에 특별히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기억하든지 아니면 기록을 해두시고, 그리고 현재로는 '이런 것 같다'고만 해두셨으면 좋겠습니다.
틀림없이 이럴 것이다고 너무 강하게 확정짓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놓으면 뒤에 수정이 필요할 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고치면 되는데, 사람이라는 것은 합리화의 본능을 넘어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엡1:11을 현재 예정 문제로 생각할 때는 그렇게 깨달으면 되겠습니다.
재질문 : 절대예정을 나타내는 성구로 확정해도 되는지
목사님 저의 생각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는건가요? ‘엡1:11을 현재 예정 문제로 생각할 때는 그렇게 깨달으면 되겠습니다.’ 이 말은 어린 신앙의 수준으로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말인가요?아니면 제가 해석한 부분이 맞기는 맞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목사님 그렇다면 제가 해석한 모든 일을 그의 원대로 이루시는 자 이 구절 자체만으로도 절대예정을 설명하고 있는것이죠? 물론 목사님 말씀대로 절대예정을 설명하는 수많은 성경말씀이 있고 제가 해석한 그 구절 속에도 분명 절대예정이 있는걸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목사님 성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구가 모아져서 하나의 절 말씀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한 절 한 절 말씀이 성구로도 되는 것입니까?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이루시는 자 이 성구가 목사님이 말한( 그 성구가 절대 예정에 있어 가장 좋은 성구라고 한다면, 성경 전체를 통해서 잘못이 없습니다. 오히려 맞는 말씀입니다) 성구가 맞는거죠? ‘뜻에 따라’ 이 뒷부분이 없어도 ‘모든~이루시는 자’ 이 성구만으로 절대예정을 말씀 할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오늘 이 질문이 엡1:11절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계속 알면서도 재확인 하는 이유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하시는 자 이 구절만으로 절대예정을 100%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목사님 맞죠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하시는 자’이 부분만으로도 절대예정을 말할 수 있는거죠?
답변 : 성구 해석을 두고는 늘 조심스럽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1. 성구 해석
① 한 성구는 나머지 성경 전부로 해석
성경 한 구절은 나머지 성경 전부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 해석'은 그 성구와 다른 성구와의 관계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성경의 어떤 성구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해석하면 다 맞는 말이 됩니다.
만일 그 성구에 대한 해석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한 사람이 죽는 날까지 해도 한 성구 해석을 끝마칠 수 없습니다. 지금 답변자처럼 신앙 출발선에 서 있는 사람의 실력으로도 한 성구를 가지고 성경 전부를 다 해석해야 할 형편이 주어진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② '주석'의 의미
한 성구의 진정한 해석은 한 성경 전부가 다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창세기 1장 1절 한 절 해석을 하기 위해서 칼빈이나 박윤선 주석 전집만한 분량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칼빈이나 박윤선 주석은 이런 의미에서 주석이 아니고 성경을 해석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참고 자료 몇 가지를 제공하는 '주석에 참고되는 자료 모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그분들도 신령한 세계를 살다 간 분들이니까 그렇게 알다가 갔다고 기대하고 싶습니다.
백영희목사님도 몇 차례 주석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 홈의 여러 곳에 그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주석을 편찬하려 해도 결국 불가능하다고 느껴 중도에 포기하고 '목회'설교만 하다가 갔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분보다 신앙이 훨씬 어리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참고를 하려고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주석사전/에 성구별 해석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주해사전은 정확하게 말하면 주석사전이 아닙니다. 박윤선이나 칼빈의 주석이 '주석을 위한 참고 자료'라 한다면, 이 주해사전은 주석의 극히 일부이므로 그냥 '주해'라고 말하기는 곤란한데 일반인들은 주해로 알 것이므로 '주해사전'이라고 붙여놓았습니다.
2. 질문자께서 엡1:11 말씀을 해석했는데, 그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답변자가 엡1:11 말씀 하나를 놓고 지금 이 자리에서 10가지 100가지 해석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세상 지식과 달라서 지식 진열만을 위해 늘어놓지는 않아야 합니다. 또 그렇게 늘어놓는 것은 죽은 지식입니다.
그냥 말씀을 읽어야 할 때, 읽는 중에 주시는 은혜가 있고, 또 어떤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했는지를 알기 위해 엡1:11 말씀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주친 현실 사건마다 또 연구하는 주제에 따라 이 엡1:11 말씀은 수없이 많은 종류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해석이 다 다른데 그 각각의 다른 해석이 다 맞는 해석일 수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과 사건과 성경공부 주제에 따라 어떤 성경 말씀들을 살피는 중에 이 엡1:11 말씀을 상대하게 되었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됩니다.
따라서 질문자가 지금까지 절대 예정 하나를 가지고 반신반의 하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고, 확정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다시 일부 반론이 제기될 때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이제는 이 성구 하나 때문에 절대 예정을 끝까지 주장할 수 있게 된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의문과 어떤 차원의 신앙이 되었느냐에 따라 이 성구는 전부 해당되는 해석이 따로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성구 하나를 해석했을 때, 그 해석이 전체 다른 성경에 의하여 잘못된 해석이라고 정죄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성경과 연결시켜 볼 때 맞는 해석이면 일단 그 성구에 가능한 해석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해석은 질문자가 처한 현실과 성경 연구 중에서 현재 그렇게 깨달았다면 그렇게 깨달았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 성구가 절대 예정에 있어 가장 좋은 성구라고 한다면, 성경 전체를 통해서 잘못이 없습니다. 오히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 전부 이 엡1:11이 절대 예정 문제에 관하여는 가장 좋은 성구라고 단정한다면 이는 성경 해석의 기본을 모르는 일입니다.
질문자 현실에서 질문자가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느낀 것은 바로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상식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그 다른 사람은 다른 면 때문에 절대 예정이 막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 절대 예정을 두고 더 좋은 성구는 다른 성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더 좋은 성구가 질문자에게는 아무렇지도 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의 모든 성구는 인류 역사에 살다가는 모든 믿는 사람의 모든 현실에서 닥치는 모든 문제를 가장 잘 안내하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자기 형편에서 이 말씀 때문에 받은 은혜를 가지고 일반화 시킨다는 것은 보다 신중해야 합니다.
3. 현재 자기 신앙의 수준을 의식하는 것은, 질문자의 신앙 발전이 곧 중단 될 수 있는 징조입니다.
자기의 현 수준에 대한 자각 의식은 마치 달리는 차에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의 현 수준을 꼭 비교해야 하는 현실이 다급하게 닥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조심을 하려고 노력할 것도 없이 그런 면에 인식 자체가 없어야 좋습니다.
오로지 우리 표준은 예수님입니다. 바울도 아니고 백목사님도 아닙니다. 더구나 여기 답변자와 비교한다는 것은 타락의 정도를 비교할 때나 하시면 적절할 정도입니다. 부분적으로 이곳 답변자가 질문자보다 앞선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 반대도 있을 것입니다. 비슷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와 답변자를 수평 비교하는 것은 눈과 귀를 비교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이전보다 나아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 나아진다는 느낌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본인이 아무리 제거하려 해도 제거가 될 수 없는 교만이 찾아올 것입니다. 교만이라는 죄의 특성은 최후의 저격수입니다. 온갖 고난을 다 겪고 마침내 목표에 도달하고 나면 교만이라는 죄가 그 자리에서 확인 사살을 해버립니다.
재질문 : 절대예정에 대한 재확인
목사님 성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구가 모아져서 하나의 절 말씀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한 절 한 절 말씀이 성구로도 되는 것입니까?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이루시는 자 이 성구가 목사님이 말한(그 성구가 절대 예정에 있어 가장 좋은 성구라고 한다면, 성경 전체를 통해서 잘못이 없습니다. 오히려 맞는 말씀입니다) 성구가 맞는거죠? ‘뜻에 따라’ 이 뒷부분이 없어도 ‘모든~이루시는 자’ 이 성구만으로 절대예정을 말씀 할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오늘 이 질문이 엡1:11절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계속 알면서도 재확인 하는 이유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하시는 자 이 구절만으로 절대예정을 100%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목사님 맞죠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하시는 자’ 이 부분만으로도 절대예정을 말할 수 있는거죠?
답변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이루시는 자를 주권자라고 약칭합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입니다.
조금 해석을 하면 '주권 성취자'입니다.
조금 더 풀어쓰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이루시는 자'입니다.
이 성구를 교리 표현으로 바꾸면 '예정'입니다.
예정은 ‘절대' 예정이 아니면, 예정이 아닙니다.
‘절대 예정'이라는 표현은 '예정'을 조금 강조한 것입니다. 해설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다 읽어도 ‘절대 예정'이고
에베소서만을 읽어도 ‘절대 예정'이고
에베소서 1장만을 읽어도 ‘절대 예정'이며
에베소서 1장 11절만 읽어도 ‘절대 예정'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 11절 중에서 ‘그 마음의 원대로 이루시는자'만 가지고도 ’절대 예정'입니다.
더 줄여서 ‘(그)마음(의 원)대로(이루시는 자)'만 가지고도 절대 예정입니다.
윗 글에서 ‘성구'라고 한 것은 주로 한 절의 의미입니다만 꼭 한 절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한 절의 한 부분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앞뒤 절로 조금 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