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함이 없고 (요일5:18) 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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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문 :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함이 없고 (요일5:18) 3670

오늘 신학교에서 특강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요한일서에 나오는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 함이 없고,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다는 구절을 질문해봤습니다.

성경해석을 잘하시는 유명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구절을 질문을 했는데, 그렇게 한 구절 한 구절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가망성이 많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말씀의 앞뒤전후 문맥과, 나아가 성경전체로 그 구절을 해석해야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실 저도 이 구절이 지금까지 여기 홈페이지 중에 최대 난해구절이었습니다. 앞뒤를 맞춰보니 잘 이해가 안 되고 어려웠습니다.그 목사님도 여기홈페이지처럼 해석 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 구절들을 문맥에 맞게 성경전체에 맞게 해석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 전 세계의 신학교와 목사님들은 요한일서에 나오는 그 구절을 여기 홈페이지처럼 해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답변 : 이미 박윤선목사님과 40여년 전에 직접 토론을 거쳐던 성구입니다.

1. 박윤선목사님 백목사님 사이에서 이미 40여년 전에 토론을 거친 성구입니다.

박윤선목사님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현재 국내에서 성경을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정통 신학교는 성경신학에 관한 한 박윤선목사님의 제자들이거나 아니면 그의 제자의 제자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정도이며 박윤선목사님의 지도 선상에서 이 문제를 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박목사님의 주장은 성도가 고의로 죄를 짓거나 오랫동안 죄를 짓는 일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요일5:18의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신 성구의 원어가 동사가 현재형이며 문법에서 현재는 '현재 습관' 또는 '반복적 행위'를 표시한다고 이 본문을 풀고 있습니다. 이런 전제를 두고 그다음 성도는 습관적으로 계속 죄를 짓는 경우는 없고 또 고의로 죄를 짓는 그런 일도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성구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잘못 깨달았고 잘못 짚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백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대구의 합동측 경북노회의 정죄 결의와 한종희목사님의 이단의 정체라는 책 발간에 배경이 되었는데, 박목사님은 사망하기 직전 백목사님을 만나 깊은 반성이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가지고 이단으로 정죄할 수 없고 그렇게 될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따로 발표는 하지 않았으나, 그는 양심가이고 교리투쟁가이므로 자신이 이단성 있는 목회자로 지적한 사람과 그 교리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런 자리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질문한 내용은 유명한 난해절입니다. 박목사님의 초기 가르친 내용을 두고 이 난해절을 박목사님 주석집에서 참고하여 모두들 반복하고 있지만 박목사님처럼 주장하게 되면 성경 전부가 다 틀어집니다. 이 면에 대하여는 '건설구원'과 '삼분론' 등의 교리에서 이미 많이 설명을 했기 때문에 이 교리 문제는 더 이상 옳고 그른 것을 따질 문제가 아니고 한국교회가 솔직하게 이제 백영희교리체계를 받아들였다고 선언을 하는 형식과 절차만 남아 있습니다.

박목사님의 이 성구 해석은 사실 박목사님의 독창적 깨달음이 아닙니다. 그분은 세계 보수정통 신학계의 흐름을 읽고 그 자료들을 국내에 소개한 분입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믿는 사람 중에 고의로 죄를 반복해서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중생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교계의 교단 최고위직에 있는 분들은 거의가 다 중생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고신대와 병원을 보유한 고려학원의 문제를 아시겠지만, 고신의 사태는 고신 내에 수십년 썩어 문드러진 고질병이라는 것을 고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고신보다 합동측은 더 심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수십년 계속된 총회장 선거비리와 교단 보유 학교나 병원 등의 구조적 병폐는 요일5:18에 의하면 중생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교단적으로 아예 중생되지 않고 가만히 들어온 교회라는 논리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3. 위 성구를 앞뒤 성구로 연결 지워 우선 방어를 한다면 우선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구 해석 중에서 특히 교리체계 근간에 관련된 해석들은 그 성구 자체만 가지고는 단정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로 예를 든다면 성경 어느 성구를 가지고 따져도 그 성구 하나만 기준을 잡고 그 성구 앞뒤 문맥만으로 살펴본다면 여호와의 증인들의 말이 옳은지 우리 정통 교회의 설명이 옳은지 판결이 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이단이라 할 것이 아니고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정도에서 변론을 마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신론을 연구한다는 시각에서 그 해당 성구와 전체 성경의 관계를 따져 나가면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삼위일체 교리는 교리이기 전에 성경 명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요일5:18 문제는 '중생된 사람의 중생된 요소는 육이 아니고 영이라'는 것은 서로가 일치합니다. 그다음 '중생된 요소는 영인데 그 영이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느냐'는 문제를 두고 이곳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단정하며 일반 교리는 죄를 짓는다고 단정을 합니다. 그렇다면 중생된 성도의 영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아담의 영이 즉시 죽었다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것처럼, 중생된 오늘 우리의 영도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 영이 죽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마다 중생되느냐는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일반 교리는 중복중생 또는 평생 반복 중생을 주장하는 교리가 됩니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들이 뒷감당을 달리 할 수 없는 수많은 교리 문제가 뒤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4. 정규 신학대학교의 조직신학 또는 성경신학 박사학위를 가진 분이라면

자기가 모른다고 고백할 리가 없고 또 자기가 배운 것이 틀렸다고 인정하기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권위 있는 신학교의 권위 있는 교수들의 장점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른다거나 아직 의문이어서 단정하지 못한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학생들 앞에서 내놓고 합니다. 자기들이 교과서에서 정통적으로 배우고 아는 것을 가지고 가르치다가 이곳처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의문점과 지적이 들어오면 무조건 이미 배웠던 논리를 반복해서 내놓고 학생들에게 그렇게만 알아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 문제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개념이 과연 성경적이냐 아니면 비성경적이냐는 방향에서 뗄 수 없는 관계로 맞물려 있습니다. 건설구원이 인정되려면 백영희 삼분론은 자동적으로 인정해야 하고 건설구원을 인정하면서 백영희 삼분론만을 제외하면 또 많은 모순이 나옵니다. 그리고 백영희 삼분론과 건설구원을 조금이라도 인정을 하려면 중생된 영의 범죄 문제는 자연스럽게 요일5:18 해석과 함께 해결이 되게 됩니다.

이 모든 문제에서 하나라도 부인하면 결국 전부를 다 부인해야 하는데, 이미 우리 교계의 조직신학계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정확성에 대하여는 최소한 일부라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전면 부인하고 나설 학자는 없는 정도입니다. 더 이상 이 문제로 토론을 해봐야 신학자의 한국식 권위만 손상될 것이기 때문에 아직 차분하게 이 문제로 대화하고 연구할 대상은 아예 한 사람도 만나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뒤로는 표현을 바꾸어 가며 백영희 삼분론과 구원론을 대폭 인용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5. 그분들의 뒤를 추적하며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보다 세월에 맡기는 것이 낫습니다.

뒤 따라 가면서 백영희 구원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면 대개는 엉겁결에 아니라고 부인을 하게 되고 또 불편한 감정을 묻어두었다가 다른 식으로 감정대응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되면 그들이 이 길을 따라 오는데 지장이 많습니다.

이미 알 만한 분들은 이 신앙노선의 내면에 인정을 하고 다만 현실적으로 수용했다고 당장 발표를 할 정도가 아니어서 어정쩡하게 있으니 그 정도로 알고 그냥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곳은 어떤 토론이나 논쟁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교회사를 배워 잘 알겠지만, 교리와 진리의 정확성 때문에 한국교회가 오늘 이 모습으로 진행했는지, 아니면 옳고 바른 것은 그것은 그것대로 따로 있고, 현재 처한 입장과 형편과 이권과 감정 등으로 인하여 원치 않는 길을 걸어왔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이 양쪽의 주장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혼동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전체가 꽉 짜여진 체계적 주제이기 때문에 우선 한곳만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몸의 인체구조 관계와 같기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날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이 손주 하나를 마음대로 못하는 세상에, 교수가 학교 등록률 때문에 속으로는 학생 하나를 마음대로 못 주무르는 세상에, 학생이 교수를 상대로 교육을 시키거나 교회사에서 하나님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폐습을 아직 버려두고 계시지 한 순간에 뜯어고치지 않고 있는데, 만일 한 자리에서 끝장을 내려고 한다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 수많은 문제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상대방이 조용하게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밀어붙일 일이냐는 것입니다.

조용히 혼자 양쪽의 주장을 아쉬움 없도록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 미 이곳은 세계 신학계의 전체 흐름을 오래 전에 파악하고 내심으로 할 말이 많습니다만 반론이 나올 때를 생각해서 많이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이 홈은 교계 신학계에서도 표내지 않고 들여다보며 많은 과제를 안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학위 때문에 신학교를 갔지 신앙이 좋아지기 위해 신학교를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잘못 알고 갔다면 신학교를 다니면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 학교에 학위를 따러 간 사람이 불을 질러 놓으면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기본구원적으로 잘못된 신학교라면 순교를 해도 해야겠지만 건설구원면으로 문제가 있어 서로 깨달음이 다르다면, 상대방에게 연구의 기회를 충분히 줄 수 있는 여유는 있어야 합니다.

6. 일단 학생으로부터 이 성구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을 들었을 것입니다.

강의실에서는 자기가 아는 기존 이론으로 설명을 했겠지만 그분도 유력한 성경학자라 하시니 한번 더 들은 이곳 내용을 머리 속에서 쉽게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질문자나 답변자보다 훨씬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이니까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주장이 틀렸고 자기가 배운 기존 주장이 옳다고 속으로 말할수록 아마 그 교수님 마음속에서는 '아닌데...' 라는 반론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른 교리 체제로 자신의 전반적 지식을 구축한 분들은 학생들처럼 이곳 설명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옳은 것은 그 박히는 깊이와 그 효력의 기간이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재질문 : 백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

‘박목사님은 사망하기 직전 백목사님을 만나 깊은 반성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을 만나 깊은 반성이 있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박목사님이 백목사님 교리를 받아들였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좀더 생각해볼 문제로 남겨두었다는 이야기 입니까?


답변 : 박윤선목사님과 백영희목사님의 관계를 간단하게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1. 박윤선목사님과 백영희목사님의 관계를 간단하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① 해방 후 고신의 진리 운동에 각각 한 축을 맡고 있었습니다.

해방 후 고신의 초기 진리 운동에 있어 고신의 교계적 지도자는 한상동목사님이었고, 신령한 권위는 주남선목사님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안에는 박윤선목사님이 있었고 최일선에는 백영희조사님이 있었습니다. 주목사님은 말씀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분이었고, 한목사님은 정치가였습니다.

② 거창 시골에 있던 분을 부산서부교회로 청빙할 때 박윤선 목사님도 서명한 분입니다.

부산서부교회가 현 서울 충현교회를 개척한 김창인목사님을 배척하고 후임을 구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울 때 고신 내에서 서부교회의 혼란을 수습할 목회자로서는 단 1 밖에 없다며 그 이름을 당시 백영희조사님으로 지명하고 송상석목사님을 2번이나 거창으로 파송하여 백목사님을 설득하게 됩니다. 송목사님은 만주까지 가서 박형룡목사님을 청빙했던 분이어서 백조사님을 설득할 분은 그분밖에 없다고 평가되던 분입니다.

당시 고신의 지도부 7명이 연명으로 청빙서를 작성하여 백조사님에게 부산서부교회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부탁을 할 때 '한상동 송상석 한명동 이인재 박손혁 오종덕 박윤선' 7명이 서명하게 됩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이미 신학교에서 주남선목사님 등 여러 사람들을 통해 백목사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백목사님은 박윤선목사님을 극진히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박윤선목사님과 백영희조사님은 발언을 하는 분들이었고 그 발언은 어떤 외부 압력이나 흥정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옳은 것을 찾아 생사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박윤선목사님은 백목사님을 특별히 아꼈고, 백목사님도 조사님 시절 박목사님의 말이라면 극진하게 받들어 모셨던 사이였습니다.

백목사님 자녀들이 박윤선목사님 사택을 자유롭게 방문했고 박목사님의 서재에도 들러 어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으며, 백목사님은 박목사님을 통해 세계기독교 역사와 교리와 성경관을 듣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교계지도급에 있는 분들이 당시 백목사님과 박목사님의 관계를 증언하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④ 박목사님은 백목사님을 학생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박목사님의 특별한 점입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설교와 목회에 특별했던 백목사님을 그렇게 부러워했고 비록 신학교에서는 제자급이었지만 목회자로서는 내심 백목사님을 부러워했고 경쟁심을 가지고 열심히 백목사님을 따라 산기도도 흉내를 내는 등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사이입니다. 두 분 사이의 일화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록하고 소개하기에 부족할 정도입니다.

⑤ 당시 서부교회는 힘이 있는 교회였고 박목사님을 든든히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고신이 진리운동을 생명으로 알고 주장한다고 구호를 내걸고 한국교계를 향해 고신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출간한 것이 '파수꾼'이라는 월간지였는데 이 책을 통해 박목사님은 전국교회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발표문을 쏟아냈고 이 파수꾼의 발간의 배후 지원은 백목사님이었습니다.

이런 '파수꾼' 발간이 해를 거듭하여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되자 고신의 지도급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한 사람씩 발을 빼고 결국 '파수꾼'의 출간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됩니다. 이미 교단은 정치화가 되어 양심의 소리보다 현장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입니다. 이때 백목사님이 서부교회 재정으로 '파수꾼'을 출간하게 하였습니다. 이 파수꾼은 백목사님을 제명하기 위해 고신이 교단적으로 절차를 밟기 시작할 때 정치적 목적으로 다시 회수하여 그 뒤에 맥을 잇게 됩니다. 이런 내부 상황은 박목사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치였고 백목사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이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⑥ 고신의 예배당소송을 반대하다가 백목사님이 먼저 제거되고 박목사님도 뒤따르게 됩니다.

신학교 안에서는 박윤선목사님이 그리고 목회현장에서는 백목사님이 고신의 소송개입을 비판하고 반대하게 됩니다. 박윤선목사님은 신중한 분이고 행동이 늦은 분이며 또 고신지도부와 안면 때문에 비판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입장이 흐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분은 고신의 최고 지도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소송을 반대하는 일에 전면에 나서기 곤란한 인간적 입장이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에 비하여 백목사님은 그 신앙초기부터 사망 때까지 옳으면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었습니다. 고신 내의 소송문제는 오늘 기록상 박윤선목사님이 반소의 대표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백목사님이 박목사님에 훨씬 앞서 대표적 반소노선의 중심을 잡고 있었고 그 투쟁 역시 격렬했습니다. 백목사님으로 인하여 이미 고신 내에서는 소송에 대한 문제가 윤곽이 잡혀 있던 상태에서 박목사님은 학자적 책임으로 마지막 단계에서 입장을 발표하게 됩니다.

오늘 후학들의 관심은 신학교 교장이었던 박목사님의 위상을 고려하여 박목사님과 관련된 반소논쟁에만 관심이 있겠지만, 실제 고신 내부의 목회현장에서는 백목사님이 그 중심에 있었고 또 앞서 투쟁한 분입니다. 그리고 이 문답에서 살펴보고 싶은 것은 당시 박목사님은 백목사님의 초기 반소활동에 적극적으로 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또 소송문제에 대한 두 분의 입장이 같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도 두 분의 관계는 더욱 깊은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문제 때문에 백목사님은 앞서 제명되고, 박목사님도 뒤이어 제거됩니다. 두 분의 관계는 당시 상황이 특수하였던 만큼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⑦ 박윤선목사님이 고신에서 제거된 후, 백목사님에게 신학교 설립을 제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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