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병규 목사님의 요한 계시록 11장 두 증인에 대한 해석 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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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이병규 목사님의 요한 계시록 11장 두 증인에 대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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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질문 : 이병규 목사님의 요한 계시록 11장 두 증인에 대한 해석 4522

이병규 목사는 요한 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을 교회로 보고 있다. 두 증인을 교회라고 하는 것은 합당한 해석이라고 본다. 그러나 3절에서 8절까지의 두 증인에 관한 것은 이상하게 해석하고 있다.

두증인 즉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는 승리했으나, 복음을 전하지 않자, 사단에게 져서 소돔이라는 성적으로 타락한 곳의 교회는 세속화되어서 죽고, 애굽이라는 악한 왕이 있는 곳의 교회는 핍박으로 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3절에서 8절까지는 두증인 즉 교회가 하나님이 정한 때까지 만국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마치자, 그동안 교회의 복음 전파의 위력 앞에서 힘을 써지 못하고 있든 사단이 다시 힘을 얻어서 짐승 즉 국가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이로 인하여 교회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나온다고 해석해야 옳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병규 목사의 해석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이병규 목사의 해석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답변 : 7-8절은, 타락의 때가 아니라 신앙 절정을 넘어 최종의 때로 깨닫고 있습니다.

1. 이병규목사님께서 어떻게 깨닫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성경과 기도에 전력하신다는 소식은 듣고 있으나 그 이상은 잘 알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을 어떻게 증거하고 계시는지 그곳의 주석이나 여러 기록들을 볼 기회가 없어 그냥 이곳의 해석만 설명하겠습니다. 비교는 직접 하셨으면 합니다.

2. '계11:1-8'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① 1-2절에서는, 성도의 참된 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녀도 교회 안에서 보면 성전 바깥에 있는 정도의 신앙에 머무는 사람도 있고, 좀 열심히 믿는 이들은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제단생활에까지 나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 성도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이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에까지 나아간 상태입니다.

42개월로 말씀한 신약교회 기간 끝까지, 우리는 성전 밖 마당 차원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그치는 사람도 있고 몸 바쳐 충성하는 것으로 전부라고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주님 오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개인이 주님 앞에서 서는 개인 종말까지 이 재세기간은 마귀가 세상의 임금이 되어 날뛰도록 주님께서 두고 보십니다.

② 3-6절에서는, 참 성도의 신앙생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배당 바깥에서 예배당 안으로, 예배당 안에서도 이제는 헌신하고 사는 자발적 신앙으로, 또 더 나아가 주님과 동거동행하는 깊은 신앙의 참 신앙을 가지게 된 성도는 세상을 이기는 능력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세상은 세상 기준으로 교회를 이기고, 참된 교회는 신앙을 기준으로 볼 때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게 됩니다.

말하자면, 손양원목사님은 인간이 죽기를 두려워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원수 앞에 말씀을 어기게 되는데 오히려 생명을 초월하여 말씀대로 살았으니 그는 세상을 이기고 공산 점령군을 호령하며 능력으로 자기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기준에서 보면 공산당은 그를 사살해서 그들이 이겼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육적으로도 세상을 이기는 경우도 있으나 이 증인 된 신약교회의 참 신앙이 세상을 이기는 것은 신령한 싸움에서 세상을 말씀으로 이기고 사는 생활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선지 사도들의 신앙걸음을 차례로 생각하며 예를 들어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③ 7-8절에서는, 참 성도의 마지막 모습을 알리고 계십니다.

성도의 생활은 이 땅 위에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역을 다 끝낸 뒤에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 조금이라도 세상에서 말씀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위협하고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예정과 주권섭리를 믿는 신앙입니다.

참 성도가 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세상이 죽이고 손해를 보이겠다고 난리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세상 기준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성도가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살도록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이 생활은 그들이 죽이면 순교로 최고 승리이고 그들이 손해를 보이면 그만큼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승리가 되므로 말씀대로 사는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세상에게 질래야 질 수 없는 승리만의 생애입니다.

그리고, 바로 믿고 말씀대로 바로 살아가는 성도의 최후는 그가 말씀대로 할 일을 다 하고 이제는 세상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전혀 없게 되는 그 순간, 그 최후가 되면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 그렇게 불러 가시는 그 순간에 만일 세상이 그를 죽이게 되면 순교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 서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하고, 어느 한 시대교회적으로도 그러합니다. 또 우주 전체적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7절에서 '저희가 증거를 마칠 때에'라고 하신 것은 성도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애가 끝날 때라는 말씀입니다. '증거'라는 것은, 예를 들면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활과 활동으로 예수님을 구주라고 이웃에게 보여준다면 이것이 진정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의 평생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생애 전부가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먹어도 주를 위해, 입어도 주를 위해, 우리의 모든 세상 생활 행동 하나하나가 궁극적으로는 말씀을 드러내는 생활이 되어야 참 생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말씀생활을 이 땅 위에서 완료하게 되면 세상은 비로소 우리의 육체의 생명도 빼앗을 수가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그 성도를 세상이 자기들 마음대로 생명까지 빼앗는 바로 그곳은 타락한 세상, 구약 광야 이스라엘로 말하면 애굽이며, 아브라함 시대로 말하면 소돔으로 표현하신 곳입니다.

3. 이 성구는, 우선 신약교회의 순교자를 대표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평생 말씀으로 살다간 신약 교회 대표적인 성도들, 순교자들을 우리 신앙의 목표로 앞세워 우리가 걸어갈 길을 알리고 계십니다. 일반 성도라 해도 비록 순교자들처럼 생애 자체가 이 말씀에 다 해당되지는 않는다 해도, 어느 한 부분적으로는 우리도 정상적으로 말씀대로 산다면 그 부분은 이 말씀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기본구원적으로 간단하게 하나의 원리로만 살펴볼 성구가 아니라, 건설구원면에 있어 우리 각자의 기능별로 또 각자의 장단점별로 아직도 우리 속에 이방인과 같이 교회를 다니는 요소가 있다면 얼른 헌신으로 나가는 신앙이 되어야겠고 또 더 나아가 주님과 동행하는 경배의 사람이 되어야겠는데 이렇게 주님과 동거동행하며 주님을 세상에게 알리고 증거 하는 생활을 하려 하면 세상은 자기들 기준으로 자기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신앙으로 살려는 우리를 누르고 나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에 붙들려 살면 말씀이 주는 능력으로 세상을 초월하고 세상을 호령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눈을 가진 이들은 세상이 세상 마음대로 우리를 흔드는 것 같으나 실은 주님의 전능의 보호와 능력이 우리를 붙들고 복음의 역사를 오히려 세워나감을 볼 것입니다.

손양원목사님처럼 그 생애 전체가 증인 생활로 흠 없이 나간 이들은 그 생애 전체가 이 말씀 그대로 진행될 것이고, 우리처럼 어느 일부분만 그런 분들을 조금 흉내 내는 신앙들에게는 이런 면을 부분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 참고로, 이곳은 일반 주석을 참고하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을 건설구원으로 깊이 새기고 들어가지 않으면 어느 한 성구는 어느 한 특정한 사건에만 해당되거나 어느 한 인물에게만 해당되는 면으로 끝나버리게 됩니다. 그리되면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그들의 평생 모든 사건에 대하여 직접 지시하고 길을 알려주는 진리로 사용되지는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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