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요한 계시록이 말씀하는 건설구원을 지지하는 성구 하나를 묵상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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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질문 : 요한 계시록이 말씀하는 건설구원을 지지하는 성구 하나를 묵상해보면서(계21:7-8) 2624

킹제임스 성경 요한 계시록 21장 7-8절

He that overcometh shall inherit all things; and I will be his God, and he shall be my son.

But the fearful, and unbelieving, and the abominable, and murderers, and whoremongers, and sorcerers, and idolaters, and all liars, shall have their part in the lake which burneth with fire and brimstone: which is the second death

백목사님의 설교록에 의하면 4가지 종류의 심판을 말씀하고 계신데

첫째로 홍수심판
둘째로 불심판
셋째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네째로 백보좌심판

첫째의 홍수심판은 지나갔고

둘째의 불심판은

베드로후서 3장 12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요한계시록 20장 9절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이 예언의 말씀의 시간적 간격은 7년 환란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강림이 이루어져서 천년통치가 끝난 뒤 지상에서의 배교적인 상황이 일어날때이며 이로 인하여 불 심판이 이루어지고 의의 거하는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세째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고린도후서 5장 10절 말씀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 예언의 말씀의 시간적 간격은 7년 환란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강림시에 잠들어 있던 자들이나 그때까지 살아있던 성도들의 휴거후에 공중에서 이루어질것이며 그후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통치가 있을 것임.

네째로 백보좌 심판인데

요한계시록 20장 13-15 말씀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예언의 말씀의 시간적 간격은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말기에 있을 불 심판이 있은 후에 있을 것이며 성도들의 심판이 아니라 불신자들의 최후 심판을 확정하는 것임. 건설구원과 관련해서 성도들의 심판 몫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이 심판의 목적은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방법은 고린도전서 3장 13-15절에 말씀하신대로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여기에서 말씀하는 상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통치하는 것을 포함하여 장차 이후의 성도의 옳은 행실들로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말씀하는 것임. 여기에서 말씀하는 해는 상급이 없는 상태로 자신만 구원을 얻는 상태임. 여기에서 불은 각각 공력을 밝히는 역활을 하는 것임.

그런데 좀더 생각해볼 문제는 그러면 과연 성도들이 그 몸으로 악으로 드러난 부분은 최점{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고전 3장 15절에서 말씀한 그 불은 공력을 밝히는 것이지 결코 악을 심판하는 기능은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몸의 행실이 그 불로 인하여 악으로 드러난 부분은 해를 받을 것인데 해가 언제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백목사님의 교훈대로라면 순종치 못한 부분은 본질적으로 죄로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죄라면 죄는 분명히 그 삯이 사망이므로 둘째사망의 해를 정당히 받아야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불순종한 부분이 최점{으로 해를 받아야 할곳은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기록된 곳이 분명하리라고 봅니다. 그 불못만이 죄가 영원히 값을 치루는 곳이라고 믿어집니다.

이면을 재고해기 위하여 킹제임스성경을 살펴보면

shall have their part in the lake which burneth with fire and brimstone: which is the second death

두려워하는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자들은 그들의 몫을(their part)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 곧 둘째사망에서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8종류의 죄인들은 영혼 몸이 모두 불 못에 던져져야 할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영은 구원을 입었어도 그 혼과 몸의 기능이 불순종에 거했던 모든 성도들의 죄까지도 포함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는가 하면 어느 조직신학에서도 이면을 다루고 있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불순종한 면을 어떻게 다루실지를 정확히 분별하고 있는 곳은 이곳 한곳이라고 여겨지는데 문제는 성구에 다루고 있는대로의 그 시점이 언제이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0절에도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이 말씀의 진면은 성도의 옳은 행실을 격려하는 것이며 만약 실족되었을때에는 온몸이 지옥에 던지워야 하는 것으로 읽어지는데 이 경우에도 이 온몸이 그 영이 아니라 순종치 못한 부분 다시 말하면 그 몸으로 행한 악한 부분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질문은 두가지인데 첫째는 이 말씀에서 지옥은 계시록 21장에 있는 둘째사망이냐는 것이며 둘째는 범죄 한 몸을 찍어 내어버리는 이 신앙행위는 이 세상에서 자복하고 새로운 선한 행실을 격려하는 내용이냐는 점입니다.


답변 : 계21:7-8은 건설구원의 둘째 사망, 막9:43은 죽기를 각오로 의의 투쟁을 하라는 권면

1. 전반적으로 잘 깨닫고 정리하셨습니다.

교리적으로 몇 곳에 재 질문을 드리고 어떤 면으로 말씀하셨는지 알아보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글 전체를 볼 때 교리의 기본 방향을 아시기 때문에 단순히 표현이 애매하게 되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적는 답변자의 글도 누가 반론을 하려면 끝없이 토론해야 하는 애매한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적은 전체 글들을 종합하고 평소 이곳 성향을 안다면 문제들 것도 없고 또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질문자의 글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질문하신 2가지 문제로 집중한다면

① 첫째, 계21:7-8이 건설구원에 해당되는 둘째 사망이냐는 질문인데

이 본문은 건설구원에 해당되는 성구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만 이기고 지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습니다. 이기면 이긴 부분은 자기가 천국갈 때 가져갈 것이고 만일 이 세상에게 유혹을 당하든 힘이 없어 지든 하게 되면 여러 종류의 죄를 짓게 되고 그렇게 된 부분은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되어 다시는 사하심을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② 둘째, 막9:43에서 범죄한 지체를 찍어버리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한 질문인데

우선 본문을 본다면,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눈으로 죄를 짓든 혀로 죄를 짓든 순간이라도 방심을 하면 어느 지체가 탈을 내든 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성구를 잘못 읽으면 어차피 순식간에 실수하는 경우를 다 막을 수 없으니 해당되는 지체를 아예 없애는 것이 가장 잘 믿는 사람이 할 일이라고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의 두 눈을 찔러 소경 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을 초산에 문질러 남이 자기를 미혹하지 못하게 한 경우도 있으며 양도천(목사님)이라는 사람은 이성관계에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몸을 잘라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크게 오해를 한 것은, 눈을 없앨 때는 눈만 죄를 짓고 눈 때문에 계속 시험에 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눈을 없애고 나면 또 다른 지체 때문에 다시 눈으로 계속 죄를 짓던 상태로 돌아가는데 이를 몰랐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눈 두 개를 뽑고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칭찬하는 말씀이 아니고 또 가정이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가정을 파괴시키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양도천(목사님)처럼 이 성구 때문에 이성관계를 가질 수 없는 불구자로 만들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는 미혹일 뿐입니다.

이 성구는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해당되는 현실에 어떤 육체의 한 부분도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도록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는 하루점O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죄로 더불어 싸우고 의로 살기를 노력하며, 그렇게 해놓고도 이 성구 때문에 주님 앞에 겸손히 자복하고 내일은 좀더 깨끗하게 살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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