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질문) 부모의 잘못이 가슴 아픕니다.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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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질문) 부모의 잘못이 가슴 아픕니다.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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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질문) 부모의 잘못이 가슴 아픕니다. 417

자식에겐 효도만이 요구되어야하는가?
성경의 윤리는 일방적인 윤리가 아니라 상호윤리로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항상 한족에게만 요구하시지 않고 쌍방간의 요구를 하신다.

00제일교희의 성 장로
전처가 암으로 죽어 가는데 빨리 죽으라며 발로 밟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장로법까지 어겨가면서 아들들을 위하여 소개받는 분들은 아줌마 티 난다고 거절하고 팥쥐 엄마 같은 계모를 선택했다. 아들은 재혼은 찬성이지만 시간이 좀 흐르게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을 심하게 구타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결혼식을 해버렸다. 그 계모는 아들을 골방에서 지내게하였고 밥 한끼 주지 않았다.

그 장로 역시 자식에게 늘 자기 쓰던 헌물건만 주고 자식한테 자기의 금시계를 자랑한다. 자식은 자취비, 학비가 부족해 끙끙거리며 사는데도 아들한테는 유행 다 지난 헌옷들, 헌신발주면서(헌신발주는 사람 첨본다.) 그것도 주면서 새것도 준다면 감사할일이지만 자기는 갈비집을 오픈하기 위해 몇 억을 투자하고도 자기아들이 근근히 아르바이트하여 자취방 하겠다 모은돈 700만원을 자기한테 주면 목돈을 만들어 준다 놓고 빈손에 자식을 내몰았다.(부산역 앞의 갈비집 확인하고 갑시다) 그것도 아들한테 군에 다녀오면 대학 보내준다더니 군 생활이 마쳐가니까 전문대가라더니 제대하닌 대학은 무슨 대학이냔다.

결국 포기하고서 그렇게 아르바이트하여 자기 앞길을 타개하려했던 아들의 피 같은 돈 꿀꺽하고서(자기는 그 돈 없어도 살 수 있으면서, 계모친척이며 그 여자 앞으로 몇 채나 되는 집, 재산 은닉하고는) 아들이 별별말과 부탁, 눈물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너를 키워준 값이라며 그럼 부모자식의 관계는 아니란 말아닌가! ?

그렇게 자식을 버려놓고 자기의 어머님 발인때 교인들한테 면목 없으니까 아들들한테 연락하고 난리였다.(그것도 연락처도 몰라서 친구한테 물어가며) 그 아들 어두운 곳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첫째아들의 결혼에는 돈 천만원도 제대로 주지 않아 집 계약을 놓고서 곤욕을 치루었는데도 오히려 미안하다기는 커녕 화를 내었다. 결혼전 그런 과정을 겪게 하면서도 자기 도리는 안한채 무리한 요구만 했다. 뒷바라지도 못 받았기에 자기 앞길 만드느라 빚 갚느라 긍긍하는 아들에게 말이되나? 폐백하자 놓고 그냥 집에 가더니 오직 들어온 돈 세는데 여념이 없던 사람, 돈이라도 달랠까봐 돈이 안 들어왔다면서 발뺌하던 사람 그러고도 아들한테 해야 할 도리만 요구하는 사람.

보증마저도 아들한테 못서주겠다는 사람. 아들이 힘들어서 도움을 청하며 빌며 울어도 외면하던 사람..(당시는 그는 제일은행에 다니고 있었고 결혼 며칠 전까지도 주식 올랐다고 아들 앞에서 자랑하고는 결혼하려니 돈이 없단다)

성 장로님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겠지요. 회개하겠지요. 아들이 뉘우쳐 자기한테 복종하기를 기도하겠지요. 교회에는 헌금을 많이 하겠지요.

누가 그 계모를 소개시켜 주었나요? 두 아들의 인생을 꺽어 놓고 자기의 딸이 잘 자라기를 기도할 수 있을까요?(나이 40넘어 자식을 낳았는데 자기자식을 낳고도 전처의 엄마로의 한을 모를까요? 자기자식이 자기 없는곳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면?) 그녀는 성가대로 봉사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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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사람이라도 봐주시는 것으로 감사드릴 뿐입니다. 맘에 서린 한이기에
그 장로는 자기의 한일들은 아들이 착하여 다 덮어주고 그냥 계모랑 잘살라고 떠나버렸는데, 자기의 명분을 교인들한테 세우기 위하여 자기의 허물은 덮고 아들들의 탓으로 오히려 모함을 합니다.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장로로 있는 교회는 과연 그에 대하여 알까요?



(답변) 가슴이 아파도

1.억울하신 분들의 손해는 이렇습니다.

1)
억울하게 당했던 것, 그 전부가 손해였습니다.

2)
당한 것보다 더 큰 손해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건강에도 크게 해롭습니다.

3)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 하신 말씀 때문에,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살인자에 해당되는 죄를 더하게 되었으니 하나님 앞에 그 손해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2.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1)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한 것을 기억하고 바로 상대하게 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 말씀입니다.

2)
부모에게 억울함을 생각한다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아도니야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었던 참 억울함은 그들의 결과가 그들 자신에게 더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억울함을 잘못 풀면 억울함을 당한 것도 서러운데 더 큰 억울함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억울하다시는 본인을 위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성경을 차분히 다시 읽어 보는 것입니다.

3)
참으로 억울했으나 그 억울함을 억울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는 훈련기간으로 받아들인 요셉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그는 역사에나 기록될 인물로 주신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그리 하라시는 말씀입니다.

3.참고로 성경의 상호주의는

1)
우리를 구원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상호주의가 죄인에게는 마땅히 죄값으로 죽게 하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 차원의 상호주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지극히 공의롭고 공평한 법이어서 지공법이라고 합니다.

2)
그러나 오늘 구원의 시대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원수인 우리를 먼저 구했으니 너도 너에게 죄지은 작은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극히 작은 문제라도 애를 쓰라 하십니다. 즉 복음의 시대 오늘 신약의 상호주의는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큰 은혜를 생각하여 자기가 지면 질 수 있는 작은 십자가를 자기 현실에서 지라는 것입니다.

4.남의 말은 식은 죽 먹듯이 하는 것이라 보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억울하신 일을 당한 분'과 같은 억울함을 당해 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언제 그런 일을 당했느냐는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당해도 해결은 성경이며 상대방이 당해도 해 드릴 말씀은 결국 성경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가지 않아도 천국가기로 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어느 교회 예배당 들어가는 입구에서 본 글입니다.

'먼저 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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