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질문) 교회 다니는 것을 부모가 반대할 경우 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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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5
16. (질문) 교회 다니는 것을 부모가 반대할 경우 3954
(안 믿는 부모들이 교회 나가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면 안 나가도 죄 또 나가도 죄입니다.
안 나가면 하나님께 죄, 나가지 말라 하는데 교회 나가니까 나가면 하나님께는 바로 되지만 부모에게 죄, 또 안 나가면 부모에게는 또 괜찮지만 또 그 하나님에게 죄가 되는 것, 이렇게 죄가 되니까 요것은 이래도 저래도 죄가 되는데 죄 되지 않은 방편은 무슨 방편이냐?
속에 중심은 부모가 옳은 데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 틀렸으니까 속으로는 틀린 것을 반대하고 그것을 뿌리 뽑아서 부모에게 그것이 없도록 하려는 그 목적을 가진 중심을 가지고 껍데기만 부모에게 순종하는 듯 해서 겉사람으로서는 죄의 법을 순종하고 속으로는 하나님 법을 순종한다 하는 거와 같은 요런 그 방편을 써 가지고서 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도 하고 부모에게도 순종도 하고 두 가지 순종이 되어지는 것으로써 좋은 결과를 맺게 됩니다.)
*이 말씀은 교회나가라는 말인가, 부모의 말을 듣고 나가지말라는 말인가요?
(답변) 자녀가 부모에게, 교인이 목회자에게 가져야 할 처신 문제입니다.
우선 간단하게 답변드린다면
질문자께서 인용하신 설교는 '1988.6.5. 주일오후' 예배설교에서 가르친 내용입니다.
1.부모가 교회를 못가게 하면
1)부자지간을 끊고라도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 신앙입니다.
2)안나가는 척 하면서 뒤로는 몰래 교회를 다니는 것이, 보다 나은 신앙일 경우가 있습니다.
3)노력해서, 교회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부모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제일입니다.
4)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몰아세우는 부모를 만들었다면, 완전한 신앙입니다.
2.질문 내용은 부모와 자녀 문제를 가지고 예를 든 것입니다.
1)국가가 신앙탄압을 하는 경우, 교회가 가져야 할 자세에도 준용할 수 있습니다.
2)목회자가 곁길로 갈 때, 교인이 목회자를 상대하면서 알아야 할 단계이기도 합니다.
3)남편을 상대로 아내가, 대단히 조심스럽게 사용할 상식입니다.
4)자녀가, 부모를 상대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질문)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감사합니다.
*1번의 2)는 안나가는 척 하는 것은 결국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죄가 아닐까요?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신앙에 위배되는 것은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요?
*신앙사수와 타협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답변) 앞의 답변에서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1.안나가는 척 하는 것은 결국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죄가 아닐까요?
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입니다. 부모로 하여금 나를 교회에 나가게 만들어야 나 할 일을 다한 것입니다. 부모가 아직까지도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하게 되어 있는 상황은, 그 상황 자체가 나의 부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로 말하면 죄가 됩니다.
그렇지만 대죄를 중죄로, 중죄를 소죄로, 소죄를 무죄로, 무죄를 소의로 데리고 나가는 과정에서 본다면 중죄나 소죄가 같은 죄일 수 없습니다. 중죄도 죄고, 소죄도 죄입니다. 그러나 중죄에서 소죄로 나가는 것은 회개를 잘하여 신앙에 발전이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가지 않는 척 하는 행동을 넓게 말한다면 죄입니다. 그러나 그 죄가 현재 어느 정도의 죄이며, 어떤 차원의 죄인가? 그리고 그 동기와 진행방향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이번 질문 내용에만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도 교회 하나를 세워 보겠다' '나도 선교를 해보겠다' 이런 정신으로 개척을 하고 해외 선교를 나가는 이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이 행동을 두고, 내면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비판한다면 복음운동을 자기 성취거리로 자기 만족거리로 자기 계산대로 하는 행동이니 죄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행동을 죄가 된다고 표현할 때는, 믿는 사람의 행동의 원인은 무엇이라야 하느냐는 문제를 따질 때만 죄라고 하지, 일반적으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라고 말할 때는 그런 행동을 두고 '목회한다고 고생합니다.'라고 할 뿐입니다.
2.'*<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신앙에 위배되는 것은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하는 문제
당연한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은 죄가 되는 것은 순종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죄가 되는 일을 시킬 때는 거부하라'는 것만 가르친다고 생각하신다면, 성경 전체를 몰랐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하신 제8계명을 두고 해석하기를 '남의 집에 담뛰어 넘어가서 훔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성경의 한 부분은 알고 다른 부분은 몰랐다고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담 뛰어 넘어가서 도둑질하는 것을 금한 것이 8계명의 성구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땀흘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은 내면을 분석해보면 남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남을 미워함이 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야 할 것 같습니다.
3.'>*신앙사수와 타협'에 대한 정리
먼저 안내드린 답변의 분량과 답변 내용이 부족했습니다. 답변 윤곽을 보셔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재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5월집회가 막 끝나서 시간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앙사수와 타협이라는 문제는 윗 답변에서 사실 빼놓으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신앙을 사수해야 한다는 것은 '신앙'의 기본 성격을 안다면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타협'이라는 것도 진짜 '타협'을 했다면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데 먼저 드린 답변은 '타협을 통해 적당하게 지켜지는 신앙'이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타협은 할 수 없지만, 자라가는 신앙의 전진을 위한 '조절'은 '신앙사수'의 다른 형태라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신앙사수를 위해 주일날 성경책만 보고 있어야 할 신앙의 사람도 있고, 신앙사수를 위해 주일예배가 마치고 나면 집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있으라고 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또 내가 주일을 못지키거나 박해가 두려워서가 아니고 상대방이 나 때문에 배나 더 크게 죄를 짓는 악인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표현을 조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바로왕에게 3일길을 가서 제사드리겠다고 말하라고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속으로는 3일이 아니고 그대로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3일만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이라는 곳은 이스라엘이 4백년 종노릇을 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4백년간 남의 집에서 나그네로 신세를 졌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나오면서 이스라엘로 인하여 애굽이 완전히 전멸을 받게 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들이 강퍅해서 그리 되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로서는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그들이 덜 다치고 덜 상하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이스라엘 구원운동의 지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 가지 참고하실 것은 애굽에서 '사흘길'이라는 것은 사실은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따져보면 거짓말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두고 삼가 조심할 것은, 속으로는 박해가 두렵고 주님 때문에 손해볼 것이 두려운데 겉으로는 남들에게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써먹을 수 있는 논리거리가 될 수 있고, 또 자기 양심을 누르고 달래는 하나의 논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질문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자기 신앙이 약해서 환경을 이길 수 없고 두려워서 패전한 경우라 해도, 또 자기 신앙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어쨌든 부모에게 죄를 덜 짓게 하고 부모를 하나님과 크게 맞서도록 하지 않게 하는 일은 우리가 늘 배려할 일입니다.
(재질문) 같은 논리로, 술 먹는 사람을 위해 한 잔을 할 수 있는지
감사합니다.
*이미 답을 주신
<타협은 할 수 없지만, 자라가는 신앙의 전진을 위한 '조절'은 '신앙사수'의 다른 형태라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신앙사수를 위해 주일날 성경책만 보고 있어야 할 신앙의 사람도 있고, 신앙사수를 위해 주일예배가 마치고 나면 집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있으라고 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라는 말을 근거로 해서 술먹는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나도 한잔 정도 먹어주어야 할 상황이라면 술을 한잔 정도 마시면서 전도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께 합당한 것일까요?
(답변) 술을 끊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라면
교회를 다니는데 아직 술을 끊지 못한 사람이 같은 술꾼에게 술 한 잔을 사주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면, 말릴 일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실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한 두 줄의 원칙으로 정해놓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원칙에 관한 대충 설명은 윗글에서 말씀드린 정도이고, 나머지 실제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그 사람의 신앙과 배경 그 당시 주변 상황 등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원칙을 적용시킬 때 어떤 면을 고려하는지를 다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 처음 선교 오던 100여년 전 선교사들 중에서는 본국에서 술을 한 잔씩 하던 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현상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술이라는 것은 단 한 잔도 하지 않도록 명령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런 원칙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만일 감리교 목사님이 사택에서 저녁에 와인 한 잔을 즐긴다면?
총공회 목회자가 총공회 교인들을 모아놓고 대내적으로 가르칠 때는 한국 교회가 이렇게 썪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리교 교인들이 함께 앉은 자리에서는 비록 성경이 명문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해도 신앙선배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어린 신앙들을 가르칠 때 하나님 앞에 서약을 시킨 것은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옳은 신앙이라고 발언할 정도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술을 먹는 것은 성경에 죄가 된다며 비판하는 것은 조심할 일입니다.
이는 총공회가 알고 있는 성경과 신앙노선과 감리교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 면으로 자신의 내면을 잘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인들이 단순하게 알고 들은 것을 남들에게 너무 쉽게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그 분들이 발언한 동기는 알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