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간음이 어느정도 큰 죄인지 (쉬/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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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5
1. (질문) 간음이 어느정도 큰 죄인지 (쉬/464)
안녕하세요.
간음에 대해 물어보려구요..
전 거의 성도착자입니다.
예쁘거나 야한 여자만 보면 눈알이 커지고 침이 넘어가고
뭐 거의 동물 수컷들의 본능을 가졌습니다.
친구들이 하나둘 여자애들과 관계를 맺고 얘기하고 하니
저도 흔들리는 것같네요. 이러면 안 되는데.
음란물도 봐요. 정말 제자신이 너무 저질 같습니다.
하나님 믿는 신앙이 있기는 있어서 더 괴로운 것같애요..
교회 다니는 학생이 이러면 안 되잖아요.
예수님을 믿었으면 계속 배워나가고 영육이 훌륭해져야 될텐데
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제가 본 영화중에 이런게 있어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야만인이 과학자인가한테 발견되서
말을 배우고 지식을 쌓고 그래서 여기저기 불려 다녀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말은 뭐 "야만인으로 살다가 이렇게 배울거 배워서 인간답게 살고있다"
이러거든요. 그러는데 밤만 되면 밖으로 나가서 거리의 여자들 만나서
이상한 짓을 하는데 하고 싶어서 하는거라고 하기에는 표정이 아니예요.
침울하다고요. 할때나 끝날때나 침울하게.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제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싫고 하는데 왜 이겨내기 힘든
정욕이 생기냔말이죠. 요셉의 성의식 건강함이 반만 있었어도
본론을 말하자면 궁금한 것이
1. 간음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2. 남자는 정욕을 왜 그리 쉽게 느끼는겁니까?
3. 이세벨이 어떤 인물입니까?(엉뚱하지만 그래도자세히 알고 싶어서)
끝으로 글이 엉망이라 죄송합니다.
답변해주세요.
(답변1) 우선 전반적인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노아 때 세상을 물로 씻은 죄, 재림 때 세상을 불로 다 사룰 죄의 대표가 그 죄입니다.
1.주변에 보이는 여자분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이 많으신가요?
이런 종류의 죄는 이런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고 노력하는 것보다
이런 종류의 죄가 마음에 와닿을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이라도 공부에 빠지거나 무슨 취미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것 돌아볼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벌써 사람이 자기가 건설적으로 해야 할 자기 주업무에 빠져 정신이 없고 딴 곳을 쳐다볼 여유가 없도록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우선 게으른 죄를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안일의 욕심이라고 합니다.
대개 10계명의 이런 저런 죄만 큰 줄 알지만, 게으른 죄와 같은 것은 근본적인죄로서 이런 죄는 모든 종류의 죄를 다 불러올 수 있는 뿌리되는 죄에 속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인간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붙들려 움직여야 하는데 이 관계가 끊어진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이 비어있는 곳에 가장 먼저 찾아드는 것이 도덕적으로 말한다면 7계명에 관련된 욕심들입니다.
주변의 여자분들 때문에 흔들리는 이런 시험이 체질적으로 선천적으로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이런 죄 대신 다른 죄가 자기 속에 할 일을 하지 않는 공간을 채우고 있지 비어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고민하는 이런 종류의 가책으로 괴로운 분들은 우선 그 죄가 필연적으로 생겨지지 않을 수 없도록 자기가 자기 전력을 다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비워둔 그 빈 공간이 문제라는 것을 우선 아셨으면 합니다. 이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할 나의 일에 매진하게 되면 건설적으로 할 일을 하게 되어 영육간에 복이되고 또 비어있는 마음이 없으니 이런 저런 떠도는 유혹들이 들어올 위험성이 없으니 그래서 또한 좋은 것입니다.
혹, 이런 죄는 없애 달라고 기도하게 되면, 이 기도를 하는 자기 마음 속에 그쪽의 생각이 반복적으로 연상이 되면서 더 깊이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죄는 자기 할 일을 찾아 열심히 하는 데에서 이겨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2.가장 좋은 방법은 일찍 결혼하는 것입니다.
남자를 알고 또 여자를 알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결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혹 지금 견딜 수 없는 정도라면 결혼을 서둘러야 합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 부부간에 가질 마땅한 '생활'이 되지만, 부부 아닌 관계는 전부 7계명이 됩니다.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세상 살아가는 일반 형편을 다 맞추다 보니까 결혼이 늦어지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폐해가 과연 오늘 이 말세를 다 불사르게 되는 7계명이라고 성경이 미리 말씀한 것입니다.
3.죄는,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힘쓰는 것보다 그 죄의 반대되는 의를 행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죄는,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그 죄를 붙들고 엉켜붙다 보면 점점 더 그 죄에 끌려들어가게 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뱀의 이빨은 입안으로 굽어있기 때문에 '옹니'라고 합니다. 한번 물리면 물린 짐승이 발버둥을 칠수록 더 안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예수님 대속으로 항상 나만 원하면 물려있는 이빨에서 바로 한발짝 뒤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 은혜이고 이것은 세상 다른 사람들로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능력이 그렇게 빼주게 됩니다. 회개하고 기도하게 되면 일단 빠져 나오게 됩니다.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그다음에 또 그 이빨을 붙들고 흔들게 되면 또 물리게 됩니다. 한번 고하여 회개하고 사유함을 받았다면, 그다음부터는 그 이빨의 두려움만 간직하고 그대신 자기의 마음과 노력은 그 죄와 반대되는 의를 향해 발버둥을 치면 됩니다.
간음죄로 예를 든다면 이는 더러운 죄이니, 이제부터는 깨끗함만 생각하고 깨끗으로 나가기 위해 그 죄의 반대편을 보고 줄달음을 쳐야 합니다. 모든 죄가 다 그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 점을 기억하여 조심할 것이 바로 간음죄와 남을 욕하는 죄입니다. 한번 들어두면 아주 못으로 박혀버려서 빠지지를 않는 정도이니, 아예 들어두지를 말고 그런 소리가 나올 곳에 자신의 귀와 몸이 나아가도록 하지 않아야 할 사안입니다.
(답변2) 3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3.위에 요약한 내용으로 간단하게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①첫째질문: '간음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노아 때 세상을 물로 한번 심판하여 깨끗게 씻어버려야 했던 죄가 바로 그 죄입니다. 마24:37에서 노아의 때와 같이 재림 때도 그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세를 다시 한번 불로 태워 완전히 없애야 할 죄 중에 가장 대표적인 죄입니다. 이 정도의 죄이니 일일이 손을 꼽아 헤아리자면 한이 없습니다. 백목사님이 수도승과 같이 목회를 한다고 평을 듣던 1970년대 교역자들을 앉혀놓고 목회자가 조심할 3가지 중 하나로 이성조심을 시켰을 정도입니다.
②둘째질문: '남자는 정욕을 왜그리 쉽게 느끼는 겁니까?'
사람 따라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표현의 방식과 과정이 달라 그러하지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같다고 보셔야 합니다. 꼭같이 더운 날에 덥다고 호닥거리는 사람도 있고 체질적으로 입을 다무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으로 정상적인 성장에 있다면 누구나 비슷하게 보셨으면 합니다. 물론 자연계시로 참고를 해본다면 하나님 없는 인간은 짐승과 같은 수준이 되었습니다. 짐승이면 힘있는 남성이 공격성향을 가지게 되고 약한 여성은 움츠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제 공격을 하는 측이 늘 침략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유도하여 틈을 노리는 측이 더 교묘한 공격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현저하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의 평생 노력이 남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공격해 달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까?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은 남성일지 모르나, 때려 달라고 환장을 하다 못해 거의 미쳐 버린 것이 오늘 여성의 자세이며 옷차림이라고 이곳은 단정하고 있습니다.
③셋째질문: '이세벨이 어떤 인물입니까?(엉뚱하지만 그래도..자세히 알고싶어서..)'
이세벨이라는 이름을 놓고 말하자면 여자를 욕하고 싶을 때 모든 욕을 다 해볼 수 있는 정도로 그 죄와 악이 극에 달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더 원하시면 따로 집중 분석해 드리겠으나, 현재 질문자께서는 이세벨과 같은 여성들이 거리와 주변에 너무 흔하게 띄여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죄송하지만 하실 중대하고 긴급한 사안들을 외면하시고 자신의 생활에 빈공간을 너무 많이 두셔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크게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자 주변을 타락 전 에덴동산만큼 깨끗하고 완전하게 만들어 둔다면 유혹받으실 일이 없을까요? 아담의 타락은 무공해 청정지역을 만들어 주셨으나 결국 스스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반면 모세는 애굽 궁궐이라는 세상 최고 최악의 더러운 환경에서도 모든 세월을 깨끗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자기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천하 더러운 소굴에서도 양털같고 흰눈같은 정결을 지닐 수 있고, 에덴동산같은 청정지역에서도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즉 환경을 보지 마시고 환경에 피동되도록 자신을 방치한 자신을 보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자신을 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