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올바른 자녀 출산과 관련된 질문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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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5
1. (질문) 올바른 자녀 출산과 관련된 질문 741
예전에는 대개 가정에 4-5명의 자녀 또는 그 이상을 두었으나 현재는 통계적으로 한가정당 평균 1.5명 정도를 두고 있습니다. 백목사님께서 설교 하실때 인위적인 방편(피임등)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를 제한 하는 것을 마귀행위라고 책망하시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인위적인 방편을 사용하여 자녀를 제한하지 않은다면 예전처럼 많은 자녀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그렇게 많은 자녀수를 두기는 어려우며 믿은 사람들도 대부분 2명 정도를 두고 있습니다. 서부교회에도 많은분은 4명을 둔 가정도 보았으나 그 이상은 드물며 대개는 믿지 않은 사람들과 비슷한 자녀수를 두고 있습니다.
한해 출산하는 신생아가 40만명이라면 낙태도 40만명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토록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세상 입니다. 결혼을 앞둔 분이나 젊은 부부에게는 방편을 사용하여 자녀수를 제한하자니 죄를 짓는것 같고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가지자니 키우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백목사님 말씀대로 자녀를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가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답변) 주시는 대로 받는 것이 신앙이지만, 신체조건 외에도 계산할 것이 적지 않습니다.
1.자녀출산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르치는 가장 큰 계시입니다.
①창세기 3장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자녀출산 때문에 평생 가질 고통을 주셨습니다.
여인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이라고 창3:16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말하면 자녀로 말미암아 갖게 되는 평생의 모든 고통 전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잉태의 고통이란, 자녀로 인하여 가지게 되는 평생 고통 중에서도 그 시작이며 또한 가장 대표적인 고통이기 하나를 통해 전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남자들에게는 창3:17-19에서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라고 했습니다. 결혼하고 출산하여 이루어진 전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도록 수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대표적인 수고 하나씩을 말씀했으나, 결국 자녀 출산과 관련하여 고통하고 수고하고 마지막에는 그 자녀들 때문에 죽어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죄값으로 주신 고통은 고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죄값을 실제 체험토록 하여 하나님의 법을 죽도록 힘써 지키게 하고 또 이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구원에 대한 모든 사랑을 알도록 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만드는 구원 목표가 있습니다.
②'부부'와 '출산'은 모든 자연계시 중에서 제일 크고 귀한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혼 안에서 가지게 되는 부부 사랑은 책에서 글로 배우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는 그 실상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을 해봐야 그 사랑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이 부부 사랑을 통해 주님과 성도의 사랑을 배우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지게 된 자녀는 천하 어떤 장난감 어떤 귀한 재산 어떤 가치있는 물건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은 이용물로 만드시고 우리는 아들로 만드신 다음 우리를 향해 우리에게 쏟아붓는 그 관심과 사랑과 투자는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는 알 길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치를 적어놓으시고 결혼생활은 실물교재로 사용하셔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자녀가 곁길을 가거나 병들거나 하게 될 때 부모의 찢어지는 가슴을 통해 죄로 나가는 우리를 보고 하나님이 가지시는 심정을 알게 합니다.
부부관계와 자녀양육은 하나님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남자라면, 아내에게 주님 노릇 해 보는 것이고 자녀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 보는 일입니다. 여자라면, 눈에 보이는 주님을 모셔보는 일이며 자녀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 보는 일입니다. 몇 줄로 간단히 적어주신 성경 이치를 가지고 인간의 가족내부를 가만히 분석하고 살펴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진리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대표적인 자연계시입니다.
2.부부가 자녀생산을 조절하게 되면, 생명문제가 따릅니다.
①낙태는 살인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버리는 것입니다.
낙태문제가 나올 때마다 생명을 죽인다는 말만 들립니다. 낙태란, 살인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큰 문제, 즉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길'을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살인죄로서 낙태보다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버리는 것으로서 낙태가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살인죄에 대하여도 소홀할 수 없는 것은 우주보다 귀한 것을 빼앗은 것이 되고 또 그 사람이 이 땅 위에서 이룰 구원의 기회를 없앴다는 것입니다.
②'낙태'로 대표되는 출산저지 문제를, 실무계산으로 분석했으면 합니다.
모든 낙태 문제를 단순히 '살인죄'로만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살인죄보다 더 큰 근본적인 문제, 즉 타락한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로 열어주신 문제를 강조하고 그 다음으로 살인죄를 알아야 한다는 순서를 특별히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살인죄'를 상대할 때에도 잔인하게 생명을 없앴다는 식으로 감정적 접근만을 할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기회를 끝내버렸다는 면과 그 구원의 기회는 그 하나하나가 우주보다 더 큰 것이라는 실무 계산에 의하여 살인죄를 접근해야 합니다. 접촉하면 바로 느끼는 것이 감정인데 감정이라는 것은 이성판단이 나온 다음 뒷수습에 필요한 것이지 이 감정이 사리판단을 하는 일에 이성보다 앞서 나와버리면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③낙태 뿐 아니라, 출산의 모든 조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확인되는 인체를 살해했다는 점에서 낙태죄가 그렇게 사회문제가 되며 소란을 일으키고 있으나, 가질 아이를 아예 가지지 않는 것도 꼭 같은 살인죄가 됩니다. 또한 아이를 가지되 그 시기를 조절하는 것도 역시 살인죄는 아니지만 그 아이의 생명이란 이 땅 위에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나오느냐는 것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판단하셔야 할 일이지 내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출산에 관련하여 조처하는 모든 기술은 하나님의 예정과 집행을 막고 나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막았으니까 막힌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이 출산시키지 않을 아이로 정해놓았는데 그 부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로 자기 역할을 하여 하나님의 원래 예정이 이루어지는데 참여했습니다. 마치 가룟유다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의 대속은 이루어지는데 하필이면 가룟유다를 예수님 죽이는데 하나님은 사용하셨고 또 가룟유다는 자기 스스로는 아주 잘한다는 것이 예수님 죽이는 일에 한몫을 하게 되었습니다.
④생명을 조작한다는 과학에 대하여도, 한 마디 해놓고 나가겠습니다.
현재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을 자유자재로 조립하고 개조하며 출산을 저지하고 지연시키며 별별 재주를 다 부리고 있습니다만, 기술이란 하나님이 이미 창조 때부터 그 기술이 가능하도록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오게 되는 것이고 그 기술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사용하게 되더라도 그것까지 다 아시고 예정해 놓았으니 결국 하나님의 예정대로 가기는 가는 것인데 자신은 그 예정 안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편에 서서 그 마침은 멸망으로 가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런 큰 범위를 과학자는 건방져서 알지 못하고 지금 하나님의 세계를 넘나드는 것으로 발언하고 있으니 웃기는 일이고, 또 신학계와 교회는 과학에게 모든 면에서 계속 패전만 하고 후퇴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더 넓은 세계에서 이 모든 현상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할 일을 인간이 해서는 안된다고 앞뒤 맞지 않는 말만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며 속으로는 성경은 권선징악을 말하는 신화집 정도로 보고 사실에 대한 정확성은 과학을 더 인정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3.이제, 자녀출산에 대하여 우리가 할 일과 알아야 할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①자녀는 주시는 대로 받는 것이 옳습니다. 자녀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으라는 것은 자녀출산에만 해당된 원리가 아니라 우리 사는 만사가 다 그러해야 합니다. 자녀출산에 대하여는 주시는 대로 받지 못해서 양심에 가책이 되고, 그렇다면 다른 면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신앙이란 모든 면에서 고루 발달을 하는 것입니다. 수학은 100점이고 과학은 50점을 받을 수 있지만, 신앙은 경제면이 100점이고 충성면이 50점이 되는 수가 없습니다. 물론 어린 신앙을 기르기 위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격려하는 것이고 또 앞날을 보며 고쳐가는 방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가장 낮은 점수가 바로 모든 면의 실제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얼굴에 대하여는 못나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자녀 출산은 주시는 대로 받아야 된다고 할 때, 우리는 두 가지 면으로 상대하게 됩니다. 우선 가장 중요하고 또 소중한 자녀문제에 대하여라도 하나님 주시는 대로 받아야 할 터인데 라고 양심의 가책을 가졌으니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현재 자기 얼굴도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 얼굴은 왜 주신 그대로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못난 집안에서 출생케 한 자기 출신도, 작은 키도, 나쁜 머리도, 독한 남편도, 멍청한 자녀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고 우리는 감사히 받아 살아야 하는데 그 중에 한 문제가 자녀 출산입니다.
②자녀출산과 함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는 자기 신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한 가지 면에 대하여 특별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장차 다른 모든 면에 대하여도 그리 되도록 자라갈 수 있으니 선도적 문제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한 면에만 너무 지나치게 치우쳐 기형적 신앙이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것도 동시에 필요합니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도록 고루 힘을 써야 하고, 그 중에서도 자기에게 특별히 느껴지는 문제는 더 힘을 써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로서 자녀출산 문제를 보셔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 가지기를 거부하고 또 주신 것도 늘 불만이어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사는 것 중에 하나가 결혼관계입니다. 자녀출산보다도 더 큰 문제입니다. 부부가 먼저이고 자녀는 그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위해 상대방을 택할 때 기준이 무엇이었던가를 돌이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신앙양심적 판단은 저쪽인데 내 눈에 끌리는 것이 이쪽이라면 100% 이쪽으로 결혼하는 것이 교역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상대방을 받지 않고 내 속에 내 욕심과 내 생각으로 상대방을 내가 골라서 살고 있다는 데 대한 양심의 가책을 들어 보는 경우는 희귀합니다. 실은 이 문제에 대한 후회가 평생에 가장 많아야 하고 자녀출산 문제보다 앞선 문제이며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말입니다.
즉, 자녀출산을 조절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 앞에서 이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답변자는 그 문제보다 근본적이고 앞서 있었고 평생 있어야 할 더 큰 문제로 더 크게 고민할 일은 왜 하지 않느냐는 반문을 혼자 주로 해 보는 편입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회개의 시작이지만 자기가 감당할 이상의 문제를 가지고 그 죄책감에 눌려 자멸하는 죄책감이 있고, 그 죄책감을 가지고 회개로 돌이켜 의에 분발하는 죄책감도 있기 때문입니다. 후자가 되려면, 자기 전반적인 단점을 바로 알고 고쳐가는 현황을 바로 알고 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③자녀출산과 관련하여 또 하나 근본적으로 생각할 부분은 결혼연령의 지연입니다.
생겨진 아이를 없애는 낙태도 큰죄이지만, 아예 아이가 생겨지지도 않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보다는 결혼자체를 미루어 출산연령을 10년 이상이나 지연시킨 죄는 용서받을 죄입니까? 늦어도 20세면 결혼적령기를 넘어서게 되는데 30세 결혼이 보편화되어 있고 이것은 잘 믿는 분들에게도 전혀 양심의 가책없이 그리 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낙태는 사회 불신자 차원에서 제기하는 양심문제이고, 자녀출산 조절과 같은 문제는 일반 교회들조차 양심가책을 느끼지 않는 문제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출산조절은 말할 것도 없고 적령기를 넘기는 죄를 결혼이나 자녀와 관련된 죄 중에 가장 첫째로 또 뿌리되는 죄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적령기 결혼을 세상 공부나 경제나 기타 자기 주관을 관철하기 위해 지나친 욕심으로 허송한 사람이 자녀출산 문제에 있어서나 그 신앙교육에 있어 바로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주일날 시험치고 직장에 들어간 사람이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 주일을 지키려면 남모르는 고통과 어려움이 더해감을 느끼게 됩니다. 차라리 입문에서 이기기가 쉬운 법입니다. 그래도 어린 신앙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현재는 그 선을 넘지 못하나 경제가 안정되고 세월이 가면서 많은 면을 느끼고 알게 되면 출발 때 이기지 못한 것을 후에는 이길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신앙이 자라가면서 이전 일을 회개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 내에서 발생되는 엄청난 문제들이 알고 보면 적령결혼을 넘겼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람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선택한 문제로 인하여 발생되는데 이런 것은 세월이 많이 지나면서 나타나기 때문에 원인을 파악도 못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4.이제 자녀출산을 조절하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①정상적인 부부라면, 10명 이상을 출산하고 양육하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건강문제나 특별한 형편에 있는 경우는 과학과 여러 기술발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부부로서 별일 없이 살아간다면 적어도10명 많게는 15-20명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아이를 가지지 않는 기간을 잘 고려하여 출산을 조절하라고 지도는 하지만, 부부관계의 원칙은 아이를 갖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아이를 가지지 않을 줄 알면서도 부부관계를 가지는 것은 이미 자기가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부부관계는 가지면서 그 열매가 되는 자녀출산의 고통은 피하는 것이 좋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실력 이상으로 참게 되면 음행의 연고로 주신 결혼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고전7:1-3에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출산을 통해 구원의 길로 나가려고 부부관계를 가지는 것이 옳고, 비록 출산은 피하겠지만 음행으로 나가지 않도록 부부관계를 가지는 것은 성경이 허락했으니 죄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제일 좋은 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길을 택하여 주시는 대로 다 낳는 부부가 있어 10-20명의 자녀를 가지게 된다면, 이는 대단한 신앙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녀의 출생이라는 시작에서만 100점이라는 말이지 많이 낳았다는 것이 곧 양육의 책임을 바로 했다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과잉보호도 문제이나 이렇게 많이 낳는 가정의 경우는 부모가 자녀에게 자기 할 일을 다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양육의 부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점수는 전체를 보고 매기는 것이지 출산의 숫자로만 매기는 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주는 대로 다 낳는다는 생각보다는 모든 면을 다 고려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물론 노아 방주의 능력을 말로만이 아니고 실제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신앙이라면 하나님이 길러주시겠지 라는 믿음 하나로 주시는 대로 다 낳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아이를 낳는 것에만 하나님을 전적 믿고 다른 면에는 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기형일 것입니다.
②모든 것은 모든 면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건강, 신앙, 양육, 또 다른 면으로 가지고 있는 의무를 종합해서 주시는 대로 다 낳을 수 있는지 아니면 출산을 조절해야겠는지 아니면 출산에 관련해서는 분명히 죄가 되지만 병원에서 아이를 갖지 않도록 조처를 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냉정하게 모든 면을 다 고려해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를 많이 낳는 부부는 아이를 많이 낳는 그 한 면에서는 분명히 1등 신앙이지만 다른 면까지 다 1등 신앙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을 종합적으로 계산하자면 그 계산할 면은 수십 수백이 넘습니다.
부모는 모시기 싫어 따로 사는 부부가 자녀 출산의 숫자는 양심대로 해야 한다면, 모순입니다. 그렇다고 자녀 출산까지도 죄를 짓는다면 죄가 더하겠지요? 자녀출산을 믿음으로 한다고 하여 많은 자녀를 낳고 애를 쓰는 것은 잘 하는 것이지만 그 사람이 부모에 대하여 효도치 못한 죄는 늘 지고 살아야지, 자녀 많이 낳은 것만 가지고 신앙의 사람으로 생각하면 착각일 것입니다. 자녀 출산과 부모 모시는 일을 동시에 다 잘할 만큼 건강과 경제와 자기 신앙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부모와 자녀 출산 숫자를 조절해야 하는 차선책을 고려해야 합니다.
공회 내부에서 공회 교역자들을 비판하는 분들 중에는, 교역자들이 백목사님 명령에 오직 하나 순종을 잘 하는 것은 아이 많이 낳는 것이다고 합니다. 대단히 못된 소리지만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도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 관심있는 분야에만 노력한다는 말입니다.
③아이를 주시는 대로 다 낳을 정도의 신앙은 아직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주시는 대로 다 낳을 정도의 신앙이라면, 우선 아내의 건강이 따라 가야 합니다. 엄살이 아니고 정말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의학적 조처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는 자연은혜는 종류별로 서로 다릅니다.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으나 관절환자는 그리 할 수 없는 것이고, 성전에서 예배보는 것이 좋으나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간 이들은 소망만 하지 성전생활은 근본적으로 할 수 없는 복없는 세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형편이 자녀를 주시는 대로 다 출산하려면 우선 아내의 건강을 그렇게 받아야 하고 또 그 건강이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개 이런 조건에는 다 맞을 것입니다.
건강 다음으로는 부부의 신앙이 이 면에 대하여 일치해야 합니다. 설득은 할 수 있고 사정은 해 볼 수 있으나 강제할 문제가 아닙니다. 주시는 대로 자녀 낳는 것을 반대한다고 이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가 상대방이 원할 때 자신의 몸을 허락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방이 원치 않을 때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자녀문제도 그러하며 모든 인생사 문제가 다 그렇습니다. 자유성이란 어떤 제도 어떤 경우에도 가장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그렇다면 주시는 대로 자녀를 다 낳을 수 있는 부부가 되려면 건강에 더하여 부부가 함께 자원하며 기쁨으로 자녀를 주시는 대로 다 낳겠다고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부는 거의 없습니다. 시작은 그렇게 하더라도 도중에 한 쪽에서 더 이상 무리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도 또 신앙도 끝까지 아이를 주시는 대로 낳을 수 있고 또 그리하겠다는 부부가 있다면 특이하게 복받은 가정일 것입니다. 그 출산한 자녀의 숫자 하나 하나가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니 어떤 것으로 대신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쉽게 얻는 은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부부 한쪽이 주시는 대로 자녀를 다 가졌으면 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혹 자녀 출산이 많은 분들을 보면 두 사람의 의사가 합해서라기 보다는 한쪽이 지나치게 집착을 하여 다른 쪽에서는 할 수 없이 따라 가는 강제가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경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신 범위 그 이상은 소망은 하되 갈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④결론적으로, 질문하시는 분을 두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주시는 대로 받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알고 있고 현실적으로는 그럴 힘이 없다고 보입니다. 이런 경우 혹시 할 수 있는데 내가 너무 지나치게 몸을 사려 그런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모든 결정에 있어 우리들은 안일과 욕심에 이끌려 할 수 있는 것도 적당히 핑계를 대고 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현재 내가 받아가진 모든 형편을 생각할 때 이 정도 이상의 출산은 감당치 못하겠다고 판단이 되시면 출산을 피해야 됩니다.
피하라는 것은, 피하는 것이 옳고 좋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내 신앙과 힘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며, 이렇게 내 신앙과 힘이 부족하게 된 것은 이전에 얼마든지 오늘을 준비하고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를 허비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뿌렸으니 자기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지 옆집의 논밭에 곡식을 가져 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면, 앞으로 다른 기회에는 주시는 대로 무엇이든지 더 받을 수 있도록 기름준비, 즉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사람으로 변화가 된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또 많은 기회들이 올 터인데 이번 부족 한 번으로 다음에는 많은 기회를 은혜로 받아가질 사람이 될 것입니다.
⑤주변 자료는 무조건 배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하게 참고는 해야 합니다.
넓게 믿고 적당히 믿는 이들은 아주 제외시켜 버리시고, 그대신 진실되이 있는 힘을 다 해서 믿으려고 애쓰는 주변의 신앙인들을 한번 분석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분의 신앙은 주시는 대로 다 받을 분이겠지만 상대방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분이겠다.... 저분은 모든 여건이 더 낳을 수 있는데 안일을 위해 핑계를 대고 중단한 것이겠다..... 저분은 자녀 출산을 두고는 넘치게 충성을 했다, 그러나 그 뒤 양육에서 무책임하여 많은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낳지 않음만 못하게 된 것 같다....
이렇게 폭넓게 보고 연구하고 자신을 살핀 다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대하여 몇 명을 어떻게 요구하는지를 찾아 순종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5.몇가지 참고로 추가한다면
①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진리와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개별 영감을 구별해야 합니다.
원칙은 틀림없고 그 교훈은 항상 우리가 소망하며 그 소망으로 나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 참석한 별별 종류의 모든 사람과 이 설교가 테이프 등을 통해 한국교계와 세계교회로 나가게 될 때 듣게 될 모든 사람을 염두에 두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부가 욕심을 채우고 자녀 출산은 기피하는 것이 오늘의 극단적인 행태이며 이 문제에 대하여 시대의 선지자가 시대 전체를 향해 외칠 때는 단연코 그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침에 모든 사람이 같은 형편에서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이니 설교는 진리의 외침이고, 그 동일한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자기 처한 현실에서 자기 갈 길을 인도하시는 각자의 성령 역사가 따로 있으니 이것이 개별영감이며 이것 때문에 남을 강제하지 못하고 그 사람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자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누구에게나 꼭 같이 해당되는 이치이니 이 이치를 가지고 외치는 것입니다.
②현재 형편을 두루 살펴 대충의 경우를 말하자면
겁에 질려 자연분만을 피하고 수술로 아이를 낳는 경우는 건강 문제로 2명에서 그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거의 전부에 해당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자연분만을 회피한 것이 자녀 출산의 숫자와 바로 연관이 있는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건강문제라기 보다 자녀출산 자체를 조절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자연분만을 회피하는 분들과 같은 경우로는 아이를 가진 다음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열심히 하여 아이를 비정상적으로 키웠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수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아이를 가진 자기 몸을 가지고 귀찮다고 움직이지 않음으로 추가 출산을 못하게 된 경우이니 게으름으로 장차 태어날 아이들을 출산의 기회조차도 주지 않은 분들입니다. 말하자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학살자들입니다.
혹시 의사들이 산모에게 큰 일 난다고 하여 수술을 권한 경우도 있습니다. 99% 거짓말입니다. 그 실상이 어느정도에 이르는지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내막을 알아야 해결이 됩니다. 참고로 우리 목사들도 99% 도둑인데 하물며 돈벌이하겠다고 나선 산부인과 의사의 양심을 믿어서야 되겠습니까? 순진하여 속은 죄로 자녀 출산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을 낳는 문제에 있어 눈뜨고 어리석게 당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자녀를 낳지 못하게 된 이유를 생각할 때마다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아는 가운데 자라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