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부모의 묘 앞에서 (쉬/284)
서기
가정
0
34
2023.03.13 21:45
1. (질문) 부모의 묘 앞에서 (쉬/284)
부모의 묘 앞에서?
1. 명절에 성묘를 가는 것은 죄가 되나요?
2. 명절이 아닌 날 성묘를 가서 예배를 드리면?(기일, 또는 기일전후)
3. 예배를 추도예배로 여긴다면 묵념 하는 식의 기도는?
4. 묘지 관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비석,크기,모양 등)
5. 자녀들과 같이 선친의 묘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6. 백영희 목사님 기일은 어떻게 지나가는지?(공회내 목회자 등)
두서 없이 질문 드립니다.
(답변) 답변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우선 다음 2가지를 참고하셨으면
안내 1.
구체적인 질문은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옳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다른 경우를 먼저 참고하신다면 도움이 된다는 뜻에서 일단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를 요청합니다. 질문하신 분이 이 자료들을 읽지 않았다는 뜻으로 생각마시고 이곳을 방문하는 여러 다른 분들 중에 이번 문답을 다른 자료들보다 앞서 대하는 경우가 있을 듯하여 일반인을 염두에 두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
/초기화면/연구실/문의답변방/ 자료 중에서
----------------------------------------
371 [교회]제사를 정리하고 싶어 하는데... 어떤 말씀을 전해야? 작은교회 목사 01/09/24
399 [생활]'추도예배' 과연 성경적인가? 모 집사 01/10/21
318 [생활] 추도예배 nickcy 01/08/25
====================================================================
안내 2.
이곳은 '쉬운문답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연구실/'문의답변방'/에서는 최대한 자세하게 또 광범위하게 답변을 하는데 비하여 이곳에서는 간략하게 답변토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하신 내용이 여러개이므로 몇 개로 나누어 답변하겠습니다.
1.성묘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성묘와 명절이 합하면 많은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1.성묘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죄되지 않는 면은 보다 세심해야 할 것입니다.
묘를 돌보는 것이 성묘입니다. 묘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즉 주변 경관, 식목, 잔디, 석축 등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안 믿는 사람보다 좀더 잘 살펴야 할 일입니다. 제사 등 죄되는 면을 폐지하기 때문에 죄되지 않는 면은 좀더 신경을 써서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때 묘소를 더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불신자의 귀신 섬기는 정성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2.그러나 묘소에 관련된 것은 광범위하게 여러 종교와 미신적 요소가 합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와 같이 직접 죄가 되는 면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이 뿐만 아니라 묘소에 관련된 것은 묘소의 형태 위치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유교, 도교, 여러 미신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명절에 묘소를 찾는 것도 유교의 제사와 미신 습관의 명절이 합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명절은 농경사회에서 알지 못하던 여러 귀신을 섬기던 풍습으로 이루어진 날입니다. 그날에다가 죽은 조상 귀신을 섬기는 풍습까지 더한 것입니다. 이런 미신과 이종교의 잘못된 요소를 따지자면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정도이기 때문에 직접 죄와 관련된 것은 전부 없애버리고 그 외에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보이지 않게 조용하게 조심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3.성묘는 명절을 하루 이틀 피하고, 묘소 관리는 육신을 땅에 안장한다는 정도로 하시면 됩니다.
명절이 공휴일이어서 순수하게 공휴일을 이용한다는 마음이라면 명절에 성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절과 성묘는 위에서 말한 대로 이종교와 미신의 혼합이 극단적으로 합해진 경우이니 이날에 특별하게 움직이면 모든 이들이 그런 풍습 속에서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조심해야 할 주변 사람들, 특히 어린 신앙의 사람들을 생각하여 성묘는 명절을 하루나 이틀 피하여 할 수 있으면 좋을 듯 합니다. 원칙으로만 말한다면 명절의 성묘는 각자 신앙양심으로 한다면 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4.참고로, 성묘와 명절을 두고 가질 일반적 자세입니다.
성묘는 죽은 조상을 섬기고 받들어 살아있는 자손들이 혜택을 받고자 함이 아니고 흙으로 지은 것이므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생각하여 매장하는 것이고 매장된 묘소는 그 묘소를 책임진 사람이 관리한다는 정도에서만 해야 합니다. 또한 명절은 사회 전체가 쉬는 날이니 공휴일로 생각하고 이용하면 되고 혹 이 날에 주변 사람들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찾아 오고가는 기회이니 모처럼 만난 친지를 말씀으로 대하여 전도도 하고 또 이미 믿는 이들이면 더 잘 믿도록 접촉하는 기회로 가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행동 지침은 각자 자기 현실에서 자기 신앙양심으로 결정할 일입니다. 꼭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점만 강조하여 세상 풍습 속에 안주하는 이들도 있으나 위에서 드린 말씀을 알고 난 이상 자기 혼자만 아는 양심의 가책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양심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중심과 행동을 미리 확정해 두셨다가 그리 하시면 될 것입니다.
2.성묘를 가서 드리는 예배는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2번으로 질문하신 내용을 두고는 다음과 같이 몇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1.죄가 되는 경우: 제사가 들어가는 것
명절이나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일단 죄로 단정해 놓아야 합니다.
2.죄는 아니지만 죄로 이어질 수 있는 경우: 기일이나 명절에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는 것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잘 한 것이지만 여전히 기일이나 명절이라는 세상 큰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이나 명절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날을 특별한 날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유교나 미신의 큰 울타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제사는 직접 죄가 되는 것이고 기일이나 명절이란 죄로 넘어가게 하는 줄이므로 기일이나 명절에는 비록 '예배'로 대신한다 하더라도 이를 꼭 피하도록 권해야 할 일입니다.
3.죄와 차단은 했지만 여전히 불편한 경우: 기일이나 명절을 하루 이틀 피하여 예배 드리는 것
기일이나 명절조차도 피했다면 피할 것은 완전히 다 피한 것입니다. 어린 신앙들에게 이전 하던 죄와 세상에 속한 것을 우선 단절해야 하는 바, 그 면에서는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피할 것을 피한 것으로는 절반의 성공입니다.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니 이후로는 '날'문제를 두고는 주일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일이나 명절이 전제가 되어 이를 피하느라고 애쓰는 데에서 벗어나 주일밖에 없고 주일을 중심으로 살아가다 보니까 평생이 바쁘게 다 지나가 버렸고 기일이나 명절은 주변 사람들이 들썩거리는 바람에 '아, 또 명절이구나' '아, 돌아가신 날이구나'라고 되어야 정상적인 신앙일 것입니다. 명절과 기일이 믿는 사람에게는 사회생활 중에서 해마다 반복되고 지나가는 '달력에 표시된 날'들 중에 하나라야 할 것입니다.
4.백목사님의 경우로 예를 든다면
1952년 부산 서부교회로 부임한 후 1989년 돌아가시던 해까지 답변자의 기억으로는 단 한번 부모님 묘소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거창집회를 인도하러 오는데 집회장소 들어가는 입구 부근에 묘소가 있기 때문에 부산에서 거창까지 온 김에 들러 본다는 것은 지나가던 승용차를 한번 세우면 될 일입니다. 묘소에 올라간 뒤 묘를 등지고 잠깐 기도를 드렸습니다. 죽은 분을 전제로 했던 기도가 아니었고 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던 또 어느 자리에 앉던 잠깐 기도하는 것이니 바로 그런 차원이었습니다. 묘소를 등지고 기도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묘소 앞에 고개 숙여 기도하면 '죽은 자를 위한 기도'로 오해할까 했던 것입니다. 중요하게 참고할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기일이나 명절이 아니더라도 묘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멀리 어느 곳을 방문하거나 새로운 자리가 있을 때 잠깐 예배드리는 의미의 예배면 몰라도, 성묘를 전제로 했거나 제사를 대신하여 드리는 예배라는 식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배란 개업예배 결혼예배 등등 언제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필이면 성묘와 제사가 연관된 것이면 하지 않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묘하러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듯 합니다.
3.묵념하는 식의 기도는 피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3.묵념 역시 '죽은 자'가 전제되어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죽은 자'가 전제가 되어 예배를 드리는 것을 피한다면, 역시 '죽은 자'가 전제가 되어 기도하는 '묵념'도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죽은 자 앞에서 죽은 자의 행위를 생각하되 그것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묵념'이라는 것은 이미 죽은 자에게 중심이 쏠리는 것입니다. 내면의 생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두부 자르듯 단정하기 어렵지만 조심은 지나쳐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장례 기간 중에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장례는 죽은 자를 위해서 산 자들이 해야 하는 마지막 행사인데 그 일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큰 행사가 되기 마련이고 죽은 자를 보내는 산 자들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점에서 산 자들의 결심과 각오, 앞날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배와 기도가 죽은 자의 평생을 먼저 생각하면서 따져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장례 기간이라 해도 죽은 자는 이미 천국과 지옥, 그리고 천국이라면 천국의 형편까지도 이미 결정이 되었으니 이런 문제를 두고 기도한다는 것은 엄금입니다.
4.묘소에 대한 관리, 그리고 한 말씀 더 드린다면
1.묘소는 간소 검소입니다.
흙으로 만든 것을 다시 흙에 묻어 흙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곳이 누가 묻힌 곳이라고 표시될 정도면 족합니다. 김현봉목사님 같은 경우는 흔적조차도 없애도록 하였지만 너무 지나치게 되면 다른 면에 단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세상 일은 앞서거나 또는 너무 뒷서는 일이 없도록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2.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현 시립 또는 국립 공원묘지, 아니면 서부교회 묘지 정도를 권합니다.
예를 들면 현재 수준에서는 시립 공원묘지의 가장 일반적인 규모라면 좋을 듯 합니다. 70-100만원이면 묘비까지 전부 완료됩니다. 서부교회 묘지의 경우도 그 정도 수준이며 백목사님 생전에 현 묘지 형태를 결정해 두었습니다. 현재 세상이 화장이나 납골당 형태로 나가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일에 앞장 설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 국가의 법으로 이런 것이 강행되는 정도라면 화장이나 납골당 형태를 거부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3.묘와 관련하여, 한 가지 부럽고 또 따라 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서양 국가에 대하여는 선교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만 속화와 타락의 예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곳은 서양 국가나 기독교 분위기를 대단히 경계하고 조심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묘비나 묘의 형태 등에 있어서는 기독교문화로 수백년 또는 수천년 내려온 그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죽은 자를 대하는 자세가 '잠 들어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며 곧 부활하여 함께 하늘나라로 향할 사람들의 잠든 곳입니다.
따라서 자기 교회 뒷뜰에다 교인들의 묘지를 두고 있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앞서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아 있는 식구들이 여러 뜻 깊은 글을 새겨 두기도 하며 그 모양도 너무 친근하게 또 자기 식구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만들어 두었다가 주일날이면 예배 후에 그곳에서 식사도 하고 둘러봅니다. 예배당에 올 때마다 죽은 자기 식구의 묘소를 늘 보기 때문에, 사망을 현실 속에 두고 생각하고 또 곧 서로가 하나님 앞에 만나게 되고 또 함께 부활할 소망 속에 그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장례와 묘소를 두고는 아직 한국교회가 뒷따라 가려면 얼마나 걸려야 할지 모르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교리와 교회 행정에 있어 진리 투쟁의 전사들이 되어 있지만 장례와 묘소 문제만 나오면 갑자기 공자 제자인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유교문화 속에서 베어있는 우리 속 모습이 나와 버립니다. 죽은 자를 대하는 우리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죽은 사람이란 곧 귀신이며 귀신을 염두에 두고 모든 형태와 행태를 가져왔기 때문에 묘지라 하면 무서운 곳이며 끔찍한 곳이며 밥맛 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혐오시설이고 이런 곳은 저 산 속 멀리 쳐박아 두어야 할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잘 믿고 가는 사람의 장례에 베로 된 한복 두루막을 입혀 두건과 손발싸개를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TV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유생들을 연상케 하는 정도입니다. 입관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옷 또 입히는 식 하나 하나가 전부 조선시대 그들에게는 평상에 입던 의복으로서 이제 떠나가야 할 구중중천에 나그네 복장으로는 적합하지만, 양복만 입고 한복은 한번 입어보지도 못한 이들에게, 죽으면 그 순간부터 갑자기 수백년전 형태로 만들어 눕혀놓는 것은 참으로 가관이며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4.답변자는 이 문제를 두고 백목사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1987년 서영준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백목사님께 이제 드린 말씀을 드렸습니다. 검은 양복 한벌에 평생 충성한 이 복음의 종을 장례하는 순간부터는 갑자기 수백년 전 조선시대 유생의 모습으로 입관을 한 것이 너무 가슴아픈 일이니 본인들이 미리 옛날 식을 원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믿는 사람은 입관되는 마지막 모습도 가장 평소 같은 모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으면 말씀드렸습니다.
이후 서부교회 묘소의 형태와 입관 등 장례를 두고 한번 더 털어 버릴 문제 중에 하나라는 말씀이 계셨고 1989년 백목사님의 장례도 그리 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도 장례는 조선시대 내려오는 식보다 서양교회에서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은 가장 즐겨입던 유일한 검은양복을 입고 가셨고 이후 가족 간에 별 이견이 없으면 그리 하는 것이 공회 교회들의 내부적 흐름입니다.
5.자녀들과 함께 선친의 묘소에서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할 일은
1.히브리서 11-12장을 두고 새겼으면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초두,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는 말씀을 늘 묘소 앞에서는 기억했으면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이러므로'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그 앞에 있는 11장에서 믿음으로 살다간 복된 신앙의 선진들에 대하여 몇 가지 생애를 예로 들었습니다.
2.직계자녀에게는 부모의 영향이 직통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를 든 이상, 11장의 생애란 특별히 오늘 우리 전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는 자기 조상들이 있으니 이는 개별영감으로 새겨볼 일입니다. 자기 조상의 생애는 그 후손들에게 3-4대 내려오는 죄의 영향도 있고 또 천대까지 내려가는 복도 있습니다. 자기 조상이 실수하고 자기 부모가 잘못 살아온 부분은 자기 자녀들에게 바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가장 시급한 발등의 불입니다. 수십 수백 수천번 평생을 새겨가며 부모와 같이 되지 않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천하의 죄가 다 나를 향하고 있지만 부모가 걸어갔던 복음 밖의 걸음은 직계 자녀에게는 직통으로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복된 걸음을 비록 조금이라도 걸었다면 이 부분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평생 그런 은혜 때문에 오늘 우리의 장점과 복된 날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3.교훈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이 땅 위에 자기가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사은'이 있어야 5계명의 법칙에 의하여 이 땅 위의 복이 있게 됩니다. 깔끔하게 정성있게 묘소를 돌보는 잠깐의 시간을 갖는 것은 일반 교인들에게 또한 오늘 배은과 반은의 시대에 자녀를 복된 사람으로 기르는 엄청나게 큰 지혜일 것입니다. 물론 세상사람의 묘소관리에 대한 인식이나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말씀의 교훈'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6.크게 3가지 모습으로 나뉩니다.
백목사님 돌아가신 날을 두고 공회내 목회자 등 중심인물들이 보이는 형태는
1.백목사님 가신 날 자체를 부러 잊어려고 애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구나 서울공회 교역자 대부분과 부산공회(2)에 속한 분들 중 일부의 경우입니다. 백목사님이 추도식 등 죽은 자를 두고는 엄격했기 때문에 백목사님에 대한 행동도 동일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상스런 것은, 백목사님 사망일에 대한 수칙은 백목사님 교훈 중에서도 가장 엄한 법으로 조심하여 그날을 잊고 있는데 그날만 잊는 것이 아니고 백목사님이 걸어간 신앙걸음까지를 전부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스런 것은 자신들의 부모나 교인들이 사망하는 경우는 다른 진영처럼 추도식을 한다든지 아니면 백목사님 생전에 하지 않던 열심으로 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곳은 신앙노선적인 면에서는 거의 모든 면으로 이런 형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2.백목사님 가신 날에는 아주 묘소에 천막을 치고 하루종일 예배를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분들의 경우 추도식이 죄라고 알고 있으며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잘못된 것도 잘 아는 분들입니다. 심지어 죽은 날에 그 사람의 묘소를 찾는 것도 백목사님은 피하라 한 내용까지도 잘 아는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행동을 할 때는 그분들 대로는 이유가 있습니다.
백목사님 순교 직후 공회가 나뉠 때 대구공회로 나뉘는 이들이 백목사님과 그 신앙노선 일체를 버리면서 수정의 길을 택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수정하기 위해 백목사님의 모든 흔적을 무차별로 비난하고 뿌리를 뽑고 있던 때였으므로 그 운동으로부터 소속교인들을 가르치고 붙들기 위해 '죄되지 않는 이상' 최대한 백목사님의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묘소에서 재독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일이 계속된 것은, 서영호목사님이 1991년 서부교회에 부임한 후 우회적으로 백목사님 노선을 수정한다고 판단하였고 또한 서목사님과 지지 교인들은 백목사님 사망일에는 묘소를 찾지 말아야 한다고 조직적으로 막고 나선 것도 사실입니다. 양측의 대립과 충돌이 모든 면에서 계속되면서 묘소를 찾는 일도 서목사님 측에서는 꼭 순교일을 피하라고 하게 되었고 반대측은 꼭 그날 찾음으로 서목사님측이 우회적으로 백목사님 신앙노선을 헐어 들어오는 것을 막자고 나선 결과 오늘까지 이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3.어느날에든 상관없이 묘소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답변자가 소속된 부산공회(3)에서는 편리한 날 묘소를 찾고 있습니다. 순교일에 찾는 것이 주일이나 토요일과 겹쳐 왕복이 곤란한 경우, 또는 교회 내 어린 사람들의 오해가 있을 수 있는 경우는 그날을 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교일이 순교일이기 이전에 찾아보기 가장 편리한 날이 되는 경우는 일부러 그날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 바쁜 일이 있을 때는 찾아 보지 못한 때도 많습니다. 주로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경우, 가장 한적한 때에 조용히 찾아 그분의 묘소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큰 각오와 결심을 가지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분의 묘소 앞에 묘비 하나가 없습니다. 공회의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묘소 앞에 서서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한바퀴 쭉 둘러 보는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