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질문) 친구로 부모님의 장례 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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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5
7. (질문) 친구로 부모님의 장례 4364
'문의답변'목록을 통해 '장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저에게 세상적으로 아주 친하다고 하는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성경을 보지 않고 교회도 다니지 않던 기간에 사귄 친구인데 고등학교당시 주위에
친구들도 그렇고 저 또한 가장 친한 친구라고 지금껏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상을 가야하는데 친구들도 올 것이고 친구의 어머님도 뵐 텐데, 목사님께서 불신자의 집에 문상을 가실 때의 방법, 일반회사의 동료로써 하는 문상방법으로 하려 합니다.
정말 친한 친구로 알고 지내왔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불신자인지, 믿는자인지.. 살아 생전에 그 친구의 아버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때는 하도 철이없던지라 뭐라고 하시는 말씀이 하나도 들리지 않고 지금아무것도 내세울 것없이 친구의 어머님을 만나뵈려하니 뵙기가 참 죄송스럽고 송구스럽고 미안하기만 합니다.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 해주고 싶습니다.
아마도 하루정도는 같이 밤을 세워줘야 할 것 같고 일손도 좀 거들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어릴쩍 서부교회 장례식을 떠올리면 기쁨으로 넘쳤던 기억이 어슴프레 나곤 합니다. 특히 이복순집사님의 장례식이 떠오릅니다. 가장 좋아하는 복장으로 차려입고, 검은색 리본을 표하고...
"오늘은 기쁜날입니다."하시는 목사님의 음성도 들리는듯 합니다.
그당시 명절이면
포도 한송이를 곱게 싸서 목사님께 드리는 교인들의 모습도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서 미안한 생각만 듭니다.
죄송합니다.
(답변) 그렇게 가깝다면, 그 친구를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문상은 지극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홈도 아시고
또 과거 이복순집사님의 장례식 은혜 분위기까지 기억하신다면
그런데 그 친구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부친의 장례식인데도 그렇게 마음을 가진다면
그렇게까지 가깝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뜻은
그 친구와 그렇게 가까운 친구 속에 담고 있는 이 복음을 그에게도 전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믿고 출발할 때 주신 제1차 계명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명 속에는 믿지 않을 때 가졌던 모든 세상관계 전부를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는 꼭 본토 친척 아비집으로 가서 그 중에서 구하게 했습니다. 후에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이번 윗글을 주신 분의 글 내용에서 아주 강하게 와 닿는 것은
윗글을 적은 분과 그 친구분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친구의 우정이라는 줄은
일반 다른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줄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줄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 줄의 강도가 약화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현재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강한 줄을 가지고 어디에 쓸 것인가?
둘 사이는 비록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입장을 십분 고려하여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할 사람들 같습니다. 만일 질문자께서 그 줄 자체를 끊지를 못한 상태에서 그 줄의 반대편을 쥐고 있는 그 친구가 끄는데 따라가게 되면 타락과 탈선이 됩니다. 만일 질문자께서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하게 되면 그 줄 자체는 현재로서는 쉽게 끊어질 정도가 아닐 것이니 그 친구가 질문자를 친구로 둔 덕분에 신앙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이미 믿었다 해도 오늘 세상에 믿는 길을 몰라서 길을 못 찾는 사람보다 믿는 길이 너무 많아서 순복음으로 가서 박수를 쳐야 할지, 감리교로 가서 인간 중심으로 믿어야 할지, 통합측으로 가서 사회구제사업을 해야 할지, 아니면 고신으로 가서 신사참배만 재독하고 살아야 할지, 갈랫길에서 결정을 해야 할 시대입니다. 믿었다면 천국에서 만나는 것은 틀림없겠지만 그대신 평생 어느 면으로 노력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아주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날 것입니다. 만일 그 친구가 믿지 않고 있다면 바로 이렇게 좋은 친구 때문에 이제 믿을 때를 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소원을 먼저 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주변에 그렇게 악하고 나쁜놈이 친구로 있다면 그것은 대개 그 사람을 버렸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 친 형제만큼 가까운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잘 믿는 친구라면 하나님께서 그 안 믿는 친구를 부르시려고 손을 뻗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성구를 볼 때 고향 부산을 떠나거나 서울 직장에서 사표를 내거나 충청도 공부하던 기숙사를 장소적으로 떠나라고 읽지 않습니다. 그대신 주신 현실에서 그대로 있으면서 그대신 과거는 피에 얽혀 집안에 매였고 의리에 붙들려 친구로 인하여 결정하고 움직이던 때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주님의 소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내가 되라는 명령입니다.
두 분이 과거 친구로 지내면서 교회와 상관없이 지냈다면 그때 맺은 그 관계는 이제 앞으로는 그 친구를 대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떠나야만 하고 그대신 질문자 속에 모셔놓은 주님을 모시고 그 주님으로 인하여 그 친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되 과거 맺어놓은 튼튼한 그 의리의 연결선에다가 주님의 말씀으로 사는 나의 에너지를 밀어넣었으면 합니다.
과거 같으면 그 친구 부친의 장례식이면 가서 그 앞에 절도 하고 신앙에 금하는 여러 일을 했을 친구겠지만 이제 이 홈에서 소개한 불신 장례 문상법을 따라 조심하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과거 가진 친구 관계를 이제는 말씀으로 다시 붙들어 복음의 줄이 되도록 바꾸는 노력이 될 것입니다. 매사 그렇게 하셨으면 합니다. 과거는 친구끼리 만나는 자리 때문에 밤예배를 지각하거나 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한참 놀다가도 예배시간이 되면, '얘들아, 너희 제일 친한 친구 내 입장 좀 봐 주라! 네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내가 교회에 가야 하는데 너희들이 밀어주지 않으면 누가 밀어주겠니!'라고 호소를 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기회를 따라 겉으로는 친구이고 속으로는 주님 앞에 함께 서서 가야 할 신앙의 동지로 발전하셨으면 합니다.
한 가지 명확하게 기억하실 것은
말씀을 떠나고 신앙양심을 떠난 상태에서 행동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 친구를 전도하고 하나님 앞에 복받게 하는 일에 반드시 저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면 친구 중에 친구는 부부라야 하고 부부 사이에 끼어 드는 친구는 친구의 선과 부부의 선을 이해하지 못한 가정 파괴범이 됩니다. 그 친구를 위해 이쪽에서 그 친구의 부부 사이는 늘 부부 고유의 영역으로 놔 두시고, 본인 부부를 위해서 친구의 어떤 제의나 호의에도 불구하고 부부만의 공간은 부부전용으로 둬야 합니다.
질문자와 같은 분위기의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철없을 때 그쳐야 할 선을 넘겨서 신혼여행까지 따라갔다가 부부의 파경을 맞게 된 경우가 서부교회나 답변자 주변 아는 분들 중에 여러 건이 있었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지만 그 친구와 맺어진 강한 유대는 하나님께서 그 친구를 이 강한 줄로 당겨서 하늘의 영원한 친구로 만들기 원하셔서 주셨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주 노련하게 아주 진심으로 아주 성의를 다하여 믿기를 다하셨으면 합니다.
질문 내용 마지막에 적어주신 기억은
아름다운 과거였습니다.
아름다운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질문자를 복되게 인도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수도 없이 많은 음성 영상 문자 자료들이 우리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포도 한송이를 곱게 싸서 백목사님께 드리는 교인들의 모습을
기억하셨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