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질문) 추도예배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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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질문) 추도예배 (430)

일반자료방에 서 보았지만 모르겠습니다.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답변) 추도예배는 아주 금해야 될 것이라는 신앙과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답변의 형태를 추도예배를 반대하는 논쟁적 입장에서 전개하겠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추도예배를 두고 어떤 입장에 계신지를 말씀치 않으셨기 때문에 이 답변의 상대방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추도예배가 성경적이냐는 질문을 하셨을 때는,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추도예배를 두고 오가는 논란을 염두에 두셨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추도예배 등 여러 면에서 보수적 신앙을 견지하는 이곳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반대하는 편입니다. 추도예배란 그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서 추도예배를 찬성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 분들을 상대로 가상으로 자문 자답하며 답변의 모양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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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예배는 변형된 제사입니다.

우선 질문자께서 명확한 성경적 근거를 말씀하셨으나 제사와 추도예배의 역사를 조금만 아시면 질문한 문제는 성경을 들고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제사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추도예배는 제사의 변형이라는 이 점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나 목회 현장적에서나 반론이 없습니다. 다만 안 믿는 사람과 충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또 전도에 지장이 많기 때문에 죄 되지 않는 범위에서 타협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에 엄격한 교회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교단들은 '예배'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선 세상이 말하는 '제사'를 인식해야 하므로 요즘 제사 자체의 의미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제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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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귀신을 섬기는 제사 제도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이 귀신이 자손과 세상에 많은 일들을 하기 때문에 이 귀신을 달래고 이 귀신을 상대하는 것이 제사입니다. 국가에서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라는 순서가 단순히 국가를 위해 희생 당한 사람을 기리는 것으로 오늘날 쉽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라를 지킨 귀신들이라는 한자 의미입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오던 것을 현대 국가로 출발하면서도 습관이 되어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현재 외교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라는 '신사'도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은 귀신이 되어 오늘도 일본을 지키는데 바로 그 귀신들을 모아 둔 곳이 '신사'이며 그곳에 빌러 다니는 것이 '참배'입니다. 조선 왕조 때는 조선를 지키는 것이 왕의 선조들 즉 그 귀신들이며 그다음 앞서 죽은 충신의 귀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가정으로 들어오면 가문의 조상들이 가문을 지키는 귀신이 되었고 가정의 생사화복이 바로 이 잡귀신들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본 것이 제사제도의 본질입니다.

오늘은 조상을 기리는 하나의 표현이라고 얼버무리고 있지만 역사적인 제사는 분명히 죽은 조상을 귀신으로 상대하였고 또 현재도 제사의 정식 의미는 그러합니다. 제사법의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전부가 이것이 전제 된 것입니다.


2.한국교회의 초기 박해는 전부 제사제도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1)한국교회가 맞닥드린 제사 문제

물론 가난한 나라에 가난한 서민 위주로 먼저 예수를 믿다보니 주일 성수란 먹고 사는 기본 문제를 무시하는 것이어서 그 박해가 대단했습니다. 이 박해는 거의 전부가 개인적 박해였고 개별적으로 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는 국가통치 근본 이념이었고 사회전체의 재앙을 두려워했던 민심 전체 문제였기 때문에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누구 한 사람의 개인 문제일 수가 없었습니다. 황사영백서 사건으로 죽은 수많은 천주교도들의 사건이 바로 이 제사문제였습니다.

물론 제사는 일본, 중국 등 동양권에서는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교회만 이 문제가 극단적으로 발생하게 된 것은 한국의 민족성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문제가 된 조상에 대한 제사란 중국제품입니다. 중국제 제사가 한국에 와서 빛을 봤다 할 만큼 된 것은 한국민족의 끈질긴 성격 좁고 좁은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으로 증폭이 된 것입니다. 정작 제조했던 중국이나 우리보다 더 제사 종류가 많고 잡신이 많은 일본은 그렇게 국가적인 문제로 조선처럼 난리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2)천주교가 만든 타협, 그 뒤를 기독교가 따르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본디 완전 이방 종교가 된 이들입니다. 천주교 단체를 위해서 순직하는 경우는 더러 있어도 종교적 순교를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 천주교가 한국에서 제사를 거부했다가 교도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결국 교리를 변형시켜 빠져나가게 됩니다. 즉 한국의 제사는 한국 사회의 특이한 조상사랑의 행위라고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제사는 한국인의 5계명 행위이지 2계명 범죄가 아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제사 때문에 죽은 이들은 무지한 개죽음이라야 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성자로 또 순교자로 만들어 놓고 그 이후 사람들에게는 제사는 죄가 되지 않는 조상 사랑이라고 하는 우스운 일이 있습니다. 천주교는 신사참배 때도 역시 그 입장을 가졌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천주교가 아니라 기독교입니다. 생명을 가진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비록 넘어지고 실수를 해도 또 다시 일어서는 것이 생명력의 본질인데, 교회가 천주교를 이어 한국에서 제사문제로 큰 마찰을 갖게 되었습니다. 역시 교회는 천주교와 달리 끝까지 제사문제를 귀신을 섬기는 2계명 문제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사문제 때문에 교회를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주저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이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란 몹쓸 곳이라는 인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심어져 모든 종류의 전도문을 다 막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되면 결국 쉬운 방법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추도예배라는 것이 도입된 것입니다. 한국 초기 교회사에 있었던 제사 문제와 목회 현장의 분위기를 잘 모르는 일부 신학자들은 서양의 추도식을 예로 들며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 수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추도예배란 기독교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문제냐는 논란이 있다면 보수적 신앙을 견지하는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할 말이 없는 대목입니다.


3.우선 추도예배의 문제점은 이것입니다.

1)사람이 죽은 날, 그 날에 대한 인식이 문제입니다.

서양 교회가 추도예배를 드려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은 그들은 2천년 성경적 문화와 생활에 젖게 되어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나 죽은 조상이 귀신 되어 떠돈다는 오해가 없는 이들입니다. 죽음이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잠깐 잠들어 있는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의 신앙과 인생을 되새겨 자기들이 가질 교훈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서양 교회의 추도예배도 그 위험성을 생각하여 반대합니다. 천주교가 결국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빠져 타락한 교회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추도예배란 아주 극단적으로 다른 경우입니다. 죽은 사람이 죽은 바로 그 '날', 그날에 제사밥을 먹으러 찾아 오며 제사 정성에 따라 자손들에게 화도 복도 준다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확고하기 그지 없기 때문에 산 사람은 굶어죽어도 죽은 귀신은 굶는 법이 없다 할 만큼 되었으니 이 말은 죽은 귀신에게 실제 매여 살아온 한국인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필 죽은 꼭 그날 '추도예배'를 드려 달라고 부탁이 오고, 또 예배를 드리는 이들도 꼭 그날에 찾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찾아간 사람들은 예배를 드렸는데 그 추도예배를 초대한 가정은 그날 자기 집을 찾아오는 죽은 조상의 귀신들에게 '기독교식' 제사를 드렸다는 것으로 인식되고 목회현장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대목은 한국교회에 내려온 추도예배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죽은 조상은 커녕 산 부모를 살해하고 버리는 시대이니 그런 염려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100여년 추도예배가 지극히 성경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내려온 역사를 교회는 지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면 살전5:22 말씀이라면

추도예배는 시작도 진행도 잘못되었으면 이미 그 연장선에서 계속되어온 현재 한국교회의 추도예배는 그 자체를 버려야 할 제도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이런 역사성이 완전 배제되고 처음부터 서양의 현재 추도예배를 그대로 옮겨놓게 된다면, 그리고 그 인식이 일반 모든 교인들에게 시험이 되지 않고 또 오해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꼭 추도예배를 드려야겠는가? 이미 서양 교회가 추도예배의 범위에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문제로 천주교로까지 타락하는 과거가 있었다면, 굳이 성경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제도가 아닌 위험한 제도를 되살릴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3)현재 단군신상에 대한 반대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불신 국가가 불신 단군종교 운동가들이 단군상을 확대하려는 것은 그들의 본능일 것입니다. 또한 반대하는 것은 교회의 본능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반대할 대상과 방법이 성경적이라야 하기 때문에 현재 교계가 벌이는 반대운동은 우리가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단군상의 확장이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신사참배 운동과 나라만 다르고 이름만 다르지 그 사상이나 방법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일장기에 영험을 부여하고 그 일장기를 안고 총알받이로 내몰리던 2차대전 광란의 일본군들과 과거 태극기에 대하여 90도 최경례를 시키던 과거 우리 나라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불난 집에서 구하다가 죽은 이를 순교자로 떠 받드는 것 역시 다 같은 현상입니다.

물론 세상과 다 다르기 위해서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찾아가며 한다든지 특히 그 위험의 정도가 심한 것은 특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보는데 면도날을 만지고 있으면 언젠가 큰 사고를 부르게 되는 지극히 자연스런 세상 현상까지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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