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질문) 귀신점쟁이와 보험설계사 (쉬/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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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질문) 귀신점쟁이와 보험설계사 (쉬/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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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문) 귀신점쟁이와 보험설계사 (쉬/929)

지극히 이기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그 수는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받은 댓가로 근검절약 생활을 하고 남긴 돈으로 저축을 하여 비오는 날에 대비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저축하여 집도사고 각자의 경제적인 환경을 구비합니다. 그 경제적인 부의 축적의 수단이 은행에 정기저금이나 정기예금 등 일반 은행을 이용하는 경우는 본인이 불입한 돈에 붙는 이자를 기대하고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는 경우와 다른 경제적 환경 구비의 수단으로 보험회사에 저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저축하면 어떤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가입시에 약속한 보험금을 보험가입자에게 이익으로 제공합니다. 보험설계사는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 규정을 일반인들에게 설명하여 보험회사의 고객을 유치하는 보험회사의 제일선 영업사원들입니다. 일반은행은 만기에 예금을 찾으면 원금외에 이자라는 돈을 얹어서 돌려줍니다. 보험회사는 이자를 주는 상품도 있지만 불입한 원금만을 돌려 주면서 유사시에 가입시 약속한 보험금이라는 혜택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보험과 복권이 통계라는 이름의 확률을 근거로 하고 있는 점은 유사한 것 같습니다.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은 혹시나 하는 요행심으로 구입합니다. 그러나 보험은 혹시나하는 요행심은 아니고 비오는 날에 대비하여 맑은날 우산을 준비하는 수단으로 보험을 삽니다. 보험은 투기도 아니고 투자도 아니고 그냥 저축수단입니다. 연금은 노후에 대비한 우산이고 자동차보험은 자동차사고시에 대비한 우산입니다. 암이나 질병보험은 발병시에 치료비를 대비한 우산입니다.

내가 땀흘려 일하고 받은 대가로 비오는날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나의 능력범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한다면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을것 같은데 그것이 은행저축이든 보험저축이든 왜 죄악시 되어야 할까요. 모든 제도는 순기능과 역기능 모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제도를 만들 때 순기능을 보고 만들지 역기능을 위하여 만들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의 공유와 활용이라는 측면을 보고 만들었지 지금처럼 섹스 등 오락 잡기를 위하여 만들어 진것은 아닙니다. 보험제도도 하나님이 필요해서 내신 제도가 아닐런지요.

내가 타는 보험금이 남의 돈 훔치는 도둑놈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와 보험회사와의 계약으로 맺으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경제활동입니다. 왜 땀흘려 일하는 보험설계사가 귀신점장이와 비교되어야 합니까. 보험설계사는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고 보험회사라는 사기단체와 협잡한 시기꾼들입니까. 모든 보험은 나를 위하여 가입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가족과 주변을 위하여 가입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성경에는 죄가 됩니까. 자동차보험은 내가 자동차사고를 내는 경우에 나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 하는 수단입니다. 내가 자동차 사고를 냈으면 내 돈에서 보상을 해야지 왜 보험회사에 손해를 끼칩니까.

보험이라는 제도의 성격은 동일합니다.
비오는 날에 대비하여 맑은날에 준비하는 우산입니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남의 돈을 도둑질하는 도둑놈은 아니지 않을까요. 보험제도는 개미의 지혜를 실천하는 수단입니다.
보험설계사는 귀신점쟁이처럼 남의 앞날을 사기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상부상조라는 말은 성경에서 죄악시 하는 용어인지요.


(답변) 1. (주 답변) 보험의 기능은 보장성이 중심이고 저축성은 보조입니다.

1.연금이나 자동차보험의 경우는 가입할 수도 있습니다.

복권에 관련한 문답에서 연금과 자동차보험의 경우는 일반 보장성 보험과는 다른 면이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정부에서 연금과 자동차보험은 강제성을 가지고 가입을 시키는 정도입니다. 연금은 저축성의 의미가 더 크고, 자동차보험은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점도 말할 것 없이 고려할 문제입니다.


2.그러나, 보험이란 여전히 '우연히 횡재'하는 요행을 바라고 가입하는 것입니다.

보험에서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엄청난 금액으로 보장을 해 주게 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보험을 금하는 것이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보험사는 보험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앞날을 대비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비하느냐는 것도 성경이라야 합니다.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그 원리는 분명히 성경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방법론은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많은 면으로 살펴보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2. (긴 답변) 보험을 금하는 것은 '보장성'이 횡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1.질문을 통해 지적하신 내용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요약했다고 읽었습니다.

①보험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지적하신 분과 같이 접근한다면 할 말이 없겠습니다.

비오는 날을 평소에 대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자연이치이면서도 동시에 밤중 같은 환란을 대비해야 하는 신앙의 이치입니다. 노후를 대비하는 연금이나 사고를 대비하는 자동차보험의 경우를 예로 드셨는데, 돌발적인 사고나 먼 훗날까지를 미리 대비한다는 것은 늘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지적하시는 분의 글이 옳은 시각입니다.

특히 우리는 시간적으로 영원 미래까지를 대비해야 하는 성도이니 예견할 수 없는 사고는 상시 대비해야겠고, 예견할 수 있는 노후는 앞당겨 준비할수록 이곳의 신앙노선에는 더욱 더 맞는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보험을 비록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지적하신 분과 같이 접근한다면 할 말이 없겠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살펴볼 부분까지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②반론 또는 이견이 있었으니, 한 걸음 더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보험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복권'과 '사주 점쟁이'에 대한 글을 답변하면서 보험도 함께 말씀드렸습니다. 요약하면 불로소득이나 우연에 의한 벌이는 죄라는 것입니다. 유형으로 살핀다면 도적질이나 사기나 도박 해당됩니다. 몰래 훔치면 도둑질이고, 보는 데에서 속이고 훔쳤으면 사기고, 확률에 맡기고 불로소득하기로 했다면 도박입니다.

보험은 보험회사에서 개발해놓은 수없는 '약관 상' 보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한번 사고가 나면 '횡재하는' 보험이 있습니다. 만일 반론하신 분처럼 보험의 대비성, 보장성, 저축성을 파악하여 대비와 저축의 수단으로 보험을 상대한다면 기능성 상품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험이라는 것은 '횡재하는' 보험이 보험입니다. 그 누구든 이렇게 '갑자기 횡재하는' 기회를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그것이 점이든 보험이든 복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보험사는 최첨단의 경영기법과 인재와 자금과 조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점이나 복권에 비하여 보험모집원이나 소비자를 설득하는 면에서 탁월합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본질을 살피는 것이 이곳의 연구자세입니다.


③외부의 장식과 홍보를 삭제하고, 그 본질을 놓고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남의 땀을 수고없이 가져오면 '도적질'입니다. 도적질에 상대방을 속이는 기술이 첨가되면 '사기'가 됩니다. 확률과 우연을 통해 도적질을 하는 것은 '도박'이라고 합니다. 복권은 확률을, 보험은 우연을 통해 도적질을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험설계사와 사주점쟁이를 같이 놓고 본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우연'을 통해 남의 돈을 쥐게 하는 바로 그 보험을 말합니다.

앞의 다른 글에서 복권을 설명드리면서, 연금보험이나 자동차보험에 대하여는 따로 잠깐 떼어놓고 설명했습니다. 연금은 장기저축이고 자동차보험은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불로소득으로 비판하는 보험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보험개념입니다. 장기 저축의 수단으로 들어가는 연금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자동차보험은 무조건 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의 글은 보험이라는 보험은 모조리 비판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보험모집원'이라는 이름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2.저축성과 대비성을 위해 들어가는 보험을 따로 분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보험은 보장성과 저축성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느냐는 것만 차이가 있지 근본적으로 보험이라는 것은 보장성이 들어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보장성이라는 것이 바로 우연에 의한 횡재입니다. 보험사에서 '횡재'라는 본질을 소비자에게 수치로 제시하여 판돈을 걸게 하는데, 보험사의 수준이 깔끔한 신사들의 영업이기 때문에 그 표현도 '보장성'으로 화장을 시킨 것입니다.

좀더 우리 생활 주변의 실질적인 면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보장성이 조금 가미되고 저축성이 큰 비중으로 되어 있는 보험이 연금보험입니다. 이 연금보험은 정부에서 전 국민에게 강제로 가입하도록 입법 강제조처를 하고 집집마다 보험공단에서 반 협박을 하면서 징수해 가는 정도입니다. 이 사실은 보험은 아직도 횡재를 바라는 보장성에서 가입을 하든지, 아니면 주변 권유에 의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3.따져 들어가면, 생각하지 못한 면들이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주변의 권유로 가입된 것은 그 중도 해약율이 이루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보험모집원이 보험사에서 받게 되는 그 달 실적급은 중도 해약할 주변 사람들의 해약 손실금의 일부입니다. 나머지 일부가 보험사의 수입입니다. 이 정도로 살피다 보면, 보험은 단순히 확률에 의한 횡재 때문에만 금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 폐해가 너무 많이 밝혀지게 됩니다.

현재 교단을 막론하고 교회 내부에 발생된 문제는 이제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떤 목회자든지 그 문제점을 감히 지적할 수도 없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교회 기둥 교인 중에 몇 명이 이 문제로 시험에 들지 모를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보험모집원으로 성공하는 분들은 대개 언변과 활동성이 우수한 분들입니다. 교회 내에서는 주동 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교회 인맥을 통해 움직이는 보험 영업의 문제점을 알아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회자도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 보험모집원이 어린 교인이면 어린 교인이기 때문에 또 막고 나설 수가 없게 됩니다.

한 교회 내에 모험모집원이 한 사람이면 그래도 지나친 권유나 중도해약 등의 문제만 생기는데 만일 모집원이 2명 이상이 되면 그때는 교회는 눈으로 보면서도 손을 댈 수 없는 그런 폐단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게 됩니다. 참고로, 백영희신앙노선상의 교회들은 계돈 모으는 것도 금지한 정도였기 때문에 보험모집원 등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될 수 없었으나 백목사님 사후 10여년을 넘기면서 지금은 이 문제로 어지럽지 않은 교회들이 거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훗날에 대한 대비라는 것은 성경입니다. 그렇다고 대비하는 모든 행위가 성경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따라 가면서 대비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정부에서 강제하는 보험이거나 자동차보험처럼 상대방의 보장을 위해 마련된 보험의 경우는 활용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자동차보험의 경우 그 입법의 방향이 단순 보장이 아니라 강제가입의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질문) 보험과 복권의 차이점

성경을 빙자한 언어의 폭력이 많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험이 가지고 있는 보장성의 위험성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행위가 벌어지는 뉴스를 접할때가 있으며 보험금 노리고 자해에다가 병원에 누워서 지내는 사람 등등 그 부작용이 참 많은 부분이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사람들은 보험이라는 제도를 악용한 사람들이지 그것이 보험제도의 출발은 아닙니다.

목사님께서도 유학하실때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셨을 것입니다.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그 비행기 추락해서 몇억 보상금 받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 있을까요. 그런데 그 보험 왜 가입합니까 그것은 남는자들을 위한 배려에서 출발하는 것이지요. 졸지에 가장을 읽고 황망해하는 그 모습보다는 사별의 아픔은 있지만 배고픈 설움은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 아닌가요. 이때 쓰는 사랑이라는 말은 성경과는 거리가 있는 용어인지는 판단이 안됩니다.

복권은 구입하면 당첨되라고 별의 별 생각을 다하겠지만
보험은 내가낸 보험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준다고 그 보험금 타기 원하는 사람 없습니다. 암보험 가입했다고 암에 걸리기 바라는 사람 있을까요 없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자신의 동생이 보험설계사를 한다고 해서 형편이 어렵지만 소액의 건강보험에 가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그 권사님이 갑자기 위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평소에 어려운 형편으로 제대로 마음편히 수술하고 누울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땀흘려 일하지 않고 횡재를 바라던 소원을 귀신이 응답하여 2000만원 정도를 타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수술과 치료를 받았고 지금도 통원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별로 신앙적으로나 성경적인 지식이 없는 저희들은 성경에 있는 용어로 "여호와 이래"라고 하고 정말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입장은 도둑의 심보로 가입한 것이니 하나님의 은혜는 아닌것으로 보시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여호와 이레"라고 여기고 있으며 지금 이순간에도 그 어려운 가정형편에 피할길을 주셨구나 하고 감사드리고 생명을 연장시켜 이땅에서 부족하지만 주님나라에 쓰임받고자 오늘도 기도와 간구로 눈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말씀대로 안면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입후에 중도 해약 많이 있습니다.
보험가입으로 집안 거덜나서 망한 집 없습니다.

119소방서의 소방관은 불나라고 있는 나쁜사람들이 아닙니다.
보험회사 모집인들 모집 수당이 급여입니다.
보험한건 성사시키려고 음식점에 가서 종업원처럼 일해줍니다. 왜 경쟁이 심하니까요.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 모집인으로 일한다고 교회 십일조로 바칠돈 축낼수 없습니다. 십일조에서 보험료 떼고 십일조하지 않습니다. 보험에 가입하는 교인들 하나님의 인자하신 형상을 닮아서인지 몰라도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이조 삼조를 합니다.

보험설계사 왜 비난하십니까
보험설계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까.
전도를 방해하였습니까.

보험설계사가 고객 찾아다니며 전도하면 벌받습니까

목사남은 횡재 횡재 그러시는데 목사님의 머리속에 온통 횡재로 가득찬것 아닙니까.

어느분에게 들어니까 총공회 성도들은 주로 법조계로 진출하라고 백영희 목사님께서 권유하셨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판사되고 검사되면 사기치는 보험설계사들 잡아넣으려고 법조계 진출을 권하셨습니까.

무슨 비교를 신성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정당한 직업을 귀신점쟁이하고 비교를 하십니까. 남의 앞날을 암에 걸린다고 예언을 하기라도 합니까.
그렇게 저주를 하면 보험 가입은 고사하고 맞아죽을 것 같은데요

직업이 보험설계사라고 하면 연보하면 안되겠군요
도둑질한 돈이니까

건설구원이 많으셔서 천국전체를 덮고도 남을 분들은 보험설계사를 귀신점쟁이와 비교하면 하나님의 칭찬이 이세상에는 쌓을곳이 없을정도로 많으신지요?


(답변) 1. 필요한 정도로 두 의견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당분간 두고 봤으면 합니다.

1.시각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언어 폭력으로까지 들으셨다니 우선 죄송합니다. 전달할 내용에 주력하는 편입니다. 표현에 문제가 있다 해도 허심탄회하게 지적해 줄 만한 분이나 그런 관계에 있는 분이 주변에는 거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편하게 말하는 대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답변자와 대화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노하시는 일들을 종종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야 제가 잘못 표현한 곳이 있었는지 황급하게 되돌아 보게 됩니다. 이번 경우도 혹 그런가 하여 살펴보았으나, 아무래도 문제를 보는 시각이 너무 달라서 이곳의 표현을 과하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보험에 대하여 그냥 대충 말씀드리거나 우발적으로 발언한 뒤 토론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 표현은 과했을지 몰라도, 취지와 방향은 아마 이곳에서 드리는 말씀이 옳을 듯 합니다. 현재 보험은 신앙 현장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것도 이론적인 표현보다는 좀더 강해야 할 것입니다.


2.일상 생활 문제 하나까지도, 이곳은 신앙과 세상 양면으로 신중하게 정리를 하는 편입니다.

신문 방송에서 듣는 소식이나 주변 한 두 사람의 특수한 경우를 보면서 그것이 마치 세상 일반적인 일로 과잉 반응하여 설교나 교인 지도에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을 대단히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보험 문제를 두고, 혹시 답변자인 본인이 그런 실수를 하고 있다고 보실지 모르겠습니다. 지적하시는 분께서 여러 가지 예를 드셨으나, 답변자가 보험에 대하여 발언하는 내용은 그 정도 세상 소식은 그냥 참고만 하는 정도입니다.

목회하는 교회가 시골이어서 도시와 달리 교인 가정의 세상일을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비교적 많습니다. 시골교회는 도시에 나가 있는 친척이나 자녀 또는 마을 출신 많은 사람들의 안방 이야기를 소상하게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목회 과정에서 일반 목회자들과 달리 가정이나 개인의 깊은 상담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더구나 이런 세상 문제에 대하여 교리나 교훈적으로 정리하여 일종의 안내서를 적는 것이 사명 중 하나입니다.

답변 내용에 대하여는 아무래도 이곳 답변자로서는 답변 내용이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했다면 별도로 살펴볼 일입니다. 일단 이번에 주신 말씀은 이미 앞에서 드린 답변에서 충분히 답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재론하지는 않겠습니다.


3.혹 이번 글에 대하여도 이곳의 답변을 원하신다면, '발언/주제연구'방으로 옮겨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드리는 곳입니다. 어떤 내용에라도 답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 반론이나 이론으로 보았습니다. 혹시 이번 글에 대하여도 이곳에서 발언이나 답변을 원하신다면, '발언/주제연구'방으로 옮겨서 계속하겠습니다. 서로 연구하고 토론할 문제이지 이곳의 안내를 들어보겠다는 입장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보험'에 대한 입장으로 글들이 이어짐으로, 이후 글들은 이동합니다.

'보험'에 대하여 질문과 답변으로 시작하였으나, 질문자와 답변자의 의견은 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찬반으로 이어지는 글들이 있으므로 이곳 '문답방'보다는 바로 밑에 있는 '발언/주제연구'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모든 분들을 위해 좋겠다고 생각하여 앞에 있던 자료까지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문답방이지만 토론 발언 또는 반론도 질문 형식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또 이곳 답변자도 이곳에 올리는 글들은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 질문으로 생각하고 일단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토론이나 반론으로 '이어지는' 글들이 있게 되면 '발언/주제연구'방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험'에 관련하여 의견을 주실 분들은 '발언/주제연구'방으로 바로 글을 올려주시고, '보험' 내용에 대한 글이라 해도 이곳에 단순히 질문하시는 분이면 계속 이곳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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