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하나님의 사랑과 뱀의 사랑에 대하여 646
서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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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1. (질문) 하나님의 사랑과 뱀의 사랑에 대하여 646
이곳에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평소 백목사님은 기독교인의 참사랑과 겉사랑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말세에는 사랑을 구별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사랑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뱀의
사랑, 겉사랑과 속사랑, 인간을 살리는 사랑과 죽이는 사랑에 대한 설교를 하
시면서 인간이 사랑을 좋아 하지만 사랑을 구별하지 못해 망한다고 하였습
니다.
기독교인의 진정한 참사랑은 무었 인가요?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입고한
행위가 참사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예를 들면 제가 교회에 가면 저를 보고 조금 모자란듯한 분이 제게 돈을
1천원 달라고 합니다. 처음에 몇번은 주었지만 그 다음에 계속 주는것도 바른
행위가 아닌 것 같아서 주지 않고 있습니다.
돈을 주는 것이 불쌍한 사람을 돕은 참사랑인가요? 아니면 주지 않은 것이 바른
사랑인가요?
사랑은 현실현실 신앙생활 에서도 많은 갈등을 생기게 합니다.
기독교인의 진정한 참사랑과 껍데기 사랑 그리고 사랑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
해 설명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답변) 구원에 진정 도움될 도움이면 사랑이겠으나, 그런 경우는 희귀합니다.
1.'사랑'은 예수님의 대속, '사랑의 행위'는 그 대속을 전하는 것입니다.
①사랑의 정의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어떻게 정의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질문이며 사랑을 분석해야 될 답변이니 우선 사랑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나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세상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의 기준으로 사랑을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도록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말은 좀 애매해도 어떤 사람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도 다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슷하게 또는 좀 다르게 표현하고 정의한다 해도 넓은 범위에서는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표현으로 사랑은 이렇다 저렇다고 할찌라도 그렇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②죽은 사람에게는 살려놓는 일 외에는 어떤 사랑도 해당이 없습니다.
죄로 죽어 지옥 갈 사람에게는 오직 예수님을 믿게 하여 그를 구원하는 일 외에는 어떤 사랑의 어떤 표현도 '말'뿐이지 사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놓는 일 외에 무엇으로 어떻게 해도 그를 좋게 그가 잘 되도록 하는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만 구원받고 중생되는 것이니 예수님을 전할 연구 예수님을 믿게 할 열심 예수님 믿는 사람이 실제 되도록 하는 일에 필요한 것만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받게 되는 '구원'을 전하는 것 외에는 누가 무슨 말로 어떻게 하든지 사랑은 아닙니다. 단, 세상이 잘못 알고 있는 이런 저런 행위들을 가지고 그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필요하게 사용했다면 그런 세상 행동이 구원에 사용됨으로 사랑의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
③마찬가지로,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건설구원에 도움 될 일만 사랑입니다.
이미 믿은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도움되도록 하는 것만이 사랑입니다. 그 사람이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건설구원에 도움이 되었으면 사랑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을 망하게 죽게 한 미움이 됩니다.
건설구원으로 그 사람을 길러가는 것도 결국 한 마디로 표현하면 구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대속하신 것이 사랑이고 이 대속으로 내가 구원받은 것이 사랑이고 이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사랑이고 구원받은 사람을 바로 믿고 살도록 하는 일이 사랑입니다. 자타의 구원에 도움이 되었으면 사랑이고 자타의 구원에 반대가 되었으면 살인죄에 해당되는 미움입니다.
2.질문하신 내용에 적용을 한다면
①물질적 도움이 있어야 그 사람 구원에 유익될 것 같으면 물질 도움은 사랑일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물질적인 도움이 있어야 신앙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하실 때 도운 것은 사랑입니다. '물질적 도움 = 사랑'이 아니라 '구원에 도움될 행동=사랑'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물질적 도움이 그 사람의 신앙에 손해가 되었으면 그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가 됩니다.
②교회 안에서 물질적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경우 대개는 교회를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절박하여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 도움을 그 순간에 청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런 경우에서는 교회라는 곳을 도움받기에 편리한 곳으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기 외부의 처량함과 불편해 보이는 형편을 이용하여 교회를 물질 도움을 채울 곳으로 상대한다면 그 사람의 건설구원은 희망없이 악화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꼭 도울 경우인지, 교회를 도움의 장소로 이용을 하는 것인지는 처음 접하는 경우는 혼동될 수 있으나 몇 번 반복해서 만나는 사람인 경우는 판단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③하나 꼭 주의할 것은
비록 그 사람의 구원에 도움되지 않을 경우라도 그 형편이 너무 어려워 그의 육체적 생존 자체가 일단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사람을 돕는 것이 그 사람의 구원에 도움되는가 여부보다 일단 생존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내 눈 앞에 있고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관계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는지를 고려하여 긍휼히 여기는 '동정'의 수준에서 도울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의 경우로 말한다면 그가 부모 자식인 경우, 형제인 경우, 집안인 경우, 이웃인 경우, 같은 교인이라도 어떤 관계인가 등에 따라서 내가 도울 양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 양을 계산할 때는 내가 맡은 나의 경제가 나의 직접 구원에 책임있는 부분에 어떻게 배정되었는지를 보며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여 그 범위 안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3.경험상
물질 도움이 구원에 도움되는 경우로 이어질 경우는 참으로 찾기가 어렵고, 동정으로 도울 경우는 더러 있으나 내가 가진 내 경제와 내가 가진 더 중요한 책임을 면밀히 따져 보면 그리 많이 하고 자주 할 경우가 적으며 (신앙에 깬 사람이면 교회나 여러 복음운동에 앞서 바쳐 사는 양이 많아서 일 것이고, 만일 신앙에 크게 힘쓰지 않는 사람이면 다른 면에 지출할 것을 하지 않은 상태가 많을 것이니 자기에게 더 급한 책임도 하지 않는 이들이 감정에만 지나쳐 옆집 강아지 죽은 것에 더 슬퍼하는 모순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현 우리나라 경제로 말한다면 물질로 도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법과 최저생계 보조금의 액수는 4인 가족의 경우 65만원정도가 책정이 되어 어떤 형태로든지 지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 경제이면 공회 소속 교역자들의 4인 가족 월 사례비와 같은 수준입니다. 만일 그가 관공서 신청방법을 몰라서 어려운 중에 있다면 도와 줄 1천원 대신 관공서에 그런 혜택을 받는 방법을 열어 주는 것이 보다 나을 것입니다.
자기의 어려운 형편으로 여러 곳에서 알아서 챙기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물질로 돕는 일은 대개 우리가 할 일이 아닌 것으로 아시고, 그러나 나 혼자 꼭 따로 챙겨 도울 곳은 자세히 훑어 보시면 주변에 적지 않다는 것을 따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그들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 사용하는 나의 경제가 알뜰하게 열매로 맺어지는 경우는 개인마다 너무 차이가 많아서 일일이 예를 들 수는 없으나 이런 남 몰래 나 혼자 구원위해 근실히 알뜰히 투자해놓는 곳이 적지는 안도록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