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질문) 아무 생각 없이 믿기 전의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어요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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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질문) 아무 생각 없이 믿기 전의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어요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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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질문) 아무 생각 없이 믿기 전의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어요 1652

벌써 2주가 넘게 방황하고 있어요.
매일 술에 친구에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고
이건 예전에 엉망이었던 제 모습이에요.
제가 교회 다니기 전에 모습

그냥 이젠 교회 나가기가 겁날 정도.
하나님 뵐 면목이 없어요.
내가 그리 좋아하던 기도도 할 수가 없어요.
주님께 죄송해서. 주님과에 대화가 끊어지고.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모든게 엉망.
주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고
주님을 느낄수가 없어요.

예배를 정말 드리고 싶은데.
예배시간조차 너무 힘이 들어요.
많은 것들을 움직여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거 너무 싫은데.

답답해요.
나는 주님을 너무 사랑하는데,
이런게 바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슬럼프 같은건가.

답답해요. 목사님.


(답변) 신앙생활은 자전거와 같은 성질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1.예수님 믿기 전의 모습, 그 모습은 나타할 때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모습입니다.

믿는 집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혹 신앙으로 후퇴를 해도 술이나 담배는 쉽게 손대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주저 앉아 있다가 일어섭니다. 노름하던 사람이 믿으면, 모든 것을 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때 모습에서는 전혀 과거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주저 앉으면 바로 화투장에 손이 갈 수 있습니다. 술 먹던 사람도 예수님 믿고 술을 끊고 신앙생활을 하면 남들에게는 표가 나지 않으나 한번 주저 앉으면 바로 입에 술이 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이 술을 다시 입에 대는 정도면 아주 많이 타락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 행동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그렇게 쉽습니다. 즉, 신앙생활을 할 때와 힘을 잃었을 때의 낙차가 크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일단, 안 믿을 때 또는 이전에 내려 앉았던 그런 자리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저 앉으면 쉽게 갈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아시고 만사에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2.신앙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는 말씀을 특별히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자전거는 밟으면 밟을수록 속도가 납니다. 또 가속이 붙으면서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옆에서 여가 밀어도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도를 일단 줄이면 다시 속도를 내려 할 때 대단히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속도가 줄어들면 옆에서 밀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휘청거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제자리에 그냥 서 있지 못하고 힘없이 옆으로 턱 넘어져버립니다.

지금 질문자의 상태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저 먼곳을 가던 사람이 중간에서 속도를 낮추다가 다시 가속하려니까 힘이 들어 조금씩 힘을 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자전거가 길 옆으로 넘어지면서 풀 밭에 나 앉은 것 같습니다. 달릴 때는 기분도 좋고 오히려 피곤을 느끼지 못하다가 이렇게 주저 앉아 보면 그동안 달려왔을 때 누적된 피로가 함께 몰려와서 털썩 주저 앉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계속 달리고 있는 모습만을 물끄러미 바라 볼 뿐입니다.


3.두말 할 것 없이 다시 자전거를 세우고 페달을 밟아야겠습니다.

처음 자전거에 다시 올라 속도를 올리려고 하면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 않던 일을 다시 한다는 것 또는 중단했던 일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상태는 한번 주저 앉으면 양심에 가책은 되지만 눈에 당장 급할 일이 없기 때문에 대개 오래가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①사용하지 않은 근육은 급격하게 도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냥 세월만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으로 주저 앉은 상태는 그냥 양심에 가책만 될 정도로 지나가는 수가 많습니다. 신앙없는 상태에서 세월만 그냥 지나가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으로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로는 심각한 파괴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다리를 다치고 깁스를 하는 분들은 대개 2-3개월 누워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근육이 급격하게 줄어서 장딴지가 팔뚝처럼 가느랗게 줄어들어버리고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퇴화된 다리를 이전처럼 되살리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을 하는지 모릅니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평소 생각없이 움직이는 정도로 활동한 다리와 완전히 주저 앉힌 다리의 차이는 이렇게 크게 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태로 늘 계속하는 것이 좋지만 우리 평범한 사람들로 말한다면 그럴 때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 따라 약간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기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이전처럼 힘이 나지 않고 열심을 내려고 해도 잘 안 될 때, 그때 특히 주의할 일은, 힘이 나지 않고 열심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습관으로라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신앙에 관련된 기능들이 퇴화되지 않고 유지가 됩니다. 그렇게 유지가 되어지고 있으면 또 다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이전처럼 열심을 낼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때, 마치 지금껏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분처럼 바로 뛰어갈 수가 있습니다.

혹, 속에서 열심이 나지 않는데 습관적으로 움직이면 바리새인과 같은 외식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된 상태를 잘 믿는 상태라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속에서 일어나는 열심이 없다고 하여 그냥 주저 앉게 되면 깁스한 다리처럼 하루가 다르게 그동안 쌓아놓았던 의의 기능들이 가속도로 축소되고 퇴화된다는 것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신앙행위를 습관으로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습관적 행위는 신앙의 퇴보이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습관적으로라도 계속하는 것은 다시 은혜를 주시라는 몸부림입니다. 바리새인처럼 그 습관적 행위 자체를 의롭게 보고 자만하는 것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②신앙에 주저 앉은 세월이 오래되면, 하나님의 사랑의 매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의 우리들을 기르실 때는 보이는 면으로 즉각즉각 처리하는 일을 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고 찾아보면 없는 존재같아 보이고, 하나님이란 없는 존재인가 라고 생각하면 분명히 계심을 보이시는 식입니다. 이렇게 보일 듯 말 듯 나타나시고 역사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자유성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자립성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자립성을 가지고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도록 해야 하나님을 닮은 참된 인격자가 되고 그런 자유성의 존재가 가진 실력이라야 기계나 만물과 다른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내가 열심히 신앙 생활할 때는 어떤 은혜를 받아서 그러했던가? 찾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나에게 내렸고 나는 열심을 냈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나타해지고 이제는 주저 앉는 신앙이 되었는가? 나도 모르게 언젠가 그렇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를 주실 때는 거저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잘난 것도 없고 또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어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제 질문하신 것처럼 신앙이 내려 앉고 급기야 주저 앉는 정도가 되었을 때가 문제입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러합니다. 만일 눈에 딱 띄게 특별한 문제점이 있다면 회개도 쉽고 또 목표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달려갈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답으로 나누는 내용은 보통 믿는 분들이 믿다보면 어떻게 신앙의 힘이 떨어지며 슬슬 쳐지다가 급기야 내려 앉는 일반적인 경우를 두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힘이 날 때도 있고 또 힘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사시사철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일어설 때가 있고 쉴 때가 있으며 준비할 때도 있습니다. 하루를 놓고 봐도 8시간 정도는 잠자기 기능을 주셔서 강제로 눕혀버립니다. 피곤해서 지치는 것도 하나님께서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의심이 드는 것도 미리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싸워가며 크는 것이고 학생이 틀려가며 배우는 것입니다.

문제는 완전히 주저 앉는 것은 하나님께서 달리 보십니다. 물론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기간이 길어지면 매가 크집니다. 또 하나님이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매가 크집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께서는 자신에게 올 하나님의 매를 미리 한번 예상해 보실 수가 있습니다. 매 문제를 두고 또 하나 아실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매의 세기는 맞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아플 줄 알았더라면 일찍 일어설 것을! 하는 말이 입에서 자동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4.신앙은 자전거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달리고 계시는 분들은 어쨌든 게속하셨으면 합니다.

달리던 신앙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물론 힘이 들어도 그렇게 크게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원래 속도로 가속을 하려면 너무 힘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더라면 그때 조금 힘이 들어도 중단하지 말 것을!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달리던 신앙을 중단하고 쉬는 것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나중에 새로 일어나려면 몸이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주저 앉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될 문제는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너무너무 간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저 앉은 사람이 잠깐 있다가 얼른 깨닫고 일어선다면 다행인데 만일 시간이 조금 더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매를 들었다 하면 그때는 평생에 돌이키지 못할 상처가 남아서 평생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까지 하나님께서 조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그냥 주저 앉은 상태에서 계속 살아도 탈이 없게 버려두지는 않습니다.

꾸준하게, 그러나 조용히 간섭하는 하나님의 두렵고 사랑스러운 눈동자를 보면 일어서셨으면 합니다.

누가 옆에서 한번만 '영차!'하고 손을 확 당겨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이 그냥 벌떡 일어서실 것인데! 이래서 가까운 주변에 호통치고 야단쳐 줄 수 있는 신앙의 선배나 스승을 모신 사람의 복이 정말로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주변에 그런 분이 없다면 자기가 자기에게 스승이 되고 선배가 되어 채찍을 드셔야 합니다. 일어나셔서 한 발만 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 처음 나올 때도 그러했습니다. 이미 다니는 분들이 보면 교회 한번 나오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막상 첫 출석을 하는 분에게는 그렇게 어렵습니다. 뒤에 교회를 다니고 보면 괜히 자기 혼자 그렇게 어려워서 스스로 묶은 줄에 매였던 것입니다. 현재 질문자의 입장도 그렇습니다.


5.사실 이번 질문과 같이 신앙 내면 속에서 발생한 이런 무기력에 대하여 힘이 되고 약이 되는 것은?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에서 제공하는 백영희목사님의 설교록 관련 문자와 음성 자료들이 가장 죄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답변자가 수천 종류의 질문을 상대하면서 답변자가 과거에 심히 고통 가운데 의문이 되어 숙제로 가지지 않았던 내용이 거의 없었고 또 이곳 백목사님의 설교 자료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 없었습니다. 혹 설교록에서 부족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백목사님께 직접 살펴 해결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도 뒤에 설교록을 다시 살피다 보면 설교록 속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공연히 이 시대를 감당하고 많은 분들을 책임진 분께 번거롭게 해 드렸다는 죄송한 마음이 많았었습니다.

지금 신앙의 무기력이나 침체 또는 장기간 헤어나지 못하고 주저 앉아 고통하는 이런 갈등도 답변자가 목사님께 여러번 질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여기 '문의답변방'과 '쉬운문답방'을 개설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에서 제공하는 설교록 관련 자료에서 모든 신앙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지만 혹 자기에게 해당되는 내용을 찾지 못하는 경우 또는 그 설교록 내용에서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순이 생기는 경우 등이 있을 때 이곳에서 혹 안내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이 설교록 자료에서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난제는 전부 해결이 될 수 있겠다는 경험과 단정이 있다는 것이고, 또 신앙생활에 필요한 힘이 안에서부터 솟아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신앙의 힘이 될 수 있는 말씀의 은혜가 이 자료에는 넘치게 있다는 확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교리의 설명이나 어느 상황에 대한 설명 등에 대하여는 설명의 정확성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안내드리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처럼 설명의 정확성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내려 앉아 있는 신앙을 일으키는 데에는 '전력 공급'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전달하는 사람으로부터 능력이 나와서 옮겨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 질문을 두고 기도도 필요하고 관련되는 말씀을 답변자가 먼저 새겨야 하며 그 말씀을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이 주시는 힘을 받은 다음에 답변을 드려야 읽는 분이 실제로 자기 발로 일어서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 답변자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만 우선 답변자 자신의 신앙이 얕고 두번째는 답변에 능력이 함께 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시간과 여건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주로 그렇게 힘을 써야 하는 대상으로는 답변자가 직접 목회하는 교인들과 얼굴을 상대하며 지도해야 하는 분들에게 그 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곳 홈에서는 답변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질문을 중심으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내적 힘이 전달되어야 하는 질문에 대하여는 대단히 죄송스런 마음이 많습니다. 답변의 정확성은 어느 정도 드릴 수가 있는데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전달해 드리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면의 부족은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에서 제공하는 설교록 자료에서 문자로 또는 음성으로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많은 분들이 평생에 새기고 평생에 잊지 못할 은혜를 당시에도 또 지금도 받고 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질문자도 그 중에 한 분이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많은 설교들 중에 특별히 신앙의 침체에 있는 이들에게는 어떤 설교를 권해 드리겠는가 라는 문제를 두고 현재 /활용자료/문자설교/ 관련 게시판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각 설교가 특히 어떤 내용을 집중적으로 주제로 삼고 있으며 어떤 형편의 분들에게 좋겠는가 등으로 내용을 분석하여 올리는 작업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활용에 좋은 상태로 올려놓겠습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모든 것이 늦고 부족한 점을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먼저 맡게 된 이곳 모든 자료의 제공과 활용이 더욱 좋아지도록 더욱 충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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