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질문) 갈수록 신앙이 후퇴하는 것 같아 답답하네요. (쉬/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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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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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16. (질문) 갈수록 신앙이 후퇴하는 것 같아 답답하네요. (쉬/2398)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이 성숙 하기는 커녕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믿을 때의 마음과는 달리 지금은 강퍅해져서 영적인 것에 집중을 못하겠습니다.
자꾸 예전에 좋아했던 세상취미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절대예정이라면 제가 그런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뜻일까요?
일부러 하나님이 강퍅하게 저를 놔두신걸까요?
저는 여기가 한계일까요?
그냥 기본구원에서 끝나는게 저의 운명인지..
정말 제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건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답변) 신앙의 탄식은 산 신앙이라는 것을 증명
1.신앙의 성장과 후퇴를 아는 방법
자기 신앙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아주 기특하게 느껴지면
신앙이 후퇴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기가 자기 신앙을 봐도 한심하고 한탄스러우면
신앙이 자라고 있거나 아니면 크게 자라려고 준비하는 중입니다.
2.자기 신앙이 한심하고 한탄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첫째, 신앙은 그대로인데 영안이 밝아지면 생기는 현상
자기 실제 신앙은 후퇴도 진보도 없고 과거 그대로지만
자기 영안이 밝아지게 되면 과거 몰랐던 면을 알게 되어 자책이 생깁니다.
신앙은 먼저 영안이 밝아지고 그다음 신앙이 뒤따라 가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 신앙을 탄식하는 분들의 첫째 경우는 신앙발전의 징조입니다.
둘째, 신앙이 자라는데도 영안이 밝아지면 생기는 현상
바울은 평생 신앙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죽는 날까지 자기를 탄식했습니다.
이는 고쳐지는 신앙의 속도는 밝아지는 영안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뚜렷하게 신앙의 침체가 있고 탄식을 하는 경우
사람이 진짜 어두워지면
자기 신앙 후퇴를 자기는 모르게 되거나 신앙 후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앙 후퇴를 두고 탄식을 한다면 실제 신앙은 후퇴를 했다 해도
탄식하는 그 사람의 내면에서는 회개와 재도약을 위해 힘찬 운동이 있다는 뜻입니다.
3.질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핀다면
질문자의 전체 신앙은 처음 믿을 때보다 나아지고 있으나
중학교로 진학한 학생이 여전히 초등학교 수준으로 공부하고 있으니까
틈도 생기고 자신이 한심한 것입니다.
탄식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생활 속에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을
1-2가지 정하여 그 작은 실행에 노력을 하시면 신앙 전반이 엄청나게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질문자의 신앙지체 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짧게 보면 고통이고 어두움이지만 넓게 보면 그런 경험이 더욱 아버지 사랑을 알게 하여
질문자를 진정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의 평생 겸손은 그의 실수했던 경험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그 면 때문에 이스라엘 왕정역사에서 하나님은 다윗 이름을 그렇게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질문자를 감싸고 있지 않으면 이런 탄식 자체가 나올 수 없습니다.
다만 탄식을 가지고 자기 신앙실천에 소망으로 바꾸면 탄식이 보약이지만
그런 탄식을 자칫 세상에서 혼자 힘으로 살듯 혼자 고민으로 가지면 절망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절망은 정말 절망할 일이 있어 절망하는 것이 아니고 소망을 절망으로 착각하게 만든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대속 4가지 중에 최후 최종의 대속이 '소망'입니다.
설교 소개 - 죄지은 현실에서 예정으로 살펴볼 것
(840408주일오후)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만일 범죄했을 때에 범죄했을 때에 그 범죄에 대해서 아이구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법칙을 어겼다 그 어겼다는 것을 자기가 깨달으는 것이 좋습니다. 어겼으니까 이것을 고쳐야 되겠다 그것도 좋습니다.
어겼으니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으니까 자복을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도 좋습니다.
또 어겼으니까 어긴데 대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징계를 받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나고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게 되면 그거 말로 쉽지 그거 참 굉장한 것인데 그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인데,
그렇게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영원전 예정하시고 영원의 그것을 주권 능력으로 섭리해 나가시는데 왜 내게 이렇게 범죄한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거게 대해서
그저 법칙을 어겼으니까 범죄라 회개해야 되겠다, 이거는 고치야 되겠다, 눈물을 흘리겠다는 그런 단순한 데에서만 있을게 아니라.
왜 이런 순서가 내게 됐을까 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해서 그저 잘못된 것 그것만 단순히 깨닫고 고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내 구원에 필요하기에 그것이 나와 관련된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기에 그분이 필요성으로 느낀 그 필요성의 범위성이 어디까지 가는가 하는 그 범위성도.
자기가 자꾸 점점 생각해서 넓게 깊이 알려 갈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시요, 이러니까 하나님 그 온전하신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 외에는 슬기로운 일이 없다,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 그분을 바라 보는 것 그분을 의지하는 것 그분으로 만족하고 그분이 인도하시고 주시는 대로 받는 그 외에 슬기 있는 것이 없고 더 좋은게 없고 더 성공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을 바라 보고 그분에게서 무엇을 얻고 배우고 인도받으려는 것 이거 외에 더 좋은게 없다 하는 것으로서 마지막에 결론을 짓게 됩니다.)
설교 전체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이 되니까 꼭 설교 전체를 참고해 보세요.
일부만 인용해 봤습니다.
*관련 설교 추가
(84070213교역)
하나님께서―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왜 지옥 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지옥 가구로 만들어 놨습니까 안 만들어놨습니까? 그거 만들어 놨다는 소리를 지금 일반 교계에서 말하면 그게 크게 정죄 받습니다. 그러나, 지옥 가는 거 하나님이 전부 다 만들었습니다. 지옥 가는 거 하나님이 만들지 안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 다 만들었습니다. 지옥 가는 거혼 자 다, 혼자 다 만들었습니다. 지옥 가는 계획도 혼자 다 했오. 천국 가는 것도 혼자 계획 다 했오. 만일 이 말이 나가면 굉장히, 뭐 세계가 들어서 이단이라고 달라들 겁니다.만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러면, 어떻게 누구에게는 그래 하고 누구에게는 그래 안 하고' 없는 가운데 당신이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실 목적으로 창조해 가지고. 지어 가지고 당신의 목적대로 쓰시는데, 없는 걸 만들어 가지고 쓰시는데 그 만들어진 것이 뭐라고 말할 거라? 말해 봤자 거기는 또 도달하지도 안해요.
이런데, 그 전부를, 전체를 다 총괄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당신은 어떤 분이시다 하는 것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또 당신에게 복종이라면 소속이나 다 그런 것인데 당신에게 속한 것은 어떻게 복되며. 당신을 떠난 것은 어떻게 망한다 하는 그것을 알리는 이 두 가지 지식을 알리는 것과 이 두 가지 지식에 행함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퇀고한 그 지식과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하고 난 다음에. 죄를 범하고 나서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깡깡 울면서 내가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겠다고 회개를 하고 그렇게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답답해 하십니다. 그것만 그라면 그 사람은 그 죄 안 지으면 다른 죄를 지어도 또 짓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를 짓게 한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 이 죄가 어디서부터 시발해 나왔느냐? 그 범위는 어디서부터 시발해 나왔느냐? 또 어디까지를 목표를 두고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이냐? 거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기의 잘못을 인해서 하나님이 그것으로 자기에게 알려 주고자 하시는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면, 잘못 그것을 하나님이 저질게 하셨는데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이용을 하느냐? 어떻게 사용을 하느냐? 그것을 알게 하시는 그대로 사용하는 그첫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그것을 자기가 후회한다고 울기만 했으면 무가치합니다. 그것을 뒤에 많이 활용을 했고, 또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서. 다윗은 모태에서부터 벌써 죄악 중에 잉태 했다 하는 것을 미루어 아는 것 모양으로 우리는 한 가지 범죄에서. 과거에 아주 깊숙이 과거를 연상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고, 그것이 또 미래적으로 얼마나 지금 가다가서 끝이 날 것이냐 그것을 깨달아서 알아서. 실은 범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난 다음에 그런 단계로 올라가게 될 때에 그런 것은 완전히 다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멀리 떨어져 버리고 상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이렇게 넓어지고 커지고 자라가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