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질문)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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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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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17. (질문)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까? 1878
하나님께서는 질투(칸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세상은 하나님의 질투의 불에 살라지는 것입니까?
이뿐 아니라 하나님은 인애하신(헤세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받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체험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체험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체험은 신학적인 진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처럼 말입니다.)
이런 개인적인 체험들을 신학적인 것으로 연결 시킬 때 우리는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거기에 대한 인간적인 위험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정에서 질투의 불과 같이 타오르는 자기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 불을 자제시킬 수 있는 메시지는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답변) 세상에 수없는 고통과 과정을 겪으면서, 비로소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십니다.
1.인생을 하나님께서 천국에 바로 가서 살도록 만들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지 않으시고 천국만 만들 수 있는 전능자십니다. 천국만을 만들어놓고 처음부터 천국에 두셨으면 더 좋았지 않겠느냐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임시로 만들어 놓고, 이 세상에서 타락하고 하나님 없이 살다가 그렇게 살게 되면 어찌 되는지를 체험한 다음에 천국으로 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을 것이므로 일부러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고 우리가 타락하도록 하고 그다음 다시 구원하는 과정을 주셨습니다.
2.오늘 우리 믿는 사람은 세상을 살되 너무도 소중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마지 못해 사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좋아서 세상을 사는 것은 더욱 더 신앙이 아닙니다. 천국이 좋고 빨리 가고 싶은 것이 신앙이지만, 이 세상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통과해야 할 이 과정들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살되 지겹거나 마지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은, 설교 말씀이 예배 시간 안에서만 메아리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설교 시간의 그 말씀이 내가 통과해야 하는 세상 생활 안에서 메아리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그 성경이 내 행동을 움직여 세상 속에서 행동하는 성경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실행해 보지 않은 지식은 '신학'에서 그칩니다. 책에 그렇게 쓰여 있더라 하는 데에서 그치지 그 이상은 절대 나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신학교와 신학교수의 한계입니다. 그들은 벽에 걸린 그림입니다. 보기는 좋지만 그림의 떡으로는 배부를 수 없습니다. 배운 것을 실행할 때, 비로소 그 배운 것을 새로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은 산 지식이 됩니다.
3.마지막 질문은, 세상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 속 불길을 자제하는 길을 질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우리는 우리 속에 모든 것을 불 사를 수 있는 잘못된 불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불씨는 바람을 만나고 태울 수 있는 여건만 조성되면 천하를 태우고도 성이 차지 않을 성질의 것입니다. 식욕 명예욕 탐심 음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불씨들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누를 수 있는 방법은 어느 성경으로 설교를 해도 결국 다 그것을 누르는 방법입니다만, 여기서는 가장 쉬운 방법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도저히 옆을 돌아볼 수도 없도록 바쁘고 힘든 일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잠재워지게 됩니다. 사람이 파김치가 되도록 삶기면 다른 벌짓을 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종류의 욕망들은 시간이 있고 여유가 있고 숨을 쉴 만 하니까 나오는 것입니다. 배부른 짓이라고 합니다. 죽도록 일을 하게 되면 죄값도 알게 되고 사람도 건전해지고 겸손해지고 무리한 짓을 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렇게 숨쉴 틈 없이 일하는 사람이 먼저 되고 나서, 그 혹독한 시련 속에서 말씀을 붙들면, 우리 속의 옛사람은 숨도 쉴 틈이 없어지고 우리 속의 새사람은 마구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