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질문) 어려운 일을 겪고 난 후의 마음가짐에 대한 질문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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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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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32. (질문) 어려운 일을 겪고 난 후의 마음가짐에 대한 질문 609
불신앙 적인 삶에 대해서 질문 드리려고 합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여려운 정도의 차이가 심할 지라도, 생명을 거는 일, 시간을 거는 일, 10원을 걸어야 하는 일 등등, 거는 것은 똑같은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어렵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관점을 조금 바꾸어서, 꼭 주님께 드리는 일 뿐만 아니라, 자기가 죄 지은 현실 때문에 닥치는 어려움 속에서도 무언가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그런 어렵다는 현실을 통과하고 나서 신앙이 쑥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의 고통은 어제이고, 어제 도와주신 하나님은 잊고, 다시 편해 질만 하면 어려운 현실을 겪기전과 비슷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랑한 민수기의 백성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불신앙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겪고 나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주셨다는 것을 짐작은 하면서도, 왜 또 그런 모습으로 계속 살까요?
어떻게 하면 화끈하게 고쳐 볼 수 있을 까요?
(참된 신앙 (눅 17:5~8, 80년 9월 27일 토새)
1. 80년 9월 27일 토요일 새벽 백영희 목사님 설교에서 인용
"그보다 더 참된 신앙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과 자기가 실제로 결함이 되어서, 하나님과 자기가 결합이 되어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신 그 움직이심에 피동되어 자기가 움직여지는 그것이 이제 믿음의 알맹이 진실한 믿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결합을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니 하나님과 자기가 결합되어 움직이는 이 믿음은 바로 생명있는 믿음이 됩니다." )
(답변) 가장 어려운 질문을 뵌 것 같습니다. 그냥 해답 없는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우선 질문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누어 정리하겠습니다.
①신앙의 어려움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당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안 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말씀 때문에 스스로 당하는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가 잘못한 일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두번째 경우는 다시 둘로 나누어 자기가 잘못한 일 때문에 징계로 당하는 어려움이 있고 다른 한 가지는 징계를 당하기 전 잘못 처리한 일을 되돌리느라고 당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②문제는, 그 어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말씀 때문에 스스로 당하는 경우는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쑥쑥 신앙이 성장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해 놓은 것 때문에 당하게 되는 어려움은, 그 어려움은 고통스러워도 그 어려움 때문에 신앙에 많은 유익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그때가 지나가면 또 다시 이전과 거의 같아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넘어지게 되고 또 어려움 당하고 또 후회하고 돌이키고 또 잊어버리는 반복에 세월이 다 가버리는 것이 보통의 사람입니다.
2.우리에게 주신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새겨볼 성구입니다.
진리는 하나만을 찾아가야 하고, 사람을 기르는 일은 두 가지를 봐야 합니다.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우리 모습은 우리 스스로 보아도 탄식입니다. 그러나 양면을 보셔야겠습니다.
①광야 이스라엘에서 보듯이 믿는 사람 거의 전부가 평생 제자리 걸음에 머물고 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이 죄짓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부르짖습니다. 해결되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가는 반복으로 40년을 끝맺어버립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니 출발 때 추산 약 200여만 명의 교인이 전부 그런 반복만 하다 갔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며 오늘 우리에게 거울이라 했습니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신앙걸음을 잘하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 모든 이들이 다 그러하니 안심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대속하신 4가지 죄 중 가장 큰 죄는 '절망'입니다. 절망을 피하고 소망을 가지면서 동시에 문제점을 보자는 뜻입니다.
어려움을 한번 당한 뒤부터는 앞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서 그런 실수를 반복치 않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신앙입니다. 노아 8식구에 속할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왕조 역사 중에서도 다윗 정도는 그런 신앙이라고 손 꼽을 수 있지만 솔로몬을 비롯하여 다른 왕들에게서는 그런 신앙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제자리 걸음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은 자기만 특별히 못난 신앙이며 특별히 강퍅해서가 아닙니다. 믿는 사람 전부가 다 그러합니다. 일생에 불과 몇 번 전진이 있었던 사람으로는 솔로몬 요시야 히스기야를 들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전혀 제 자리만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식으로 등수를 매긴다며 1, 2등은 못해도 중간 이하로 내려갈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통 신앙은 된다는 것입니다.
②그렇다고 3등이 괜찮다며 정도로 정말 주저 앉는다면, 인생 전체는 헛 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2명을 제외하고 200여만 명 출애굽한 이스라엘 전부가 다 광야에서 멸망 받은 것을 두고 200만명과 함께 멸망 받았으니 다행이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혼자든 전부든 '멸망'이 문제입니다. 신앙이란,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은 계속해서 헛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지옥에 버리고 갈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음부에 있는 홍포입은 부자의 고통을 당하도록 자기 책임 하에 있는 자기의 모든 정력 모든 기능 모든 시간 전부를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200여만 명이 실패하는 가운데 오직 2명만 성공한 예를 보건데 신앙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산법에는 '절대 기준치'가 적용되지 '상대 기준치'가 적용되지 않음을 하나 아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실패한 200여만 이스라엘 민족의 강퍅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 이후 또 제자리 걸음에 머무는 신앙은 그 숫자로 말한다면 거의 전부인데 그 강퍅으로 말하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③200만명에서 2명만을 뽑은 것은 성적 순이 아니었습니다. 60점 넘긴 사람이 불과 2명이었습니다.
광야 40년을 다 사용하고도 낙제하여 광야에서 멸망받은 사람은 200만대 2의 시험에서 낙제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 성패의 기준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만 가지고도 통과하도록 가장 낮은 점수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그 점수만 통과하면 몇 명이든 전부 천국으로 데려가는 쉬운 시험입니다. 그 시험은 답안지를 미리 보여주며 배껴 적고도 60점만 맞으면 되는 시험입니다. 떨어지는 학생이 기이한 경우라고 해야 합니다. 그 시험에 낙제하고 또 재수 삼수 사수를 하는 학생이야 말로 참으로 이해 못할 학생이 되는 시험입니다.
광야 200여만 명, 오늘 믿는 사람 전부가 제자리걸음 신앙에 해당되어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시하는 기준은 '죄'면 매맞고, '의'면 복받는 두 길뿐입니다. 처음이면 작게 때리시고 두번이면 큰 매를 드십니다. 다윗은 우리야 아내의 문제로 한번 매 맞고 두번 다시 그 매가 두려워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노년에 한번 더 교만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같은 성군이 되는 것은 노벨상을 받는 것처럼 어려워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맞은 매는 두 번이지만 그 매는 너무도 컸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일반적이라면 그 정도 매를 맞고도 또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 예를 들어 본다면. 음주 운전에 한번 실수하고 교도소 한 달을 갔다 오고 나면 두 번 할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다윗 된 것은 오늘 우리 모든 사람이 다 다윗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정도로 쉬운 것입니다.
③이제 복잡한 설명을 정리하겠습니다. 한번만 죽었다 하는 마음으로 단행하면 성자됩니다.
한번만! 그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주 쉬운 문제에서 딱 한번만 단행해버리면, 그리고 손을 내밀고 주님을 잡아버리면, 우리도 다윗과 같은 성자가 됩니다. 한번만 그리하면 그다음부터는 그냥 술술 풀리듯이 나아가며 어느덧 생각도 못하는 성자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너무도 쉽게 너무도 간단하게 내어 놓으신 구원의 걸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쉽게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길인데도 불구하고 어렵겠지! 그런 성자의 걸음이 설마 그리 간단히 되겠는가! 괜히 말이 그렇겠지! 머리좋은 사람들이야 합격하는 것을 쉽게 말하지만 설마 우리같은 머리 나쁜 사람에게야 해당 되겠는가! 이런 세상 선입견이 너무도 무겁게 우리를 누르고 있습니다.
해버리면 되는데, 털고 일어서버리면 되는데, 끙끙 앓고 양심 가책을 느끼는 그 시간에 그 걱정할 힘을 가지고 그만 털고 주먹쥐고 일어나면, 믿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바울같고 다윗같은 걸음으로 걸어가게 되는데, 너무 간단하고 쉬운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이것이 바로 '은혜'로 가는 구원을 모르고 천주교와 같이 '인간의지만'으로 구원얻으려는 인간의 인식입니다.
3.다른 방법 없습니다. 넘어져 항상 주저앉아 있는 때가 많습니까? 바로 일어나십시오.
①성자된 우리가 스스로 성자됨과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버립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인생의 세월을 평균 7, 80년으로 주신 것은 수십 년씩 허송하고 깨달을 것이라고 넉넉하게 준 세월입니다. 평균적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만일, 만일, 수 십 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한번 털어버리고 일어나 보자고 하여 한번만 움직여 본다면 그는 당장에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자리에 한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그렇게 봐 주시고 있는데 정작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은 한 발을 그 높은 곳에 올려놓고도 자신을 시시하게 봅니다.
무언가 크나큰 일을 해내야 성자 발바닥에라도 간 것 처럼 그리 생각을 합니다. 성경으로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고 순종은 성경으로 해놓고도 인식은 이전 세상 인식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보니까 왕자리에 올려 주지 않으면 아직도 다윗이 된 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해 바다를 갈라야만 모세와 같이 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성자가 성자된 것은 홍해를 가르고 나서 된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던 왕궁 안에서, 광야 40년 무명 시절에 된 것입니다. 그때 성자가 되었고 출애굽 후에는 성자된 사람이 성자된 표시를 낸 것입니다.
②양심 가책으로 담배를 2일만 끊었다면, 이만하면 99.9%가 완성되었습니다. 너무 큰 것인데
만일 담배를 못 끊고 늘 제자리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하루만 담배를 끊었다 치고, 그 다음날 하늘이 울리고 땅이 진동하는 기적이 보였다면 더욱 힘을 얻고 기쁨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담배를 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루 담배를 끊었다면, 이미 그는 성자의 반열에 한 발을 들여 놓은 것입니다. 한번 더 그렇게 나가면 이제 성자가 된 것입니다. 문제는 성자가 되었는데도 본인은 눈에 보이게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보이는 세상의 변동이 자기에게 크게 나타나지 않으니까 하루 이틀 끊은 담배, 성령에 이끌려 양심의 인도를 받아 한번 두번 행한 그 행위 그 2일간의 이력이 바로 천지가 진동하고 놀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인데, 그런 위대한 성자의 걸음을 정작 본인이 시시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3일째는 다시 담배를 물어버립니다.
보이지 않게 왔던 2일간의 전능하신 성령이 이제 성자된 이 사람을 붙들고 요셉처럼 13년 뒤, 모세처럼 40년 뒤 천지개벽할 일을 하려고 하는데 3일만에 성자된 자기를 자기 스스로 헌신짝이라며 쓰레기통에 벗어던져버리니 모든 계획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말씀대로 이틀을 살아봐야 별 볼 일이 없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또 맥없이 자기도 모르게 또 현실에 안주하며 이전 습관으로 돌아가고 또 밖을 쳐다봐도 하나님은 몇 달이나 지나서 매를 드실지 몰라도 당장 그러실 것 같지는 않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제 자리에 다시 누워버립니다.
③가책되는 본인보다 더 기가 찬 분이 성령입니다. 다 된 밥을 또 휘젓어버렸습니다.
이렇게까지 스스로 주저 앉는 사람이면 대속의 값으로 성령이 역사하던 역사도 제자리 걸음하는 우리 위에 함께 멈추십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성'이라는 유일하고 최귀의 보배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 위에서는 강제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하신 자유성! 이것 때문에 성령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애간장을 끓이고 계십니다만, 주저 앉는 이에게는 다른 방책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달리 일으켜 세울 길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답안지까지 보여주고 배껴 적는 시험을 60점에 합격시켜 주겠다고 했는데도 그 학생이 죽자살자 극장으로 다리밑 물고기 잡으러 환장을 하고 도망을 간다면, 그런데 그 학생이 다리 밑에서 날 잡으러 선생이 오지 않나 하고 더 멀리 도망을 가 버린다면, 그리고 그 도망 간 곳에서, '나야 나쁜 학생이라 이렇게 도망을 가지만, 그래도 선생은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이니 날 잡으러 와서라도 좋은 사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야?' 라고 중얼거린다면, 할 말은 이것입니다.
④자유성의 한계를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질문의 해결은 하나님도 스스로 손대지 않겠다 하신 부분입니다.
선생은 그 말 듣고 잡으러 갈지 몰라도 하나님은 자유성이라는 최종의 선을 쳐 놓으시고 그 선까지 넘어 도망가는 사람은 잡으러 가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그분은 그 약속을 지킬 것이고, 1일 그리고 2일만 끊고 참으면 이미 성자가 되었으니 이제 성자된 이 기쁨으로 마구 천지가 개벽하도록 들고 쓰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만 되면 나머지 성자 만들고 역사의 위인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부 혼자 다 해버리시겠다 하시니 들리면 복, 이래도 들리지 않으면 200만명 중에 들 사람입니다. 200만명에 들지 않고 2명 속에 들어가는 길이 하루와 이틀로 완성되는 것이고 그 이후는 버리지만 않으면 되는데...
⑤약간의 세월을 가지시고, 그리고 '자책감'을 놓치 마시고 쭉 기다리셨으면
기다리다 보면, 지난 날 공연히 자책하고 주저 앉아있던 세월이 너무도 우습고 비록 못났지만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처럼 비록 실수는 너무 많으나 그 기쁨과 솟아나는 힘은 끝없이 체험하며 달려가는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런 때가 있었고 또 이런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뛰는 사람은 항상 그랬던 것으로 보기 쉬우나 진리는 누구에게나 같습니다. 질문자가 그러하면 답변자나 다른 사람들도 꼭같이 그러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의 현재가 질문자의 내일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고, 가장 답변키 어려운 질문이었고, 진정한 해결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을 자꾸 읽다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어 일어서서 며칠 간 달려 본 답변자의 걸음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한 말씀, 다윗같은 성자와 이스라엘 모든 악한 왕들과의 차이는 꼭 하루와 이틀 일어서서 계속한 것 차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성자가 다 같이 되었는데 한 사람은 계속 성자된 것을 들고 때를 기다렸고 나머지는 성자된 것을 붙들고 세상 기준에서 별 것 없다고 스스로 던져 버린 것입니다. 백목사님 평생에 반복하신 술회가 '사람 차이 실은 종이 한 장인데....'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