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질문) 백목사님의 기도 교훈(특히, 철야기도)에 대해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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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질문) 백목사님의 기도 교훈(특히, 철야기도)에 대해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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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질문) 백목사님의 기도 교훈(특히, 철야기도)에 대해 403

백영희 목사님의 기도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특히 새벽기도도 그러하지만 철야기도관은 어떠하셨는지요. 특히 능력 받은 종들 대다수가 철야기도를 간증에서 말하고 있는데 과연 여기에 대해 백목사님의 교훈을 알고 싶습니다.


(답변) 질문이 주로 집중하신 '철야기도'를 중심으로 소개한다면 이렇습니다.


1.철야기도의 원래 모습은 이렇습니다.

①아버지 말씀을 듣다보니 밤이 새버렸습니다. 이것이 철야기도의 원래 모습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대화이며 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에서 우리는 아버지께 궁금한 것을 여쭈어보고 배우며 필요한 것을 주시라고 애원하게 됩니다. 배울 것이 많고 필요한 것이 급박할 때에는 우리가 아버지를 붙들고 사정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자연 기도가 길어지게 되는 것인데 이 대화가 중요하고 또 긴급하다 보면 길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밥 먹는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금식기도라는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기도가 더 길어지게 되면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게 되고 밤을 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때는 철야기도라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가르치는 금식기도나 철야기도의 가장 정상적이고 또 바른 모습은 이제 설명한 이런 경우를 말합니다.

②진정한 철야기도를 보면서 흉내만 내는 철야기도도 있습니다. 이것을 염려한 분이 백목사님입니다.

참고로 이런 모습의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는 진정한 기도는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사고비에서 간절히 기도하다보니 철야가 되고 금식이 되도록까지 매달려 하나님께 은혜를 받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듣고 기적이 부럽고 체험이 신기하여 자기도 해 보기 위해 무작정 철야를 하고 금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은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 혼자만 목청을 한껏 높여 밤새 크게 기도를 하는데 그런 경우 자기만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통고를 하는 모습이 되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주는 소리는 들을 여유도 또 자세도 되어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접촉이니 접촉을 하다보면 자기의 부족한 것이 자꾸 나오게 되고 회개할 것이 많아져서 철야로 기도를 하고나면 크나큰 죄인이 되어 있어야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철야기도를 했다는 자부심 성취감에 취하여 은근히 다른 사람에게 철야를 종종하고 있음을 일부러 드러내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것은 성장과정에서 어린 신앙이므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정상적인 신앙은 분명히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③신앙초기 백목사님의 기도는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백목사님은 신앙초기에는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태산이 진동토록 밤낮없이 철야하고 금식하며 기도에 매진하였고 최근에 알려진 오순절 교회계통의 열심과 동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20여년 기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다른 교파나 교회는 몰라도 백목사님 신앙지도 하에 있는 노선에서는 보다 하나님과 실질적인 대화와 의논을 하는 장성한 기도가 되도록 이 면을 집중적으로 지도했습니다. 물론 그 정도의 신앙에 이르지 못하고도 이른 것처럼 흉내내는 분들이 많겠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교회를 길러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면 다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2.물론 신앙교육을 위해 집단적으로 또는 행사적으로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①교회가 교회이기 때문에 어린 신앙을 위해 하는 경우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경우는 개인의 경우를 위주로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신앙이 서로 다른 많은 분들이 계시고 이들 전체 신앙을 기르는 신앙교육적인 측면에서 교회는 교회 전체적으로 철야기도라는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전체 행사를 통해서 철야기도라는 경험을 함으로 개인 기도가 정말 필요할 때 너무 요긴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만, 문제는 소위 하나님과 대화라는 기도를 그야말로 하나의 행사로 굳어지게 한다든지 또는 하나님과 대화라는 의미는 실종되고 철야기도를 했다는 하나의 경험이나 아니면 집단적 행사에서 오는 또 다른 형태의 일체감이나 성취감 등이 강조되고 이런 것이 위주가 된다고 하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솔직한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우려입니다.

②그러나 늘 조심할 것은 기도마저 그 형태만 남아버리면 희망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막판에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만 매달려 살려달라는 간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최종방어선인데 이런 기도를 평소의 행사나 형식 또는 다른 감정과 성취감으로 굳어지도록 해버린다면 아쉽다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글을 읽는 느낌은 질문하신 분이나 주변의 분위기가 아직까지는 철야기도 등에서 가진 신앙의 새로운 세계, 또는 하나님의 직접 역사하신 체험 등을 느끼게 합니다. 바로 질문하신 분과 같은 이런 신앙상태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분명히 철야기도 등이 행사성으로 진행된다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교회역사 전체와 현재 교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철야기도는 철야기도의 원래 모습과 기도의 원래 성격이 거의 없어져 버리고 대학생 MT 행사의 캠프파이어 순서와 같은 모습입니다. 여기서 좀더 진행하게 되면 천주교의 주문기도나 바리새인의 틀에 박힌 기도로까지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3.자고로, 신앙의 산 경험을 가진 사람 치고 철야기도의 생생했던 체험을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①진정한 신앙인이란 철야기도로 오늘까지 살아나올 수 있었다는 공통고백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잘 믿으면 잘 믿는 대로 강퍅하면 강퍅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여 절박하게 기도하는 기도로만 해결되도록 각자를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를 많이 통과해 본 사람들이 바로 신앙에 간증을 많이 하는 분들이며 교회나 교계의 지도자들은 대개 이런 분들 출신입니다. 그래서 처음 믿는 분들에게는 아주 생소하게 들리기도 하고 또 좀 이상하게 생각되는 철야기도를 그렇게 많이 강조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②사이비교파를 제외하고는 백목사님만큼 철야기도를 했던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를 듣다보면 철야기도나 금식기도 등을 아주 책망하고 그래서 철야기도 등을 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믿는 사람으로 보는가 하는 오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 총공회나 서부교회 내부에서도 좀 늦게 믿은 분들에게 이런 경향은 또렷합니다. 이는 백목사님과 총공회 신앙초기에는 철야기도와 금식기도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최근 외식으로 흐르는 철야나 금식기도의 폐단을 지적하는 것만 선별적으로 듣게 된 이들의 오해입니다. 사실 산중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를 포함 산천초목을 뒤흔들 만큼 기도했던 것은 너무도 많았고 너무도 흔하여 백목사님 신앙주변인들로서는 이런 기도들은 해라 말아라 하는 차원을 떠나 너무도 당연한 생활이 되어 있었습니다.

4.백목사님의 시각에서 본 철야기도를 다시 한번 요약한다면

철야기도 등을 기도의 한 모습, 한 방편이라고 할 때 백목사님이 말씀한 기도의 방편에 대한 정리를 간단히 해 본다면 이러합니다. 어릴 때 또 교회적으로 특별히 신앙교육을 위해서 필요할 때는 어디서나 어떤 기도의 형태를 사용하더라도 다 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기도 간증기도 통성기도 묵상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중기도 골방기도 등 모든 기도의 방편을 다 사용해서라도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참 모습을 알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앙이 자라가고 깊어져가면 기도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대화이니 그분과의 대화는 점점 더 진지해지고 또 실제 대화다운 대화로 진행되어야 성장이 있는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살펴보고 또 배우고 또 부탁할 것을 구하게 되는데 무작정 큰 소리로 꼭같은 소리 남들이 흔히 하는 표현 또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펴야 하나님이 들으시느냐는 것입니다.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시니 실은 신앙이 자라가면 좀더 조용히 깊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는 것이 장성한 기도일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즉 무엇이든 정해놓은 것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신앙이 어린 수준에서 장성한 신앙으로 자라가는 데에는 공통적으로 이런 모습 이런 성질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5.참고로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백목사님의 대표적인 기도생활로 예를 든다면 서부교회 부임했던 1952년 7월부터 수년간 단 한번도 발을 뻗고 주무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가장 백목사님을 반대했고 끝내 서부교회를 떠나 백목사님을 가장 외부에서 많이 비판했던 김용학 당시 집사님과 같은 분도 기도생활에 관한 한 '그의 서재를 언제나 출입할 수 있었다. 밤중에라도. 그는 책상 앞에서 머리를 대고 잠깐 조우는 수는 있어도 발을 펴고 잠을 자는 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교회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찾아 볼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은 서부교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십 수명의 교인들 역시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그렇게 기도생활을 해왔습니다. 지금도 각 지방에 있는 총공회 계통 교회들에는 이런 선배들의 기도생활을 보고들은 영향으로 1년에 2-3일 외에는 거의 예배당에서 철야로만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식이 운전대를 잡고 난 뒤에는 이후 십 수년이 흘러 죽을 때가지 등을 바닥에 대어 보지 않고 밤들을 보냈다는 평신도도 있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정해놓고 철야기도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오히려 거의 매일을 철야기도로 지나온 것이 수십년의 생활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자면 '시험대비 특별강좌' '대입 30일 마무리 코스' 등을 거쳐보지 않은 학생들이 없겠으며 그것이 일반적으로 수험생들이 거쳐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늘 밤낮으로 책보는 것이 취미요 생활이 되어 있는 학생들에게는 이미 수험대비라는 말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백목사님의 기도생활은 특별기간, 특별 철야, 금요 철야기도회 등의 특별한 행사 개념을 대단히 조심하고 있숍니다. 실은 경계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란 신앙생활에 호흡과 같다고 하시는 분이니 산소호흡기를 꽂아야 되는 비상시도 있겠지만 정상적이라면 어느 하루라도 어느 한 순간이라도 기도라는 것을 빼버릴 수 없는 것은 신앙의 본능이며 신앙의 본질이라고 보신 분이 백목사님입니다. 낮에는 세상 여기 저기에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놀고 쉬고 다른 데 한눈 팔다가 정해놓은 철야기도 그때는 일부러 자지 않고 기도하는 이들, 철야기도 한 다음 집에 가서 다시 잠을 자고 보충한다면 그분은 철야기도할 실력도 또 준비도 되지 않은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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