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식전기도, 습관화된 거짓말 1501
서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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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30. 식전기도, 습관화된 거짓말 1501
안녕하십니까
바쁠실 텐데 천천히 답변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1.식전기도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세요.
2.습관화된 거짓말로 생활하는 사람은 어떻게 용서해 주어야 하나요.
(답변) 1.하나님 동행을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식전기도 2.습관된 죄는 단호하게
1.식전 기도는 '모든 자리 매사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①몬1:4,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기도하고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것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또 명령이기 이전에 믿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길을 가든 공부를 하든 직장에서든 늘 주님 생각하고 기도하므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중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쉬임없이 계속하는 것은 실제 노력해 보면 깜빡 잊어버리고 한참을 그냥 지나치는 때가 많습니다. 아침 출근길에는 주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있었는데 회사 문을 열면서 자기 업무 처리에 정신을 쓰다가 주님을 마음 속에서 잊어버렸는데 이런 상태로 하루 종일을 보낼 수도 있고 이런 상태로 며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②주님 동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매사에 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 주님 동행은 각자가 혼자 노력할 일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디를 방문하거나 어느 자리에 앉게 되거나 물 한 컵을 마시게 되거나 출근하여 의자에 앉게 되거나 아침 식사 자리를 가지거나 심방을 가거나 예배당에 앉을 때나 운전하려고 차 좌석에 앉을 때나.
자리가 바뀌거나 환경이 새로워지거나 무엇이라도 새로 시작되는 일이 있으면 먼저 잠깐 눈을 감고 하나님께 그 자리에 관련하여 은혜를 주시라고 기도하는 습관을 모든 믿는 사람은 다 가지셨으면 합니다. 마음으로만 주님을 동행하려면 주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너무 많아지는데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일마다 앉는 자리마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기도하는 그 습관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기도할 것을 일단 기도하겠지만 동시에 눈을 감기 전 잊어버린 주님을 다시 모실 수 있다는 것도 여간 큰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무슨 일이든 어떤 자리든 기도로 시작하는 습관은 그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귀한 일이 되고 한편으로는 주님을 계속 마음에 모시고 이어지는 주님 동행에도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신앙 습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의 건설구원은 주님 동행이 끊어지지 않고 주님 생각이 잊어지지 않은 범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잊어버린 사람의 잊어버리고 움직인 순간은 세상에 묻어두고 허무하게 없어질 허사입니다.
③식전 기도
식전 기도는 믿는 우리들이 신앙 습관으로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 믿는 집에서 자란 사람들, 또 앞서 믿는 사람과 식생활을 같이 하는 분들은 밥 상 앞에 앉으면 일단 눈을 지끈 감고 보는 것이 습관일 것입니다. 혹 식성이 좋은 분들은 얼른 먹기 위해 눈을 감은 그 순간도 눈을 뜨는 데 신경을 쓰다가 정작 기도다운 기도도 제대로 못해보고 몇 개월 몇 년을 지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식사기도도 대표기도를 못하는 분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투에 참가한 군인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자기 생명을 맡기려면 주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듯이, 수술대에 올라간 환자가 수술 중에 어떤 돌발사가 생길지 모르니까 기도할 수 밖에 없듯이, 사실 알고보면 밥 한 술도 물 한 모금도 주님이 은혜를 주셔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또 먹고 마시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먹고 마신 것이 체내에 들어가서 사용될 때 복되게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전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먹고 마시는 것에 아쉬운 사람이 없고 오히려 즐겁게 먹고 마시기 위해 외식이나 특식을 생활화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을 두고 절박하게 기도하던 옛 신앙들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먹기 위해서 산다 할 만큼, 먹고 싶은 만큼 먹지를 못해서 울고 싸우는 가족들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된 이들이 보리밥 한 숟가락 앞에 놓고 기도하던 옛 시절에는 '먹여주시라'는 기도가 간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지금은 생존문제를 두고 기도할 때가 아닌 줄 알지만, 지금도 역시 먹고 마시는 것은 갑자기 어느 한 순간에 생존 문제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후두암이 걸려 물 한 모금 마시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는 일을 남의 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잘 먹던 아이가 갑자기 목에 무엇이 걸려서 금방 숨이 넘어갈 듯 한 경험을 한 두 번씩 해보셨을 것입니다.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만사 기도할 일인데 그 중에 먹고 마시는 것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 해이하게 되었습니다.
잘 먹고 잘 마신 사람이 그 활동을 복없이 하여 얼마나 자기 망하고 죽을 짓을 하는 것인지? 우리가 스스로 주변을 살펴보면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심으로 활동할 수 있는데 우리의 평생 활동 중에서 우리에게 복되고 좋은 활동은 10%도 되기 어렵고 거의 90% 이상 활동은 공연한 짓 쓸데 없는 노릇 자기 망할 일만 하다가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④식전 기도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먹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은혜 주옵소서
.귀한 음식 주시니 먹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 주옵소서
.오늘도 먹을 수 있도록 하시고 생존의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밥이 부끄럽지 않도록 충성하게 해 주옵소서'
.먹는 대로 힘을 얻어 주님 위해 살게 해 주옵소서
.오늘 우리 식구들이 이 음식을 먹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은혜를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 내용으로 기도하되, 바쁜 식사 일정에서는 단 한 마디만으로 기도하고 끝낼 수도 있습니다. 단 한 문장으로 기도해도 짧지만 집중하여 간절이 있는 기도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식당에서 믿는 분들이 와서 대표기도를 하거나 혼자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분도 있고 설교식 기도를 하는 분도 있고 주변 분들에게 들으라고 광고성 기도하는 분도 있고 너무 많은 내용으로 말만 많이 기도하는 분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그러나 간절하게, 많은 내용을 한 두 마디에 전부 응축시켜 폭발이 될 수 있는 그런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⑤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최근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꼭 덧붙이셨으면 합니다.
식전 기도는 앞에 소개한 내용 중 한 두 가지로 줄여서 간곡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잠깐의 기도 중에서라도 최근 본인이 가장 시급하고 간곡하게 기도하여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있다면 매 식사 때마다 한 마디를 넣어 기도의 양을 채우시고 간절을 더하셨으면 합니다.
어떤 청년이 군에 입대하기 전 1년 전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그날부터 3끼 식사에 한 번도 빼지 않고 '군 3년 생활에 육체의 고생이 어떠해도 성경을 많이 볼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평소에 육체의 훈련이나 객지 생활이나 외로움 등에 대하여는 잘 적응을 했었기 때문에 군 3년의 기회를 다른 청년들처럼 그런 기회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혹 군 3년 편한 곳을 원하는 기도가 될까 해서 '육체의 고생이 어떠해도'라고 기도했고, '성경을 많이 볼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그는 평소 생활 형편이 남달리 바빴고 또 성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쳤었는데, 군 3년을 외지에서 보낼 것 같으면 성경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했던 것입니다. 그 기도가 이루어져 3년간 매달 성경을 2번은 볼 수 있을 근무 여건이 주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정마다 개인마다 교회마다 우리는 대단히 극심하고 중대하여 마음을 심히 고통스럽게 누르는 기도제목이 하나씩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기도를 위해 철야도 하고 따로 새벽이나 저녁기도 때 간곡하게 기도하겠지만, 오히려 장시간 기도한다고 기도기회를 잡았을 때보다, 이렇게 식사기도 때 단 한 줄 그 기도제목을 넣고 반복하며 마음을 순간적으로 간절하게 집중할 때, 그 기도는 그 사람의 생활 전반에서 늘 잊어지지 않는 간구가 되고 그 역사하는 힘이 대단히 큰 것입니다.
2.습관화된 거짓말로 생활하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①습관화된 거짓말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해당됩니다. 사하심이 없습니다.
다른 죄는 고하면 사함을 얻습니다. 다른 죄는 인간이 연약하여 넘어지기 때문에 붙들고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해 주어야 하고 또 오죽하면 그러했겠냐고 긍휼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일반인들의 인식이나 일반 교회들의 인식과 아주 다르게 단호하게 안면을 바꾸어 엄정하게 상대해야 할 일이 혹 있습니다. 어린 신앙을 다치게 하는 경우와 알면서 습관적으로 계속하는 죄에 대하여는 그 사람이 그런 일을 두번 다시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또는 다음에는 그런 행동이 약화될 수 있도록 처리해야 합니다.
알면서 습관적으로 계속하는 죄는 성령훼방죄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그 행동을 고치는 것만이 회개요 고치는 것만이 소망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도 사함이 되지 않습니다.
②한부선선교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신앙투쟁에 가장 앞섰던 의인이었습니다. 합동측이나 통합측에서는 '메촌파' 선교사라고 하여 한국 내에서 가장 경계 인물로 주목받던 선교사였습니다.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평양 총회에서 반대 항의하다가 일경에게 현장에서 붙들려 나갔던 분이고 해방 후 고신에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출옥성도들과 함께 고신을 건설하면서 한국교계에 그렇게 핍박을 당할 때 그의 친구 목사님 아들이 자기 자전거를 훔쳐서 팔아먹자 바로 경찰에 집어 넣어버렸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과는 진리운동을 위해 전우와 같이 어려움을 함께 겪던 사이였습니다. 아버지 친구 목사님이고 부자나라에서 왔으니까 설마 했는데, 이렇게 단호하게 그 죄를 막고 나섰던 것입니다.
과거 서부교회에는 부산 시내에서 알아주는 소매치기 패들이 연보털이를 하러 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내는 소매치기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다니다가 가출한 아이들을 앞세워 보냅니다. 이 아이들은 연보통을 손대다가 들키면 아주 처량하고 불쌍하게 울면서 사정을 하는데, 바로 이 기술이 있기 때문에 들켜도 뒷탈이 없고 차마 교회에서 주일날 그 아이들을 경찰에 넘기는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이미 상습범입니다.
이런 경우는 뒷마당으로 데려가서 다음에는 매가 무서워 못오도록 패든지, 아니면 경찰에 가차없이 바로 보내어 그들의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어 그리했었습니다. 물론 한결같이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꼭 고려해야 할 방법 중에 하나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