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질문) 도고와 중보기도 2102
서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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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33. (질문) 도고와 중보기도 2102
중보기도란 말씀을 요즘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2장 쯤에 도고 란 말씀이 나오더군요.
1)도고와 중보가 같은 뜻입니까?
2)같은 뜻이라면 왜 구분해서 사용하셨는지요?
바쁘실 텐데...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답변) 기본구원만 아는 교계에서 '중보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바로 이단이 됩니다.
1.교회의 유행어가 교회를 마구 짓밟고 있습니다.
플래카드를 써붙이고 가슴에 구호 하나씩 달고 입에는 서로가 통하는 유행어 한 마디씩 갖추고 행사 한번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그렇게 이벤트식 세상 경영전략을 구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이를 가지고 10개월을 지내야 출산하게 됩니다. 무대를 꾸며서 꿍짝거려서 낳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엄마가 자기 품에 안고 자기가 먹고 소화시킨 것으로 젖을 먹여 수년을 길러야 걸음마를 하고 재롱을 부리게 됩니다. 이렇게 기르지 않고 시험관으로 남의 배를 빌려 낳고 아니면 절개를 해서 산통도 없이 낳고 낳고 나면 소젓으로 기르는 것이 요즘 보통 양육법인데, 이렇게 길러놓으니까 속성으로 자라고 미꿈하게 자라는데 그대신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는 것이 아니고 짐승이 태어나고 자라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기르는 것은 아이를 뱃속에 넣고 출산을 하고 젖을 먹여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데에는 기술보다 사랑을 돈보다는 엄마의 진액을 짜야 되는 것입니다. 유행어 뒤에는 꼭 교계의 기술, 젊은 교역자들의 잔재주가 진하게 나타납니다. 기술로 하나님을 사고 아이디어로 능력을 대신하는 일은 죄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아주 큰 죄가 되는 일입니다. 근본 방향에 대한 문제입니다.
2.이전에는 '중보기도'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박태선이 들고나온 생수는 오늘까지 그 효용이 탁월하여 종교 장사꾼들에게는 애용되는 상술입니다. 장사들이 물건 팔 때 덤으로 끼워주는 방법이 그렇게 애용되듯이. 미인계는 통일교가 잘 써먹었고, 가장 방문은 여호와의 증인, 영어과외와 건강 강좌는 안식교, 순복음은 박수와 축복, 기장은 민주화.
도고라는 말을 풀어쓰면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보'라는 말은 토씨 하나 어감 하나 잘못되면 사정없이 천주교 이단이 되어버립니다. 기도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중보기도라고 하여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총공회 신앙노선처럼 건설구원의 개념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곳에서는 전혀 위험이 없지만 기본구원 개념만 가지고 있는 일반 교계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면 이단이라고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표현입니다.
그렇지만 교계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장로교 대형교단이 자기들 안에서 표현하고 사용하는 단어들은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다'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면서 실수 한번 한 것이라고 치고 넘어갑니다. 만일 이런 표현을 군소교단에서 사용했다고 한다면 기독교 2천년 교회사를 다 들먹이고 구원론을 들먹이며 이단이라고 수도없이 비판을 했을 것입니다.
중보기도라 도고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중보의 위치에 설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 예수님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 위치에 선다면 그가 예수님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러므로 중보기도라는 표현은 일반 교계에서는 교리적으로 삼가해야 옳고 이곳 신앙노선에서는 과거에 사용하던 표현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그냥 유행어로 나오는 것을 사용하지 않으니 별 문제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장로님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기 종업원에서 나를 '주님'이라고 부르라고 한다면? 물론 주인이라는 뜻이겠으나, 남들이 오해를 하자고 한다면 그가 자기를 예수님으로 부르게 했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중보'라는 표현은 기독교 교리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우리 죄를 담당하고 해결하고 우리를 사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중보라는 표현은 중매쟁이, 중개인, 중간업자, 로비스트라는 뜻입니다. 달리 표현할 말이 많은데 가장 위험한 말, 가장 고약한 말을 유행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유행시켜 바람을 일으켜서 교인을 끌거나 교계의 무슨 주도권을 쥐려는 사람들의 목적은 하나님과 진리는 뒤로 물려놓고 어떤 표현 어떤 행동 어떤 이벤트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많이 쏠리는지만 관심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