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질문) 성화(聖畵)에 대하여 410
서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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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2. (질문) 성화(聖畵)에 대하여 410
1985. 11. 5. 백목사님 설교에서 성화에 대하여 사탄의 장난으로 봅니다.
평소에 기도할 때나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때 성화에 일반적으로 나오는 예수님 상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나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이 떠오르게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카톨릭 성당 뿐만 아니라 개신 교회에서도 모자이크로 장식된 유리창, 액자, 심지어는 강단에까지 그러한 상이 조각된 경우를 봅니다. 심지어는 시중에 나오는 주일학교 어린이용 교재에까지 비일비재하게 나옵니다. 성화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관리자 대리질문) ,
(답변) 신앙은 유형에서 무형으로 움직입니다. 성경대로 그린 것은 꼭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1.신앙의 기본원리는 보이지 땅에서 보이지 않는 천국을 향하는 것입니다.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이시라 기독교는 어떤 형체도 만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책으로서가 아니고 진리의 기록으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교회를 길러가는 방편으로 구약교회에게 성전 등 일시 몇가지 모양들을 만들도록 하셨지만 신약에서는 모든 형상 모든 외부 모든 껍데기를 다 벗겼습니다. 예수님의 출생 사망 얼굴 필체 등 어떤 모양이라도 남겨놓지 않았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교회는 형식이 아니라 실재와 실체의 도입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와서 그것으로 말미암고 그것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2.성경 내용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옮겨놓는 것은 참으로 위험스럽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내용을 그림이나 조각 등 어떤 형태로도 남겨두지 않아야 하는 것은 우선 그 그림이나 영화 또는 조각을 보고 나면 모든 기도 묵상 설교에서까지 그것이 생각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모세를 대할 때마다 십계라는 영화의 배우가 먼저 눈앞에 와 있게 되는 등의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성화라는 이름으로 자꾸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기 내면의 신앙세계가 텅비게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진리와 영감으로 가득차 있을 심령이 텅비게 되면 그 공허감 때문에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라도 채우려는 본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당시의 교회 그리고 그후에도 교회는 신앙에 불탈 때마다 보이는 모든 형식과 절차 그리고 형상들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시대가 되면서 진리와 영감이 식어지게 되면 즉각 보이는 형상 절차 모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현재 교회의 건물 분위기, 강단 모양내기, 심지어 목회자의 가운 걸치기까지,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상이 다 같은 류의 것입니다. 성경이 원래 붉은 색이었으나 황금빛으로 칠한 것도 타락의 가장 눈에 띄는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 마음 속에 가장 진리와 거리 먼 요소인 '감정'이 주도하는 것입니다. 천주교를 흔히 서양 불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는 없어진 지 옛날이고 남은 것은 색채와 조각이기 때문이며 설교까지 주문으로 다 바뀌어버렸습니다. 절에 가게 되면 들어가는 첫문 안쪽에 사천대왕이 눈을 부릅뜨고 큰 칼을 들고 죄 지은 사람 목을 그 자리에서 칠 듯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위협을 느끼게 되며 대웅전 안에 있는 금불상의 미소에서 위안을 갖게 되는 것은 인간 심리를 이용한 사술입니다. 불교와 천주교로부터 모든 조각과 형상을 제거하고 판에 박아 놓은 모든 주문과 의식 절차를 제거해 버리면, 양파나 양배추 껍질을 다 벗기고 나면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3.어디까지라고 선을 정하지 않겠으나 신앙전반에 걸쳐 조심할 일입니다.
찬송가도 성경에 비해서는 감정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허락된 것이기 때문에 찬송 자체를 두고 말하지는 않으나 벌써 나이많은 이들이 흘러간 옛노래에서 느끼는 자기 도취, 젊은이들이 팝송 등에서 얻는 감흥과 같은 류로 찬송가를 대하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보게 됩니다. 신앙의 정도에 따라 성경 관련 모습들은 그림이나 조각으로 대하지 말아야겠다고 단정하지만 나머지는 자기 신앙에 따라 조심할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보이는 것을 자꾸 벗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부터 얻었던 것보다 더 확실한 세계를 얻고 나가야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고 무형으로 나아가야지 오히려 밖으로 나오고 유형으로 나오는 것은 어떤 면에서라도 '타락'이라고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