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질문) 예배 순서, 묵도와 묵상기도의 차이 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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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질문) 예배 순서, 묵도와 묵상기도의 차이 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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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문) 예배 순서, 묵도와 묵상기도의 차이 2411

1.설교자들이 죽어 천국 간 사람들이 지구를 내려다보며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며 좋아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것이 성경에 있습니까?
천국에서 지구를 보고 좋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2.예배순서에 대한 질문입니다. 묵도와 묵상기도와의 차이가 무엇인지요?

3.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도록 예배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4.성경지식들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해고 과언이 아닌 요즘 성도들인데 말씀대로 사는 것은 희귀한 세상입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요?


(답변) 바로 믿어보려면, 알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별것'이라 합니다만.

1.천국에 간 성도들이 지상에 있는 우리를 보고 좋아하고 있을찌?

①고전13:12에서,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세상 생활을 끝낸 사람들에게는 가리우는 것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 위에 있는 우리는 죄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져 한치 앞을 바로 보지 못하지만, 육체를 벗고 천국에 간 성도들은 자신을 가장 많이 가렸던 몸을 벗었고 또 자기 심신의 모든 죄와 악습과 어두움을 모두 벗었기 때문에 알지 못함이 없는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②계6:9-10에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천국에 앞서 간 성도들이 이 땅 위에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호소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기들을 죽인 자들이 땅 위에 있으니 그들에게 복수해 달라는 뜻으로 읽기 쉽겠습니다만, 그들이 흘린 피는 구원을 위해 흘린 복음의 피입니다. 그들이 구원하고자 노력했던 그 사역이 아직도 막혀 있음을 보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이며, 그 기도는 이 지상에서 신앙으로 살려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들은 복을 전했고, 그들에게서 복음을 받던 지상의 성도들이 드디어 앞선 선배들처럼 신앙으로 바로 승리하고 나간다면 그 호소가 이루어졌으니 그들의 기쁨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③히11:4에서,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한다'는 뜻은 '발언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고, '역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은 증거생활입니다. 전하는 사람에게 능력과 역사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증거만 하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하게 됩니다.

앞서 간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다 가고 나면, 그들의 증거는 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그 믿음의 간구를 듣고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통해서 역사를 합니다. 계6:9-10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역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전적 역사하시지만 겉으로는 꼭 우리 성도들을 앞세워 역사합니다. 성경을 기록할 때 속으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지만 우리는 '마태'복음, '여호수아'로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④눅15장의 회개한 형제에 대한 기쁨

3절 이하에서 잃은 양을 찾았을 때, 그리고 8절 이하에서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또 11절 이하에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이웃과 벗을 불러 모으고 또 온 가족들이 다 모여 잔치를 하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그 천사들과 앞서 간 성도들 전체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6절과 9절에서 '벗과 이웃'이라 했는데, 주님의 친구가 되는 '벗'이라면 바로 앞서 믿고 간 성도들입니다. '이웃'이라 말은 이 복음운동에 관련된 주변 모두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과연 그렇게 좋을 일이 많을 것인가? 물론 많지는 못하겠으나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에 있는 성구는 매 현실마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행위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패전이 많겠지만, 더러 승리하여 주님과 앞서간 성도들의 환호가 나오기도 할 것입니다. 천국보다 좋을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다음에 천국에 올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한 행동을 '기특하게' 보고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2.묵도와 묵상기도

묵상기도를 줄여서 '묵기도'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묵기도'를 더 줄여서 '묵도'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3.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도록 예배회복하는 방법은?

①오늘 대표적인 예배 파괴 행위들을 몇 가지 예로 든다면

예배는, 하나님을 섬길 위치에 올려놓고, 우리는 그 밑에 조아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강단에 올라가는 목회자가 청중을 밑으로 내려 깔아보며 휙 둘러보는 식의 자세, 마치 교수가 강단에 서듯이. 찬송인도자와 찬양대가 청중들 앞에서 자기들의 음악실력을 자랑하거나 아니면 제 음에 제가 취해서 노래방에 온 줄로 생각하는 일, 대표기도하는 사람이 내 기도 들어보라며 마구 세치 혀를 휘둘러 모인 이들을 압도하는 일, 아무 순서도 맡지 않은 이들은 재미있는 예화 한 마디 듣거나 아니면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재담을 기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성인들이 한번쯤 들어두면 좋을 만한 명언 하나 듣는 시간으로 아는 것.

이런 식 예배가 바로 예배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무참히 짓밟고 인간들이 멍석 위에 열 두 마당 난장판을 벌이는 행위들입니다. 그런 행위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예로 들었습니다. 바로 이제 예를 들었던 행동들과 그 이면의 자세를 비판한 것을 생각하셔서 그렇게 되면 예배가 파괴된 것이니, 그런 면들을 고치면 예배가 될 것 같습니다.


②예배란, 그 자세가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당신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지은 죄가 많으니 죽이면 죽어야겠고, 만일 살려주시면 한없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처분권자이신 만유주 그 높으신 주님 앞에 나와서 그분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듣는 시간이 예배시간의 절반입니다. 이런 점에서 목회자의 위치는 하늘 꼭대기만큼 높다는 점을 잘 인식하셔야 합니다. 있는 힘껏 존중하고 높여야 옳습니다. 그를 통해 그날 하실 말씀 한 마디가 모인 무리들에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혹 목회자들이 그 높은 주님께 쓰임받는 위치만 알고 자세가 잘못되면, 높은 곳인만큼 떨어질 때 바가지 깨지는 소리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뇌에 충격이 가해지면 외상성 뇌손상이라 하는데, 그 후유증이 참으로 심대합니다. 헛소리도 하고, 앉았다 일어서면 다 잊어먹고, 손발이 휙 비틀어지는 등 아주 심각해집니다. 오늘 목회자들의 내면이 거의 다 이렇습니다. 그 사고 경위가 바로 자기들의 앉아있는 위치가 얼마나 고공인데, 그곳에서 떨어지면 어찌된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 마음에 바람만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③참 예배, 그 예배의 알맹이는, 그날의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는 것입니다.

예배를 대하는 자세가 바로 되었다면, 그다음에는 그날 예배시간에 들려지는 말씀이 예배의 본론입니다. 그날의 '그 말씀에 사람'이 되고 그 말씀으로 자기를 비추어 실제 자기 속에 고칠 것을 발견해서 고쳐진 것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최고 은혜를 받은 것이고, 이 은혜를 받는 순간이 바로 예배의 순간입니다.

과거 총공회 노선 내에서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생사를 걸고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육탄전으로 싸울 일이 아니었는데 '예배론'을 오해한 측에서 너무 성급하게 일을 저질러 발생한 일입니다. 당시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측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정통 교리서의 내용을 암기해서 고장난 기계처럼 반복만 하고 있었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말씀으로 자신을 고치는 것이며 이 말씀의 은혜가 예배의 가장 핵심이라는 설명을 도저히 들으려 하지 않았던 안타까운 일을 기억합니다. 일반 교리서가 설명하고 있는 '예배론'은 예배의 제일 껍데기 형식만을 설명하고 있지 그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는 책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구경도 못한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세상 정치학개론을 적듯 행정학 교과서를 적어내려가듯 적은 것인데, 그들은 예배를 드려본 적이 과연 있는가 라고 이곳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③어쨌든, 오늘 예배는 개장판이며, 고양이 쥐가지고 노는 난장판입니다.

개에게 깔고 주무시라며 장판을 깔아 줘 보셨는지요? 엉망진창을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개장판'이라고 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오늘 예배시간은 강단을 꾸민 것이나, 예배 순서 진행부터 설교 내용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앉은 것이 아니고, 쥐가 고양이를 마구 까뭉개고 놀고 있는 판입니다.

오늘, 예배당을 혹시 보셨는지요? 아직도 '예배당'이라는 곳이 이 나라에 생존해 계신지요? 이런 안부를 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드럼을 갖다 놓은 건물은 노래방이지 예배당은 아닐 것이고
황수관박사를 모시고 건강강좌를 열었다면 공회당이지 예배당은 아닐 것입니다.
남녀가 손을 잡고 포크댄서를 했다면 그곳은 극장이지 예배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오늘은 예배만 없어진 시대가 아니고 예배당이라는 곳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④참고로, 손양원목사님의 다음 발언을 보셨으면, 해방 직후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부패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사실상으로
성전을 함부로 쓴 까닭이다. 성전을 함부로 쓰는 것은

첫째, 공회당처럼 쓸 때이다. (*공회당은 요즘 시민회관 정도로 보셨으면)
교회에서 무슨 일이나 회합을 하고, 누구나 다 모여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둘째, 학교 같이 쓸 때이다.
세상적인 무슨 학습 강연이나 교육적인 것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회를 타락케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구락부처럼 쓸 때이다. (구락부는 해방 직후 사용된 말로, 요즘의 '써클'활동)

넷째, 극장같이 쓸 때이다.
성극이란 이름으로 함부로 강단을 더렵혀서는 안된다.


⑤예수님같이 채찍을 들고 예배당마다 들어가서 몽땅 때려 엎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번 질문에 하필이면 '예배회복'이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격분하여 설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조차도 없다하는 시대이니, 무슨 예배가 존재나 하겠습니까? 예배당 치장이 술집여자인지, 아니면 천주교 성당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예배당 껍데기부터 벗겨대야 할 곳이 얼마나 많은지. 예배당 내부에 온통 붙여놓은 포스터 안내문도 다 뜯어내야 할 것이고, 강단 구조 모양 위치 치장도 몽땅 다 들어내야 할 듯 합니다. 아마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예수님처럼 채찍을 가지고 들어가야 할 것같습니다.


4.지식이 아니라 '실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내가 마음 먹으면 이 순간 당장에 할 수 있는 너무 사소한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셨으면 합니다. 작은 것부터 해 보면, 말씀 전체를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오늘 시대가, 질문자의 탄식처럼 성경지식은 물이 넘치듯 넘실대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없어 탄식입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말씀대로 살아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너무도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실행의 사람이 되는 것은 사도바울이나 되는 듯 어려워 보이고, 그래서 무슨 비결이나 특효약이 있는가 해서 찾아봐야 할 만큼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행해보면, 만사는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이 부분 설명은 조금 자세하게 들어가려면 설교록 전체를 언급해야 하기 때문에 요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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