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질문) 중간반 예배는 6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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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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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16. (질문) 중간반 예배는 6058
중간반 예배에 대해 문의 드립니다.
1. 백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중간반 예배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요?
전체 예배시간, 통반설교, 분반공부, 기타 등의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요?
2. 세월이 많이 지나 오늘날 중간반 예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보통 50- 100명 정도의 중간반 예배의 진행은 어떻게 진행되면 좋을런지요?
3. 중간반의 성장(부흥)이 현상유지 정도이고 대체로 힘든데, 중간반의 성장 혹은 장년반으로 계속 신앙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꼭 해야 할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요? 성경(진리) 중심으로 중간반 학생들의 신앙 성장과 유익을 위해서 예배외에 지도해야 할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요?
(참고자료)
중간반사 제도에 대해서 묻고싶습니다.
백목사님의 서부교회 중간반에 관련된 간단한 몇 가지 소개입니다.
4.학생들의 장년반 예배참석
중간반으로 주일학생이 성장하면 시험에 드는이유?
초등학생이 중학생으로 바뀌는 과정에, 겉은 관리가 되고 속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답변) 일면만 소개하겠습니다.
1. 윗글로 제시한 참고자료를 먼저 살펴주시고
2. 백목사님 생전 중간반은
초기 서영준목사님이 책임지고 2천명 매주 출석을 기록하던 때와
그후 여러 목사님들이 후임을 맡아 지도할 때와
최종 백목사님 생존 마지막 순간에 그 사후 훗날을 생각하고 조처한 때는
중간반의 기본 성격이나 운영의 주요 방향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부교회 중간반 제도 자체의 이런 변화와 성격에 대하여서는
이곳보다 /초기화면/총공회/내부문답/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으며
이곳에서는 이 정도만 소개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백목사님의 주일학교와 중간반 제도의 운영은
근본 방향과 원칙은 변한 것이 없고 그분 신앙 평생에 늘 같았지만
기술적으로 비교한다면 교회의 변하는 환경에서 늘 가장 좋은 길을 택하여 그 운영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었습니다.
3.물론 중간반의 제도 변화가 있었다 해도
일반 교회들처럼 더 넓게 더 세상에 가깝도록 변한 것은 없습니다.
갈수록 더욱 좁게 더욱 철저하게 나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앙이 어릴 때보다 세월 속에 신앙이 자라면 자란 만큼 더 어려운 것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또 기회가 될 때마 꾸준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반사들에게 학생 배정이나 심방지역의 변화처럼 그런 변화를 말하는 것이고
또 중간반의 성격을 자원봉사로 할 것인가 아니면 유급 직원으로 할 것인가 하는 그런 면입니다.
4. 백목사님 생전 중간반 예배 진행은
주일학교나 중간반이나 장년반이나 백목사님 목회의 예배는 그 모습이 거의 같습니다.
주일학교는 분반이 좀더 많은 정도이고
중간반은 통반이 좀더 많은 정도이고
장년반은 통반만 있는 정도입니다.
주일학교 모습과 장년반 모습의 중간쯤으로 보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5.출석 50-100명 정도의 중간반을 운영한다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장년반의 축소판으로 운영하셨으면 합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봉독하고, 설교하고, 반별 출석이나 간단한 체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끝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이상 특별한 순서가 있을 필요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특송 한번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송도 자주하면 특송이 되지 않고 예배의 한 순서로 고정될 수 있습니다.
전체 찬송인도는 찬송을 잘 하는 분이 따로 인도할 수 있겠고
또 찬양대가 있다면 예배 순서의 진행에 튀어나지 않을 정도로 할 수 있겠습니다.
6.교회의 운영, 교회의 부흥, 교회의 기본모습은 '교회'라야 하고 '예배'라야 합니다.
사람의 기술, 사람의 아이디어, 사람의 특별한 덧칠이 더해지면
사람을 기쁘게하는 마켓팅은 될지 몰라도 진정한 교회 부흥일 수는 없으며
예배를 예배로 드리지 않고 청년 학생들의 취향을 따라 그들의 감정과 흥분과 그들 세계의 흥미와 관심을 일으킬 것에 관심을 가지면 이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죽이는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은 자꾸 크지고 인간은 자꾸 작아지며
하나님의 뜻은 자꾸 깊어지고 인간의 의지와 의사는 자꾸 흐려지며
하나님의 인도는 확고해지고 인간이 자기를 꺾고 순종하는 자세로 자라가야 할 터인데
예배나 교회 운영을 두고 근본 방향이 그렇게 되는 곳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예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답변자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물론 교회가 어리고 넓은 곳이어서 한꺼번에 다 바꾸지 못한다면
자기 실력에 맞추어 조금씩이라도 더 예배답게 더 교회답게 나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다른 기술이나 다른 방법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대신 자신의 충성과 기도를 늘려 나갔으면 합니다.
7.중간반 부흥을 위해서
예배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하는 사람이 먼저 말씀대로 한 주간을 열심히 살기 위해 진력하시고
증거하기 전에 전할 말씀을 많이 명상하고 새김질하여 그 말씀에 먼저 은혜를 받으시고
말씀을 증거할 때 전적 주님 역사하시고 나는 심부름만 하도록 노력하셨으면
이렇게 설교를 통해 기르는 것은 밥을 먹여 주는 것과 같고
이제 밥을 먹여놓은 아이가 바로 자라는 것은 부모의 잔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나쁜 아이들과 노는지 살펴봐야 하고
나쁜 습관을 들이는지도 눈여겨 봐야 합니다.
그들이 읽을 책도 살펴야 하고 그들의 용돈 사용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아이를 바로 기르기 위해
한 엄마가 한 아이를 위해 한 인생을 다 투자해버리듯이
교회에서 내가 맡은 한 학생을 바로 기르려면 학생을 맡은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있어 그 학생의 부모보다 학교교사보다 과외교사보다 친척보다
그를 제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그의 필요한 것을 제일 많이 제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주 전화하고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되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자기 생활 자기 활동을 하면서 늘 그 학생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 전도나 심방을 두고 물질을 베푸는 것은 엄금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도나 심방의 열심을 줄이고 물질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금합니다.
그에게 과연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만일 그에게 정말 이 순간에는 학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내 돈으로 학비를 대 줄 수 있습니다. 그가 아프다면 병원까지 업고 갈 수 있습니다. 그에게 정말 그것이 필요하다면 못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다만 그런 물질적 세상적 지원이나 도움을 신앙의 본질인 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 자선단체가 됩니다.
이런 면을 조심하시고
맡은 학생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신다면
그렇게 다 하기 위해 노력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나의 것을 다할 수 있도록 기회도 주시고
또 그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도록 나를 부하게 하시고 실력을 가지게 합니다.
전하는 나부터 복을 받게 됩니다.
전함으로 그가 복음의 사람이 되고, 전한 사람인 나도 복을 받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나는 하나밖에 없는 그를 가장 사랑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서부교회 부흥법은 교회사를 통해 굉장한 사례입니다.
수많은 기록이 있고 다른 교회들과는 비교 자체를 할 차원이 아닌 정도인데
그 중에 하나 예를 든다면 전도와 심방을 위해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다 배제하지만
각 교인들은 자기 구역식구에게 각 학생은 자기 선생님에게 소리없이 도움을 받은 것은
그 어떤 교회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뜨거운 것, 은밀한 것,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역장이 몇 년간 병석에 누워도
그 식구들이 친 자녀들을 대신하여 대소변을 다 받아내는 정도로
감사한 것이 많고 그 연결의 신앙관계가 특별합니다.
신령한 것으로 가르쳤고 지도했지만
그 과정에서 표없이 그들을 사랑한 것은 사람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백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서부교회 교인 중에서 제대로 된 교인이라면 백목사님에게 개인적으로 세상문제에 이르기까지 크게 신세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뜨거운 사랑의 안팎이 자연스럽게 다 전해져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질은 신앙이며 세상 것은 따라가다가 발생하는 부수적인 것이고
항상 신앙의 교훈이 앞서가고 심방의 행정이 뒤를 따라가며 어린 것을 장성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독립신앙에까지 지원하는 것이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