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질문) 길에서 찬송을 크게 틀어놓고 전도하는 것은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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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질문) 길에서 찬송을 크게 틀어놓고 전도하는 것은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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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질문) 길에서 찬송을 크게 틀어놓고 전도하는 것은 1526


차에 스피크 장치를 하여 찬송을 크게 틀어놓고 도로를 주행하며 전도를 하는 차량을 보셨는지요 그 전도에 대해서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날이나 큰 시장에서 스피크를 통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외침전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소리 높혀 외쳐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심하실 일입니다.

(우선 답변: 03.03.14. 06:55)

1.소리높혀 외쳐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산 산복도로 꼭대기 집들을 심방하다 보면 '교회가 무엇하는 곳인가요?' '예수님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또한 그 시절에는 여러 행상들이 마음껏 소리높혀 자기 물건 사라고 홍보를 하던 때였습니다. 앞집 부부싸움에 뒷집 사람들은 밤새 잠을 잘 수 없어도 예사로 듣고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온 나라가 온 도시가 온 골목이 온 집안에 고함 소리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좋아서 웃는 소리가 목청껏 오가던 때였습니다.

이렇게 미개하던 사회를 향해 전도할 때에도, 이곳은 집집마다 조용히 호별방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앰프와 스피커를 들고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통성으로 노방전도를 했었습니다. 이 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만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서부교회만이 그렇게 했습니다. 부산의 주거지는 평지가 좁고 산비탈을 따라 집들이 줄줄이 늘어선 형태이기 때문에 동네 한 복판에 자리를 잘 잡으면 마치 원형극장 무대와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짧으면 10분 대개는 2-30분동안 전도를 했습니다. 볼륨을 한껏 올리고 전도하는 분은 목이 터지라고 외쳤었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도 항의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도 모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그 이름이라도 전해야 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한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전할 수 있었던 기회였고 너무도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2.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소음규제가 갑자기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배운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기 개인 공간과 분위기를 확보하려는 사회 의식이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소음을 규제하던 때였습니다. 동시에 이미 부산을 기준으로 말씀드린다면 이제 전도를 하면서 예수를 처음 들어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고 예수믿는 사람들은 천국가려고 교회를 다닌다더라고 거의 상식이 되어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때는 호별방문으로 거의 전도를 하였고 노방전도는 그 큰 서부교회에서 4-5명 정도, 작은 휴대용 스피커로 조용조용 전하는 정도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3.1990년대 이후 지금은 이미 대로에서 외쳐야 할 시기는 지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느 특수한 분이 특별한 영감이 있어 개별적으로 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전체를 상대로 교계가 일반적으로 고려할 전도라고 한다면 이미 지나가는 사람을 상대로 무조건 소리를 높이는 것은 극히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는 '예수, 구원'을 전하는 것입니다. 듣지 못한 귀가 없고 알지 못하는 마음들이 없습니다. 이 사회 구성원의 약 1/4에서 1/3이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받아야 할 불신자들 주변 몇 사람 중에 하나는 믿는 사람입니다. 직장의 한 사무실 내에 있는 1-20여명 중에 3-6명이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처음 듣게 되고 알게 되어 믿게 되는 과정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4.지금 2000년도, 이 시점에 대로에서 확성기로 외치는 분들에 대하여는 안타깝게 보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을 자제시킨다는 행동도 극히 조심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과 동기에 대하여는, 일반론적으로 말한다면 대단히 지적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대로에서 외쳐야 할 필요가 있을 그때는 외치는 이들이 '소리를 높혀서' 탄압받는 것이 아니고 왜 '예수'를 전하느냐고 핍박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불교 유교 여러 종류의 미신 때문이었습니다. 신체적인 위협도 있었고 미친놈 보듯하는 눈총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데모하는 사람들도 고함을 지르고 별별 종류의 이익단체가 자기들 대로 무슨 말이든 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전한다고 핍박을 받는 시대는 아닙니다. 바로 이런 때에 '박해를 무릎쓰고' 전한다는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예수 구원'이라는 전도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못듣는 이들을 향해' 외친다는 것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혹 과시로, 혹 자기 채찍으로, 혹 전도 사명을 수행한다는 성취감으로 한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해서 한다고 볼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자기 충성을 위해 외치는 것은 외칠지라도 객관과 주변과 상황과 시기에 맞지 않는 것은 믿는 사람이 자기 중심을 떠나 다른 존재의 형편을 살피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신앙 본질면을 생각할 때 심각하게 제고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5.장날 등 큰 시장에서 외치는 것도 같은 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 오늘 형편으로 말한다면 믿는 사람과 교회가 차고 넘쳐서 폐단이 된다고까지 사회가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믿는 사람과 교회가 현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주목받는 중에 그들 마음에 신앙에 이끌릴 수 있도록 우리가 천국 소망과 말씀 생활에 충만하면 가장 큰 소리로 전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생활과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전도에서 실패하고 만일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 전도의 문은 크게 막히리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 교회들에게는 분명히 이 문제를 쉽게 넘겨서 안된다고 봅니다.


전도하지 않는 죄가 제일 크고
전도하는 방편을 잘못 택한 분들에게는 안타까움이 있고
힘써 전하되 그 힘써 전할 방법과 노력을 바로 하는 충성이 아쉬울 때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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